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8/2010

남자친구 이야기 (1)

곧 있으면 1년이 되어 간다.
작년 12월 초에 만나서 크리스마스에 연애를 시작했으니 곧 있으면 정말로 1년이 된다.
나는 개띠고 그 친구는 쥐띠, 엄마 말로는 나쁘지 않은 궁합이라고 한다.
우리 엄마는 은근히 점 매니아이신데, 단골 집이 2곳, 한곳은 나도 몇번 따라가본 곳이고, 다른 한 곳은 장님 아저씨가 하시는 곳인데 폴란드 나오기 전 한번 따라가봤다.
(아무튼 이 얘기도 조금 재미 있는데, 나중에.... )
장님 아저씨는 폴란드 나오기 직전에 한달 정도 만났던 남자와의 결혼을 강추 하셨는데, 이유가 물려 받을 재산이 있다는 거였다.
장님 아저씨는 옛날 분이라 점괘의 해석 방식이 좀 뭐랄까..... 굉장히 가부장적인 모습이랄까.... 이 점을 잘 알고 들으면 꽤 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해주신다. ㅋ

아무튼 장님 아저씨는 지금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매우 못마땅해 하신다. 이유인 즉, 딸의 오행이 임수(바다)인데 여기에 외국 남자까지 만나면 엄마랑은 점점 더 멀어진다는게 이유다.
하지만 반대로, 진주 아줌마는 대 찬성, 이유인 즉슨 임수인 딸은 태생적으로 엄마로부터 멀어져 멀리 멀리 나갈수 밖에 없으니 외국남자와 결혼하면 타고난 오행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라며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 

같은 오행을 두고 다른 해석이 나오다니.... 재미 있는 얘기다.
오행은 미신이고 뭐고를 떠나 참 재미있는 철학이다. 관계를 해석하는 하나의 철학으로 받아들이면, 사는데 꽤 도움이 된다.

아무튼 우리가 처음 만난건 회사 회식날, 우리 팀이 여자 밖에 없는 고로 보통 회식을 할 때 다른 팀과 연합해서 한다. 우선.... 연구소라 엔지니어가 90% 이상이고, 따라서 회사내 여자는 Finance, HR, GA 에 뭉쳐 있어 다른 팀들이 회식 때 조인하려고 접선이 꽤 많이 들어온다.
들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회식에 따라가서 어리둥절~ 해 있는데 회사에 한국말을 정말 native처럼 구사하는 친구와 같은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리고 그 친구의 동료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 우리 팀의 Olga, 그리고 다른 한국인 직원 언니와 함께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 중에 지금의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의 첫 인상은 사실 남아 있는게 없다.
그냥.... 영어를 잘한다는 것과,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는 것 정도?
사실 그는 아이폰을 잡고 만지작 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속으로 뭐야 저 pussy는? 하고 좀 부정적인 느낌을 받았던게 사실.... (미안...아이폰 쓰는 남자따위.... 별로야...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그때의 나....)
이상한 노래 부르던 펍에서 애들 미쳐서 날뛰는 사이 몰래 빠져 나와 집으로 돌아와 아무 생각없이 잠들었던 그 날밤.... 남자친구군이 후에 털어 놓기를 자기는 첫눈에 반했다 한다. (믿거나 말거나)
생각보다 러시아어가 통하지 않던 것에 좌절한 나는.... 생활 폴란드어는 배워 둬야 겠다는 생각에 language exchange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그 한국말 잘하시는 분은 일찍부터 한국어 배우던 친구가 있다며 회식날 본 친구를 추천했는데 이때의 나는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사실 이 때는 전전 남자친구 때문에 마음이 한창 심란하던 시기로.... 우크라이나를 보러 갈까 말까를 심각히 고민하고 있던 때였다. (당연히 새로운 연애는 생각도 못했고, 혹시나 우연히라도 다시 보게 되면 어떻게 해야하지? 따위를 고민하고 있었음) 사실 그 넘은 런던에 있는데 런던은 차마 갈 생각 못하고 우크라이나나 보러 가고 싶다... 하고 소심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현재의 남자친구가 냉큼 language exchange를 하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나와주는 바람에.... 그래 우선 폴란드 생활이 좀 정착 되고 나면 가자... 기차표 사러 가기도 겁나고.... 하고 마음을 바꿨다.

일주일에 두번,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한번도 빼먹지 않고 매우 적극적으로 열공 모드의 남자친구를 보며 나는 전혀~ 이 녀석이 내게 관심 있을 꺼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이 자식.... 왜 이렇게 공부 열심히 하는 거야, 나랑은 완전 딴판인데... 나한테 공부 열심히 하라고 강요하면 어떻하지? 은근히 까탈스러운 놈이군... 하는 정도?

