12/25/2011

테니스

초등학교 다닐 때쯤... (우리 때는 국민 학교라고 했었는데.... )
집 바로 앞에 종합 운동장도 있고 맞은 편 공원 근저리에 테니스 장도 있어서 아직 시집 안간 우리 둘째 이모는 자주 우리 집에 들러 나랑 운동을 다니곤 했다.

나는 유치원 대신 유아 체능단을 다녔고, 아직은 기운이 팔팔 했던지라.... 달리기를 제외한 다양한 체육 종목, 피구, 볼링, 수영, 스케이트, 배드민턴 등의 운동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고 운동을 좋아하시던 이모와 쿵짝이 잘 맞았다.
아..... 지금은 비루하기 그지 없는 실력 + 체력을 자랑하지만.... 그땐 그랬다.
그렇게 이모를 따라 근 2년간은 테니스를 배웠다. 겨울에는 한강 수영장에 스케이트장이 설치 되곤 했는데 겨울에는 그렇게 스케이트를 타고 여름에는 테니스도 다니고 수영장도 다니며 운동을 마친 후엔 이모랑 매점에 앉아 도시락 라면을 호호 불어 먹곤 했다. 그땐 그렇게 좋은줄 모르고 마냥 이모가 좋아 따라 다녔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소중한 보물 같은 추억이다.

예전에 누군가에게도 말했지만..... 어린시절에 받았던 사랑은 커서 세상을 살아갈때 큰 힘이 된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사랑 받고 자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도...  이모와 삼촌들께 받았던 사랑이 아직까지 가슴 깊이 남아 있다...


서른이 가까워지며 이제는 내가 예전의 이모 나이가 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다시금 이모가 너무나 그립고 생각이 자주 난다.
살아 계셨더라면 만나볼수도 있을 것을..... 돌아 가시기 전에 나는 딸보다 우리 상아가 아직도 더 예쁘다고 말씀 하셨던 그 말만 머리에 남아 자꾸만 맴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돌아 가실걸 알았다면 더 자주 찾아 뵐껄.... 그렇지 않아도 본인 삶의 무게 때문에 내게 먼저 손 내밀기 힘드셨을텐데..... 하는 후회와 슬픔이 가슴에 남아 자꾸만 이모와 갔던 곳, 이모와 함께 했던 것들을 찾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이모와 함께 다녔던 테니스를 다시 꼭 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지금 내 나이가 딱 이모가 나를 데리고 다니시던 그 나이다......) 근 반년이 넘게 생각만 하고 막상 시작하기가 힘들었는데, 회사에 부장님께서 테니스를 가신다고 하길래 따라 나섰다.
예전에 볼링을 4년만에 쳤을때 왜 이렇게 점수가 안나던지.... 역시 손 놓으면 감이 떨어지는 구나... 하고 생각 한 적이 있었는데 스쿼시나 수영, 자전거 같은 경우는 몇 년 쉬어도 금새 따라가길래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기 때문일까.... 어머나 이게 왠 일.... 테니스 코트에 서서 날아 오는 공을 치려는데 폼도 기억이 안나고 공도 완전.... -_- 아아 괴로워 ㅠ.ㅠ
쳤다는 말이나 말 것을.... 고등학교 때 마지막으로 쳐 본 이후 라켓을 잡은 일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스쿼시는 나름 자주 쳤는데... 헉 이게 정말 왠일.....
너무 당황해서 어버버 말도 나오지 않고 아.... 레슨 받아야지... 하는 생각만 강하게 들었다.

도대체 옛날에 어떻게 쳤는지 기억도 안나고....
아니 내가 친게 맞나? 싶고.... 도대체 내 2년간의 시간과 노력은 무었이란 말인가....
아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났건가? 아니면 내가 늙은건가.... 하는 생각이 감정이 복잡했다.
(같이 가신 부장님도 황당해 하시는 것 같았음 )

그렇게 테니스를 치고 같이 갔던 부장님, 상무님, 책임님과 부장님 집에 가서 라면을 끓여 먹는데 옛 생각이 많이 났다.

