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2011

나는 아무래도 학자는 되지 못 할 모냥

여기 감성에 호소하는 몰지각한 1인이 있다면,

(나와는 다르게) 지식을 기반으로 한 논리적인 글쓰기의 달인이 펼치는, 보다 명확한 접근이 있다.

이준구 교수님

 학교에서 공짜 밥 주는 일부터 시작해서 포크레인으로 강 파는 일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현대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수 십년간 쌓은 강의 경험을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해주신다는 말씀....
정치적 외압에서 벗어나 행동하는 양심적 지성을 지향하시는 분이니, 정치는 싫어! 경제학은 정치의 시녀 노릇을 하고 있어~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조금은 어깨의 부담을 내려 놓고 읽어 보시기에 좋으실 듯 하다.


(내가 생각하는) 학자의 길은 끊임 없이 읽고, 사고하고, 비판하며,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또 글쓰고, 다듬고, 고치고 또 다듬고의 작업을 반복하는 고독한 길임에 틀림 없다.
학자가 되려면 정말 부지런해야 할 듯......
따라서 나는 절대 네버 결코 학자 타입은 아니다. ( 매우 게으름)
단지 어깨 너머로 들여다 보는 정도랄까.........

경제학 전공자는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사고 하는가?

이 재미 없어 보이는 제목의 질문에 대한 개인적인 대답은 노다.

가치니 효용이니 하는 모호한 단어들이 남발하는 경제학을 수업을 받고난 후, 내 기억에 남는 몇 가지는 미시나 거시, 계량 경제학이니 하는 수업에 배운 것들은 한 개도 없고 오직 수요 공급의 법칙이라는 경제학 원론 첫 페이지 (진짜 첫 페이지는 아님)에 나오는 지극히 기본적인 개념이 되시겠다.

 울 엄니는 딸내미 경제학과 보내 놨더니 애가 돈 쓰는 걸 보면 오히려 경제학과는 거리가 멀다며 늘 친척들 앞에서 한탄하신다. ( 내 말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으심)
 나는 나대로 케인즈니 밀이니 하는 이상한 아자씨들 땜시 자꾸 무슨 주의만 자꾸 늘어나고 수정 자본주의가 뭔지 신 자유주의가 뭔지, 뭔 놈의 주의는 왜 이리도 많은지 짜증도 나고... 하버드랑 시카고에서 뭐라 카는 것 같은데 그래서 어쩌라고... 죽여.... 하는 이상한 심리로 시험 때 헛소리 써 냈다가 복수 전공 안 했었으면 2점대로 졸업 할 번한 학점만 남긴 채.... 졸업 논문도 수업시간에 한번 언급 없었던 유로화 통합 우끼고 있네 라는 내용의 잡소리 논문에 써 냈다가 교수님 면담 취소 당하고 에라 빨랑 사라져라~ 라는 듯 던져주는 졸업장만 받아서 대학교 졸업했다.

자.... 그래서 이 글의 요지는(경제학을 전공으로 대학교에서 4년 공부한 )나는 결코 경제학적으로 사고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먼저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이자 (이상적인 어머니 상에서 조금은 멀지만 그래도) 평범한 한국의 주부인 우리 오마니께서 늘 나에 대해 답답해 하시는 점을 잠시 소개해보자면......

1) 학원비를 냈는데 강의가 완전 엉망이다.
    - 절대! 다시는! 가지 않는다.  (물론 환불을 요구 했으나 절대 안된다고 하는 경우)

2) 식당에 가서 밥을 시켰는데 맛이 없다.
    - 더 이상 먹지 않는다.

3) 옷을 샀는데 여타의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 주변의 친지들에게 분배 한다.

4) 겨우 대학교 졸업해서 취직 했다.
    - 빡세게 돈 모아서 시집갈 생각은 안하고 홀랑 독립 하더니 허튼 곳에 돈쓴다.
   
가 대표적일 수 있겠다.
1) 의 이유는 오마니께 아무리 설명해도 절대 나를 이해하려 하지 않으셨지만.... 다시 얘기해 보자면.... 어차피 학원비는 회수 될 수 없으니 여기에 대해 왈가 왈부 하는 건 내 시간에 대한 2차적인 낭비가 되기 때문에 회수 될 수 없는 자원에 대해 또 다른 자원을 재 투자 하는 건 완벽한 낭비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 이 점에서 우리 오마니는 거품을 무셨더랬다.

2) 거의 비슷 하다.  '나'라는 개인의 만족을 위해 소비 했으나 개인의 만족에 위배 되는 경우, 물론 이런 결정을 만들지 않는게 가장 현명하나 이런 상황에 처했을 경우... 꾸역꾸역 먹어봤자 살찌고 스트레스 받으니 안먹 는게 최선의 선택이다. (물론 쫌 갠츈한 식당에 갔을 경우, 음식 맛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근거로 정중히 환불을 요구하여 받아 나온다의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울 오마니의 관점에서 나는 요리한 사람의 정성을 무시하는 나쁜 뇬이 된다.)

3) 마찬가지다. 내게 만족을 주지 못하는 자원은 오히려 짐이 될 뿐, 공간의 낭비를 줄이기 위해 1년에 한번도 입지 않은 옷은 과감히 분배 한다.  (울 엄마가 매우매우 싫어 하시는 행동, 소유에 큰 의미를 두신다.)

