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다닐 때쯤... (우리 때는 국민 학교라고 했었는데.... )
집 바로 앞에 종합 운동장도 있고 맞은 편 공원 근저리에 테니스 장도 있어서 아직 시집 안간 우리 둘째 이모는 자주 우리 집에 들러 나랑 운동을 다니곤 했다.
나는 유치원 대신 유아 체능단을 다녔고, 아직은 기운이 팔팔 했던지라.... 달리기를 제외한 다양한 체육 종목, 피구, 볼링, 수영, 스케이트, 배드민턴 등의 운동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고 운동을 좋아하시던 이모와 쿵짝이 잘 맞았다.
아..... 지금은 비루하기 그지 없는 실력 + 체력을 자랑하지만.... 그땐 그랬다.
그렇게 이모를 따라 근 2년간은 테니스를 배웠다. 겨울에는 한강 수영장에 스케이트장이 설치 되곤 했는데 겨울에는 그렇게 스케이트를 타고 여름에는 테니스도 다니고 수영장도 다니며 운동을 마친 후엔 이모랑 매점에 앉아 도시락 라면을 호호 불어 먹곤 했다. 그땐 그렇게 좋은줄 모르고 마냥 이모가 좋아 따라 다녔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소중한 보물 같은 추억이다.
예전에 누군가에게도 말했지만..... 어린시절에 받았던 사랑은 커서 세상을 살아갈때 큰 힘이 된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사랑 받고 자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도... 이모와 삼촌들께 받았던 사랑이 아직까지 가슴 깊이 남아 있다...
서른이 가까워지며 이제는 내가 예전의 이모 나이가 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다시금 이모가 너무나 그립고 생각이 자주 난다.
살아 계셨더라면 만나볼수도 있을 것을..... 돌아 가시기 전에 나는 딸보다 우리 상아가 아직도 더 예쁘다고 말씀 하셨던 그 말만 머리에 남아 자꾸만 맴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돌아 가실걸 알았다면 더 자주 찾아 뵐껄.... 그렇지 않아도 본인 삶의 무게 때문에 내게 먼저 손 내밀기 힘드셨을텐데..... 하는 후회와 슬픔이 가슴에 남아 자꾸만 이모와 갔던 곳, 이모와 함께 했던 것들을 찾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이모와 함께 다녔던 테니스를 다시 꼭 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지금 내 나이가 딱 이모가 나를 데리고 다니시던 그 나이다......) 근 반년이 넘게 생각만 하고 막상 시작하기가 힘들었는데, 회사에 부장님께서 테니스를 가신다고 하길래 따라 나섰다.
예전에 볼링을 4년만에 쳤을때 왜 이렇게 점수가 안나던지.... 역시 손 놓으면 감이 떨어지는 구나... 하고 생각 한 적이 있었는데 스쿼시나 수영, 자전거 같은 경우는 몇 년 쉬어도 금새 따라가길래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기 때문일까.... 어머나 이게 왠 일.... 테니스 코트에 서서 날아 오는 공을 치려는데 폼도 기억이 안나고 공도 완전.... -_- 아아 괴로워 ㅠ.ㅠ
쳤다는 말이나 말 것을.... 고등학교 때 마지막으로 쳐 본 이후 라켓을 잡은 일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스쿼시는 나름 자주 쳤는데... 헉 이게 정말 왠일.....
너무 당황해서 어버버 말도 나오지 않고 아.... 레슨 받아야지... 하는 생각만 강하게 들었다.
도대체 옛날에 어떻게 쳤는지 기억도 안나고....
아니 내가 친게 맞나? 싶고.... 도대체 내 2년간의 시간과 노력은 무었이란 말인가....
아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났건가? 아니면 내가 늙은건가.... 하는 생각이 감정이 복잡했다.
(같이 가신 부장님도 황당해 하시는 것 같았음 )
그렇게 테니스를 치고 같이 갔던 부장님, 상무님, 책임님과 부장님 집에 가서 라면을 끓여 먹는데 옛 생각이 많이 났다.
아.... 지금 이모가 살아 계셨더라면..... 이모랑 같이 주말에 테니스 치고 맥주 한잔 했을텐데....
여행을 좋아했던 우리 이모.... 살아 계셨더라면 폴란드에도 오시라고 해서 같이 여행도 하고
나랑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눌수 있었을텐데.....
상아가 조금만 크면 나랑 맥주 한잔 시원하게 하자며 웃으시던 우리 이모.... 나도 항상 내가 크면 우리 이모랑 남자 얘기도 하고 사는 얘기도 하면서 그렇게 지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소망은 이제 절대 이루어질수 없는 꿈이 되고야 말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그나저나 테니스는 진짜 레슨 좀 받아야지...
이건 진짜 초보도 왕 초보다.
어디가서 쳤다는 말하기가 창피한 정도.... -_-
12/25/2011
12/11/2011
근황
아.... 이럴꺼면 블로그를 왜 시작했을까...
별로 보는 사람도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방치하는 건.... -_-
참 많은 일이 있었는데 막상 그때는 왜 이렇게 시간이 안가나.... 만 생각하고 있었으니....
딱히 글을 쓸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닌데, 그냥......그렇게 시간이 기다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안부를 묻고 싶었던 사람도 많았고 얘기를 나누고 싶었던 사람들도 있었는데 연락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닌 그런 상태로 시간이 한참 흘러가 버렸다.
간략히 그동안의 일을 말하자면..... 다시 직장에 복귀했고, 새로 아파트를 얻어 이사를 했고, 그리고....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올해 바르샤바의 겨울은 너무나 온난하다.
