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2011

폴란드어 이야기

 이 글은 그동안 쉬었던 폴란드어 설명이 아니고, 폴란드어를 배우며 느끼는 개인적인 감상이다. 폴란드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폴란드어는 3차의 분할을 통해 나라가 지도 상에 존재 하지 않았던 120여년의 세월을 거치면서도 살아 남은 언어다. 그 말은 120여년 동안 공식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던 정체된 언어 였으며(아예 사용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님) 그로 인해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다시 나라를 재건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언어의 통일화, 간소화등의 과정 없이 오래 된 언어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민족주의가 외부의 적이라는 존재에 대응해야 하는 위기의 상황에 매우 강력하게 발현 되어 작용하는 점을 고려하면, 왜 폴란드에서 언어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지가 쉽게 이해 된다.
러시아가 언어를 주변국에 보다 빠르고 효과적으로 전파하고자 복잡하고 불규칙적인 특성 자체를 필요적인 측면에서 간소화 시켰던 반면에 폴란드는 언어에서 편의를 도모하기 보다 민족적 정체성 유지에 더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봤다. 
때문에 폴란드어는 슬라빅 언어의 복잡한 문법 체계를 현대에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앞으로도 언어 개혁을 할 가능성은? 확신 할 수는 없지만 거의 없다고 본다.

오히려 폴란드어의 복잡한 문법 체계가 국가성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듯 생각이 들때가 있다. 원칙을 중요시 여기고 반칙은 싫어 하며, 간단히 넘어 갈 수 있는 요령이 보이는 데도 정도를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사족이지만, 폴란드 사람들의 원리원칙 주의가 참 좋은 점은 이런 성향 덕분에 사람들이 음식에 장난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화학 비료 등도 한국에 비하면 아예 안치는 거나 마찬가지란다. 덕분에 사람들은 길에서 산 사과도 쓱쓱 문질러 껍질채로 먹는다. 얼마전에는 회사에서 임신 3개월의 여직원이 사과를 씻지도 않고 그냥 베어 먹는 것을 본적이 있다.

각설하고, 폴란드어는 아주 간단한 문장 하나를 만드는 데도 복잡한 문법적 논리를 필요로 한다. 동사의 인칭 변화는 기본이고, 동사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른 격 변화, 남성 여성 중성의 단어에 따른 형용사의 올바른 선택과 함께 격에 맞는 격 변화가 필요하다. 이 외에 수사가 들어가는 경우, 단-복수가 아닌 1의 경우 2,3,4의 경우 그리고 5 이상의 숫자에 따라 단어의 형태가 변한다. 겹치는 경우를 제외하고 단순히 계산 하자면 1개의 단어가 3개의 성에 따라 다르고, 3개의 성이 7개의 격에 따라 변화하고 여기서 수사의 의미가 들어갈 경우 3가지의 형태로 변한다. 여기서 내가 거품무는 부분은 형용사 또한 단어에 맞춰 성,수,격에 따라 변한다. 단어 변하는 방식 다르고, 형용사 변하는 방식 다르다. 그래도 귀여운 부분도 있다. 같은 단어도 크기에 따라 어미가 변화 한다는 것, 나름 규칙 변화다.
물론 겹치는 부분도 많고 복수에서는 남성과 중성이 같은 형태를 보이는 경우도 있고, 무생물의 경우 격변화 안하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더 헷깔린다.
러시아어 처음에 배울 때도 참 막막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눈앞이 깜깜하지는 않았다. 확실히 러시아어가 훨씬 간소화가 많이 된 것이 보인다. 물론 advanced로 넘어가면 점점 어려워지겠지만 그래도 처음에 느는 속도는 러시아 어가 훨씬 빠르다.

자 그럼 폴란드어를 구사하는 폴란드 사람들은 어떨까? 물론 어느 누구에게나 모국어가 그렇듯이 그들은 어렸을때부터 익혔기 때문에 자연스럽겠지만 한국어에도 어린이가 쓰는 말과 어른이 쓰는 말이 확연히 다르게 들리는 것처럼 (한국어에서 한자어를 구사한다거나 하는 것처럼) 빡센 국어 공부를 필요로 한다고 들었다.
내 남자친구는 고등학교 졸업 시험에 3가지 과목을 응시 했는데, (영어, 수학, 폴란드 어) 재미있게도 폴란드 어 점수가 제일 낮게 나왔다고 한다.

그런 언어를 배우고 있는 내 기분이 요새 어떤지 짐작이 가시는 지....?
내 영어 구사력에도 참 불만 많은데....... 러시아 어 공부 진짜 재미있게 하고 있었는 데 폴란드에 살고 있는 이유로.... 그리고 폴란드 인 남자친구랑 남자친구 부모님한테 참 예쁨 받아서 같이 얘기 하고 싶다는 이유로.... 러시아 어 잠시 쉬고 폴란드어 하고 있는데, 진짜 하루 하루 진도가 나갈 수록 눈물이 난다.