4)는 말미에....

덕분에 나는 경제학과 보냈더니 돈 귀한 줄 모르는 애가 되어 버렸다는 어머니의 푸념을 늘 들어야 했는데..... 주변의 평판을 살짝 엿 들어도.... 나는 돈을 막 쓰는 애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덕분에 친척들 사이에서 '경제학 전공 했다더니 돈 아낄 줄 모르는 애'로 인식이 되어 있다.

울 엄마는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시다.
밥은 집에서 먹어야 하고, 장 바구니를 들고 다니시고, 지하철 한 두정거장 정도는 걷는게 건강에 좋다 생각 하시고 잔반은 먹어서 없애야 한다고 믿는 분이시며 본인 소유의 옷이 옷장에 꽉꽉 차 있지만 늘 옷이 없다고 푸념 하시는 전형적인 한국의 소시민의 모습을 하고 계시다. 할인 카드를 모으시고 쿠폰을 좋아하시며 신용카드를 싫어하시고 늘 현금, 가끔 debit card를 사용하신다. 전화는 짧게,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늘 전화를 끊으시고 (ㅋ) 당신의 생활 방식에 대한 신념이 대단하시다.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이 정도(?)로 살 수 있는 거다' 라는 듯한 뉘앙스를 늘 풍기신다. 행복이 뭐 별거 있냐 다 그렇게 사는거지~ 라고 하시는데....  사실 울 엄마라 웃으면서 듣지 남이 그렇게 얘기 하면 아마 뒤도 쳐다보지 않았을꺼다.


우리 엄마의 입장에서 보는 나는.....

음식 아까운 줄 모르고, 어려운 거 모르고 커서 돈 무서운 지 모르고, 신용카드를 사용하며 외식을 자주 하고 옷을 좋아 하지만 물건을 함부로 다루는데다 직장 생활 하자마자 집에서 다 녔으면 훨씬 많이 모았을 것을 바로 독립해버린 시집갈 생각은 눈꼽 만큼도 없는 개념 없는 딸내미인 것이다. (엄마와 이모의 통화 녹취록에서 발췌)

하지만 내 입장에서 보는 엄마는 쿠폰, 할인이면 필요 없는 것 까지 몽땅 사서는 냉장고에 쳐 박아두고는 음식 한번 하면 10인 분 만들어서 먹고 또 먹고 살찌는 지름길로 가고 있는데다 시간 계산 잘 못하셔서 늘 약속에 20~30분은 늦고, 신용카드 싫어 하셔서 김치 냉장고 고장 났는데 5개월간 참았다가 현금으로 사신다거나 하는 이해 되지 않는 행동을 하시는 등, 입지도 않는 옷으로 안방 옷장 꽉꽉 채워 놓고 내 옷 빌려 입고, 전화만 했다하면 상대방 참 불쾌하게 만드시는 옛날 분인거다. 그렇다고 강남에 부동산 100억쯤 모았나? 이 것도 아니고....
(참고로 울 엄마 처녀 때 회사 다니며 빡시게 돈 모아서 혼수 할 때 쪼금 사기 맞고, 남자 잘 못 골라 평생 마음 고생 하시며 사심_왜 본인이 성공하지 못한 길을 추천 할까? )

점점 얘기가 엄마한테 못한 투정 늘어 놓는 것처럼 흘러가고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경제 주체로서의 소비 행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견은 아래와 같다.

소비를 하는 이유는 개인의 만족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서다.
나에게 있어 우리 엄마와 달리 소비는 시간적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 엄마의 경우는 신념이라는 개념을 부과 시키는데 본인의 신념을 실현 시키며 자신의 만족을 최대화 시키고 있다는 거다. 비판하자는게 아니라 본질적으로 나와는 소비의 행태가 다른것이다.


나는 신용카드의 시간적 개념을 높이 산다.
예를 들어 100만원의 월급을 받는 입장에서 20만원의 월세를 내고, 교통비로 10만원을 매달 지불, 예금 기타 등등의 것들에 30만원을 지출 하는 경우 40만원의 여분이 발생하는 데,  침대가 필요하다고 가정 하고, (이 가정에서의 '나'는 이십여년간 침대 생활을 했고, 바닥에서는 숙면을 취하지 못하며, 바닥 청소를 잘 하지 않는 1인으로 침대는 본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요소임을 인식 바람) 침대는 약 30여만원이라고 쳤을 때 요걸 한번에 내기는 참 부담 스럽다. 왜냐면 '나'는 현대의 서울 이라는 고도로 발달 된 도시 문명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회 주체로, 직장을 다니는 고로 점심도 먹어야 하고, 저녁도 먹어야 하고, 가끔 친구도 만날 수 있고, 기타 등등의 자질 구레한 지출이 발생 할 수 있기 때문에 40만원의 생활비에서 30만원하는 침대를 한큐에 사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매우 어렵다.
 이 경우 신용카드의 할부 개념을 도입하여 3개월로 분납 하기로 하고~ 현재의 시점에 구입 하는 경우, 나는 한달에 10만원+a (무이자가 아닌 경우 이자 발생) 지불로 3개월간 바닥에서 자지 않아도 되므로 3개월 간의 시간을 번 셈이다....라는 것이 나의 지론.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를 수 있다. 개인적 욕망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경우.....
충동구매로 50만원의 침대를 구입하는 경우가 발생 하기도 하고.... 다른 기타의 것들을 충동 구매 하는 경우도 발생 할 수 있음, 또는 막상 바닥에서 잤더니 좋더라~ 하는 깨달음을 얻고 무소유의 길로 빠져 드는.... 이건 좀 말이 안되고.... 바닥 생활도 나쁘지 않더라~ 하는 결론에 도달하여 30만원을 다른 곳에 쓴다더나 저축 할 수도 있음, 요런걸 기회 비용이라고 한다지? )