처음 맞았던 겨울을 아직도 기억하는데 12월, 길에 눈이 쌓여 걷기가 힘들어 고무 장화를 샀더랬다. 그때....해가 뜨지 않는 몇개월을 보내고 처음으로 해를 본게 4월이던가?
그랬는데.... 어제 오늘 날씨가 너무 화창해서 마음이 송구스럽기 그지 없다....
'이....이건 우울해 하지 말라는 하늘의 뜻이야!! '라고 생각하려고 노력도 하고....
주말을 6월에 있을 시험 준비로 인한 수업으로 보내야 하는 나에 대한 선물이라고도 애써 생각했다.
공부할게 너무나 많고..... 또 나는.... 기본적인 개념을 익히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매우 매우 이해력이 딸리는 학생이다. 일주일에 최소한 10시간은 혼자 공부해야 붙는 시험이라는데....
아아아아아..... 통과를 해도 걱정인 것이.... 1차 시험은 지금 하는 일과 그렇게 동떨어진게 아니지만, 2차부터는 향후의 커리어에 대해 심각히 고민해야 할 정도로 특화된 시험이라....
지금 모시고 있는 부장님을 끝까지 ( 영원히가 아니라.... 그...분의 임기를 채우겠다는 의미임....) 모시겠다는 의지....를 실현 한 다음의 행보가 고민이다.
하지만 요건 사실 지금할 필요는 없는 고민이시라..... 당장은 이 친숙하지 않은 단어, 개념, 공식을 파악해야할 때다....
아... 그런데 오늘 강사님 너무 멋지시더라.... 당황하면 말 좀 더듬으시던데.....
능숙하게 문제를 풀어 나가는 모습.... 나도 모르게 넋을 잃고 쳐다 봤다는..... -_-
전에도 엑셀을 능숙히 다루는 부장님의 모습을 볼때나 SAP를 능숙하게 돌리는 차장님의 모습을 보고..... 아! 좋은 분이야.... 라고 생각이 들었던 걸 보면.... 역시 나는 능력자에게 약한 것 같다. 그러고보니 얼마전에도 회사 언니가 라우터를 설치해 주시는 걸 보고 (설명서대로 했는데도 설치를 못하는 기계치) 언니!!!!!! 이러면서 언니에게 이글아이를 보냈다는......
그렇지만 내가 잘 모르는 분야를 능숙하게 다루시는 분을 볼때는.... 별 감흥이 없다.
이건 뭥미???? 하는 떨떠름한 느낌....
오늘 그 분께서 계산기가 당신의 절친이 되길 바랍니다. 저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라고 말씀 하셨을때는 그 분의 계산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잠시 들었다 -_- (하지만 오른손 약지에는 반지가 번쩍번쩍)
선생님이 멋지거나 멋있는 학우 (단어에서 오묘한 어감이 느껴지지만) 가 있으면 수업이 즐겁고 엄청난 동기가 부여되는데....
아 이 시험 정말 열심히 공부 할 것 같다....... (통과여부에 대한 감과는 거리가 멀다능....)
별로 보는 사람도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방치하는 건.... -_-
참 많은 일이 있었는데 막상 그때는 왜 이렇게 시간이 안가나.... 만 생각하고 있었으니....
딱히 글을 쓸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닌데, 그냥......그렇게 시간이 기다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안부를 묻고 싶었던 사람도 많았고 얘기를 나누고 싶었던 사람들도 있었는데 연락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닌 그런 상태로 시간이 한참 흘러가 버렸다.
간략히 그동안의 일을 말하자면..... 다시 직장에 복귀했고, 새로 아파트를 얻어 이사를 했고, 그리고....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올해 바르샤바의 겨울은 너무나 온난하다.
처음 맞았던 겨울을 아직도 기억하는데 12월, 길에 눈이 쌓여 걷기가 힘들어 고무 장화를 샀더랬다. 그때....해가 뜨지 않는 몇개월을 보내고 처음으로 해를 본게 4월이던가?
그랬는데.... 어제 오늘 날씨가 너무 화창해서 마음이 송구스럽기 그지 없다....
'이....이건 우울해 하지 말라는 하늘의 뜻이야!! '라고 생각하려고 노력도 하고....
주말을 6월에 있을 시험 준비로 인한 수업으로 보내야 하는 나에 대한 선물이라고도 애써 생각했다.
공부할게 너무나 많고..... 또 나는.... 기본적인 개념을 익히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매우 매우 이해력이 딸리는 학생이다. 일주일에 최소한 10시간은 혼자 공부해야 붙는 시험이라는데....
아아아아아..... 통과를 해도 걱정인 것이.... 1차 시험은 지금 하는 일과 그렇게 동떨어진게 아니지만, 2차부터는 향후의 커리어에 대해 심각히 고민해야 할 정도로 특화된 시험이라....
지금 모시고 있는 부장님을 끝까지 ( 영원히가 아니라.... 그...분의 임기를 채우겠다는 의미임....) 모시겠다는 의지....를 실현 한 다음의 행보가 고민이다.
하지만 요건 사실 지금할 필요는 없는 고민이시라..... 당장은 이 친숙하지 않은 단어, 개념, 공식을 파악해야할 때다....
아... 그런데 오늘 강사님 너무 멋지시더라.... 당황하면 말 좀 더듬으시던데.....
능숙하게 문제를 풀어 나가는 모습.... 나도 모르게 넋을 잃고 쳐다 봤다는..... -_-
전에도 엑셀을 능숙히 다루는 부장님의 모습을 볼때나 SAP를 능숙하게 돌리는 차장님의 모습을 보고..... 아! 좋은 분이야.... 라고 생각이 들었던 걸 보면.... 역시 나는 능력자에게 약한 것 같다. 그러고보니 얼마전에도 회사 언니가 라우터를 설치해 주시는 걸 보고 (설명서대로 했는데도 설치를 못하는 기계치) 언니!!!!!! 이러면서 언니에게 이글아이를 보냈다는......
