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도 사실 별다른 일이 없었고, 워낙 잘 잊어 버리는데다, 둔감하기까지 하여 외상후 스트레스성 장애 라던가하는 후유증 같은 건 없었지만, 한국 신문을 읽다보면 하도 자주 언급되는 성폭력이라는 단어에.... 이제는 식상한 느낌도 들고 너무 오래 되어 그 성질을 읽어 버린 분노라는 이름의 감정의 한 자락이 잠시 일다 말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 저 쪽에 처박혀 있는 그 때 그 일을 떠올려 보자면....
때는 내가 중학교 1학년 이던 시절, 우리 집이 막 이사를 가서 내가 살던 아파트 바로 뒤에 중학교가 있었음에도 매일 아침 약 30여분을 지하철로 통학 하던 그 때, 나는 그 동네에서 찾아 볼 수 없었던 교복을 입고 있었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10여분을 걷곤 했었는데, 그 시간을 좀 줄여보자고 골목길을 택했었다. 주택가라 안전하다고 생각했었던 그때의 나는 얼마나 순진 했던지!!! 날이 그다지 춥지 않았던 겨울날, 모직도 아니었던 교복 마이(다들 그렇게 불렀음)에 블라우스만 입고 있었던 나, 물론 치마였고, 종종 걸음으로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걸어 가고 있었다.
볼링장 옆길로 난 골목길엔 집들이 가득 했고, 사람이 평소에도 많이 지나다니는 길은 아니었다. 4시경이었는데도 벌써 어둑 어둑 했고, 나는 귀에 이어폰을 꽂은 상태로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내 목 주변을 낚아 채고는 다른 한손으로 교복 뒤를 더듬 거리기 시작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히 나는데, 사람이 너무 놀라면 소리가 나오지 않는 다고 하는 말을 그 때 실감 했다.
소리를 지르는 데 목에 막혀 나오질 않았다. 그와 함께 숨까지 막혀서 꺽꺽 거리게 되는 상황이었는데, 지금도 가끔 그 때를 생각하며 왜 소리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며 몰래 소리를 내보곤 한다. 거짓말처럼 아무 소리도 나오질 않던 그 때 나는 손으로 그 사람의 머리와 얼굴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귀쪽에서 들려오는 숨소리로 얼굴 위치를 파악하곤 미친듯이 주먹으로 머리를 때리고 다른 한손으론 내 몸 뒷쪽에 붙어있는 그 인간의 몸 어딘가를 마구 꼬집었다.
그렇게 한참을 몸 싸움을 하다가 그 사람이 나를 확 밀치곤 도망을 갔는데, 풀려난 그 때서야 소리가 나와 크게 고함을 질렀다.
좁은 골목 사이로 내 목소리가 울렸지만 나와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나는 빠르게 큰 길가로 나와서야 겨우 안심이 되었다.
아무렇지 않게 집으로 걸어 들어왔으나, 그 후로도 골목길을 걸어 갈때면 뒷통수가 간질거려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두 번째일은 그 후로 부터 일년 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동네가 좀 위험한 동네가 아니었나 싶다.
이 후 엄마에게 이유는 말하지 않았고 학교를 옮기고 싶다고 사정하여 집 바로 뒤 중학교로 전학을 갔고, 새로운 친구들과 친해져 함께 독서실을 다니던 때, 시험 기간 공부를 하다 집에 돌아 오는데 그 때 어머니와 이모가 각각 비디오 가게를 하시던 친구를 만나 떡볶이를 사먹고 집에 가던 길이었다. 거기는 그렇게 어두운 곳도 아니었고, 친구의 이모가 하시던 비디오 가게 앞이라 별 다른 위험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술 취한 남자가 다가와서는 뭐라고 횡설 수설 하면서 따라오는게 아닌가. 갑자기 무서워진 우리는 마침 퇴근 후 비디오 가게를 보고 계시던 이모부를 보고는 가게로 들어갔고 그 가게 안에 까지 들어온 남자를 이모부께서는 말리시는데, 남자가 지갑에서 돈을 꺼네 이모부에게 건네면서 저 아가씨들 불러 달라고 하는게 아닌가. 이모부께서 쟤들은 학생이라고, 이러시지 말라고 하시는데 갑자기 폭력을 행사하시며 비디오들을 다 쓰러뜨리곤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옆 슈퍼 마켓 아주머니께서 바로 경찰에 신고 하셨고, 금새 경찰이 왔는데......
