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2013

고향 생각

날마다 뜨는 신난한 뉴스에.... 마음을 주지 않으려 하다가도 문득 문득 머릿속을 파고 드는 고향 생각에 일손을 놓고 한참을 상념에 젖게 된다.

유럽에 살게 된 이후, 아름다운 마을, 성, 도시를 수 없이 갔지만 그 어느 풍광 보다도 내 마음을 흔드는 건, 여전히 기억속에 사진처럼 선명하게 각인 되어 있는 어린시절의 봄이다.
아직은 차가운 공기지만 따뜻한 햇살에 봄꽃이 천지에 피어,  그 향기가 은은히 퍼지는  봄 내음이 너무나 그립다.
누군가는 일본의 잔재라고 하지만 봄이면 평범했던 우리 동네를 동화속 환상의 세상 같이 만들어 버리던....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벛꽃, 교정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던 목련꽃 향기가 너무 좋아 한참을 나무 밑에 서 있곤 했던 그 순간과 또 이름을 알수 없는 갖은 봄 꽃의 향기들이 떠올라 머릿속을 뒤집어 놓을때면 그렇게 멍하니 책상앞에 앉아 어린시절의 추억으로 걷잡을수 없이 빨려 들어간다.

이 맘때면 상위에 오르던 향기로운 봄 나물과, 냉이국, 김이 오르는 막 지은 밥을 먹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물론 겨우내 먹던 음식이 결코 모자랐던건 아니다.
묵은지에 갖은 장아찌와 젓갈 종류는 전라도 사람들의 소울푸드와 같아서 겨울 내내 부족함 없이 밥을 먹었던 나다.
그때를 생각하면....감사하게도 먹는 것에 대한 즐거움,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도록 풍성한 식생활을 누렸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직도 샌드위치로 한끼 식사를 때우는 서구 식생활에 적응이 되지 않는다. 나에게 식사 시간이란 굉장히 소중하고 중요한 충전이자 기쁨의 시간이기에, 누군가와 식사를 하는 건... 그 사람과 영혼을 나누는 것이라고 했던 어느 유명한 요리사의 말처럼 가끔은 식사 시간이 신성하게 느껴질때도 있다.
그래서 어렸을때는 별 생각 없이 하던 밥이나 한번 먹자 하던 얘기가 나이를 먹을수록 잘 나오지 않는다. 정말로 같이 그 순간을 같이 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인사치레로도 그런 말을 하고 싶지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 어려 젓가락질이 서툴었던 때, 입맛이 없어 반찬 투정을 할때면, 할머니는 보릿물에 밥을 말아 굴미 한마리 구워 살을 발라 내가 밥을 퍼서 입에 넣을때 그 위에 올려 주시다가 내 손이 더뎌질때 쯤이면 젓가락 위에 명란젓을 조금씩 얹어 내 입에 넣어 주곤 하셨다.
그 기억 때문일까? 나는 유독 명란젓을 좋아한다.
(! 하지만 금방 무친 조개젓도 어디에 비할데 없는 맛이다. )

그렇게 내가 할머니와 밥을 먹고 있을때 엄마는 할머니집 마당에서 자라는 새파란 호박을 따다가 빨갛게 양념한 고등어와 보글보글 끓여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계셨는데, 저녁 상에는 또 마당 한구석에서 따온 고추와 갖은 야채가 가득해서, 밥 한뭉텅이와 야채를 크게 싸서 된장을 올려 먹던 여름의 기억과... 그리고 어린시절의 내가 봄을 맞이하며 여름이 머지 않았다는 기대감에 설레이던 그 어린 마음도 떠올라 웃음이 난다.
고향이란 이런 건가 보다....
그때를 생각하면 온갖 색깔과 향기와 맛이 복합적으로 머릿속에서 피어 오른다.
어린 시절 역사 시간에 옛 조상들이 중국에 유학가 십년씩 생활하며 고향을 그리워 하며 쓰던 싯구를 읽을때나, 수구초심 같은 고사성어를 배울때면 이해가지 않았던 마음이 이제는 뼈에 사무치게 공감이 간다...

나는 친가 외가 모두 전라도 쪽이라 유난히 음식에 대한 기억이 많다.
철마다 목포에서 삼촌네가 보내 주던 바다 음식들, 그 중에서도 겨울에 올라온 감태를 장과 참기름에 무쳐 밥위에 올려 먹으면 얼마나 맛있던지...  목포에서 큰 박스가 도착하던 날이면 상위가 푸짐해지곤 했다.  멀건 국물에서 깊은 맛이 느껴지는 연포탕, 그냥 삶아 내기만 해도 눈이 뒤집힐 만큼 맛난 꽃게찜, (참고로 나는 꽃게를 정말 잘 발라 먹는다), 그 냄새만으로도 어질거릴 만큼 향긋한 간장게장에 갓김치가 상위에 올라오는 꿈을 아직도 나는 가끔 꾸곤 한다.