내가 과연 폴란드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날이 올까?
앞으로 결혼해서 애가 생기면 어쩌지? 혹시라도 폴란드에서 평생 살게 되면 어떻하지? 하는 등의 생각으로 마음이 진짜 암담하다....  이게 미국에 나이 들어서 이민 가신 분들이 하시던 고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름 언어에 소질있다고 생각하며 산 세월이 28년이다.
일본어 물론 한국어랑 비슷하지만, 조금 공부 했는데 여행가서 별 문제 없이 소통 되는 거 보고 자신감 붙었었고, 사촌언니 독일어 하는 거 보고 나도!! 하면서 달려 들어서 일년 공부 했더니 베를린 가 있는 동안 기본 회화 되길래 그렇구나!! 하고 생각 했고  러시아어 하는 남자친구랑 반년 조금 안되게 연애 했더니 감 잡혀서 학원 반년 다니고 독학 하고 시험 봤더니 금방 중급 나와서 그래 하면 되는 거야!!! 하고 생각했는데.... 폴란드에서 생활 한지 일년... 이 언어는 무작위로 많이 듣는 다고 듣고 말할 수 있는 언어는 아니고, 상황에 따라, 그리고 세부적인 사항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는 고로 결코 머리가 굳은 성인으로서는 누군가의 가르침이 없이 배우는 건 불가능 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겨우 한고비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찾아온다....

이 모든 상황을 뒤로한 채 드는 생각은.....'영어가 제일 쉬웠어요!' 다.


현재는 자신감 제로, 완전 바닥에, 폴란드어! 후덜덜 하고는 있는데 오기가 생겨서 그만 두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스트레스 많이 받는다.
특히나 회사 다니며 공부 하려니... 진짜 시간도 없고 체력도 딸린다.

하지만 내 돈 들여가면서 배우는 건데 진짜 잘하고 싶다.
적어도 돈 버렸다는 생각은 절대 하고 싶지 않다.
이미 복식 문장으로 말하겠다는 생각은 버렸다. 간단한 문장이라도 문법에 맞게 맞는 격을 써서 단어 변화 제대로 시켜서 말하고 싶다.

2011년의 최대 목표는 이거다. 남자친구 엄마랑 둘이만 있어도 바디 랭귀지 말고 (다큰) 사람 답게 점잖게 대화 하는 것.....
오늘 밤에는 잠 못 이룰 것 같다.
왜냐면.... 내일이 학원 가는 날이기 때문

3/26/2011

생활의 기쁨.

나는 요리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내가 요리를 처음 했던 건 초등학교 5학년이던 11살때, 학원을 하시는 엄마는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늘 집에 계시지 않았다. 그래도 그 해는 엄마가 동생을 출산 하셔서 1학기 때는 집에서 쉬셨었는데  외 할머니께서 집에 머물며 우리와 엄마를 돌봐 주셨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엄마는 다시 학원으로 출근 하셨고 외 할머니께서 갓난 동생을 돌봐 주셨다.
가끔 외 할머니께서 볼일을 보러 외출 하실 때가 있었는데, 물론 밥을 준비해 놓고 나가셨지만, 보통 아침에 먹었던 음식과 같은 반찬과 국으로 차려진 상이었다. 그 때의 나는 지금과 같이 같은 음식을 두끼 이상 먹는걸 무척 싫어해서 외할머니께서 많이 힘들어 하셨던 기억이 나는데, 그 때 차려진 상이 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종종 할머니께서 만드는 걸 옆에서 보았던 기억이 나는 수제비를 만들기로 결심을 하고 찬장에서 밀가루를 꺼내고, 멸치 가루, 새우 가루 외 할머니께서 곱게 갈아 놓은 가루를 물에 풀어 감자 껍질 깎아 수제비를 만들어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나는 음식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 둘째 이모가 정말 음식 솜씨가 환상이었는데 우리 이모는 뭘 만들더라도 정말 뚝딱뚝딱 간단한 재료로도 환상적인 맛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었다. 반면에 우리 엄마는 정말 음식을 귀찮아하고 싫어 하셔서 지금도 된장찌게는 내가 훨씬 잘 끓인다. 이모네 집에 놀러가면 난 항상 이모 옆에 졸졸 따라 다니며 이모가 뭘 만드시는지 옆에서 지켜 보곤 했다. 지금도 이모가 만들어 주셨던 육개장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나이가 먹어 아무리 이것 저것 넣고 만들어 봐도 그 맛이 나질 않는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걸 좋아한다.
음식을 워낙에 천천히 먹는데다 쉬었다 다시 먹는 버릇이 있어서 내 남자친구가 요새 밥 먹는 속도를 줄이려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생각이 난다. 오늘은 뭘 해 먹어야지~ 하고...
그러면 냉장고 안의 재료를 확인 하고 장을 보러 나간다.
장을 보고 와선 천천히 요리를 시작한다.
전문적으로 배워 본적도 없고, 평소에 요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지만, 주말이면 집에서 요리 하며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
그렇게 예민한 식감을 가진 것도 아니고 작은 부분 까지 알아 차릴 정도로 민감한 입맛도 아니니 평균 이상의 맛만 나오면 된다.