물론 미래의 불확실성이라는 risk를 안아야 하지만 반면에 울 엄마의 경우도 불확실성의 risk가 존재하는 데다 (holding하고 있는 자산을 자른 곳에 쓸 수도 있지.... 개인의 욕구를 완벽하게 통제 할 수 있다고 누가 보장 할 수 있단 말인가?) 불편함과 만족의 부재라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즉 risk는 어떤 형태로든 거의 모든 경우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감안 하고서라도 현재의 만족도를 살 수 있다면 신용카드가 삶의 질을 만족 시켜줄 수 있는 무척 효율적인 도구라고 생각한다. ( 울 엄마+기타 어르신들 왈 : 카드 회사 돈 벌어 주는 일이다 라며 무척 싫어 하심 ) 사회내 경제 주체간 활동이 기여하는 발전 이라던가 일자리 창출, 순환의 문제 같은 건 옆으로 치우더라도, 극히 이기적인 방식으로 생각 했을 때, 내 결론은 신용카드는 유용하다 는 것

결론은 매우 간단하다. 나의 모든 소비 활동은 하나의 목적과 하나의 명제를 바탕으로 한다.
'한정된 재화 (내 월급)으로 나의 (개인적인) 만족의 극대화하는 것'
 나는 적극적으로 내 행복 추구권을 보장, 왜곡이 되었건 수준이 낮건 어쨌건.... 나 나름의 해석으로 위의 명제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자 이제 4)번에 대한 얘기를 슬슬 해 볼까 한다.
나는 남동생이 3명이다.  (우리 막내는 지금 초딩)
집에 있을 때.... 나는 엄마가 일하시는 관계로 초등학교 때 처음 수제비를 만들어 먹은 이후 자주(거의 매일) 식사 준비를 하곤 했는데... 덕분에 음식은 꽤 자신이 있다. 일하느라 힘드신 엄마를 도와 드린다는 점에서도 꽤 개인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었고, 나 자신이 워낙 맛있는 음식을 좋아 하기 때문에 실험정신을 발휘하여 나의 시간을 투자 하였으나, 회사 생활을 시작 한 이후, 더 이상은 감당할 자신도 없었고, 그 동안 해왔던, 숙련된 일에 내 시간을 투자 하기 보다는 다른데 쓰고 싶었다. 물론 쉬고도 싶었고.

독립한 이 후, 나는 무엇을 했는가.....
단편적으로만 살펴보자면 보다 나은 직장을 잡기 위해? 지속적으로 구인 정보를 탐색 하였으며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러시아어를 공부 했고 (물론 지금은 쓸데가 없지만) 독서 및 사색에 많은 시간을 투자 하였다. 결과는 현재와 같고 ( 이직, 어쩌다보니 폴란드까지 옴, 나름 전보다 나은 연봉, 휴가도 한국 보다 훨 많음, 개인 적인 시간 많음, 새로운 곳도 많이 가고보고 신기한 것들도 많이 보고 개인적인 호기심(한국에서는 학창 시절 내~내~ 쓸데없는 호기심으로 치부 받던) 충족이 한국에서보다 매우 잘 됨, 기타 등등 물론 요게 천년 만년 가리란 보장은 없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현재에 무척 만족 하고 있다.
내가 계속 집에 있었더라면 가능 했을까? 아마 지금도 퇴근 후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3~4인분 음식을 만들어 동생들과 나눠 먹고는 TV보며 하하호호 하고 있겠지?
나쁘진 않지만 그닥 만족 했을 것 같지는 않다.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가 이제 막바지로 가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한 가지가 남았다.

결혼과 저축에 대한 얘기다.
울 엄마 늘 하시는 얘기가 '쟨 저축을 안해, 결혼할 생각이 없어.... 쓸데없이 여행이나 다니고, 이상한 거나(러시아어, 독일어, 라틴 댄스....) 배우고 말이야' 
물론 저축은 했다. 울 엄마가 바라시는 것 처럼 월급의 80%는 아니지만.....
사실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측면에서 봤을 때, 내가 원하는 건 궁전 웨딩홀에서 하는 하얀 드레스 입은 와글와글 결혼식도 아니었고, 혼수 이빠이 해서 시부모님께 사랑 받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남자면 집 한채 당근 해와야지...도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서로 사정에 맞춰서 하면 되지 정도? )
우리 엄마가 꿈꾸던 혼수~ 정기 적금~ 결혼식~ 에 대해서는........별로 생각이 없었다.