그렇지만 내가 잘 모르는 분야를 능숙하게 다루시는 분을 볼때는.... 별 감흥이 없다.
이건 뭥미???? 하는 떨떠름한 느낌....
오늘 그 분께서 계산기가 당신의 절친이 되길 바랍니다. 저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라고 말씀 하셨을때는 그 분의 계산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잠시 들었다 -_- (하지만 오른손 약지에는 반지가 번쩍번쩍)
선생님이 멋지거나 멋있는 학우 (단어에서 오묘한 어감이 느껴지지만) 가 있으면 수업이 즐겁고 엄청난 동기가 부여되는데....
아 이 시험 정말 열심히 공부 할 것 같다....... (통과여부에 대한 감과는 거리가 멀다능....)
10/05/2011
여유
갑자기 일을 놓고 집에 들어와 앉으니 숨겨져 있던 게으름이 끝도 없이 방출되고 쓸데없는 생각만 많아지는 것 같다.
당장 독일어 공부를 해야 하고 GMAT시험도 봐야 하고.... 이미 점수가 만기된 토익도 봐야 하니 연습 문제라도 한번 풀어 봐야하고.... 폴란드어 그 동안 공부한 것들이 적지 않은 양이니 정리하고 입으로 자연스럽게 나올수 있도록 연습도 해줘야하고....기타 등등 계획 했던 것들도 많고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닌데.... 날 감시하던 (?) 팀장의 눈초리가 없고...... 감시와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지니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고 하면....-_-
한없이 풀어져 빈둥빈둥 놀다가 커피 마시고 테레비보다 목욕하고 소파에 누워 하늘 쳐다보다가 독일어 책 피고 좀 보다 30분도 안되서 인터넷 하고...
아... 이게 뭔 호사인가.....
그런데 재미있는 건......
초등학교 시절 ( 나 다닐때는 국민학교 였음) 난 참 시계 부분에 약했다.
왜 그랬을까.... 항상 산수 시험에서 시계 그림만 나오면 그냥 짜증이 나고..... 잘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는데 어쩌면 나이를 먹고도 똑같이 폴란드어로 시계 부분을 이렇게 못하는지.... 사람은 변하지 않나봄....
마지막으로 보고온 쪽지 시험에서 시계 부분에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 하하하하....
남자친구가 보고 엄청 웃던데..... (나쁜넘.... )
이제 좀 손 놓고 있었던 폴란드어 포스팅 좀 다시 할수 있으려나....
아... 폴란드 음식도 좀 정리해서 포스팅 하고 싶은디....
당장 독일어 공부를 해야 하고 GMAT시험도 봐야 하고.... 이미 점수가 만기된 토익도 봐야 하니 연습 문제라도 한번 풀어 봐야하고.... 폴란드어 그 동안 공부한 것들이 적지 않은 양이니 정리하고 입으로 자연스럽게 나올수 있도록 연습도 해줘야하고....기타 등등 계획 했던 것들도 많고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닌데.... 날 감시하던 (?) 팀장의 눈초리가 없고...... 감시와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지니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고 하면....-_-
한없이 풀어져 빈둥빈둥 놀다가 커피 마시고 테레비보다 목욕하고 소파에 누워 하늘 쳐다보다가 독일어 책 피고 좀 보다 30분도 안되서 인터넷 하고...
아... 이게 뭔 호사인가.....
그런데 재미있는 건......
초등학교 시절 ( 나 다닐때는 국민학교 였음) 난 참 시계 부분에 약했다.
왜 그랬을까.... 항상 산수 시험에서 시계 그림만 나오면 그냥 짜증이 나고..... 잘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는데 어쩌면 나이를 먹고도 똑같이 폴란드어로 시계 부분을 이렇게 못하는지.... 사람은 변하지 않나봄....
마지막으로 보고온 쪽지 시험에서 시계 부분에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 하하하하....
남자친구가 보고 엄청 웃던데..... (나쁜넘.... )
이제 좀 손 놓고 있었던 폴란드어 포스팅 좀 다시 할수 있으려나....
아... 폴란드 음식도 좀 정리해서 포스팅 하고 싶은디....
10/04/2011
갈등
나쁜놈.... -_- 이라는 말만 떠오르는 지금.....
내가 욕먹으면서....(욕이라면 좀 과장이긴 하지만..... 아무튼 김치 담글때 집 난장판으로 해 놓는다고 쫌 구박 먹었던 기억) 김치 담궈 냉장고에 넣어두면 야근하고 돌아와서 가끔 냉장고를 열어 생 김치만 밥도 없이 집어 먹던 니가....
이제와서 하는 말이 뭣이라? 사실은 동양 음식 별로라고...
내가 요새 잘못이 많아 뭐라 말은 못했다만.... 내 지금 느낀 배신감은 결코 잊지 않겠다.
일하면서 피곤에 쩔어서 김치 좀 먹어 보겠다고 어깨가 빠져라 담근 김치 훔쳐 먹어도 ( 자는 와중에도 사실 짜증이 좀 났었음, 저 쉑이가!! 하고 발끈 하였으나 그냥 자는 척....) 내 별 말 안했는데 나름 결혼해 보겠다고 마음 먹은 놈이 이런말을 하니 마음에 앙금이 깊이 남았다.
그런데 원래 결혼생활 하는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마음에 앙금을 안고 사는 걸까?
