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폴란드를 오게 된 계기는...... 뭘까.... 하고 생각을 해봤는데, 사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아니.... 있나?
그때의 나는.... 작은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하루하루가 무료했고.... 또.....러시아어에 빠져 있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일을 끝내고 나면 학원에 공부하러 가는 길이 즐거웠다.
러시아어라.....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면..... 그때까지는 예전 남자친구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었다는게 또 다른 이유였던것 같다.
작은 계기까지 하나하나 거슬러 올라가 시작이 언제일까 하고 생각해보니....
2008년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친구들과 주말 저녁 너무나 더운 날씨에 바다에 나가 오후 내내 헤엄치고 놀다가 저녁을 먹고, 술도 한잔하고 걷다가 쿵쾅거리는 음악이 나오는 바에서 보드카에 레드불을 섞어 샷으로 마시던 남자애들 무리가 술을 권하면서 말을 트던 그 날 밤이 떠올랐다.
내가 러시아어를 시작하게 된 이유, 내 삶이 무료하게 느껴지던 이유, 어릴적부터 미쳐있었던 지중해 지역에 대한 집착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이후 나름 무덤덤했던 나에게 유럽이라는 곳에서 좀 더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 라고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모두 내 전 남자친구와 연관이 있다.
사실... 인정하기 싫어서 지금까지 아니라고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스스로에게 얘기 했지만, 전부 내려놓은 지금 되돌아보면 (웃음이 나오긴 하지만) 그 때는 그렇게도 그를 좋아했었다.
공부해야해! 라는 생각 때문에 인터넷도 보지 않았던 그때의 나는 무척이나 외로웠었고 한편으로는 즐거웠으며 어릴적부터 동경해오던 지중해를 매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하루하루가 행복하다고 늘 생각했었다.
일주일, 이주일 단위로 놀러 와서 자유 분방하게 행동하던 사람들에게 조금은 질려있었고, 막 시험을 끝내고 결과를 기다리며 조금은 느슨해져 나도 모르게 그들과 섞여 어리둥절해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별 생각없이 술을 마셨고 레드불에 보드카를 섞어 마시면 한번에 간다는 말을 듣고는 조금 겁이 나긴 했지만, 맛도 괜찮았고, 옆에 있던 친구가 워낙 술에 강한지라 그녀를 믿고 (?) 한 잔 두잔 입에 털어 놓고 나니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는 집으로 가려고 일어난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 않았는데 그런 나를 덥썩 붙잡았던 금발 머리 남자....가 바로 예전 남자친구가 되시겠다.
처음엔 별 생각 없었던....하지만 향수 냄새가 너무나 좋았던 그 남자는....모두가 떠나 제자리로 돌아가버리는 그 섬에 나 때문에 다시 돌아왔고 그 뒤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이번에 돌아 가야 하는 건 난데 왜 돌아왔냐고 묻는 내게.... 그래도 보지 않고는 참을 수 없다고 말하던 그 사람의 얼굴이 지금도 가끔은 떠오른다.
하지만....
그랬던 우리는...... 결국 헤어졌다.
롱디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그렇게 한동안 우리는 서로의 안부도 묻지 못하고..... 잘 살고 있다는 것만 확인 하며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는 동안 나는 한국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그리고 회사에 취직하고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모든 것이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고 내가 나라는 느낌 조차 들지 않던 어느 날....
6월의 어느날....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도중 전화가 왔다.
예전에 올려 놓았던 내 이력서를 검색해 본 모양이었다.
유럽의 P국에서 일할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나는 처음엔 무슨 이상한 광고 인 줄 알고 건성으로 대답하다 끊을 생각이었지만, 본인의 이름을 밝히고 면접을 보자는 얘기에 밑지면 본전이라는 생각에 학원 수업이 없는 금요일 8시를 불렀고 흔쾌히 OK하는 전화를 끊고 금방 다시 그렇게 무료한 일상속으로 되돌아갔다.
P국이 포르투갈은 아니길 빌면서....
그렇게 별 기대 없이 편한 마음으로 면접을 보고 P국이 폴란드라는 얘기를 듣고는 사실은 조금 실망했다. 러시아어 사용국이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 때문에....
하지만 찾아 보니 처음에는!!! 러시아어와 비슷한 점이 많았고 (이제는 그게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알게 되었지만) 또 위에 칼린 그라드가 있고 우크라이나랑 국경도 마주 하고 있고 또..... 어린시절 포기 하기는 했지만 쇼팽 콩쿨을 직접 볼 수 있을 꺼라는 기대에 (2010년!!!).....
그런데 쓰다보니 많은 이유들이 있었던 것도 같다....
아무튼 그렇게 별 생각 없이 겨울이 시작하는 10월의 마지막 날에 도착해서 그 어느때보다도 추웠던 지난 겨울을 무사히 넘겼다... (행자는 최악의 겨울이었다고 하던데 역시나 정보가 없었던고로 거뜬히 생각보다 갠츈한데? 하고 넘겨줌, 아 물론 그럴만한 사유도 있었음)
그 와중에도 재미 있던 건 시작은 남자 때문이었지만 그래서 내가 러시아 어를 공부하는 건 아니야! 라고 스스로 늘 납득시키려 했지만 사실은...남아 있던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던 나에게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요건 또 다른 얘기 이기 때문에 나중에...
아무튼 그렇게 해서 도착한 폴란드는 영어권 국가가 아니니 당연히 영어가 통하길 기대하는 건 이기적인 일이었고 그나마 할 줄 아는 러시아어도 거의 통하지 않았다.
게다가 역사책을 좀 들춰보니 폴란드 사람 앞에서 러시아어를 쓴다는 건 상당히 실례가 되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손짓발짓 가끔은 의성어까지 써가며 거의 아기 수준의 삶을 살았다.... (한번은 까르푸에서 우유를 사려고 하다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물어 봤는데 영어는 아예 안통하고.... milk가 안통하자 너무 당황한 나머지 러시아 말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급한김에 음메에 하며 가슴 쪽에 손을 가져 갔는데 그 아가씨가 가르쳐준 곳은 바로.... 소고기 코너.... OTL ) 그래서 시작한 폴란드어..... 발음에서부터 정말 좌절스러운 프쉬취 발음....
정말 넋놓고 있다가 반년이 후딱 지나갔다.
정 급하면 러시아 말로 대충 하고.... (다들 구린 폴란드 발음이라고 생각함)그렇게 지내다....
어느 날 오후 폴란드어 정리 된 싸이트 없나~ 하고 둘러보다가 발견한 어느 학생의 블로그에서 그녀의 열정에 감동하여 다시 펜을 잡게 되었다.
잘 정리되어 있는 노트와도 같은 블로그에 감탄하며 잃었던 흥미를 다시 한번 일 깨워주었더니 동기 부여도 되고.... 누군가도 폴란드어 전공이 아닌데 공부하고 있어! 라는 동지 의식도 느껴지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전 남자친구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해준 현재의 남자친구에게서 조금은 덜 의지하는 길을 걷고자하는 마음에서 분기탱천! 아니.... 의욕 충만으로 블로그도 시작하고....
암스테르담으로 가긴 했지만 이번 롱디는 예전과는 달리 잘 풀어 나갈 수 있을꺼라는 희망도 들고..... (이쯤에서 문장을 함 끊어줘야 하는디.....)
뭐 여튼..... 폴란드는 앞으로도 나랑 많이 얽힐것 같으니 폴란드어는 꼭 배워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회사 생활이 고단할 지라도..... 게을리해서는 안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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