아.... 지금 이모가 살아 계셨더라면..... 이모랑 같이 주말에 테니스 치고 맥주 한잔 했을텐데....
여행을 좋아했던 우리 이모.... 살아 계셨더라면 폴란드에도 오시라고 해서 같이 여행도 하고
나랑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눌수 있었을텐데..... 
상아가 조금만 크면 나랑 맥주 한잔 시원하게 하자며 웃으시던 우리 이모.... 나도 항상 내가 크면 우리 이모랑 남자 얘기도 하고 사는 얘기도 하면서 그렇게 지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소망은 이제 절대 이루어질수 없는 꿈이 되고야 말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그나저나 테니스는 진짜 레슨 좀 받아야지...
이건 진짜 초보도 왕 초보다.
어디가서 쳤다는 말하기가 창피한 정도.... -_-

12/11/2011

근황

아.... 이럴꺼면 블로그를 왜 시작했을까...
별로 보는 사람도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방치하는 건.... -_-

참 많은 일이 있었는데 막상 그때는 왜 이렇게 시간이 안가나.... 만 생각하고 있었으니....
딱히 글을 쓸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닌데, 그냥......그렇게 시간이 기다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안부를 묻고 싶었던 사람도 많았고 얘기를 나누고 싶었던 사람들도 있었는데 연락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닌 그런 상태로 시간이 한참 흘러가 버렸다.

간략히 그동안의 일을 말하자면..... 다시 직장에 복귀했고, 새로 아파트를 얻어 이사를 했고, 그리고....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올해 바르샤바의 겨울은 너무나 온난하다.
처음 맞았던 겨울을 아직도 기억하는데 12월, 길에 눈이 쌓여 걷기가 힘들어 고무 장화를 샀더랬다. 그때....해가 뜨지 않는 몇개월을 보내고 처음으로 해를 본게 4월이던가?
그랬는데.... 어제 오늘 날씨가 너무 화창해서 마음이 송구스럽기 그지 없다....

'이....이건 우울해 하지 말라는 하늘의 뜻이야!! '라고 생각하려고 노력도 하고....
주말을 6월에 있을 시험 준비로 인한 수업으로 보내야 하는 나에 대한 선물이라고도 애써 생각했다.
공부할게 너무나 많고..... 또 나는.... 기본적인 개념을 익히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매우 매우 이해력이 딸리는 학생이다. 일주일에 최소한 10시간은 혼자 공부해야 붙는 시험이라는데....
아아아아아..... 통과를 해도 걱정인 것이....  1차 시험은 지금 하는 일과 그렇게 동떨어진게 아니지만,  2차부터는 향후의 커리어에 대해 심각히 고민해야 할 정도로 특화된 시험이라....
지금 모시고 있는 부장님을 끝까지 ( 영원히가 아니라.... 그...분의 임기를 채우겠다는 의미임....) 모시겠다는 의지....를 실현 한 다음의 행보가 고민이다.
하지만 요건 사실 지금할 필요는 없는 고민이시라..... 당장은 이 친숙하지 않은 단어, 개념, 공식을 파악해야할 때다....

아... 그런데 오늘 강사님 너무 멋지시더라.... 당황하면 말 좀 더듬으시던데.....
능숙하게 문제를 풀어 나가는 모습....  나도 모르게 넋을 잃고 쳐다 봤다는.....  -_-
전에도 엑셀을 능숙히 다루는 부장님의 모습을 볼때나 SAP를 능숙하게 돌리는 차장님의 모습을 보고..... 아! 좋은 분이야.... 라고 생각이 들었던 걸 보면.... 역시 나는 능력자에게 약한 것 같다. 그러고보니 얼마전에도 회사 언니가 라우터를 설치해 주시는 걸 보고 (설명서대로 했는데도 설치를 못하는 기계치) 언니!!!!!! 이러면서 언니에게 이글아이를 보냈다는......
그렇지만 내가 잘 모르는 분야를 능숙하게 다루시는 분을 볼때는.... 별 감흥이 없다.
이건 뭥미???? 하는 떨떠름한 느낌....