그런 나의 장래를 늘 걱정하셨던 우리 엄마
(당근 취직 했으니 선자리부터 들이 미시던....
엄마... 그래 결혼해서 본인 인생 퍼펙트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선 보란 소리 왜 하셨어요
설마 내가 같은 길을 가시길 바라시건 아니죠....)

고 때 배우던 러시아어랑 독일어가 계기가 되어 나는 지금 폴. 란. 드. 에 와 있고
빚만 없으면 된다는 남자친구를 만나 사랑에도 빠지고, 결혼 계획도 세우고 있다.

나의 논지는 하나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한정된 재화로 최대의 만족을 추구 한다는 것
물론 한정된 재화라고 쓰긴 했지만 파이의 크기를 늘리는 건 개인의 몫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노력이 수반 된다면 더욱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고, 지금도 믿고 있다.

경제학을 전공 했다는 것만으로 그 동안 주변 친지들에게 경제적으로 사는 길부터 시작해서, 주식 추천에 부자 되는 법까지 기타 다양한 질문 세례를 받았지만 지금의 나는 평범한 월급 쟁이에 주식은 끊은지 오래 되었으며 부자와는 거리가 멀다.
가끔 내가 경제학을 전공 했었지~ 하고 내 대학교 때 전공에 대해 인식 할 때는 단지사다리 걷어차기의 저자  장하준 교수의 신작이 있다더라~ 하는 등의 글을 볼 때 잠깐.... 함 읽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 때다.
(문제는 이 책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수준의 눈 높이에서 씌여진 개론서라는 것임..... )

따라서...

경제학을 전공한 모든 학생들이 나와 같다는 건 아니지만
나 같은 인간도 있다는 점(배운거 자기 멋대로 왜곡+ 현실에 대입,비 현실적+비 논리적)을 좀 인지 해 주셨으면 한다



마무리.....

전에 읽은 책에 나온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책 이름은 행동 경제학이고 이 이야기는 저자가 아닌 Paul Samuelson이라는 경제학자가 한 이야기다.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 물리학자, 화학자, 경제학자 세 명은 파도를 따라 떠내려온 캔 수프를 하나 발견 하게 된다.
당연히 어떠한 도구도 없었던 그 들은 이 캔 수프를 먹을 방도를 내 놓는데, 물리학자는 '돌멩이를 이용해 캔을 따자'고 얘기 했고 화학자는 '불로 가열 하자'고 했다.
그럼 경제학자는 뭐라고 했을까?

'자 우리에게 캔 따개가 있다고 가정 했을 때..... '

그 날밤 경제학자는 캔 수프를 먹었다고 가정하고 잠이 들었다나 뭐라나....

참고로 Paul Samielson은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임.




#2

그런데 다 쓰고 나서 읽어 보니 내내 주류 경제학에서 본 얘기 하다가 마지막에 행동 경제학 책 얘기 하는 건 뭐임?
이런 데서 나의 허술함이 드러나는 군..... 하고 생각.

1/20/2011

오늘 읽은 글 중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

여기를 보면 내가 그동안 궁금했던 점을 말끔히 정리해 놓은 어느 분의 글이 있다.

최근에 공부....(과연?)를 다시 시작한 이후 블로그에 글 쓸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글쓰기 버튼을 누르지 않은지 꽤 되었건만....
이 글을 본 후 그 동안의 계란 껍질 같은 공백을 깨뜨리고 글을 쓴다는 말씀....

사실 이 외에도 재미 있는 글이 많았지만 우리 팀장이 점심을 먹으러 갔기 때문에 이 사이에 얼렁....

1/05/2011

2011년도 되었으니 나도 2010년 좀 돌아보쟈~

2010년 10대 사건! (두둥~)

1. 차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여행, 트라키아 성은 꼭 다시 가보고 싶답
2. 일에 적응이 되어 간다. (업무 시간에 조금씩 딴 짓 한다.)
3. 취리히에 사촌언니 공연 보러 Warszawa - Gliwice - Dresden - Nurnberg - Stuttgart 까지 다녀옴
4. 팀에 정규직 두 명이 출산 휴가 가는 바람에 엉겁결에 No 2가 되었다.
5. 남자친구가 이직했다. 그래서 암스테르담으로 가 버렸다.
6. 롱디로 반년 버텼다. 덕분에 암스테르담에 벌써 4번이나 다녀왔다.
7. 여름 휴가로 Warszawa-Poznan-Spreewald-Erfurt-Luxembourg-Leims-Paris-Strasbourg-Zurich-Konstanz-Wroclaw-Gliwice 의 경로로 차로 여행 했답. 거의 1박 또는 하루 종일 놀고 강철 체력인 남친이 밤에 운전하면 나는 기절~ 하는 빡센 스케줄이었으나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나름 편하게 여행해서 돌아와보니 살이 쪄있었더란 무서운 얘기
8. 철저한 폴란드식 결혼식에 초대 받아 1박 2일간 미친듯이 먹고, 춤추고, 마시고 초죽음이 되어 돌아왔다. 오는 길에는 Lublin이랑  Sandomierz 도 들렸다. 좋더군.
9. 남자친구랑 한국에 다녀왔다. 이 후 남자친구는 한국 예찬론자가 되었음
10. 10년만에 (남자친구의 강요로) 다시 스키를 타기 시작했다. 의외로 몸이 기억하고 있더라. 신기했음.