해가 지나면 지날 수록 눈치가 늘어 고등학교 무렵 부터는 어떤 음식을 해도 곧잘 맛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물론 아마추어 수준에서....
음식점을 내거나 하면 망할 수준이지만, 내 남동생들은 늘 누나의 음식이 최고라며 그릇을 싹싹 비우곤 했다. 남자애가 셋이나 되서 우리집은 김치찌게를 끓여도 곰솥에다 끓이고, 삼겹살을 구워도 10인분은 구워야 배 부르다는 소리를 하며 상을 떠난다.
보통은 붉기를 재어 놓으면 몇 일은 간다던데.... 김치통에 가득 고기를 재어 둬도 삼일을 못갔다. 나와는 다르게 반찬 투정 한번 없이 내 동생들은 내가 해주는 음식을 참 잘 먹었다. 그래서 엄마는 우리들 식사 걱정은 거의 하질 않으셨다. 나에게 재료비를 늘 놔두셨는데 덕분에 동생들은 용돈을 받으려 내 말에 거의 거역한 적이 없다.
그렇게 내 밑에서 늘 심부름에 시달리던 둘째 동생, 중학교, 사춘기 임에도 불구하고 한밤 중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는 내 부탁에 편의점에 달려갔던 동생이 이번에 대학을 들어갔다.

집을 떠나서 가장 걱정이 드는 건 우리 막내, 우리 엄마가 보신 두번째 늦둥이....
내가 없는데 밥은 잘 챙겨 먹을까 하고..... 맛있는 걸 먹을 때면 늘 생각이 난다.
위의 두 명은 완전히 한식 파라 밥을 늘 선호 했는데 우리 막내는 내가 어디서 요상한 걸 만들어 줘도 참 잘 먹었다. 식성이 별나다고 생각 했는데, 얼마전에 전화로 얘기 할 때 누나가 만들어준 파스타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특별한 파스타도 아니 었는데.... 막내는 늘 전화 할때면 파스타 얘기를 한다.


어디선가 읽은 말이지만 마음 깊이 공감했던 말이....
누군가와 식사를 함께 하는 일은 영혼을 나누는 일이라고 했다.
식사는 늘 좋은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그래서 불편한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느니 나는 혼자 먹는 것이 편하다. 맛도 더 잘 느낄수 있고, 마음의 여유도 있고....

오늘 만든 음식은 뿌팟퐁커리, 갑자기 떠올라 냉장고에 있던 꽃게를 녹여 가볍게 튀겨서는 마늘과 양파 잘게 썰어 볶아 커리 가루 올려 코코넛 밀크 넣고 계란 풀어 마지막에 쪽파를 넣었더니 생각 했던 것보다 부드러운 느낌의 커리가 나왔다.
밥위에 올려 먹었더니 참 맛있었다.
장볼 때 함께 사왔던 생강 맥주를 곁들어 마셨더니 혼자 있어도 마음이 훈훈해 진다.

좋은 사람이 생각나는 밤이다.

3/17/2011

연인의 대화

무상 급식과 무료 공교육의 문제에 대해서 토론하는 커플이라니....

어떻게 보면 우습기 짝이 없지만 내가 읽는 모든 종류의 글에 관심을 가지는 남자친구 덕분에.... (한글로 된 글도 읽고 있으면 옆에 앉아서 번역해 달라고 조른다. 강아지 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면서...  가끔 먹이 달라고 눈빛 발사 하는 강아지를 키우는 느낌이 들 정도...)
솔직히 전 남자친구들이 무척 쿨 한 스탈들이시라... 그리고 나도 물론 상대방 취미나 관심사 최대한 존중해주고 별로 간섭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남자 조금 생소하고 가끔은 부담 스럽다. 막상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내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보는 남자가 멋있어 보일지 몰라도 일상은 그런 것들과는 매우 다르다.

직업이 회계,재무 관련 업종인지라 자기전에 침대에 앉아 가끔 ADBI에서 보고서들을 살펴 보곤 하는데 사실 나도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는데 설명해 달라고 조른다. 가뜩이나 설명 같은거 잘 못하는 타입인데 머리로만 그것도 두리 뭉실하게 알고 있는 걸 설명해 보라고 한다. (영어로 되어 있으니까 니가 찾아서 읽어봐!! 하고 싶은 걸 꾹 참으며) 한참을 버벅 거리고 겨우겨우 이상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다가 패닉이 되서 짜증이 폭발 할라치면 슬그머니 지 노트북 꺼내서 살펴 보고는 아는 척을 막 하면서 나한테 도리어 설명을 하려고 한다.
그럴 땐 짜증이 많이 난다. 그냥 15분 20분이면 다 읽고 내려 놓을 것을 1시간 2시간을 넘게 잠도 못자고 체력과 감정을 소모하게 만든다. 게다가 나는 늘 약이 올라 씩씩 거리며 끝나는 게 다반사, 잠이 오질 않는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게 아니다 내가 겨우 진정하고 잠 들면 그걸 밤새 읽고는(자는 시간이 아깝다고 하시는 1인) 다음 날 다시 말 꺼내서 지는 어떻게 생각하고 뭐가 어떻고 저떻고 를 늘어 놓는다.
사실 나는 그렇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보고서를 찾아 보는 건 아니다. 잘 모르니까 알아 보려고 읽는 건데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를 가지고 자꾸 얘기를 하려고 드니까 짜증도 나는데다 무엇보다도 그는 사회주의의 병폐를 보고 자란 열렬한 자유 시장주의자고 나는 자본주의의 side effect를 격고 자란 신 자유주의에도 약간 동의하고 수정 자본주의에도 관심 있고 행동 경제학 좋아 보이는 뭔가 체계가 정립 되지 않은 약간 사이비 돌팔이 경제학도 정도?라고 할까...... 아무튼 남자친구처럼 시장을 맹신 하지는 않는 다는 점이 우리의 대화를 참 힘들게 만든다.