오늘 그 분께서 계산기가 당신의 절친이 되길 바랍니다. 저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라고 말씀 하셨을때는 그 분의 계산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잠시 들었다 -_-  (하지만 오른손 약지에는 반지가 번쩍번쩍)
선생님이 멋지거나 멋있는 학우 (단어에서 오묘한 어감이 느껴지지만) 가 있으면 수업이 즐겁고 엄청난 동기가 부여되는데....

아 이 시험 정말 열심히 공부 할 것 같다....... (통과여부에 대한 감과는 거리가 멀다능....)

10/05/2011

여유

갑자기 일을 놓고 집에 들어와 앉으니 숨겨져 있던 게으름이 끝도 없이 방출되고 쓸데없는 생각만 많아지는 것 같다.

당장 독일어 공부를 해야 하고 GMAT시험도 봐야 하고.... 이미 점수가 만기된 토익도 봐야 하니 연습 문제라도 한번 풀어 봐야하고.... 폴란드어 그 동안 공부한 것들이 적지 않은 양이니 정리하고 입으로 자연스럽게 나올수 있도록 연습도 해줘야하고....기타 등등 계획 했던 것들도 많고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닌데.... 날 감시하던 (?) 팀장의 눈초리가 없고......   감시와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지니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고 하면....-_-

한없이 풀어져 빈둥빈둥 놀다가 커피 마시고 테레비보다 목욕하고 소파에 누워 하늘 쳐다보다가 독일어 책 피고 좀 보다 30분도 안되서 인터넷 하고...

아... 이게 뭔 호사인가.....





그런데 재미있는 건......
초등학교 시절 ( 나 다닐때는 국민학교 였음) 난 참 시계 부분에 약했다.

왜 그랬을까.... 항상 산수 시험에서 시계 그림만 나오면 그냥 짜증이 나고..... 잘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는데 어쩌면 나이를 먹고도 똑같이 폴란드어로 시계 부분을 이렇게 못하는지....  사람은 변하지 않나봄....
마지막으로 보고온 쪽지 시험에서 시계 부분에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 하하하하....
남자친구가 보고 엄청 웃던데.....  (나쁜넘.... )

이제 좀 손 놓고 있었던 폴란드어 포스팅 좀 다시 할수 있으려나....
아... 폴란드 음식도 좀 정리해서 포스팅 하고 싶은디....

10/04/2011

갈등

나쁜놈.... -_- 이라는 말만 떠오르는 지금.....

내가 욕먹으면서....(욕이라면 좀 과장이긴 하지만..... 아무튼 김치 담글때 집 난장판으로 해 놓는다고 쫌 구박 먹었던 기억) 김치 담궈 냉장고에 넣어두면 야근하고 돌아와서 가끔 냉장고를 열어 생 김치만 밥도 없이 집어 먹던 니가....

이제와서 하는 말이 뭣이라? 사실은 동양 음식 별로라고...

내가 요새 잘못이 많아 뭐라 말은 못했다만....  내 지금 느낀 배신감은 결코 잊지 않겠다.

일하면서 피곤에 쩔어서 김치 좀 먹어 보겠다고 어깨가 빠져라 담근 김치 훔쳐 먹어도 ( 자는 와중에도 사실 짜증이 좀 났었음, 저 쉑이가!! 하고 발끈 하였으나 그냥 자는 척....) 내 별 말 안했는데 나름 결혼해 보겠다고 마음 먹은 놈이 이런말을 하니 마음에 앙금이 깊이 남았다.

그런데 원래 결혼생활 하는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마음에 앙금을 안고 사는 걸까?


풀길이 없구만.... 쩝
 
아 왜 이렇게 다를까...
한국 사람은 말을 아끼는게 미덕인데... 여긴 무조건 대화로 풀고 무조건 말로 설명한다....
그런데 오히려 더 답답하네....



그런데 나는 왜 이 결혼을 하려고 했지? 하는 고민을 한달이 넘도록 하고 있을까....