이상~

휴..... 정리 하는데도 엄청 헷깔리네....

아무튼 다사다난 했던 2010년아 잘가라

첫 성깔......

 일년이 넘도록..... 타향 생활 하면서 아직까지 현지 사람과 성깔 부릴 만한 마찰이 발생하지 않아 나름 태평하고, 뭐랄까..... 나의 본성( 한국에서의 별명은 양희빈) 을 잊고 온화한 사람으로 산지 오래 되었건만.....  살짝 긁히면 바로 발톱 세우는 고양이 같은 본성이 어제 ( 나름 폴란드에서는 처음으로 ) 표출 되었답.

시간은 7시 반이 지나 8시를 향해 가고 있을 무렵....
급하게 산 비행기표 때문에 (이건 또 딴 얘기.....) 평소보다 약 4~5만원 가량 더 비싼 비행기를 타고 꼭 암스테르담을 가야 하나 줸좡줸좡줸좡... 하는 심정으로 길을 걷다가,  집에 물이 없으면 참 신경질 날 것 같답 하는 생각에 들어간 가게에서 물 두병 골라 계산 하러 갔는데.... 가격은 4.1 즈워티, 내가 내 민건 10즈워티 지폐 였다.

뭐.... 그 닥 큰 지폐를 준 것도 아니고.... 파는 사람 입장에서의 서비스라는 것도 있는데 글쎄 나랑 비슷한 나이로 추정 되는 까만 머리 종업원이 대뜸,

종업원 : 없어 없어!!
나 : 죄송한데.... 뭐라고... (정도로 추정 되는 말)
종업원 : 동전 없어!! 아 없다고!!!  (어깨 추켜 들며 굉장히 불 친절하게 나를 위 아래로 훑어 보며 뭐라 뭐라 빠른 말)
나 : (굉장히 기분 나빠짐 ) 잘 됐네!!

하고 쏘아 주고는 물 그 자리에 내팽개치고 그냥 나옴, 나오는데 그 여 종업원이 내 뒤에 대고 뭐라 뭐라 소리 지름....  문 까지 걸어 나오는 자리에서 한국 말로 '뭐 저딴 X이 다있어!!!! ' 라고 (나도 모르게...., 아마 화가 많이 나 있었던듯....)했더니 그에 대한 대답인듯....

휴.....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를 읽다 보면 유럽에서 동양 여자들한테 일부 가게에서 (특히 옷가게, 화장품 가게) 종업원들이 매우 불친절 하다는 얘기를 종종 보게 되는데, 요거이 인종 차별이다 라는 의견도 있고, 그냥 유럽 여자애들이 싸가지가 없어서 그렇다 라고 보는 시각도 있고 한데.... 사실 내가 겪은 건 이번이 처음, 정말 기분 나쁘더라능.....

지 남편이나 시댁 가족, 또는 남자친구나, 남자친구 가족한테 ㅈㄹ 맞게 구는 건 많이 봤어도
실제로 제 3자에게 이렇게 대하는 걸 겪는 건 처음 인 것 같답.



휴우우우 집에 돌아온지 일주일도 안되서 짐싸는 이 기분...

12/20/2010

남자친구 이야기 (2)

너희 가족들이 불편해 하지 않겠냐, 정말 내가 가도 괜찮겠냐 하고 전화로 거듭 확인 했지만 오히려 혼자 바르샤바에 있으면 우리 엄마가 더 마음 아파 한다며 이미 말 다 해놨고, 가족들로부터 적극 대 환영이라는 소리를 듣고 그래..... 가보자 하고 마음을 굳혔다.

약 3시간 반 기차를 타고 도착하니 지금의 남자친구가 기차역에 마중나와 있었다.
깡총깡총 뛰듯이 달려와 가방을 들고는 나와 차를 타고 마을을 보여줬다. 작은 마을이고, 대학교가 있고 여기서 대학교까지 마쳤고 등등의 간단한 얘기와 함께 차를 타고 달리길 약 10여분, 아주 작은 마을이 나왔다.
동화속에 나올 것 같은 작은, 발음하기 매우 힘든..... 그런 작은 마을에 몇년 전 집을 지어 이사왔다고 한다.
집도 너무나 예쁘고, 마당도 넓고.... 아무튼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집에 들어섰는데 후덕해보이는 두분이 나를 반겨주셨다.
이 때 바로...Czesc 하고 인사를 하셨던게 기억난다.
나는 안절부절.... 방으로 안내해 주시길래 2층으로 올라가서 집을 구경하고 내려와 함께 식사를 했다.  멀리 보이는 숲이 우리들의 '바다'라며 영어를 하시는 아빠가 말씀해 주셨다.
역시나 내 한국이름은 발음하기 힘든지.... 몇번을 반복하시다 그냥 Sofi로 통일하기로 했고....
(아빠는 아쉬운지 계속 혼잣말로 연습을 .....)
즐겁게 얘기하며.... 이 때의 대화는 영어를 잘 못하시는 엄마로 인해 바디랭귀지 + 나의 짧은 독일어 단어들의 나열 + 러시아어 단어와 문장 남발 + 역시 짧은 폴란드어 단어 나열 이후 지친 나의 영어 드립, 지금의 남자친구의 통역으로 이뤄진 끝내고 나니 엄청 피곤한....그런 대화였다.
밥먹고 산책을 나가 (추워 죽겠는데!! 하지만 집에서는 더이상 할 일도 없고!!) 동네도 둘러보고... 사탕 가게가서 사탕도 사줬다. 헤헤