풀길이 없구만.... 쩝
아 왜 이렇게 다를까...
한국 사람은 말을 아끼는게 미덕인데... 여긴 무조건 대화로 풀고 무조건 말로 설명한다....
그런데 오히려 더 답답하네....
그런데 나는 왜 이 결혼을 하려고 했지? 하는 고민을 한달이 넘도록 하고 있을까....
내가 욕먹으면서....(욕이라면 좀 과장이긴 하지만..... 아무튼 김치 담글때 집 난장판으로 해 놓는다고 쫌 구박 먹었던 기억) 김치 담궈 냉장고에 넣어두면 야근하고 돌아와서 가끔 냉장고를 열어 생 김치만 밥도 없이 집어 먹던 니가....
이제와서 하는 말이 뭣이라? 사실은 동양 음식 별로라고...
내가 요새 잘못이 많아 뭐라 말은 못했다만.... 내 지금 느낀 배신감은 결코 잊지 않겠다.
일하면서 피곤에 쩔어서 김치 좀 먹어 보겠다고 어깨가 빠져라 담근 김치 훔쳐 먹어도 ( 자는 와중에도 사실 짜증이 좀 났었음, 저 쉑이가!! 하고 발끈 하였으나 그냥 자는 척....) 내 별 말 안했는데 나름 결혼해 보겠다고 마음 먹은 놈이 이런말을 하니 마음에 앙금이 깊이 남았다.
그런데 원래 결혼생활 하는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마음에 앙금을 안고 사는 걸까?
풀길이 없구만.... 쩝
아 왜 이렇게 다를까...
한국 사람은 말을 아끼는게 미덕인데... 여긴 무조건 대화로 풀고 무조건 말로 설명한다....
그런데 오히려 더 답답하네....
그런데 나는 왜 이 결혼을 하려고 했지? 하는 고민을 한달이 넘도록 하고 있을까....
8/19/2011
깜짝 선물
퇴사 전의 깜짝 선물인가....
원래 우리 팀은 출장 갈일이 별로 없는데 갑작스럽게 한국 출장이 잡혔다. 그것도 당장....
퇴사 한달전에 출장 가는 오묘한 이 기분..
할 일도 많은데 심정이 복잡하다.
(사실은 돈이 없다...)
외국에 나와 있다가 한국에 들어가는 다른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조금 부담이 된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의 애정 어린 시선....... 좋지만 가끔은 불편할 때가 있다.
나를 너무나 사랑해 주시는 분들이지만...비슷한 나이 또래의 딸을 둔 자매들의 약간의 경쟁 의식이랄까....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어떻게 사나 궁금해 하시는 이모들의 질문에 잘 대답 해야 하고....
또 돈을 버는 입장이니 선물도 사가야 하고....
뭔가 미묘한게 많다.
나보다 먼저 외국에 나가 10년을 살았던 사촌 언니가 한국을 드나들며 이모 선물만 사고 다른 이모들 선물은 단 한번도 사온적이 없다.
친 언니처럼 사랑하는 언니지만.... 그 모습을 보며 개인적으로 느낀바가 많다.
대단한 물건이 아니더라도 애정을 표시하는데 선물 만큼 좋은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속물적이다 또는 체면치레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한국에 들어갈 때면 꼭 선물을 사 들고 가고 싶다.
표현하지 않으면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가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엄마에게 맛있는 밥도 사주고 싶고.... 또 친구들도 만나고 싶으니.... 갑작스러운 한국 방문은 늘 예상치 못한 지출이 따른다.
그리고 호텔에서 일주일이나 머물러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갑갑....
장시간의 비행도 그렇고.... 시차가 적응 되기도 전에 빡세게 일할걸 생각해도 갑갑....
곱창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래도 많은 위로가 된다...
당장 내일 아침 비행기 탈 생각을 하니 가슴이....윽
원래 우리 팀은 출장 갈일이 별로 없는데 갑작스럽게 한국 출장이 잡혔다. 그것도 당장....
퇴사 한달전에 출장 가는 오묘한 이 기분..
할 일도 많은데 심정이 복잡하다.
(사실은 돈이 없다...)
외국에 나와 있다가 한국에 들어가는 다른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조금 부담이 된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의 애정 어린 시선....... 좋지만 가끔은 불편할 때가 있다.
나를 너무나 사랑해 주시는 분들이지만...비슷한 나이 또래의 딸을 둔 자매들의 약간의 경쟁 의식이랄까....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어떻게 사나 궁금해 하시는 이모들의 질문에 잘 대답 해야 하고....
또 돈을 버는 입장이니 선물도 사가야 하고....
뭔가 미묘한게 많다.
나보다 먼저 외국에 나가 10년을 살았던 사촌 언니가 한국을 드나들며 이모 선물만 사고 다른 이모들 선물은 단 한번도 사온적이 없다.
친 언니처럼 사랑하는 언니지만.... 그 모습을 보며 개인적으로 느낀바가 많다.
대단한 물건이 아니더라도 애정을 표시하는데 선물 만큼 좋은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속물적이다 또는 체면치레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한국에 들어갈 때면 꼭 선물을 사 들고 가고 싶다.
표현하지 않으면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가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엄마에게 맛있는 밥도 사주고 싶고.... 또 친구들도 만나고 싶으니.... 갑작스러운 한국 방문은 늘 예상치 못한 지출이 따른다.
그리고 호텔에서 일주일이나 머물러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갑갑....
장시간의 비행도 그렇고.... 시차가 적응 되기도 전에 빡세게 일할걸 생각해도 갑갑....
곱창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래도 많은 위로가 된다...