8/19/2011

깜짝 선물

퇴사 전의 깜짝 선물인가....
원래 우리 팀은 출장 갈일이 별로 없는데 갑작스럽게 한국 출장이 잡혔다. 그것도 당장....
퇴사 한달전에 출장 가는 오묘한 이 기분..


할 일도 많은데 심정이 복잡하다.
(사실은 돈이 없다...)
외국에 나와 있다가 한국에 들어가는 다른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조금 부담이 된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의 애정 어린 시선....... 좋지만 가끔은 불편할 때가 있다.
나를 너무나 사랑해 주시는 분들이지만...비슷한 나이 또래의 딸을 둔 자매들의 약간의 경쟁 의식이랄까....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어떻게 사나 궁금해 하시는 이모들의 질문에 잘 대답 해야 하고....
또 돈을 버는 입장이니 선물도 사가야 하고....
뭔가 미묘한게 많다.

나보다 먼저 외국에 나가 10년을 살았던 사촌 언니가 한국을 드나들며 이모 선물만 사고 다른 이모들 선물은 단 한번도 사온적이 없다.
친 언니처럼 사랑하는 언니지만.... 그 모습을 보며 개인적으로 느낀바가 많다.
대단한 물건이 아니더라도 애정을 표시하는데 선물 만큼 좋은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속물적이다 또는 체면치레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한국에 들어갈 때면 꼭 선물을 사 들고 가고 싶다.

표현하지 않으면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가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엄마에게 맛있는 밥도 사주고 싶고.... 또 친구들도 만나고 싶으니.... 갑작스러운 한국 방문은 늘 예상치 못한 지출이 따른다.
그리고 호텔에서 일주일이나 머물러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갑갑....

장시간의 비행도 그렇고.... 시차가 적응 되기도 전에 빡세게 일할걸 생각해도 갑갑....


곱창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래도 많은 위로가 된다...
당장 내일 아침 비행기 탈 생각을 하니 가슴이....윽




8/11/2011

변화

곧 바르샤바와도 이별이다.
벌써 이 곳에 온지도 2년이 다 되어 간다.
2년을 딱 한달 앞둔 시점, 그 동안 정들었던 거리, 회사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간다.
생각을 안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막상 결정하고 나니 너무 빨리 모든 것이 바뀌는 것 같다.
얼마전까지만해도 내년까지는 있겠지.... 하고 생각 했는데 이렇게 빨리 결정하게 될줄은 몰랐다.  마음이 복잡하다.


그래서...........한국에 가기로 했다.

곧 다가올 큰 변화를 대비하여 기존의 계획을 대폭 수정, 엄마도 보고 마음의 정리를 좀 단단히 하는 의미에서 가족 친지들 외 절친 30명 내외로 초대하는 작은 자리도 마련해 볼까 생각중이다... 준비할 것들이 많아 성가시겠지만 이럴때 아니면 정말 언제 다 같이 볼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큰 결심을 했다.

10월 20일쯤 들어가서 한달쯤 있다가 나올 생각인데.....
그 후에는 빡센 일정이 기다리고 있으니 맛있는 거 많이 먹고 푹 쉬다 와야지...

8/03/2011

깜놀

Kleszsz 클레쉬취 정도의 발음인데... 이게 뭐냐면...

