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생의 사람들은 늘 하는 고민이 있다.
내 나이를 몇살이라고 말해야 하지?
요새는 법이 바뀌어서 1월 1일 생부터 같이 학교에 간다고 하던데...
나 때는 음력을 인정해 줬기 때문에 나처럼 양력은 1월 음력은 12월인 사람들은 그 나이를 말하기가 참 애매모호한 면이 있다.
태어난 해를 기준으로 나이를 말하면 다들 나중에 빠른 생이라는 걸 알고 나한테 속은 것 같은 얼굴을 하는게 싫었다. 그래서 그냥 한 살 붙여 말하곤 했는데 그러면 또 나중에 한마디씩 말이 나온다. 뭐야~ 어리잖아~ 하고...
그나마 같은 나이의 애들을 한반에 몰아 넣는 체제에서는 별로 문제 될게 없었지만 대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디에 끼든 상관은 없지만 양쪽 다 나를 묘하게 이방인 취급을 하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던 아니지만 뭔가.... 여기도, 저기도 아닌 느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설이 지나면 한살을 더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외국은...... (나의 관점에서는 유럽은...) 생일이 지나야 셈을 하는 것이 아닌가!! 덕분에 바다를 몇 번 건너 갔다 ~왔다~하면서 내 나이는 고무줄처럼 늘어 났다. 줄어 들었다를 반복했다.
최대 3살의 차이까지 경험했다. (오 놀라워라~~ ) 뭐 그래도 나이로 편짜는 문화는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이 때는 좀 편하긴 했는데 스스로가 좀 어리둥절해했던 경우.....
뭔가 호칭을 부르는 문화를 벗어나면서부터 이 고민은 사라졌다.
나를 누나라고 부르는 사람도 없고 직책으로 부르는 사람도 없고, 누구나 내 이름을 부르기 때문에 그냥 친구구나~ 하고 인식하게 되어 버렸다. 그리고 나이를 인식하지 않아서인가?
한국에서 후배들을 볼때 한없이 어리게만 보였던 기분이 싹 사라져서.... 더욱 아리송한 기분이 들었다. 뭐 오래가진 않았다. 금방 잊어버리고 완벽 적응..... (나는 적응력이 강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하하) 친구처럼 허물없이 너무 잘 지내다 나중에 알고보니 4살 연하였던 적도 있고 ㅎㄷㄷ, 여기다 대놓고 어린게 까분다고 할수도 없고.... 하하
내가 18살이었을때.... 나는 나이가 들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었다.
빨리 나이가 들어 모든게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 나를 보는 어른들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의 내 나이가 오면 내 삶이 참 편해질것만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늘 누군가와 미래에 대해 얘기할때면.... 그렇게 말하곤 했다.
틀린건 아니었다만.... (다행히 그때보다는 심신이 편안하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가 까마득한 먼 옛날만 같다.
그 때의 나는 깨질것 같은 가는 감성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위태위태하게 버텨 나가고 있었다...... 농담 반 섞어서.... 내가 신사역 사거리에 뿌린 눈물만 해도 열바가지는 넘을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무렵이면 나는 늘 거리를 거닐면서 감상에 젖곤 했는데 그 때의 서글펐던 그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느 곳에도 속해 있지 않다는 느낌이 나를 혼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만들었고,
가뜩이나 예민하고 불안한 사춘기의 끝자락을 잡고 있던 십대의 나에게 (나는 사춘기가 참 늦게 왔던것 같다)기댈 곳 하나 없이 늘 불안하고 위태위태한 삶이라는 약간의 낭만을 심어 준것 같기도 하다...... 하하하 (지금와서 생각하면 참 내가 그때는 귀여웠었지.... )
돌아보면 늘 스스로에게 강해져야 한다고 말했었고, 늘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주던 그때의 내가 있다.
지금은.... 글쎄 그때 말한 것 처럼 강해졌을까? 아니면 나는 이미 내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고 있나?
잘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가볍고 편안하다.
강해져야 할 이유도 없고, 내 자신을 더 사랑해야 할 이유도 없다.
사실은 그런 것들을 생각할 시간이 없다.... 너무 바빠서가 아니라... 재미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들에 대해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꽉 채워진 느낌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나는 그토록 시달렸던 영역에 대한 집착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벗어 버렸다.
.... 오후 무렵 갑자기 여름이 지나가버린 듯한 찬바람이 부니까 기분이 싱숭생숭 하긴 했지만.... (여자는 보통 봄탄다던데... 왜 난 가을 타지?!) 고 싱숭생숭한 기분의 정체는 5시가 넘어가면서 명확해졌다...
그것은 바로바로.... 새파란 미나리와 싱싱한 조개,각종 해산물이 잔뜩 들어간.... 해물탕에 대한 그리움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매콤한 해물탕을 먹고 난 다음에는 캔커피 하나 집어 들고 소공동 골목길을 걸어서 시청 앞 광장에 가는 산책이 필요한데.... 흑
아무튼 자기 자신의 자아정체감 확립을 위해 스스로의 역할, 지위, 의무와 책임 등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건 참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든게 뒤죽 박죽이다가 어느 순간 싹 사라진 나의 경우 엄밀히 말하면 과정이 있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쓸데 없다고 여겨지던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로부터....중고등학교 때 선생님들은 늘 나보고 쓸데없는 잡념이 많은 아이라고 했다) 생각들이 나를 솔직한 사람으로 살게끔 해주었고 덕분에 나는 나 스스로가 존중하고 이해 할수 있는 삶을 살아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해서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건 어디 회사에 갈꺼야! 어느 학교 무슨과에 갈꺼야! 뭐 이런 것도.... 좋...지만... 내가 말하는 건.... 아마도 나는 이런 이런 성향의 사람이 될꺼야 라던가.... 나는 이런 부류의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던가.... 요런 이미지의 사람이 되고 싶다던가.... 그룹에 끼게 되면 요렇고 저런 사람으로 인식되면 좋겠다... 라는 self image making 을 통해서 나라는 사람은 요렇고 조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면 좋겠다라는 목표가 필요 한 듯 보인다.
나는 고3때 담임선생님과의 면담 때 저는 대학에 집착이 없으니 그냥 자유롭게 학교 생활하게 해주세요 하고 말했던 경험이 있다. 덕분에 담임은 아예 나를 가능성이 없는 아이로 간주하고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교도 잘 다녔고-방황은 좀 했지만- 회사도 잘 다니고 있다. 그 때 모두가 목숨처럼 지키던 가치들에 대해 의문을 던지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스스로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살아온 결과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다 헤헤헤)
그렇게 믿는 이유는.... 스스로의 행동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같은 말은 내 입에서 나올 일이 없다는 믿음이 있다는 건 계산적인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자아정체감 확립이라는 단어는 고등학교때부터 내가 매우 중요하게 여기던 어휘로서 이번기회에 그동안의 생각들을 정리한다는 의미로 적어본 것이니 여기서 마무리하는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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