그래..... 솔직히 다행인건 언어로 인한 갈등은 참 적다.
연애의 기본은 소통이라고 생각 하기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연애는 진작에 쫑 났을꺼다. 다행히 남자친구는 언어에 매우 소질이 있기 때문에 공학도 이고 폴란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에서 걱정하는 것처럼 영어를 못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남자친구 쪽 폴란드 애들은 한국애랑 사귀는데 언어는 어떻게 하냐며 걱정하는 거나 마찬가지....(내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걱정 하는 것과는 달리 전반적인 영어 구사 수준은 한국인 보다 유럽인이라는 advantage를 갖고 있는 폴란드인이 훨씬 높다. 걱정하지 마시라....)
 사족이지만 옛날에 내 이상형이 뭐냐 하는 질문에 영어 나보다 잘하고 러시아어 나보다 잘하고 독일어 나보다 잘하는 남자 라고 대답한 적이 있는데 (본인의 러시아어 실력은 intermediate, 독일어는 survival 수준 ) 기도도 안했는데 하느님이 (본인은 가톨릭임)  내 이상형의 남자를 만나게 해주셨다. 그런데 참 오묘하게도 그때 내가 한국어는 말 안했다고 맞춤 서비스로 한국어를 못하는 남자를 보내 주셨을까..... 하고 우스개소리로 친구랑 얘기 한적이 있다. 덕분에 상상도 못했던 폴란드어까지 배우고 있다. 인생은 참으로 오묘하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친구들 중에 나는 왜 남자가 안생기지.... 하고 말하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기도해 보3 하고 얘기 한다. ㅎ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우리의 대화에 대해서 얘기를 하자면, 최근 한국을 뜨겁게 달궜던 무상 급식, 무료 공교육에 대한 글을 읽고 있었다. (물론 한글로 씌여진....) 
IMF를 고등학교 때 겪어 본 나로서는 연민의 감정에 근거하여 얘기 했다. 어른들은 몰라도 나는 애들한테는 선택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함. 애들이 잘 커야 미래가 있는 거야.
애들은 걱정 없이 먹고 공부 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누려야 한다고 생각함(전제 자체가 부모가 함량 미달인 아이들에 대한 걱정에서 시작하고 있음)이라고 특색 없는 의견을 갖고 있는 반면 남자친구는....

애초에 선택의 기회 같은 건 없음.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환경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음. 부모가 책임질 수 없다면 어느 누구도 책임질 수 없음. 부모가 문제 있다면 학교에서 아무리 공부할 기회가 주어지고 밥 먹여도 잘 자라기 힘듬. 그리고 국가에서 일률적으로 키워서 사회에 내보내도 문제임 왜냐하면 각자 갖고 있는게 다른데 이런 차이를 어렸을 때 부터 겪으며 자라지 않으면 대처하는데 적극적이지 못함, 준비도 안되어 있음. 차라리 어렸을 때부터 차이를 인식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좋음. 마지막으로 국가가 교육을 책임진다는 건 말이 안됨. 부모가 애를 갖기 전부터 막강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자식을 교육 시켜야 함. 복지 정책도 마찬가지임 국가가 복지를 책임지고 애 교육도 책임 지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자신의 삶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을 안함. 자식이 잘 커서 돈을 잘 벌어서 본인을 부양해야 된다는 필요성이 있더라면 유럽 사람들이 지금 보다 훨 적극적으로 자식 낳고 더 열심히 키울 것임. 출산율 낮아 진다고 막 떠드는 거 보면 무척 웃김. 나는 공교육 무조건 반대임 사회 자체가 공평하게 기회를 준다는 발상 자체가 사회주의 적인 발상임. 당장 세금 부터 줄이고 복지 예산 삭감 해서 스스로 책임 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함. 세금률 한국의 두 배, 세 배, 심지어는 네 배 인데 그거 어디다 쓰는지 유럽의 거의 모든 공공 시스템이 한국의 1/3도 못 따라감. 한국이 유럽 안 따라오면 좋겠음
라고 속사포처럼 쏟아 놓는다.