어제 아침에 샤워를 하면서 비누칠을 하는데.... 손에 뭔가 불편한 느낌이 전해졌다.
어디서 또 긁혔나... 하면서 손톱으로 살짝 건드렸는데 아무 느낌도 안왔다... 보통 상처면 약간 쓰려야 되는디....
-_- 이건 뭥미.. 어디서 뭐가 붙은거얌... 하는 생각으로 손톱으로 잡아 떼는데 피부가 약간 늘어 났다가 풀려다면서 퐁... 하는 느낌과 함께 다리 같은게 있는 작은게 딸려 나오는게 아님?
어? 이거 뭐야.... 숲에서 딸려왔나? 흡혈곤충인가? 하고 잠시 생각했다 그냥 버리려다 놀려줄 마음에 남자친구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사실 이때까지는 호기심 때문에 별 다른 느낌이 없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지난 주말 부모님 집에서 같이 놀고 나는 일요일 오후에 바르샤바로 돌아 왔고, 남자친구는 그 다음날  오후 스위스로 가는 중 이륙 지연으로 인해 바르샤바에서 바꿔 타야 하는 비행기를 놓쳐 그 다음날 아침에 스위스로 가게 된 남자친구가 집에 있었기에 (왜 같이 있었는지 설명 하는게 이리 긴가.... ) 불러서 보여줬더니 Kleszcz  Ah!!!! 하고 소리를 지르고 호들갑을 떨면서 부모님께 전화를 하고 병원에 전화를 해서 당장 예약을 잡는게 아님?
Kleszcz라는 요 작은 곤충은 알고보니 진드기였다....
그런데 진드기가 뭐 어때서? 그랬더니 남자친구가 대경실색을 하면서 이게 잘못 물리면 뇌에 이상이 올수도 있고 걷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면서 난리난리를 치는 것이었다.

다리에 난 빨간 구멍을 보면서....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온갖 무서운 얘기들이 속속 나왔다. 특히 독일쪽 진드기가 악명이 높은 듯 했다.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갖고 있는 진드기가 1/20 의 확률이라는데... 가뜩이나 우리가 주말에 갔던 숲은 구 독일권이라.... 


그래도 반 구워진 빵 오븐에 돌려서 라즈베리 쨈 발라 계란국 (남자친구가 매우 좋아함.... 무슨 수프 처럼 밥도 없이 떠 먹음) 잘 먹고 공항에서 니 꼭 병원 가라!! 오후 6시 반이다!! 라고 소리 지르고 검사대로 사라진 남자친구를 보내고 회사로 출근....
괜찮을 줄 알았는데 불안감 때문일까.....
하루종일 열과 구토감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다 오후 6시쯤 병원으로 갔다.
이렇게 하루가 길었던 적이 있었던가.....
회사에 앉아 있는 동안 자꾸 지나간 시간들이 떠 올랐다. 내가 이렇게 추억할 거리가 많았던가.... 하는 생각에 좀 놀라기도 하고.... 하루라는 시간이 짧은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 내 인생을 돌아 보기엔 좀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병원에 도착했더니 마음씨 좋게 생긴 할아버지가 요리조리 둘러보더니 별 문제 없으니 집에 가라고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 하길래 불안해 하면서 온갖 말을 쏟아 냈다. 어지럽고 열 나는 것 같고 눈이 뜨겁고 또 배가 딱딱하고 -_-
그랬더니 피검사 하라고 종이 한장 내주고 십일간 복용하라며 항생제 처방 해주고 배 아픈건 29일간 약을 줄테니 하루에 한알씩 먹고 별 경과가 없으면 내시경을 하잔다....
그렇게 세장의 종이를 들고 나오는데.....
아 유럽은 역시 말로 표현 하지 않으면 안되는구나....한국처럼 알아서 봐주길 기대하는 건 안되는 거였어....
알고 있어도 말로 표현 못하면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처럼.... 줴길....

하고 다시 생각했다.

실로 생태계는 오묘한 것이다.
그동안 민감한 촉각을 갖고 있다고 자부 하였건만... 어찌 안쪽 허벅다리까지 올라 가거나 내려 가는 동안, 그리고 뾰족한 주둥이에 피부를 찔리기까지 왜 나는 아무 느낌이 없었지?
지금 보니 빨갛게 구멍이 선명히 보일 정도인데도 말이다.
어떻게 고 작은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달고 다닐 수 있는지.... 참으로 놀랍다.

뭔가 다사다난한 하루였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오랜만에 사천 짜파게티를 특식으로 끓여서 먹고 항생제를 꿀떡 삼키고는 잠이 들었다.

여긴 피검사 하면 두통씩이나 뽑아 가던데... 아아아 괴로워
아침도 굶고 점심 시간에 가서 피 뽑고 맛있는 거 먹고 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