세상에..... 사람이 술에 취하면 힘이 장사가 된다는데..... 수퍼 아저씨, 지나가던 행인, 이모부까지 합세해 그 남자를 제압하려 했지만 미쳐 날뛰는 그 남자는 길가에 세워져 있던 차를 들이 받지를 않나... 세 명의 남자로도 술에 취한 한 사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경찰이 와 모두 합세하여 겨우 남자에게 수갑을 채웠고 경찰차 안에서도 계속 행패를 부렸다.
이후 나는 난생 처음으로 경찰서에 가 진술서라는 것을 써 보았고, 나중에 알고 봤더니... 이 남자는 마지막 휴가를 나온 군인.... ( 이 대목에서 ㅎㄷㄷ, 이 넘이 사실은 지금의 나보다 어렸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이었던 것. 아무튼 영창에 가 있던 그 군인의 어머니가 사람 목숨하나 살리는 셈 치라며 비디오 가게로 찾아와 빌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는데 이미 우리 손을 떠난 일이라 뭐 별 도리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실 나는 그 흔한 지하철 변태를 만나본 적도 없고, 간혹가다 나이든 아저씨들, 주로 40대가 좀 음흉한 느낌이 드는 듯한 눈길을 보내고 있구나! 정도를 감지한 것 말고는.....
특별히 성폭력이라는 단어를 인지 할 만한 일이 없다.
하지만, 주변을 보면 거의 대부분의 친구들이 지하철, 버스 치한을 만난 경험이 있고, 이 외에도 계기가 있으면 봇물 터지듯 여자로서 당하는 설움?! 을 쏟아냈다.
나의 경우는 조금 우습지만..... 치한을 만날때를 대비하여 의외로 준비를 많이 했다.
단축 번호 1번에 경찰 번호를 저장 한다던가.... 차에 타면 문 앞에 서서 칸의 호수를 먼저 확인 한다던가.... 누가 은근 슬쩍 만지면 도움을 청할 만한 사람이 누굴까~ 하는 생각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둘러 본다거나.... 해 줄말을 미리 적어 연습도.... ^^a 조금 해 놓고....
나이 든 아저씨의 경우는 요렇게... 어린 학생의 경우는 요렇게... 등등의 준비를 해 놓았지만 사실 한번도 실전에 사용 된적은 없다... (그닥 아쉽지는 않지만.....)
어쩌면 그 들은 육감적으로 나라는 인간을 대상으로 지목하지 않았을 수도....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나는 운이 참 좋은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 의사에 반해 다른 사람으로 인해 강렬한 수치심, 모멸감, 스스로를 경멸할 정도의 분노를 겪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가 내게 매우 저질스럽고, 기분 나쁜 농담을 한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에 대해서는 나도 비슷한 수위의 농담으로 대꾸했던 것 같다.
나라는 인간은 꽤나 둔감했던 것 같은데.... 그게 의외로 정신 건강에는 꽤나 도움이 된다.
내가 마음이 좀 아픈건.....
분노와 증오가 사람안에 쌓이면 갈곳을 잃고 헤메다 자신을 좀 먹거나.... 누군가를 향해 또 다른 칼날이 되어 찌르고 말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상처라는 건 치유가 없다.
지나가거나.... 자국이 남거나 또는 안 아픈척 하거나....
그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건 그 사회 자체가 병들었다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사건 사고.... 그 사람들의 삶이 지속되는 한 그 상처도 함께 갈텐데.... 하는 생각을 하다보면 가슴이 조금 먹먹해진다.
과연 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요새 참 안좋은 사건 정말 많은 것 같아요...ㅠㅠ
답글삭제Sofia 님도 이런 안좋은일들을 꽤 당하셨군요. 저도 마음 한구석에 있는 몇가지 이야기들이 있긴한데...
저는 이상하게 저한테만 안좋은 일이 꼬인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Sofia님처럼 제가 운이 좋았던 거라고 생각하는게 더 나은 것 같아요 ^^
엄머 레나양!!
답글삭제연말이라 예산 짜느라 정신이 없어서 이제야 봤어요...
나 요새 완전 폴란드어 포스팅은 하지도 못하고 -_-;;
원래의 목적에서 매우 벗어나고 있다는....
너무 낙관적인 것도 문제가 있긴 하지만 '알고보니 난 완전 사랑 받고 자랐어!' 라고 생각하는 건 진짜 세상사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관점의 변화가 큰 차이를 만든다 뭐 이런.... ㅋ
물론 나도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는데 그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기로 하고... 쩝
그런데 저의 남자친구는 굉장히 현실적이라서 내가 하도 '난 운이 좋아'를 연발하고 사니까 한참 그런게 아니라는 걸 납득 시켜주려다 요새 포기 했어요 ㅋ 하하하
둘이 너무 다르니까 좀 평균이 맞춰 지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지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