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동생이 유럽여행을 왔다.
전공 특성상 졸업 후 바로 군인이 되는 동생의 상황을 고려해 봤을때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방학으로 제한 되기 때문에 1학년인데도 불구하고 엄마와 의논하여 엄마는 비행기 표, 나는 여행비를 대기로 했다.
너무 급작스럽게 결정된 터라, 너무나 걱정이 된 나머지 네덜란드에 있는 남자친구까지 동원해 여행 루트를 짰는데 남자친구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다 큰 성인 남자인데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거야 니 생각이고....) 하지만 내겐 아직도 어리기만한 동생이라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동생과 최대한 함께 있을 수 있도록 개인 휴가도 내서 함께 다닐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했지만 그녀석 혼자 여행하는 기간이 2주가 넘는지라 내내 마음 한쪽으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막내 동생과 마찬가지로 동생이라고 하기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일까.... 가끔은 야속하기도 하고 속도 많이 태웠지만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단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
늘 어른같은 표정을 짓고는 눈물이 많았던 녀석이 어느새 커서 대학교를 들어가고 혼자 여행을 하겠다고 배낭을 매고 눈앞에 나타나자 금내 눈이 뜨거워졌지만 언제나 그랬듯 나는 감정을 감추고 차갑게 대답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혹시라도 무슨일이 생기면 어떻하나.... 이상한 사람을 만나서 흉한 일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배낭 여행으로 18일에 쓰기엔 좀 많다 싶은 금액의 돈을 유로로 바꿔서 줬는데..... 이 녀석이 얼마나 아끼고 아꼈는지 반이 넘게 남겨왔다.
누나 집에와 안심했는지 바로 잠이 든 동생 옆에서 그 녀석이 여행 기간 동안 쓴 일기를 들춰 보는데 돈을 아끼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수 있었다.
철자는 다 틀려서 얘가 대학생이 맞나 싶은 생각에 웃음이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기특 하기도 하고.... 이젠 정말 다 컸나 보네.. 하는 생각에 섭섭하기도 하고....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이 밀려왔다.
공항에서 손을 흔들고 사라지는 그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걸 보며 엄마는 기분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어 하루 종일 기분이 묘했는데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삐뚤빼뚤한 글씨의 편지가 놓여 있었다.
동생은 나와는 무척 다르다.
서툴지만 정이 많고 사랑이 많다. 아직도 엄마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때면 엄마 다리를 끌어 안고는 응석을 부린다. 차갑게 옳고 그름을 따져가며 비판하는 나와는 전혀 다른 성향을 지녔다. 힘든 시간도 있었고 나도 어려서 사랑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해 순수하게 사랑해주기 보다는 내 욕심이 앞서 동생들에게 늘 냉정하게 대했다.
첫째라는 자리 때문인지 늘 동생들에게 실수 하면 안된다,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따뜻한 말을 건네기 보다는 이성적인 충고를 하려 노력했다. 나보다도 훨씬 어렸던 그 녀석들의 눈에 나는 어떻게 비춰졌을지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가슴 한쪽에 서늘한 바람 같은게 분다.
다행히 나같은 냉정한 누나 밑에서도 그 녀석은 따뜻한 본성을 잃지 않고 컸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날때부터 지니고 있는게 다른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누나랑 엄마랑 꼭 옆에 데려다 놓고 함께 살고 싶다는 말에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나도 엄마한테 이런 멘트 한번 날려 줘야 하나? 하는 생각도 좀 들고....
오랜만에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수 있는 기회 였던 것 같다.
.... 누군가가 그립다..는 감정도 참 오랜만인것 같다.
저는 세살아래 동생한테도 가끔 애뜻한 마음이 들어서 부모님의 마음은 나보다 더하겠지 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생이 훈련소에서 나왔을때 새까맣게 타고 마른 얼굴, 또 훈련으로 생긴 팔꿈치의 상처들...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구요. 다 똑같이 받은 훈련이겠지만 제 동생이라 그런지 코끝이 찡~~
답글삭제동생이 매우 사려깊네요. 누나가 준 용돈을 반이나 남겨왔다니 참으로 기특하고 대견스런 동생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답글삭제어린줄만 알았는데 훌쩍 커버렸더라고요...
나중에 장가간다고 하면 눈물이 나올것 같아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