그리곤 도착한 날이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바로 형네 집으로 고고~
그 집에는 형, 형수, 조카 둘, 사돈 엄마, 형수의 오빠, 형수의 오빠의 아내, 그들의 아들까지...
완전 복작복작.... 다들 너무나 반겨줘서 깜짝 놀랐다.
사족이지만..... 쪼끄만 조카들이 있는데 큰애는 금발 머리의 패트릭.... 폴란드식 발음으로는 빠뜨릭, 작은 빠뜨릭이라는 의미에서 빠뜨리첵 하고 부른다.
작은 아이는 나와 같은 이름의 소피아, 폴란드식 발음으로는 조피아, 역시 작은 조피아라는 의미로 소시야 라고 부른다.
부모는 짙은 갈색 머리인데 두 아이다 금발, 크면서 변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남자친구의 아빠가 금발이므로, 그대로 있을 가능성도 있다.

다행히 형 + 형수 및 형수의 오빠 내외 및 조카는 영어를 잘해서 나름 이것 저것 얘기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나중에 '나 누구라고 소개 했어? ' 하고 물어보자 아무도 내가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고 한다.  '_'a
역시나 배 터지게 먹고.... (폴란드의 명절은 먹고 마시는게 다임 엄청 먹고 엄청 마심) , 배불러 죽겠는데 이 때까지도 전혀~~ 로맨틱한 부분이라고는 없었고, 그냥 웃고 떠들고 한게 다다.

와인을 두세잔 마셨더니 알딸딸 하게 취기도 올라오고 해서.... 앉아 있는데 지금의 남자친구가 밖에 산책을 나가자고 함.
그래서 알겠다고 하고는 따라 나가는데 급 엄마가 따라와서 핑크색 넥 워머를 둘러 주시는게 아닌가!! 급 감동!! 하고 쫄래 쫄래 따라 나와 동네를 걸으며 얘기를 하는데, 다시 '왜 항상 Yes라고 말하는 사람이 좋아?' 하고 물어보길래 그냥~ 하고 대답했더니 본인이 늘 Yes라고 대답해 주겠다고 한다. 그래서 난 괜찮아~ 그건 그냥 이상형일 뿐이야 라고 했더니 급 본인이 Yes 라고 늘 대답해 주는 그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는게 아님?  그래서 순간 당황한 나.... 아니 근데.. 그건 그냥 한 얘기고 나는.... 하고 얼버 무리는 데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한쪽 무릎 까지 꿇고 보는 데 도~~저히 거절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당시 술마셔서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헉.... 연애는 시작할 때 초반에 딜을 잘해야 되는데.... 하는 (야비한) 생각으로.... '그럼 너 무조건 내가 잘못했어도 나한테 절대 화내서는 안되고, 무슨일이 있어도 내 편이 되줘야 하고, 무슨일이 있어도 나에게 절대 큰소리 내서는 안된다' 고 했더니 .... 그 때 뭐가 들렸겠냐마는 무조건 알겠다고 대답하길래 그럼 나도 알겠다고 하고..... 그때부터 연애가 시작 되었다.

사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길어야 삼개월이라고 생각했다.

뭐.... 지금까지 올꺼라고는 생각도 못했지...

벌써 1년

공기가 차갑다.
코로 숨쉬기가 힘들어서 무의식적으로 입으로 숨을 쉬었더니 목이 부어서 일주일간 고생 했다.
올해 남은 휴가는 6일, 24일 금요일부터 휴일이니 다음주 5일을 휴가 냈다. 모두 합쳐 거의 10일간의 휴가를 보내기 위해 야근도 불사하며 올해를 정리하고 있는데, 사실 고생은 우리팀 팀장이 거의 다 하는 것 같다...



지난 1년 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직장인의 삶은 외국에서도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쉽지 않다. 물론 한국에서 직장 생활하시는 분들에 비하면 불평할 처지는 아니지만, 밖에서 보는 높아진 한국의 위상과는 달리 고생하는 한국 사람들의 개개인의 삶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외국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한 후.... 어느 순간부터 나 자신 보다는 일이 먼저, 개인적인 일은 뒤로 미루고 일과 회사를 우위에 두는 나의 태도에 대해 갈등 하게 되었다. 사실 한국에서는 당연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선 그런 내가 남들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태도의 근원은 바로 이것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 '
이 안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실수 해서 약점 잡히고 싶지 않다' 도 함께 존재 한다.
다른 사람이 말끔히 처리하지 못한 일 뒷처리를 하느라 고생할때면, 그리고 다른 사람이 가정일로, 개인적인 일로 중도에 그만 둔 일을 받아 처리하며 처음부터 새로 해야 할 때면 나는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늘 하곤 했었다.그런데 의외로 다른 사람들은, 뿐만 아니라 우리 팀 팀장 또한, 이런 상황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있었다. 팀이라는게 바로 이런 거구나... 하는 걸 여기서 깨달았다.
서로 내가 더 잘나려고, 견제하고 시기하고 못하면 험담하려는게 아니라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고, 힘들때나 문제가 생겼을 때 도와주려고 존재하는 거구나.... 하고....