당장 내일 아침 비행기 탈 생각을 하니 가슴이....윽
8/11/2011
변화
곧 바르샤바와도 이별이다.
벌써 이 곳에 온지도 2년이 다 되어 간다.
2년을 딱 한달 앞둔 시점, 그 동안 정들었던 거리, 회사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간다.
생각을 안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막상 결정하고 나니 너무 빨리 모든 것이 바뀌는 것 같다.
얼마전까지만해도 내년까지는 있겠지.... 하고 생각 했는데 이렇게 빨리 결정하게 될줄은 몰랐다. 마음이 복잡하다.
그래서...........한국에 가기로 했다.
곧 다가올 큰 변화를 대비하여 기존의 계획을 대폭 수정, 엄마도 보고 마음의 정리를 좀 단단히 하는 의미에서 가족 친지들 외 절친 30명 내외로 초대하는 작은 자리도 마련해 볼까 생각중이다... 준비할 것들이 많아 성가시겠지만 이럴때 아니면 정말 언제 다 같이 볼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큰 결심을 했다.
10월 20일쯤 들어가서 한달쯤 있다가 나올 생각인데.....
그 후에는 빡센 일정이 기다리고 있으니 맛있는 거 많이 먹고 푹 쉬다 와야지...
벌써 이 곳에 온지도 2년이 다 되어 간다.
2년을 딱 한달 앞둔 시점, 그 동안 정들었던 거리, 회사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간다.
생각을 안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막상 결정하고 나니 너무 빨리 모든 것이 바뀌는 것 같다.
얼마전까지만해도 내년까지는 있겠지.... 하고 생각 했는데 이렇게 빨리 결정하게 될줄은 몰랐다. 마음이 복잡하다.
그래서...........한국에 가기로 했다.
곧 다가올 큰 변화를 대비하여 기존의 계획을 대폭 수정, 엄마도 보고 마음의 정리를 좀 단단히 하는 의미에서 가족 친지들 외 절친 30명 내외로 초대하는 작은 자리도 마련해 볼까 생각중이다... 준비할 것들이 많아 성가시겠지만 이럴때 아니면 정말 언제 다 같이 볼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큰 결심을 했다.
10월 20일쯤 들어가서 한달쯤 있다가 나올 생각인데.....
그 후에는 빡센 일정이 기다리고 있으니 맛있는 거 많이 먹고 푹 쉬다 와야지...
8/03/2011
깜놀
Kleszsz 클레쉬취 정도의 발음인데... 이게 뭐냐면...
어제 아침에 샤워를 하면서 비누칠을 하는데.... 손에 뭔가 불편한 느낌이 전해졌다.
어디서 또 긁혔나... 하면서 손톱으로 살짝 건드렸는데 아무 느낌도 안왔다... 보통 상처면 약간 쓰려야 되는디....
-_- 이건 뭥미.. 어디서 뭐가 붙은거얌... 하는 생각으로 손톱으로 잡아 떼는데 피부가 약간 늘어 났다가 풀려다면서 퐁... 하는 느낌과 함께 다리 같은게 있는 작은게 딸려 나오는게 아님?
어? 이거 뭐야.... 숲에서 딸려왔나? 흡혈곤충인가? 하고 잠시 생각했다 그냥 버리려다 놀려줄 마음에 남자친구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사실 이때까지는 호기심 때문에 별 다른 느낌이 없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지난 주말 부모님 집에서 같이 놀고 나는 일요일 오후에 바르샤바로 돌아 왔고, 남자친구는 그 다음날 오후 스위스로 가는 중 이륙 지연으로 인해 바르샤바에서 바꿔 타야 하는 비행기를 놓쳐 그 다음날 아침에 스위스로 가게 된 남자친구가 집에 있었기에 (왜 같이 있었는지 설명 하는게 이리 긴가.... ) 불러서 보여줬더니 Kleszcz Ah!!!! 하고 소리를 지르고 호들갑을 떨면서 부모님께 전화를 하고 병원에 전화를 해서 당장 예약을 잡는게 아님?
Kleszcz라는 요 작은 곤충은 알고보니 진드기였다....
그런데 진드기가 뭐 어때서? 그랬더니 남자친구가 대경실색을 하면서 이게 잘못 물리면 뇌에 이상이 올수도 있고 걷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면서 난리난리를 치는 것이었다.
다리에 난 빨간 구멍을 보면서....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온갖 무서운 얘기들이 속속 나왔다. 특히 독일쪽 진드기가 악명이 높은 듯 했다.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갖고 있는 진드기가 1/20 의 확률이라는데... 가뜩이나 우리가 주말에 갔던 숲은 구 독일권이라....
그래도 반 구워진 빵 오븐에 돌려서 라즈베리 쨈 발라 계란국 (남자친구가 매우 좋아함.... 무슨 수프 처럼 밥도 없이 떠 먹음) 잘 먹고 공항에서 니 꼭 병원 가라!! 오후 6시 반이다!! 라고 소리 지르고 검사대로 사라진 남자친구를 보내고 회사로 출근....
괜찮을 줄 알았는데 불안감 때문일까.....
하루종일 열과 구토감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다 오후 6시쯤 병원으로 갔다.
이렇게 하루가 길었던 적이 있었던가.....
회사에 앉아 있는 동안 자꾸 지나간 시간들이 떠 올랐다. 내가 이렇게 추억할 거리가 많았던가.... 하는 생각에 좀 놀라기도 하고.... 하루라는 시간이 짧은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 내 인생을 돌아 보기엔 좀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병원에 도착했더니 마음씨 좋게 생긴 할아버지가 요리조리 둘러보더니 별 문제 없으니 집에 가라고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 하길래 불안해 하면서 온갖 말을 쏟아 냈다. 어지럽고 열 나는 것 같고 눈이 뜨겁고 또 배가 딱딱하고 -_-
그랬더니 피검사 하라고 종이 한장 내주고 십일간 복용하라며 항생제 처방 해주고 배 아픈건 29일간 약을 줄테니 하루에 한알씩 먹고 별 경과가 없으면 내시경을 하잔다....
