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2011

러셀 아저씨 말씀이....

남자친구인 R군은 매우 냉철하다.
알고 있는 것도 많다. 이번 원전 사태에 대해서도 재료 공학 하시는 아부지하고 참 심도 있게 대화 하시더라.... 그런데 그게 다다.
똑같이 휴가를 계획 하고, 조깅을 나가고, 쇼핑을 간다. (현재 그는 휴가 중~ 유급 휴가가 너무 많아 일주일 휴가를 내고 친구도 만나고 딩굴 거리면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_-)
반면에 나는..... 신문이나 뒤적이면서 정확하지 않을지 모르는 정보들을 무작위로 흡수하며 이런 저런 망상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밥도 못 남기고 (평소와는 다르게...) 꾸역 꾸역 먹고
당장 한국 계좌에 있는 돈부터 구호 성금으로 보냈다.


R군이 태어난 곳은 체르노빌로부터 서쪽으로 약 900여 키로 떨어진 곳으로 체르노빌 사건 발생 시점과 출생 시점이 비슷 하다. 하지만 평생을 이 지역에서 사신 부모님을 비롯하여 본인도 무척 건강하고 친구, 형 주변 인물들이 대체적으로 매우 건강하다. 우려했던 바처럼 돌연변이로 고생하는 사람도 없고 신문에서 떠드는 것처럼 백혈병이 만연하지도 않으며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며 잘 살고 있다. 언론에서 떠드는 것과는 무척 많이 달랐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쪽 지방 사람들은 정말로 담담하게 뉴스를 보고 굉장히 침착하다. 물론 TV에 전문가들이 나와 지난 체르노빌 사건과 비교해가며 토론도 하는 걸 보면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처럼 감정적으로 반응하지는 않는다는 거다.

 R군만 봐도 이 나쁜X.... 아무리 니 일이 아니라고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자기가 알고 있는 핵연료 시설에 대한 공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채 차갑게 대꾸한다. 내가 남자를 잘 못 골랐어!!!! 라는 생각 까지들 정도 였다.


얘기 하다 서로 너무나 다른 시점으로 다른 소리만 하는 모습이 너무 답답해 러셀 아저씨가 한 말씀을 그대로 말해줬다.

 이 글을 읽었을 때 나는 아직 많이 어리고 순수 했고, 뭔가 뭔지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는 상태였을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많이 뛰었었던 기억이 난다. R군에게도 꼭 자서전을 읽어보라고 얘기해 줘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우리 둘의 문제가 아닌 일로 티격 태격 하며 말하게 된 점이 많이 아쉬웠지만, 말을 띄웠다.

Three passions, simple but overwhelmingly strong, have governed my life: the longing for love, the search for knowledge and unbearable pity for the suffering of mankind.


난 돌연변이가 걱정 되는 것도.... 재앙이 닥쳐서 지구가 멸망하면 어떻하지 하는 걱정을 해서 그러는게 아니야. 단지 소중한 사람을 한 순간에 잃고 절망하는 사람들,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탄식에 대한 연민으로 힘든 것 뿐이야. 그 아픔이 전해져서 내 마음도 아프다고 말했는데.....

얘를 현실적인 애라고 긍정적인 관점에서 봐야 하는 건지, 감정도 없는 차가운 애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R군의 답은 이거다. 결자해지, 인과응보.
(러셀 아저씨 자서전 보다는 사자성어 책을 구해다 읽혀 볼까 하는 생각이 급 들었지만 각설하고..... )역시나 감정 없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아직 갈길이 멀구나....
서로에 대해 모르는게 참 많고.... 또 이해 하기가 참 힘들다.


너 참 다정한 남자인데.... 오히려 평소에 보면 내가 너무 차갑고 냉정해서 네가 마음 고생 많이 하는데도 가끔 이렇게 내가 모르는 사람처럼 낯설게 느껴져서 이상해.... 언제나 같은 곳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데도 말이야.

댓글 2개:

  1. 남자와 여자의 특성이 미묘하게 갈리는 분기점에 서 계신듯...^^

    꼭 공대생이 아니더라도 남성은 대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보면 분석과 대책마련에 급급한데 비해 여성은 가슴아파하고 고통받는 대상을 먼저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한 27년 살아보니 이제 그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걸 조금 느낍니다. ㅎ

    좋은 글 늘 잘읽고 있습니다. 혹 privacy를 원하시면 following하는 것을 중단하도록 하겠으니 불편하시면 말씀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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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안녕하세요.

    어느 정도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인지하고 글을 쓰고 있으니 읽고 의견 남겨 주시는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부족함이 많은 넉두리일뿐인 글을 좋게 봐주시니 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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