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 급식과 무료 공교육의 문제에 대해서 토론하는 커플이라니....
어떻게 보면 우습기 짝이 없지만 내가 읽는 모든 종류의 글에 관심을 가지는 남자친구 덕분에.... (한글로 된 글도 읽고 있으면 옆에 앉아서 번역해 달라고 조른다. 강아지 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면서... 가끔 먹이 달라고 눈빛 발사 하는 강아지를 키우는 느낌이 들 정도...)
솔직히 전 남자친구들이 무척 쿨 한 스탈들이시라... 그리고 나도 물론 상대방 취미나 관심사 최대한 존중해주고 별로 간섭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남자 조금 생소하고 가끔은 부담 스럽다. 막상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내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보는 남자가 멋있어 보일지 몰라도 일상은 그런 것들과는 매우 다르다.
직업이 회계,재무 관련 업종인지라 자기전에 침대에 앉아 가끔 ADBI에서 보고서들을 살펴 보곤 하는데 사실 나도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는데 설명해 달라고 조른다. 가뜩이나 설명 같은거 잘 못하는 타입인데 머리로만 그것도 두리 뭉실하게 알고 있는 걸 설명해 보라고 한다. (영어로 되어 있으니까 니가 찾아서 읽어봐!! 하고 싶은 걸 꾹 참으며) 한참을 버벅 거리고 겨우겨우 이상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다가 패닉이 되서 짜증이 폭발 할라치면 슬그머니 지 노트북 꺼내서 살펴 보고는 아는 척을 막 하면서 나한테 도리어 설명을 하려고 한다.
그럴 땐 짜증이 많이 난다. 그냥 15분 20분이면 다 읽고 내려 놓을 것을 1시간 2시간을 넘게 잠도 못자고 체력과 감정을 소모하게 만든다. 게다가 나는 늘 약이 올라 씩씩 거리며 끝나는 게 다반사, 잠이 오질 않는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게 아니다 내가 겨우 진정하고 잠 들면 그걸 밤새 읽고는(자는 시간이 아깝다고 하시는 1인) 다음 날 다시 말 꺼내서 지는 어떻게 생각하고 뭐가 어떻고 저떻고 를 늘어 놓는다.
사실 나는 그렇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보고서를 찾아 보는 건 아니다. 잘 모르니까 알아 보려고 읽는 건데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를 가지고 자꾸 얘기를 하려고 드니까 짜증도 나는데다 무엇보다도 그는 사회주의의 병폐를 보고 자란 열렬한 자유 시장주의자고 나는 자본주의의 side effect를 격고 자란 신 자유주의에도 약간 동의하고 수정 자본주의에도 관심 있고 행동 경제학 좋아 보이는 뭔가 체계가 정립 되지 않은 약간 사이비 돌팔이 경제학도 정도?라고 할까...... 아무튼 남자친구처럼 시장을 맹신 하지는 않는 다는 점이 우리의 대화를 참 힘들게 만든다.
그래..... 솔직히 다행인건 언어로 인한 갈등은 참 적다.
연애의 기본은 소통이라고 생각 하기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연애는 진작에 쫑 났을꺼다. 다행히 남자친구는 언어에 매우 소질이 있기 때문에 공학도 이고 폴란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에서 걱정하는 것처럼 영어를 못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남자친구 쪽 폴란드 애들은 한국애랑 사귀는데 언어는 어떻게 하냐며 걱정하는 거나 마찬가지....(내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걱정 하는 것과는 달리 전반적인 영어 구사 수준은 한국인 보다 유럽인이라는 advantage를 갖고 있는 폴란드인이 훨씬 높다. 걱정하지 마시라....)
사족이지만 옛날에 내 이상형이 뭐냐 하는 질문에 영어 나보다 잘하고 러시아어 나보다 잘하고 독일어 나보다 잘하는 남자 라고 대답한 적이 있는데 (본인의 러시아어 실력은 intermediate, 독일어는 survival 수준 ) 기도도 안했는데 하느님이 (본인은 가톨릭임) 내 이상형의 남자를 만나게 해주셨다. 그런데 참 오묘하게도 그때 내가 한국어는 말 안했다고 맞춤 서비스로 한국어를 못하는 남자를 보내 주셨을까..... 하고 우스개소리로 친구랑 얘기 한적이 있다. 덕분에 상상도 못했던 폴란드어까지 배우고 있다. 인생은 참으로 오묘하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친구들 중에 나는 왜 남자가 안생기지.... 하고 말하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기도해 보3 하고 얘기 한다. ㅎ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우리의 대화에 대해서 얘기를 하자면, 최근 한국을 뜨겁게 달궜던 무상 급식, 무료 공교육에 대한 글을 읽고 있었다. (물론 한글로 씌여진....)
IMF를 고등학교 때 겪어 본 나로서는 연민의 감정에 근거하여 얘기 했다. 어른들은 몰라도 나는 애들한테는 선택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함. 애들이 잘 커야 미래가 있는 거야.