감정적인 나는 얘랑 얘기 하다보면 말문이 막히고 복장이 터져서 죽을 것 같고 남자친구는 폴란드인 기질 (말 많고 자기 의견 매우 확실하고 본인이 매우 논리적이라고 생각함,거의 모든 폴란드 사람들이 그렇슴 )을 유감 없이 발휘하여 나를 궁지로 몰아 넣는다. 물론 나는 논리라고는 진작에 내팽개치고 너는 사람이 왜 그러니....불쌍한 애들은 어떻하니... 하고 감정에 호소하다가 안되면 급기야는 소리 지르고 난 너 같은 남자가 정말 싫다!!! 면서 -_-;;; 화낸다. (아...나는 토론에 매우 약함....  ) 그러면 남자친구는 미안하다, 내가 너무 내 의견만 몰아 부쳤다, 네 마음 이해 한다, 내가 좀 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도록 노력 하겠다 면서 다독이지만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라는 걸 경험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유인 즉 같이 있으면 비슷한 상황이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일어난다. (휴가 간다고 해서 결코 쉬지 않음.... ) 그나마 요즘엔 남자친구가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우리의 토론(이라고 쓰고 말싸움이라고 읽는다) 은 일주일에 한번으로 줄었....다.  -_-;;;  (황금 같은 주말을 꼬박 스카이프와 함께...) 안 그러려고 해도 이 얘기 저 얘기 하다보면 자꾸 상황이 그렇게 돌아 간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지금은 서로 역사 얘기 안한다는 것, 전에 한번 역사 얘기 했다가 정말 내가 대판 소리지르고 난리 난리 쳐서..... 그 다음부터 절대 서로 역사 얘기는 안하기로 합의 했다.  (이 얘기는 다음에.....)

[물론 나도 참 못할 말 많이 했지만 (예를 들어.... 아래에....) 폴란드 사람들도 한번 시작하면 비판 작렬이기 땜시.....
상황 : 폴란드 어 공부하는데 변화가 너무 극심해서 좌절.... 배울 수록 어려운 말임, 정말 절망적이라고 생각했음, 단순한 문장 말하는 데도 진짜 단어가 너무 화려하게 변해주고 발음도 짜증남
홧김에 본인이 밷은 말 : 근데 너네 나라 말은 나라가 없어지고 그렇게 오래 지났는데 어떻게 안 없어지고 계속 남았어? 이렇게 어려운데? 차라리 러시아 말 편하게 하지... 그럼 나도 지금 전에 하던 러시아어 계속 공부 했을 텐데.... 흑 폴란드어 너무 어려워!!!!-물론 러시아 말도 매우 어렵지만 러시아어 퍼뜨리려고 국가적으로 문법에 손질 많이 했음, 폴란드어 보다는 많이 간소화 됨
남자 친구 반응 : 화 안냄 이해 한다는 듯이 토닥 토닥, 시간이 필요하지 너 잘하고 있다.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도와 줄께
본인이 느낀 점 - 만약 남자친구가 너네 말은 왜 안 없어졌어? 일본말 그냥 배워서 하지... 하고 말했으면 진짜 죽이려고 달려 들었을 것임, 시간이 지난 지금은 남자친구의 너그러움에 감사하고 있음]

그런데 내 말문을 막는 한 가지가 또 있다. 얘는 참 진심이고 진지하고 정치에 관심 많은데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재외국민 신고도 제대로 안되어 있어서 투표도 못하고 한국에 있을때도 그렇게 열심히 투표하고 관심있게 찾아 보는 타입이 아니었다. 솔직히 휴일이구나~ 아싸~ 하는 정도? 엄마가 투표 하러 가는 길에 슬금슬금 쫓아가서 같이 투표하고 다슬기 해장국 먹고 온적은 있지만... 아예 정치 쪽은 관심이 없다는게 맞다. 그런데 얘는 일요일을 투표일로 지정하는 뷁 스러운 폴란드 정치인들의 농간(?)에도 굴하지 않고 저 멀리 암스테르담에서부터 자비로 비행기표 사서 투표 하러 오신다. 물론 유세 기간에 유투브며 지네 뉴스며 각종 자료 찾아 보면서 분석해 주시는 센스까지.... 맨날 폴란드 욕하면서 마음 속 깊이 자국에 대한 애정이 있는 거다. (외 할머니 독일에서 넘어 오셨고 외 할아버지 엄마 집안이 우크라이나에서 넘어온 혈통임에도 불구하고 얘는 폴란드인인거다. 외할머니 일본분이시라 어렸을때 학교에서 일본놈 드립 당한 이후 한국인이라는 의식이 희박해진 나와는 달리...)
그래서 역사 얘기 할때만 어정쩡하게 발동되는 묘한 애국심을 가진 나와는 달리 남자친구가 더 당당하게 정치적 경제적 사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거다.

얘 때문에 지난 일년간 많은 수모와 모욕....은 좀 과장이고 괜히 말 꺼냈다가 물 먹은 경험이 많다.