그렇게 세장의 종이를 들고 나오는데.....
아 유럽은 역시 말로 표현 하지 않으면 안되는구나....한국처럼 알아서 봐주길 기대하는 건 안되는 거였어....
알고 있어도 말로 표현 못하면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처럼.... 줴길....
하고 다시 생각했다.
실로 생태계는 오묘한 것이다.
그동안 민감한 촉각을 갖고 있다고 자부 하였건만... 어찌 안쪽 허벅다리까지 올라 가거나 내려 가는 동안, 그리고 뾰족한 주둥이에 피부를 찔리기까지 왜 나는 아무 느낌이 없었지?
지금 보니 빨갛게 구멍이 선명히 보일 정도인데도 말이다.
어떻게 고 작은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달고 다닐 수 있는지.... 참으로 놀랍다.
뭔가 다사다난한 하루였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오랜만에 사천 짜파게티를 특식으로 끓여서 먹고 항생제를 꿀떡 삼키고는 잠이 들었다.
여긴 피검사 하면 두통씩이나 뽑아 가던데... 아아아 괴로워
아침도 굶고 점심 시간에 가서 피 뽑고 맛있는 거 먹고 와야지....
어제 아침에 샤워를 하면서 비누칠을 하는데.... 손에 뭔가 불편한 느낌이 전해졌다.
어디서 또 긁혔나... 하면서 손톱으로 살짝 건드렸는데 아무 느낌도 안왔다... 보통 상처면 약간 쓰려야 되는디....
-_- 이건 뭥미.. 어디서 뭐가 붙은거얌... 하는 생각으로 손톱으로 잡아 떼는데 피부가 약간 늘어 났다가 풀려다면서 퐁... 하는 느낌과 함께 다리 같은게 있는 작은게 딸려 나오는게 아님?
어? 이거 뭐야.... 숲에서 딸려왔나? 흡혈곤충인가? 하고 잠시 생각했다 그냥 버리려다 놀려줄 마음에 남자친구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사실 이때까지는 호기심 때문에 별 다른 느낌이 없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지난 주말 부모님 집에서 같이 놀고 나는 일요일 오후에 바르샤바로 돌아 왔고, 남자친구는 그 다음날 오후 스위스로 가는 중 이륙 지연으로 인해 바르샤바에서 바꿔 타야 하는 비행기를 놓쳐 그 다음날 아침에 스위스로 가게 된 남자친구가 집에 있었기에 (왜 같이 있었는지 설명 하는게 이리 긴가.... ) 불러서 보여줬더니 Kleszcz Ah!!!! 하고 소리를 지르고 호들갑을 떨면서 부모님께 전화를 하고 병원에 전화를 해서 당장 예약을 잡는게 아님?
Kleszcz라는 요 작은 곤충은 알고보니 진드기였다....
그런데 진드기가 뭐 어때서? 그랬더니 남자친구가 대경실색을 하면서 이게 잘못 물리면 뇌에 이상이 올수도 있고 걷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면서 난리난리를 치는 것이었다.
다리에 난 빨간 구멍을 보면서....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온갖 무서운 얘기들이 속속 나왔다. 특히 독일쪽 진드기가 악명이 높은 듯 했다.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갖고 있는 진드기가 1/20 의 확률이라는데... 가뜩이나 우리가 주말에 갔던 숲은 구 독일권이라....
그래도 반 구워진 빵 오븐에 돌려서 라즈베리 쨈 발라 계란국 (남자친구가 매우 좋아함.... 무슨 수프 처럼 밥도 없이 떠 먹음) 잘 먹고 공항에서 니 꼭 병원 가라!! 오후 6시 반이다!! 라고 소리 지르고 검사대로 사라진 남자친구를 보내고 회사로 출근....
괜찮을 줄 알았는데 불안감 때문일까.....
하루종일 열과 구토감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다 오후 6시쯤 병원으로 갔다.
이렇게 하루가 길었던 적이 있었던가.....
회사에 앉아 있는 동안 자꾸 지나간 시간들이 떠 올랐다. 내가 이렇게 추억할 거리가 많았던가.... 하는 생각에 좀 놀라기도 하고.... 하루라는 시간이 짧은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 내 인생을 돌아 보기엔 좀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병원에 도착했더니 마음씨 좋게 생긴 할아버지가 요리조리 둘러보더니 별 문제 없으니 집에 가라고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 하길래 불안해 하면서 온갖 말을 쏟아 냈다. 어지럽고 열 나는 것 같고 눈이 뜨겁고 또 배가 딱딱하고 -_-
그랬더니 피검사 하라고 종이 한장 내주고 십일간 복용하라며 항생제 처방 해주고 배 아픈건 29일간 약을 줄테니 하루에 한알씩 먹고 별 경과가 없으면 내시경을 하잔다....
그렇게 세장의 종이를 들고 나오는데.....
아 유럽은 역시 말로 표현 하지 않으면 안되는구나....한국처럼 알아서 봐주길 기대하는 건 안되는 거였어....
알고 있어도 말로 표현 못하면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처럼.... 줴길....
하고 다시 생각했다.
실로 생태계는 오묘한 것이다.
