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2011

생활의 기쁨.

나는 요리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내가 요리를 처음 했던 건 초등학교 5학년이던 11살때, 학원을 하시는 엄마는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늘 집에 계시지 않았다. 그래도 그 해는 엄마가 동생을 출산 하셔서 1학기 때는 집에서 쉬셨었는데  외 할머니께서 집에 머물며 우리와 엄마를 돌봐 주셨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엄마는 다시 학원으로 출근 하셨고 외 할머니께서 갓난 동생을 돌봐 주셨다.
가끔 외 할머니께서 볼일을 보러 외출 하실 때가 있었는데, 물론 밥을 준비해 놓고 나가셨지만, 보통 아침에 먹었던 음식과 같은 반찬과 국으로 차려진 상이었다. 그 때의 나는 지금과 같이 같은 음식을 두끼 이상 먹는걸 무척 싫어해서 외할머니께서 많이 힘들어 하셨던 기억이 나는데, 그 때 차려진 상이 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종종 할머니께서 만드는 걸 옆에서 보았던 기억이 나는 수제비를 만들기로 결심을 하고 찬장에서 밀가루를 꺼내고, 멸치 가루, 새우 가루 외 할머니께서 곱게 갈아 놓은 가루를 물에 풀어 감자 껍질 깎아 수제비를 만들어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나는 음식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 둘째 이모가 정말 음식 솜씨가 환상이었는데 우리 이모는 뭘 만들더라도 정말 뚝딱뚝딱 간단한 재료로도 환상적인 맛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었다. 반면에 우리 엄마는 정말 음식을 귀찮아하고 싫어 하셔서 지금도 된장찌게는 내가 훨씬 잘 끓인다. 이모네 집에 놀러가면 난 항상 이모 옆에 졸졸 따라 다니며 이모가 뭘 만드시는지 옆에서 지켜 보곤 했다. 지금도 이모가 만들어 주셨던 육개장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나이가 먹어 아무리 이것 저것 넣고 만들어 봐도 그 맛이 나질 않는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걸 좋아한다.
음식을 워낙에 천천히 먹는데다 쉬었다 다시 먹는 버릇이 있어서 내 남자친구가 요새 밥 먹는 속도를 줄이려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생각이 난다. 오늘은 뭘 해 먹어야지~ 하고...
그러면 냉장고 안의 재료를 확인 하고 장을 보러 나간다.
장을 보고 와선 천천히 요리를 시작한다.
전문적으로 배워 본적도 없고, 평소에 요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지만, 주말이면 집에서 요리 하며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
그렇게 예민한 식감을 가진 것도 아니고 작은 부분 까지 알아 차릴 정도로 민감한 입맛도 아니니 평균 이상의 맛만 나오면 된다.

해가 지나면 지날 수록 눈치가 늘어 고등학교 무렵 부터는 어떤 음식을 해도 곧잘 맛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물론 아마추어 수준에서....
음식점을 내거나 하면 망할 수준이지만, 내 남동생들은 늘 누나의 음식이 최고라며 그릇을 싹싹 비우곤 했다. 남자애가 셋이나 되서 우리집은 김치찌게를 끓여도 곰솥에다 끓이고, 삼겹살을 구워도 10인분은 구워야 배 부르다는 소리를 하며 상을 떠난다.
보통은 붉기를 재어 놓으면 몇 일은 간다던데.... 김치통에 가득 고기를 재어 둬도 삼일을 못갔다. 나와는 다르게 반찬 투정 한번 없이 내 동생들은 내가 해주는 음식을 참 잘 먹었다. 그래서 엄마는 우리들 식사 걱정은 거의 하질 않으셨다. 나에게 재료비를 늘 놔두셨는데 덕분에 동생들은 용돈을 받으려 내 말에 거의 거역한 적이 없다.
그렇게 내 밑에서 늘 심부름에 시달리던 둘째 동생, 중학교, 사춘기 임에도 불구하고 한밤 중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는 내 부탁에 편의점에 달려갔던 동생이 이번에 대학을 들어갔다.

집을 떠나서 가장 걱정이 드는 건 우리 막내, 우리 엄마가 보신 두번째 늦둥이....
내가 없는데 밥은 잘 챙겨 먹을까 하고..... 맛있는 걸 먹을 때면 늘 생각이 난다.
위의 두 명은 완전히 한식 파라 밥을 늘 선호 했는데 우리 막내는 내가 어디서 요상한 걸 만들어 줘도 참 잘 먹었다. 식성이 별나다고 생각 했는데, 얼마전에 전화로 얘기 할 때 누나가 만들어준 파스타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특별한 파스타도 아니 었는데.... 막내는 늘 전화 할때면 파스타 얘기를 한다.


어디선가 읽은 말이지만 마음 깊이 공감했던 말이....
누군가와 식사를 함께 하는 일은 영혼을 나누는 일이라고 했다.
식사는 늘 좋은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그래서 불편한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느니 나는 혼자 먹는 것이 편하다. 맛도 더 잘 느낄수 있고, 마음의 여유도 있고....

오늘 만든 음식은 뿌팟퐁커리, 갑자기 떠올라 냉장고에 있던 꽃게를 녹여 가볍게 튀겨서는 마늘과 양파 잘게 썰어 볶아 커리 가루 올려 코코넛 밀크 넣고 계란 풀어 마지막에 쪽파를 넣었더니 생각 했던 것보다 부드러운 느낌의 커리가 나왔다.
밥위에 올려 먹었더니 참 맛있었다.
장볼 때 함께 사왔던 생강 맥주를 곁들어 마셨더니 혼자 있어도 마음이 훈훈해 진다.

좋은 사람이 생각나는 밤이다.

댓글 3개:

  1. 누군가와 식사를 함께 하는 일은 영혼을 나누는 일이다....
    정말 공감가는 이야기 예요. 불편한 사람과 밥을 먹으면 저는 꼭 체하더라구요. 그래서 체하고 나면(물론 과식하거나 너무 빨리 먹어서 체할때도 있지만) 깨달아요. 그 사람(들)하고의 식사가 불편했구나....

    앗..근데 생각맥주맛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장보러 갈때 맥주 코너 잘 봐야 겠어요. 혹시 맥주이름 알려주실수 있으세요? 여기서 구할수 있을것 같기도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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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냥 Gingers beer 라고 씌여 있어요 초록색 상표에...
    폴란드 맥주도 특색 있고 맛있어요. 종류도 많고요!
    기회가 되신다면 Tyskie랑 Zywiec, Lech 드셔보세요

    폴란드어에서는 y가 으-우 중간 정도 발음이 나거든요,
    그런데 Tyskie는 우 느낌이 더 나서 투스키(에) 하고 말씀하시면 되고 Zywiec는 으 발음이 더 강한 즈뷔에츠 하시고 마지막껀 레흐 라고 하시면 됩니동

    C는 체 발음 나고 ch는 흐 발음이 나거든요....
    전에 누군가가 레취 하고 말씀 하시던게 생각이 나서, 알고 계시면 도움이 될까하여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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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추천해주신 맥주 꼭 마셔볼께요.
    근데 레흐 이름이 친근한거 보니 마주친적이 있을듯 해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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