요즘에 얘기 하면 서로 싸울 주제 참 많은데 다행히 떨어져 있어서 그 빈도가 많이 줄었다.
우리는 어떤 대화를 하던지 연인 치고는 참 치열하게 대립한다. 남자친구도 내가 폭발하기 전까진 결코 주장을 굽히지 않는 터라.... 어쩔때 보면 내가 내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치고 올라와 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바르샤바로 왕림하시는(오늘 도착) 남자친구를 위해 이번엔 내가 좀 준비를 했다. 채찍과 당근이라고 할까....

저번에 장하준 교수가 쓴 책(23things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을 같이 읽어 보자고 영어 원문으로 주문해서 선심 쓰듯 먼저 읽어~ 하고 줬더니 지가 동의 할수 없는 부분에 막 반대 의견 써놨다. 하도 개발새발 써 놨길래 해독하기 힘들었지만 야근에 시달리고 폴란드어 수업에 시달리는 중간 중간에도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그 녀석이 써 놓은 의견을 살펴보고 내가 하고 싶은 말 차근 차근 요점 정리 해놨다. 내가 제일 싫어 하는게 개론서에 낙서 하는 건데 포스트잇에다 붙여 놓은 것도 아니고.... (그래도 다행히 샤프로....) 책에다 써 넣다니 결코 용서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지만 먼저 약점 노출해 주셨으니 그 정도는 눈 감고 넘어가 주겠다... 하고 생각했다. 채찍을 단단히 준비 했으니 당근도 달달한 걸로 골라 놨다. 사다리 걷어차기 영문판이다. 물론 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에이 잘 모르겠다!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정말 부담 없이 재미 있게 읽었기 때문에 영문판으로 한번 더 보려고 샀다. 그렇지 않아도 23책 읽고는 장하준 교수한테 이메일 보내 보고 싶다... 답장이 올까?  그 교수가 읽어 보기나 할까? 하면서 좀 두근두근해 하던데 이번엔 뭐라고 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남자친구에게 반격하기 위해 미시 경제 원론서 뒤지다가 든 생각....
다른 연인들은 어떤 대화를 할까....
근데 얘는 공학 하는 애가 왜 저렇게 역사랑 경제에 관심이 많지? ( 급 짜증이 울컥.... )

3/16/2011

러셀 아저씨 말씀이....

남자친구인 R군은 매우 냉철하다.
알고 있는 것도 많다. 이번 원전 사태에 대해서도 재료 공학 하시는 아부지하고 참 심도 있게 대화 하시더라.... 그런데 그게 다다.
똑같이 휴가를 계획 하고, 조깅을 나가고, 쇼핑을 간다. (현재 그는 휴가 중~ 유급 휴가가 너무 많아 일주일 휴가를 내고 친구도 만나고 딩굴 거리면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_-)
반면에 나는..... 신문이나 뒤적이면서 정확하지 않을지 모르는 정보들을 무작위로 흡수하며 이런 저런 망상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밥도 못 남기고 (평소와는 다르게...) 꾸역 꾸역 먹고
당장 한국 계좌에 있는 돈부터 구호 성금으로 보냈다.


R군이 태어난 곳은 체르노빌로부터 서쪽으로 약 900여 키로 떨어진 곳으로 체르노빌 사건 발생 시점과 출생 시점이 비슷 하다. 하지만 평생을 이 지역에서 사신 부모님을 비롯하여 본인도 무척 건강하고 친구, 형 주변 인물들이 대체적으로 매우 건강하다. 우려했던 바처럼 돌연변이로 고생하는 사람도 없고 신문에서 떠드는 것처럼 백혈병이 만연하지도 않으며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며 잘 살고 있다. 언론에서 떠드는 것과는 무척 많이 달랐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쪽 지방 사람들은 정말로 담담하게 뉴스를 보고 굉장히 침착하다. 물론 TV에 전문가들이 나와 지난 체르노빌 사건과 비교해가며 토론도 하는 걸 보면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처럼 감정적으로 반응하지는 않는다는 거다.

 R군만 봐도 이 나쁜X.... 아무리 니 일이 아니라고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자기가 알고 있는 핵연료 시설에 대한 공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채 차갑게 대꾸한다. 내가 남자를 잘 못 골랐어!!!! 라는 생각 까지들 정도 였다.


얘기 하다 서로 너무나 다른 시점으로 다른 소리만 하는 모습이 너무 답답해 러셀 아저씨가 한 말씀을 그대로 말해줬다.

 이 글을 읽었을 때 나는 아직 많이 어리고 순수 했고, 뭔가 뭔지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는 상태였을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많이 뛰었었던 기억이 난다. R군에게도 꼭 자서전을 읽어보라고 얘기해 줘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우리 둘의 문제가 아닌 일로 티격 태격 하며 말하게 된 점이 많이 아쉬웠지만, 말을 띄웠다.

Three passions, simple but overwhelmingly strong, have governed my life: the longing for love, the search for knowledge and unbearable pity for the suffering of mankind.