한국에서 일 할때는 감정이 무척 많이 소모 되었었다.
일도 많았지만,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봐야 했었고 때문에 감정적으로 힘이 많이 들었다. 조금만 조용히 해 주시겠어요? 한마디에 나를 원수처럼 대하던 사람도 있었고 업무적으로 수정 요청을 했을 때 무척 기분 나빠 하며 나를 예의 없는 사람으로 여기기도 했고, 먼저 인사하고 말 걸는 내 성향을 꺼려해 나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무척 많았다. 생각해보면 곳곳에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산재 했다. 늘 둥글게 살려고 노력 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또 다른 적이 생겨, 때때로 가슴 한쪽이 너덜너덜해지곤 했다. (물론 적만 있었던 건 아니다. 나 같은 경우 사람들의 반응이 호불호가 굉장히 분명한 듯)

하지만 폴란드로 오고 난 후, 회사의 감정 소모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
이 곳에 와서 처음으로 문제가 생겨 일에 대해 다른 견해를 피력하며 수정 요청 메일을 보내던 날.... 은근히 고민을 했었다. 뭔가 하얀 도화지 위에 새로 잘 써내려 가다 실수라도 한 것처럼 마음이 좋지 않았고 한편으로는 마음 속으로 준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돌아 오는 건 웃는 얼굴과 아침 인사였다. 바꿔 봤는데 그건 좀 괜찮을지 모르겠다며 메일 보고 다시 얘기 하자는 말에 나는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그리고 또 그 다음, 심지어는 GA에서 웃고 떠들고 있을 때, 다른 직원과 함께 프로젝트 정리를 하다 참고 또 참고 너무 시끄러워 정말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미안한데 조금만 조용히 해달라는 말에 바로 너무 미안 하다며 자리를 옮기는 그 들을 보며.... 아...이번에야말로 적이 생기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후로 반년.... 그녀들은 아직도 너무나 친절하고 그들은 너무나 매너남이다...   어찌 아니 감사할 수가.....

그런데 한편으로는 왜 이렇게 다를까?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저렇게 싫은 소리 한마디 없지? 어떻게 저렇게 웃으며 계속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하고 나와 일을 하지? 분명히 싫을 수도 있는데....
그런데 1년 쯤 지나고 폴란드에 익숙해질 때 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들 문제가 생겨도 책임을 진다거나 책임 소재를 따지기 보다는, 수정하면 되지... 하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점 때문에 어떠한 일이 발생해도 부정적으로  받아 들일 필요도 없고 쓸데 없는 감정 소모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
덕분에 나 또한 일하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중대한 문제가 아닌 경우, 다른 사람의 실수에 대해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시간에 쫓기듯 요청하고는 재촉하기보다는 좀 더 일찍 준비해서 실수가 발생 했을 때도 대처할 수 있도록 경우의 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할까?  그러니 딱히 얼굴을 붉힐 일도, 감정이 상할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단.... 폴란드가 구 공산권 국가라서인지 모든 행정처리가 굉장히 늦게 이뤄진다. 믿을 건 못 되지만, 슬라브권 문화가 한템포 느리다는 말도 있고.....
언제나 적정한 시간적, 마음적 여유를 가지고 임해야지 빨리빨리는 잘 통하지 않는다.
이 점을 명심하고 대하면 어떤 일이든 그닥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 것 같다.
(물론 이러한 성향 때문에 발행하는 단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빠른 의사 결정 같은 단어는 찾아 보기 힘듬, 명령이라는 단어도 거의 존재 하지 않음, 따라서 서열이 없는 대신 대접 받을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 것이.... 연구소의 600명을 대표하는 DIRECTOR가 아침에 커피 잔을 씻어 커피 뽑으려고 내 뒤에 서 있는 것을 볼때나, 그럼에도 비키지 않는 나를 볼 때.... 참으로 묘한 느낌이..... 나이 든 사람들은 적응하기 정말로 힘들 것이답.)

반면에 한국 사람들과 일할 때 느끼는 점은..... 글쎄....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 남아야 하기 때문일까?  다들 굉장히 적대적이다.
우리가 조금의 실수라도 하면 전사의 임원들까지 볼 수 있게 메일을 넣어 힐책 하면서 본인의 실수에는 관대했고 곧잘 남의 탓으로 돌리려고 했다. 그럴때면 폴란드에서 폴란드 사람과 일하는 한국인인 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오르곤 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쓴 웃음만 지을 뿐.....  (하지막 역시나 빠른 대응과 즉각적인 일 처리는 환상적임)

재미 있는 점은 그러한 삶의 자세가 바로 한국 사람의 열정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이끌어내는 원동력으로 생각 된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더 실감하게 되는 한국의 기적 같은 경제 성장의 배경에는 전부는 아니지만 한국 사람의 기질이 일정 부분 작용하고 있다. 한국사람들의 삶에는 기본적으로 잘하고 싶다, 나는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 싶다, 설사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갈 지라도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강한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유럽에 나와 내가 느낀 한국인과 유럽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이 점이었다.  .