애들은 걱정 없이 먹고 공부 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누려야 한다고 생각함(전제 자체가 부모가 함량 미달인 아이들에 대한 걱정에서 시작하고 있음)이라고 특색 없는 의견을 갖고 있는 반면 남자친구는....
애초에 선택의 기회 같은 건 없음.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환경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음. 부모가 책임질 수 없다면 어느 누구도 책임질 수 없음. 부모가 문제 있다면 학교에서 아무리 공부할 기회가 주어지고 밥 먹여도 잘 자라기 힘듬. 그리고 국가에서 일률적으로 키워서 사회에 내보내도 문제임 왜냐하면 각자 갖고 있는게 다른데 이런 차이를 어렸을 때 부터 겪으며 자라지 않으면 대처하는데 적극적이지 못함, 준비도 안되어 있음. 차라리 어렸을 때부터 차이를 인식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좋음. 마지막으로 국가가 교육을 책임진다는 건 말이 안됨. 부모가 애를 갖기 전부터 막강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자식을 교육 시켜야 함. 복지 정책도 마찬가지임 국가가 복지를 책임지고 애 교육도 책임 지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자신의 삶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을 안함. 자식이 잘 커서 돈을 잘 벌어서 본인을 부양해야 된다는 필요성이 있더라면 유럽 사람들이 지금 보다 훨 적극적으로 자식 낳고 더 열심히 키울 것임. 출산율 낮아 진다고 막 떠드는 거 보면 무척 웃김. 나는 공교육 무조건 반대임 사회 자체가 공평하게 기회를 준다는 발상 자체가 사회주의 적인 발상임. 당장 세금 부터 줄이고 복지 예산 삭감 해서 스스로 책임 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함. 세금률 한국의 두 배, 세 배, 심지어는 네 배 인데 그거 어디다 쓰는지 유럽의 거의 모든 공공 시스템이 한국의 1/3도 못 따라감. 한국이 유럽 안 따라오면 좋겠음
라고 속사포처럼 쏟아 놓는다.
감정적인 나는 얘랑 얘기 하다보면 말문이 막히고 복장이 터져서 죽을 것 같고 남자친구는 폴란드인 기질 (말 많고 자기 의견 매우 확실하고 본인이 매우 논리적이라고 생각함,거의 모든 폴란드 사람들이 그렇슴 )을 유감 없이 발휘하여 나를 궁지로 몰아 넣는다. 물론 나는 논리라고는 진작에 내팽개치고 너는 사람이 왜 그러니....불쌍한 애들은 어떻하니... 하고 감정에 호소하다가 안되면 급기야는 소리 지르고 난 너 같은 남자가 정말 싫다!!! 면서 -_-;;; 화낸다. (아...나는 토론에 매우 약함.... ) 그러면 남자친구는 미안하다, 내가 너무 내 의견만 몰아 부쳤다, 네 마음 이해 한다, 내가 좀 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도록 노력 하겠다 면서 다독이지만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라는 걸 경험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유인 즉 같이 있으면 비슷한 상황이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일어난다. (휴가 간다고 해서 결코 쉬지 않음.... ) 그나마 요즘엔 남자친구가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우리의 토론(이라고 쓰고 말싸움이라고 읽는다) 은 일주일에 한번으로 줄었....다. -_-;;; (황금 같은 주말을 꼬박 스카이프와 함께...) 안 그러려고 해도 이 얘기 저 얘기 하다보면 자꾸 상황이 그렇게 돌아 간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지금은 서로 역사 얘기 안한다는 것, 전에 한번 역사 얘기 했다가 정말 내가 대판 소리지르고 난리 난리 쳐서..... 그 다음부터 절대 서로 역사 얘기는 안하기로 합의 했다. (이 얘기는 다음에.....)
[물론 나도 참 못할 말 많이 했지만 (예를 들어.... 아래에....) 폴란드 사람들도 한번 시작하면 비판 작렬이기 땜시.....