난 돌연변이가 걱정 되는 것도.... 재앙이 닥쳐서 지구가 멸망하면 어떻하지 하는 걱정을 해서 그러는게 아니야. 단지 소중한 사람을 한 순간에 잃고 절망하는 사람들,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탄식에 대한 연민으로 힘든 것 뿐이야. 그 아픔이 전해져서 내 마음도 아프다고 말했는데.....

얘를 현실적인 애라고 긍정적인 관점에서 봐야 하는 건지, 감정도 없는 차가운 애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R군의 답은 이거다. 결자해지, 인과응보.
(러셀 아저씨 자서전 보다는 사자성어 책을 구해다 읽혀 볼까 하는 생각이 급 들었지만 각설하고..... )역시나 감정 없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아직 갈길이 멀구나....
서로에 대해 모르는게 참 많고.... 또 이해 하기가 참 힘들다.


너 참 다정한 남자인데.... 오히려 평소에 보면 내가 너무 차갑고 냉정해서 네가 마음 고생 많이 하는데도 가끔 이렇게 내가 모르는 사람처럼 낯설게 느껴져서 이상해.... 언제나 같은 곳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데도 말이야.

3/14/2011

힘내라 미키!

밤새 잠이 오질 않았다.
지구 저 반대편에서 지구 반 바퀴를 지나 유럽 동쪽까지 그 신음 소리가 들리는 듯 해서 밤을 거의 뜬 눈으로 지새우고 회사에 나갔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뉴스만 계속 해서 모니터링 했다.

이런 엄청난 비극이 또 일어나다니...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연 앞에 속수무책인 한없이 작고 작은 존재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감응이 너무 잘 되는 성격 탓에 자꾸만 눈 앞에 지옥 같은 그 곳 모습이 아른 거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절규가 들리는 것만 같다.
아이폰으로 친구가 올리는 글을 보니 눈물이 더 난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현장으로 뛰어가서 작은 도움이라도 보태고 싶은 마음이 한 가득이다.
공장에 파견 나가 있는 친구는 한 사람에게라도 물자를 더 공급하고 싶어 공장을 계속 돌리려 해도 재료가 없다. 하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꺼라고 글을 남겼다.
그 친구의 조카는 지진이 일어나던 날 오전 태어났다......

 5년을 넘게 보지 못했지만 신년이 되면 늘 카드와 선물을 보내 오는 내 친구 미키, 우리 해마다 올해는 꼭 보자고 약속 했는데... 이렇게 페이스북으로 올라오는 글이나 읽으며 네가 무사함에 감사 해야 한다니....

힘내라 미키  힘내라 일본

3/06/2011

감기

요새 감기가 유행이라더니.... 얼마전부터 목이 간질간질 하더니 금요일 오전부터 코와 목에서 이상신호가 포착 됐다.  그래도 일이 마음에 걸려 점심이 다 된 시간에 회사에 나가서 처리하고 왔더니 토요일 아침에 일어 났더니 목이 완전 잠겨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코가 막혀 숨이 잘 쉬어 지지 않았다.
병원을 가기도 힘들고.... 해서 집에 있는 아스피린+박하사탕맛 나는 목 감기약(?) 만 먹고 버텼는데 이렇게 코를 많이 풀어 보긴 난생 처음이다.....
휴지 2통을 다 쓰고 그렇게 토요일, 일요일을 끙끙 앓고 나니 다행히 열도 내리고 코도 좀 뚫린 것 같다.

한국 같았으면 당장 병원가서 약부터 처방 받았을텐데.... 폴란드에 왔더니 의도 했던 바는 아니지만 감기 정도는 약 없이 버틴다. 그래도 생각보다 회복이 빠른 걸 보면 한국에서 내가 너무 약을 많이 먹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기는 감기에 걸리면 약 보다는 sick leave부터 받아서 집에서 쉬고 보는 데, 의사가 약 처방해주고 주사 놔주기 보다는 sick leave를 위한 서류 주는 사람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목 아파서 갔을때도 항생제 같은 거 처방해주기 보다는 니콜라 같은 사탕? 사 먹으라고 해서 그 후로 쭉 목이 조금이라도 이상한 느낌이 들면 바로 고 사탕 같은 걸 사서 먹었는데 별 문제 없이 잘 버티고 있다.  그 외에도 솔잎 농축액 같은 걸 한 스푼 정도 먹기도 하는데 면역력을 높이는 데 좋다고 한다. 목이나 코에 벌꿀에서 추출한 propolis 라는 걸 뿌려주기도 하는데  역시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걸로 봐서는 건강 보조액 정도의 수준인것 같다.

지금까지 목감기는 지겹게 앓았는데 정말로 코 감기는 올해 처음으로 제대로 앓는 것 같다.
코가 막히니 잠도 푹 못자고 계속 숨이 불편해 잠이 깨는데, 코를 하도 풀었더니 코 밑이 헐어서 역시 아프다. 숨을 쉴때마다 코 안쪽이 욱씬욱씬 거려서 참 많이 괴로웠다.
(목 감기 못지 않게 코감기도 힘들구나... ) 숨이 불편하니 두통도 오는 것 같다.
목 감기는 열을 필수 동반하는데 코 감기는 열은 없는데 두통이 참 견디기 힘들었다.