고속도로를 짓는 대 공사가 진행중인데도, 고속도로를 빨리 지을 수록 국가적으로 큰 이익이고 개인적으로도 생활 수준의 향상이 예상 됨에도 불구하고 내 집 근처에 도로가 나면 시끄럽고 차가 많이 다니는게 싫다는 이유로 소송을 걸고, 또 그 소송으로 인해 몇 개월씩 공사가 지연 되는 대도 개인 개인의 권리를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 지고 있는 이 곳, 덕분에 EU 발전 기금 조차도 철회 되는 상황에서 국가 조차도 기본권을 침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러한 상황을 받아 들이고 있다는 점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로서는 정말로 이해하기 힘들다.

나는 언제나 빨리 빨리 돌아가는 한국사회에서 25년을 살았다.
빨리 변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스스로가 한발자국 늘 떨어져 제 3자의 입장에서 보고 생각했다. 항상 이방인처럼 공중에 붕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웃고 떠들며 살았지만 언제나 진지하지 못했다. 나는 내 삶에 대해서도 한번도 진지하게 최선을 다해서 무언가를 해본 적이 없다.
언제나 부족한 현실감 때문에 크게 상처 받은 적도 없고, 크게 행복했던 적도 없었고 크게 힘든 일도 없었다. 그냥 그게 뭐 어때서?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곤 했다. 어딘가가 심각하게 결여 되어 있다고는 인식 했지만, 한국 사람 치고 정신 건강이 좋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하고 스스로를 위로 하곤 했다. 주변 신변에 관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제와서 가족들 문제를 걸고 넘어질 생각은 없다. 문제 없는 어린 시절, 행복한 가정 생활은 나 또한 일부분 가졌던 것들이고, 부모와의 문제, 힘들었던 어린 시절 같은 건 어느 누구나 경험 했던 삶의 한 부분일 것이라 생각 하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처음으로 한국 사회를 떠나 진정한 이방인이 되어 온전히 두발로 땅에 섰던 건 아이러니 하게도 높디 높은 상공 위,  2008년 2월,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다.
나는 늘 혼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고등학교 시절 꿈에 대해 친구들과 얘기 하던 때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틀어 박혀 책이나 읽으며 살고 싶다 라고 대답했던 내 꿈이 2008년에 일정부분 현실이 되었다. 그 해 6개월 간 내가 만난 한국인이라고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소수였고, 오전에는 학교에 가고 오후에는 산책을 하거나 지중해의 가슴이 시리도록 파랗고 맑은 바다에서 수영을 하기도 하고, 수건 한장 깔고 업드려 음악도 듣고, 독서도 하며 하루하루를 채워 나갔다. 물론 밤에는 종종 친구들과 어울려 춤도 추고, 정말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런 속박도, 바쁜 스케줄도, 의무도 없는 그 곳에서, 그 제서야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야 된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내 삶이고, 나는 행복해 지기 위해 최선을 다해 순간 순간을 살아야 한다고 깨달은 것이다.

나는 하루 하루를 정말 충실히 살았다.
가슴 아픈 사랑도 했다.
그렇게 6개월을 보낸 후,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졸업 후 취직해서 지극히 현실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나는 또 다른 나의 모습과 조우 하게 된다.

나라는 사람은 중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 예전에 지극히 비 현실적인 이성의 소유자였다면, 그 때의 나는 너무나 현실적인 방향으로 삶의 방향을 잡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한편에서는 예전의 나를 그리워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전의 내가 구름위를 걸어 다녔다면, 그 시점의 나는 점점 메말라 가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쪽도 바람직 하지 못했던 건 맞지만 적어도 그 때의 나는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자립하여 있었기 때문에 문제라고는 인식 하지 않았다.
단지 가끔씩 나라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이 될 뿐이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이 때의 고민들이 내가 한국을 떠나 이 곳까지 오게 된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막상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하던 때는 달리 외국에 나가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이미 헤어진 지 일년이 되어 가던 시점이라 영국으로 전 남자친구를 보러 가겠다는 엄두도 나지 않았다. 별 다른 생각 없이 그냥 하루 하루 살고 있을 무렵, 생각치 못했던 전화가 왔다.

점심 먹고 나른하기만 한 2시 쯤 한통의 전화가 걸려와 받을까 말까 고민 하던 때도 생각나고, 회사 비상구 계단에 앉아 통화 하던 기억도 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한국을 떠나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같은 거창한 목표도 없었다. 단지 딱히 가지 않을 이유가 한국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쉬운 이유가 있었을 뿐이라 단지 그것만으로는 안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노력한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 정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기회였고, 알수 없는 예감 같은게 조금 있었다. 뭐랄까..... 신앙 있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든게 안배 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 이랄까?

딱히 찾아 볼 필요도 없었던 해외 취업 그냥 별 생각 없이 본 면접, 그런데 합격 통보와 함께 비자 준비가 곧바로 들어간 상태라 만화책에서나 봤던 운명의 수레바퀴 같은 단어를 떠올리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한국을 떠났다. 그렇게 막연한 느낌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