또 영광이 친가라 항상 냉장고에는 굴비가 있었는데....  정확히 말하면  조기지만, 늘 냉장고에 꽉꽉 차 있었다..  이걸 엄마가 기가 막히게 소금 간을 해서 (엄마님 친구 분께서는 소금 장수를 하시기 때문에 늘 양질의 소금이 집에는 가득) 구워 먹어도 그 맛이 천국, 졸여 먹어도 밥 두공기를 뚝딱 하곤 했다. 그렇게 먹어도 나는 초등학교 시절에는 늘 반에서 키가 작아 1번을 내내 도맡아 했는데, 고등학교때까지도 작던 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약 6센치 정도가 컸으니 지금 그 친구들을 만나면 언제 이렇게 키가 컸냐며 놀라기도 한다.

예전엔 가을이 끝날 무렵 갑자기 차가워진 공기에 그렇게 마음이 심란하더니... 이제는 봄이 될쯤이면 옛 생각에 마음이 흔들거린다.
나는 언제쯤 고향에 돌아갈수 있을까...


아니 내가 생각하는 고향은 그 모습 그대로 거기에 있을까?
이제와 생각하면 내가 생각하는 고향은 내 마음안에만 남아 그 어느곳에도 남아 있지 않을 것만 같다.
특히 요새 신문을 읽으때면 마음 한구석에서 쿵하고 내려 앉는 느낌이 들어 더 그런지...
마음이 많이 심란하다.

댓글 4개:

  1. '보릿물에 밥을 말아 굴미 한마리 구워' 떠 먹이시는 할머님이 제게도 보이는 듯 합니다. 마음속 고향은 영원한게 맞는것 같아요.다시 찾은 고향이 아무리 바뀌었어도 그대로인 어떤 한가지만 발견해도 그걸로 감격하기에 충분할 듯... 30년간 한번도 밟아보지 못한 고국이 갑자기 더 그리워집니다. 잘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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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번에 직장에서 이동이 있어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되었어요.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서 다시 자리를 잡고 살 생각을 하니 한국 생각이 더 간절하네요... 적어도 몇 년간은 그곳에 있게 될 것 같은데 점점 한국이 멀어지는 것 같아 쓸쓸한 마음이 들어 오랜만에 옛 이야기를 써보았어요

      가끔 방문해서 글을 읽으면 굉장히 잔잔하게 일상을 나누시는 모습에... 저는 아직 내공이 부족하여 일상에 대한 관찰이 부족한가 보구나 하고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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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안녕하세요.
      작년에 우연히 발걸음을 시작해서 몰래몰래 글을 훔쳐 보고 있는 여자사람입니다. 폴란드라는 생소한 나라에 관심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성원님의 글솜씨가 워낙 좋으셔서 팬이 되었습니다. 폴란드의 추운 겨울은 잘 보내셨는지요? 한참동안 업데이트가 없어서 궁금했는데 회사가 이사를 하는군요. 좋은 집을 찾아서 무사히 이사하시길 바랍니다. 후기 기다릴게요!
      한달 여만에 놀러왔는데 이 글을 읽으니 왠지 마음이 짠해져서 용기내어 댓글을 달아 봅니다^^; 사실 저도 친가 외가가 모두 전라도라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고요, 제 계산법이 맞다면 성원님과 나이가 같거나 위아래로 1살 차이인 것 같아서 늦었지만 친한 척 좀 해보려고요ㅋ_ㅋ
      예전에는 외국에 사는 걸 동경하기도 했었고 실제로 그런 기회가 제 눈 앞에 오기도 했지만 저 자신을 믿지 못해서 서울에 잔류하고 있습니다. 저는 너무나 나약하고 무책임한 사람이라서...외국행은 무리라고 생각하거든요. 외국에서 연착륙해서 잘 사시는 분들을 보면 독립적이고 책임감도 강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어떤 글들을 읽다보면 성원님같이 강하신 분도 향수로 쓸쓸함을 느끼시는구나, 하면서 잠시동안 상념에 잠기곤 합니다.
      저같은 서울 태생도 문득 고향 동네 생각을 하면 아련해지는데 외국에 계신 분들은 더하시겠죠? 그 기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자란 곳은 이미 오래 전에 싹- 밀려서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더라고요.

      "이제와 생각하면 내가 생각하는 고향은 내 마음안에만 남아 그 어느곳에도 남아 있지 않을 것만 같다." 는 말씀대로 제 고향도 제 마음 속에만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변했고 제 주위의 모든 것이 변했으니까요...
      저도 요즘따라 유난히 어릴 적 생각을 많이하는데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현재의 삶이 불만족스러울수록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고요.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불안함 혹은 못마땅함? 도 한몫을 하겠지요?^^

      성원님이의 옛날 이야기를 들으면 덩달아 저까지 옛날이 그리워지는 것 같아요.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 더 그런가봅니다.
      옛날 이야기도 좋고 지금의 이야기도 좋고... 바쁘시더라도 종종 업데이트 해주세요. 열심히 팬질하겠습니다ㅋㅋ
      그럼 오늘은 이만. 건강하시고요, 또 놀러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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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회사가 이사를 하는 건 아니고요. 제가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미 집은 구해서 이사를 마쳤고,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면서 정신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굉장히 긴 덧글이네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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