상황 : 폴란드 어 공부하는데 변화가 너무 극심해서 좌절.... 배울 수록 어려운 말임, 정말 절망적이라고 생각했음, 단순한 문장 말하는 데도 진짜 단어가 너무 화려하게 변해주고 발음도 짜증남
홧김에 본인이 밷은 말 : 근데 너네 나라 말은 나라가 없어지고 그렇게 오래 지났는데 어떻게 안 없어지고 계속 남았어? 이렇게 어려운데? 차라리 러시아 말 편하게 하지... 그럼 나도 지금 전에 하던 러시아어 계속 공부 했을 텐데.... 흑 폴란드어 너무 어려워!!!!-물론 러시아 말도 매우 어렵지만 러시아어 퍼뜨리려고 국가적으로 문법에 손질 많이 했음, 폴란드어 보다는 많이 간소화 됨
남자 친구 반응 : 화 안냄 이해 한다는 듯이 토닥 토닥, 시간이 필요하지 너 잘하고 있다.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도와 줄께
본인이 느낀 점 - 만약 남자친구가 너네 말은 왜 안 없어졌어? 일본말 그냥 배워서 하지... 하고 말했으면 진짜 죽이려고 달려 들었을 것임, 시간이 지난 지금은 남자친구의 너그러움에 감사하고 있음]
그런데 내 말문을 막는 한 가지가 또 있다. 얘는 참 진심이고 진지하고 정치에 관심 많은데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재외국민 신고도 제대로 안되어 있어서 투표도 못하고 한국에 있을때도 그렇게 열심히 투표하고 관심있게 찾아 보는 타입이 아니었다. 솔직히 휴일이구나~ 아싸~ 하는 정도? 엄마가 투표 하러 가는 길에 슬금슬금 쫓아가서 같이 투표하고 다슬기 해장국 먹고 온적은 있지만... 아예 정치 쪽은 관심이 없다는게 맞다. 그런데 얘는 일요일을 투표일로 지정하는 뷁 스러운 폴란드 정치인들의 농간(?)에도 굴하지 않고 저 멀리 암스테르담에서부터 자비로 비행기표 사서 투표 하러 오신다. 물론 유세 기간에 유투브며 지네 뉴스며 각종 자료 찾아 보면서 분석해 주시는 센스까지.... 맨날 폴란드 욕하면서 마음 속 깊이 자국에 대한 애정이 있는 거다. (외 할머니 독일에서 넘어 오셨고 외 할아버지 엄마 집안이 우크라이나에서 넘어온 혈통임에도 불구하고 얘는 폴란드인인거다. 외할머니 일본분이시라 어렸을때 학교에서 일본놈 드립 당한 이후 한국인이라는 의식이 희박해진 나와는 달리...)
그래서 역사 얘기 할때만 어정쩡하게 발동되는 묘한 애국심을 가진 나와는 달리 남자친구가 더 당당하게 정치적 경제적 사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거다.
얘 때문에 지난 일년간 많은 수모와 모욕....은 좀 과장이고 괜히 말 꺼냈다가 물 먹은 경험이 많다.
요즘에 얘기 하면 서로 싸울 주제 참 많은데 다행히 떨어져 있어서 그 빈도가 많이 줄었다.
우리는 어떤 대화를 하던지 연인 치고는 참 치열하게 대립한다. 남자친구도 내가 폭발하기 전까진 결코 주장을 굽히지 않는 터라.... 어쩔때 보면 내가 내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치고 올라와 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바르샤바로 왕림하시는(오늘 도착) 남자친구를 위해 이번엔 내가 좀 준비를 했다. 채찍과 당근이라고 할까....
저번에 장하준 교수가 쓴 책(23things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을 같이 읽어 보자고 영어 원문으로 주문해서 선심 쓰듯 먼저 읽어~ 하고 줬더니 지가 동의 할수 없는 부분에 막 반대 의견 써놨다. 하도 개발새발 써 놨길래 해독하기 힘들었지만 야근에 시달리고 폴란드어 수업에 시달리는 중간 중간에도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그 녀석이 써 놓은 의견을 살펴보고 내가 하고 싶은 말 차근 차근 요점 정리 해놨다. 내가 제일 싫어 하는게 개론서에 낙서 하는 건데 포스트잇에다 붙여 놓은 것도 아니고.... (그래도 다행히 샤프로....) 책에다 써 넣다니 결코 용서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지만 먼저 약점 노출해 주셨으니 그 정도는 눈 감고 넘어가 주겠다... 하고 생각했다. 채찍을 단단히 준비 했으니 당근도 달달한 걸로 골라 놨다. 사다리 걷어차기 영문판이다. 물론 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에이 잘 모르겠다!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정말 부담 없이 재미 있게 읽었기 때문에 영문판으로 한번 더 보려고 샀다. 그렇지 않아도 23책 읽고는 장하준 교수한테 이메일 보내 보고 싶다... 답장이 올까? 그 교수가 읽어 보기나 할까? 하면서 좀 두근두근해 하던데 이번엔 뭐라고 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남자친구에게 반격하기 위해 미시 경제 원론서 뒤지다가 든 생각....
다른 연인들은 어떤 대화를 할까....
근데 얘는 공학 하는 애가 왜 저렇게 역사랑 경제에 관심이 많지? ( 급 짜증이 울컥.... )
글 남겨주신거 보고 달려왔어요..
답글삭제여기다 글을 쓰려니 비밀덧글같은게 없어서..
마음이 먹먹해서.. 전 상상도 못하겠어요. 부디 마음 잘 추스리시길 바래요.. 아휴.. 괜히 제가 더 생각나게 만든거 아닌가 싶어 걱정돼요.. ㅜㅜ
에고 감사합니다.
답글삭제(저도 블로그 쓰고는 있긴 한데 뭐가 뭔지 정말 하나도 모르겠어요 '_')
글도 예쁘고 쏘이님 얘기도 완전 예쁜 얘기라 그냥 미소가 저절로~
허허허허허 제 벨라루스 남자친구랑 행동이 똑같아요!!!!
답글삭제저 제 남친 얘기를 누가 적어놓은거 같아서 깜놀했어요+_+
..링크 신고 하고 갈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