그동안 민감한 촉각을 갖고 있다고 자부 하였건만... 어찌 안쪽 허벅다리까지 올라 가거나 내려 가는 동안, 그리고 뾰족한 주둥이에 피부를 찔리기까지 왜 나는 아무 느낌이 없었지?
지금 보니 빨갛게 구멍이 선명히 보일 정도인데도 말이다.
어떻게 고 작은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달고 다닐 수 있는지.... 참으로 놀랍다.
뭔가 다사다난한 하루였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오랜만에 사천 짜파게티를 특식으로 끓여서 먹고 항생제를 꿀떡 삼키고는 잠이 들었다.
여긴 피검사 하면 두통씩이나 뽑아 가던데... 아아아 괴로워
아침도 굶고 점심 시간에 가서 피 뽑고 맛있는 거 먹고 와야지....
7/26/2011
바르샤바 일기
사람 마음이 어쩌면 이렇게 변덕스러운지 모르겠다.
바르샤바 날씨가 싫다고 남자친구에게 너네 나라 날씨는 왜 요러냐며 온갖 짜증을 부리던 내가 터키에서는 바르샤바의 날씨가 그리워 남자친구에게 이젠 날씨 얘기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 했다가.... 또 막상 돌아와 흐린 날이 계속 되는 2주를 보내고 나니 다시 쨍쨍한 터키의 하늘이 그리워진다.
아니지....사실 터키 날씨가 좋긴 하지만.... 에페소스에서 통구이 될뻔한 기억 때문인지, 그래도 바르샤바 날씨가 조금 더 낫다....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싶은게 지난 일주일간 내내 긴팔에 가벼운 외투까지 입고 다녔으니 7월 날씨라고 하기엔 너무 춥다!. 비라도 오면 코트 꺼내 입어야 할 것 같은 찬 바람이 몰아친다.
앗 방금 취리히 날씨를 찾아 봤더니 그래도 바르샤바가 나은듯.... 취리히는 17~8도를 맴도는 데 그래도 바르샤바는 24~5도.... 유럽 땅을 밟은지 몇해가 흘렀건만 날씨는 아직도 적응이 잘 안된다.
가끔은 찌는 듯한 한국의 여름이 그립다. 심지어는 장마철의 텁텁한 습기까지 그리울 정도다.
뜨끈한 삼계탕도 먹고 싶고 풋고추 우렁이 가득 들어간 된장 찍어 쌈채소 가득 넣어 커다랗게 한입 베어 물고 싶기도 하고.... 여름 느낌이 물씬 나는 한국의 더위가 그립다.
유럽의 여름은..... 가끔은 여름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슬슬 한국이 그리워지는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좋은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일까? 처음 나왔을 때는 별 생각 없더니 언제나 무던히 옆에 있어주던 친구들이 그립고.... 나를 한결같이 이해해주던 친구들이 그립고, 나이는 달라도 마음이 잘 맞던 언니들이 그립다.
가까이 있을때는 늘 그런줄 알다가 막상 떨어져 나와 내맘 같지 않는 사람들을 겪다 보니 새삼스럽게 내 친구들이 더 소중하고 고마운 것 같다.
어렸을때는 싸워도 정이 들더니 나이 먹으니 작은 마찰만 생겨도 얼굴 보기가 왜 이렇게 힘든지..... 예전에는 미안해 내가 더 잘할께 한마디면 풀릴일이 왜 이렇게 더 꼬이기만 하는지 모르겠다. 알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가 나보다 삶에 대해 훨씬 잘 알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꼭 묻고 싶다.
왜 내 의견을 얘기 하면 그 의견은 전달 되지도 않고 (듣는 것 같지도 않고....) 타당한지 여부는 검토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상대방은 자기를 무시하는게 아닌가를 먼저 생각하고 나는 어느새 남을 가르치려 드는 버릇 없는 사람이 되는건지 모르겠다.... 이게 비단 한국인의 문제인가 아니면 내가 아직 사회 생활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인가의 여부도 잘 모르겠다.
고심해서 단어 하나까지도 고르고 골라 얘기를 해도 뭔가 벽에다 대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때가 있다.... 이게 내 접근 방식의 문제라면 오히려 바꿔 볼만한 여지도 있고 의문이 훨씬 쉽게 풀릴 것 같다. 오히려 가끔은 영어로 얘기 하는게 명쾌할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
서비스 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지는 때다.... (특히 한국)
나도 가끔은 내 머리를 열고 들여다보고 싶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조금만 더 성의를 가지고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내 생각이 미치는 범위는 얼마든지 도달 할수 있고 또 짐작이 가능하다 즉 별 다른게 없다는 얘기다.
글쎄... 뭐가 다를까.... 다른거 없지. 개개인의 차이라는 보편적인 개념만 이해한다면....
내 삶에는 뭐가 있냐... 왜 즐겁게 사느냐 쪽으로 접근을 한다면 좀 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볼 가능성은 있는 것 같다.
우선 늘 남의 떡이 커보인다는 진리와도 같은 말을 띄워 드리고 싶고....
생각하는 걸 즐기느냐 즐기지 않느냐의 여부가 있긴 하지만 개인적인 취향과 관계되는 지라 생략, 삶에 치여서 또 지쳐서 생각을 안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건 본인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자세와 애정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너무 지쳐서 체념하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자기 인생이라는 자동차를 몰고 가면서 운전대 안잡고 갈수 있나? 뭐 인생 망치는 것도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다고 볼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1인이기 때문에......
본인이 생각을 멈추지 않고 바른 선택(도덕적인 의미의 바른이 아니고 본인을 위한, 본인에게 맞는...최선의 선택이라고 할수 있음) 을 추구하고 이를 지지할 의지가 확고 하다면 본인의 행복을 남과 비교해 스스로를 깎아 먹지 않는 이상 행복해지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의지가 확고하지 않아 중도 포기한 사람들에게는 늘 남의 이야기로 남겠지만.....