누워서 끙끙 앓고 있는데...... 나도 늙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예전과는 몸이 많이 달라진 느낌이 든다.

이십대 후반이 되면 여자의 몸은 급격한 변화를 맞는 것 같다.
일주일 하던 생리도 4일로 줄고..... 얼굴에 주름이 생기는 것도 느낄수 있다.
피지 분비가 확 줄어 오후 되면 번들 거리던 얼굴도 그닥....
팔 다리는 건조해서 문제다.  샤워하고 나오면 일반 로션으로는 택도 없고.... 바디 오일로 5분간 문질러줘야 회사에서 별 문제 없이 스타킹 신고도 버틸수 있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샤워만 하고 나와서 로션 같은거 마음 내킬때나 발라주곤 했는데....
하고 생각해봤자... 나만 슬퍼진다.

돼지 갈비를 너무 좋아해서 갈비 먹으러 가면 두 공기를 뚝딱 비우고도 워낙 요리조리 돌아 다니는 걸 좋아해서인지 살도 잘 안쪘는데... 요새는 두 공기를 비우긴 커녕 한 공기도 벅찬데다, 하루에 두끼 먹는데도 살이 모락 모락 찐다....
식단의 변화를 감안 하더라도.... 확실히 예전과는 다르다.

여전히 걷는 건 좋아하지만 예전처럼 하루 종일 걸어 다니지는 못하겠다.... 힘들어서....
언제부터인지 두시간 걸으면 삼십분은 앉아서 쉬어줘야.... 다시 걸을 수 있는 몸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쓰다보니 정말 나이 많이 든 것 같네......
아파서 계속 누워만 있었더니 정말 별 생각이 다 든다.

그래도 이렇게 글 쓸 기운이 있는 걸 보면 내일 회사는 나갈 수 있겠지?

3/03/2011

2008년의 기억

문득문득 그가 한 말이 생각이 날때가 있다.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자마자 서로에게 끌렸던 사람이 있었다.

2주가 지난 후 비행기 표를 한 손에 든 그는 문앞에 기대 앉아 말했다.
이렇게 돌아가버리면 생각이 날까봐 걱정이 된다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 때면, 돌아가는 건 자긴데 혼자 방안에 앉아 내 생각을 하고 또 외로워 질까봐 걱정이 된다고 말하던 그의 얼굴이 아직도 생각난다.

그렇게 문 앞에서 내게 말하곤.... 영국으로 가버렸던 그는 2주 후에 돌아와 다시 내 앞에 서서 웃으며 말했다. 남은 시간이 한달이 안되더라도.....같이 있고 싶다고.....그래서 돌아왔다고....


부지바의 좁은 길에 서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마음으로 그저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말없이 웃던 그는 그냥 보고 싶었다고 그래서 돌아온거라고 말하곤 조심스럽게 내 손을 잡았고 나는 이번에 떠나야 하는 건 난데.... 난 돌아올 수 없어라고 말했다.
그런 내게.... 그럼 널 그리워하면서 일년을 보낼꺼야 그리고 또 일년 그렇게 시간이 가다보면 다시 만날 수도 있겠지... 어쩌면 둘다 서로의 기억에서 잊혀질 수도 있고.... 하고 말했다.

그 후 나는 계획보다 2주를 더 보냈고 그렇게 한달이 지난 후.... 내가 비행기를 타던 그 날..... 우리는 서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공항에서 내내 꼭 안고만 있었다.
그리고 나는 눈물 한방울 떨구지 않고 웃으며 문을 통과했다.




그 후로 문득 문득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이 떠오를 때면 나는 그가 한 말을 되뇌였다....
일년 그리고 또 일년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다고....

 그가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 아침이면 꺼내 마시던 블렌디, 나지막히 속삭이던 목소리와 말투....가만히 앉아 자는 것처럼 눈을 감고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던 모습, 입을 다문채로 나를 향해 미소 짓던 모습과 도톰하던 아랫입술, 작은 버릇 하나하나까지도 기억이 난다, 레몬향이 나는 향수와 얇은 머리카락, 동그란 어깨와 긴 손가락까지..... 그에 대한 기억들이 떠오를 때면 나는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가 없다.

가만히 앉아서 빨리 시간이 지나가 버렸으면..... 그의 말대로 일년 그리고 또 일년....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버리길 기다린다.


버릇이라도 된 것처럼 이젠 다른 사람이 옆에 있는데도 햇살 좋은 일요일 낮이면 창가에 앉아 그가 했던 것 처럼 도수 높은 술을 따라 마시곤 눈을 감고 가만히 시간이 가는 소리를 듣는다.

시간이 지나 감정이 바래고 희미해진다 해도....  잊어 버리지 못할까봐..... 그게 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