그런데.... 회사의 크리스마스 파티 날, 피곤하여 일찌감치 돌아오려고 11시 무렵 회사에서 마련한 버스에 올라 탔는데 그 녀석이 있길래 옆 자리에 앉아 주거니 받거니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Centrum에 내려 트램을 타려고 하는데, 지하철을 타도 되는데 데려다 주겠다며 기사도 정신을 발휘 했다. 그 길에 크리스마스 때 뭐 할꺼니? 라고 물어 별 계획 없다. 집에서 쉬겠다라고 대답했더니 급 놀라며 그럴 순 없다고 펄펄 뛰는 것이 아닌가....
그러며 자신이 크라코프에 있는 친구 집에 가는데 같이 보러 가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연말인데 그래도 뭔가 해야 한다며 나를 꼬시길래... 어차피 일도 별로 없고, 괜찮겠지 하고 생각해서 주말+1일 휴가를 내고 가기로 결심했다.  뭐 친구도 있는데 별일 있겠어? 하며....
그리고 숙박도 제공 되고 크라코프 가고 싶었는데 가이드도 있고 앗싸~ 좋구나~ 하는 정도로 승낙했다.
그리고 따라간 크라코프....
우와 진짜 엄청 추웠다. 죽을 것 처럼....
그 추운 날씨에 토멕이라는 친구는 장갑도 안끼고 잘도 돌아 다녔다...괴물 같은 것들...
광장에서 뜨거운 와인 한잔 먹고 나니 난 정말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지쳐서 죽어가는데
지금의 남자친구는 정말 펄펄 날아 다녔다. -_-;;;
그렇게 힘겨운 크라코프의 관광이 끝나고 떠나는 날, 셋이 앉아 수다를 떠는데 Love하면 떠오르는 단어 3가지 대기 놀이를 했다.
토멕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다음에 만나서 얘기 해 주겠다고 했고, 나는 unexpectable, unconditional, unbearable을 얘기 했고, 지금의 남자친구는 secure, trust, faith를 얘기 했다...
뭔가 시각차이가 느껴졌다. 거기에 덧붙여 내가 지금 연애 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내 말에 절대로 no라고 하지 않는 남자가 있다면 다시 생각해 볼 의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수다를 떨며 아침을 먹고 크라코프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10분 정도 기차가 늦게 온다는 방송이 나왔다.
너무 추워서 덜덜 떨고 있는데 지금의 남자친구가 미안하다 내가 지금 너한테 뭘 해줄수 있을까? 라고 얘기 했는데 내가 너 입고 있는 코트 벗어서 나 줘라고 웃으며 얘기 했다.
그랬더니 순간 얘가 정말? 나 여기서 Yes라고 하면 니가 말한 그런 남자가 되는 거야? 하고 웃으며 얘기 하길래 나는 또 쿨하게 농담인 줄 알고 'Sure! You will be special in my life'라고 대답했는데 이 자식이 덥석 코트를 벗어 내 어깨에 둘러 주는게 아닌가....
헉스.... 그러며 하는 말, 나도 네가 yes라고 대답해 줬으면 하는게 있어, 크리스마스에 정식으로 집에 초대 하고 싶은데, 부담 갖지 말고 놀러와, 기차표는 내가 끊어 놓을 께, 그냥 걱정없이 와서 폴란드식 크리스마스를 경험해봐 라고 하는게 아닌가.... 
얼떨결에 어버버 하고 있는 사이 기차가 왔고 나는 그냥 냉큼 올라탔는데, 뭔가.... 나 일 저질렀나봐.... -_-;;; 하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떨림도 없었고, 솔직히 말해 조금 부담 스러웠다.
그래서 연락 하지 않고 있었는데... 바르샤바로 돌아와 회사에서 다시 일하고 있는 데 이틀 후 연락이 왔다. 직행 기차는 스케줄이 하루에 2번 있다. 아침과 오후, 언제가 좋아? 하고....
한숨을 쉬고 팀장에게 휴가를 몇일 더 낼까 생각한다고 말했더니 어차피 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 데다 연말에 일도 별로 없고 일주일 푹 쉬다와 하고 말하는게 아닌가.... 우와 역시 외국인 보스는 화끈해! 하고 생각하고  아침 하고 짧게 대답했더니, 잘 생각 했다. 24일 오전 기차표야 하고 5분 후에 연락이 왔다.  -_-;;

그렇게 일주일간 사귀기도 전에.... 그 집 부모부터 만나게 되었다.
O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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