아 뭔가 오늘은 굉장히 변명하고 싶고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강력히 변호 하고 싶은 날이다.
바르샤바 날씨가 싫다고 남자친구에게 너네 나라 날씨는 왜 요러냐며 온갖 짜증을 부리던 내가 터키에서는 바르샤바의 날씨가 그리워 남자친구에게 이젠 날씨 얘기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 했다가.... 또 막상 돌아와 흐린 날이 계속 되는 2주를 보내고 나니 다시 쨍쨍한 터키의 하늘이 그리워진다.
아니지....사실 터키 날씨가 좋긴 하지만.... 에페소스에서 통구이 될뻔한 기억 때문인지, 그래도 바르샤바 날씨가 조금 더 낫다....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싶은게 지난 일주일간 내내 긴팔에 가벼운 외투까지 입고 다녔으니 7월 날씨라고 하기엔 너무 춥다!. 비라도 오면 코트 꺼내 입어야 할 것 같은 찬 바람이 몰아친다.
앗 방금 취리히 날씨를 찾아 봤더니 그래도 바르샤바가 나은듯.... 취리히는 17~8도를 맴도는 데 그래도 바르샤바는 24~5도.... 유럽 땅을 밟은지 몇해가 흘렀건만 날씨는 아직도 적응이 잘 안된다.
가끔은 찌는 듯한 한국의 여름이 그립다. 심지어는 장마철의 텁텁한 습기까지 그리울 정도다.
뜨끈한 삼계탕도 먹고 싶고 풋고추 우렁이 가득 들어간 된장 찍어 쌈채소 가득 넣어 커다랗게 한입 베어 물고 싶기도 하고.... 여름 느낌이 물씬 나는 한국의 더위가 그립다.
유럽의 여름은..... 가끔은 여름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슬슬 한국이 그리워지는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좋은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일까? 처음 나왔을 때는 별 생각 없더니 언제나 무던히 옆에 있어주던 친구들이 그립고.... 나를 한결같이 이해해주던 친구들이 그립고, 나이는 달라도 마음이 잘 맞던 언니들이 그립다.
가까이 있을때는 늘 그런줄 알다가 막상 떨어져 나와 내맘 같지 않는 사람들을 겪다 보니 새삼스럽게 내 친구들이 더 소중하고 고마운 것 같다.
어렸을때는 싸워도 정이 들더니 나이 먹으니 작은 마찰만 생겨도 얼굴 보기가 왜 이렇게 힘든지..... 예전에는 미안해 내가 더 잘할께 한마디면 풀릴일이 왜 이렇게 더 꼬이기만 하는지 모르겠다. 알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가 나보다 삶에 대해 훨씬 잘 알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꼭 묻고 싶다.
왜 내 의견을 얘기 하면 그 의견은 전달 되지도 않고 (듣는 것 같지도 않고....) 타당한지 여부는 검토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상대방은 자기를 무시하는게 아닌가를 먼저 생각하고 나는 어느새 남을 가르치려 드는 버릇 없는 사람이 되는건지 모르겠다.... 이게 비단 한국인의 문제인가 아니면 내가 아직 사회 생활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인가의 여부도 잘 모르겠다.
고심해서 단어 하나까지도 고르고 골라 얘기를 해도 뭔가 벽에다 대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때가 있다.... 이게 내 접근 방식의 문제라면 오히려 바꿔 볼만한 여지도 있고 의문이 훨씬 쉽게 풀릴 것 같다. 오히려 가끔은 영어로 얘기 하는게 명쾌할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
서비스 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지는 때다.... (특히 한국)
나도 가끔은 내 머리를 열고 들여다보고 싶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조금만 더 성의를 가지고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내 생각이 미치는 범위는 얼마든지 도달 할수 있고 또 짐작이 가능하다 즉 별 다른게 없다는 얘기다.
글쎄... 뭐가 다를까.... 다른거 없지. 개개인의 차이라는 보편적인 개념만 이해한다면....
내 삶에는 뭐가 있냐... 왜 즐겁게 사느냐 쪽으로 접근을 한다면 좀 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볼 가능성은 있는 것 같다.
우선 늘 남의 떡이 커보인다는 진리와도 같은 말을 띄워 드리고 싶고....
생각하는 걸 즐기느냐 즐기지 않느냐의 여부가 있긴 하지만 개인적인 취향과 관계되는 지라 생략, 삶에 치여서 또 지쳐서 생각을 안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건 본인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자세와 애정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너무 지쳐서 체념하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자기 인생이라는 자동차를 몰고 가면서 운전대 안잡고 갈수 있나? 뭐 인생 망치는 것도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다고 볼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1인이기 때문에......
본인이 생각을 멈추지 않고 바른 선택(도덕적인 의미의 바른이 아니고 본인을 위한, 본인에게 맞는...최선의 선택이라고 할수 있음) 을 추구하고 이를 지지할 의지가 확고 하다면 본인의 행복을 남과 비교해 스스로를 깎아 먹지 않는 이상 행복해지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의지가 확고하지 않아 중도 포기한 사람들에게는 늘 남의 이야기로 남겠지만.....
아 뭔가 오늘은 굉장히 변명하고 싶고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강력히 변호 하고 싶은 날이다.
7/25/2011
동생이란....
둘째 동생이 유럽여행을 왔다.
전공 특성상 졸업 후 바로 군인이 되는 동생의 상황을 고려해 봤을때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방학으로 제한 되기 때문에 1학년인데도 불구하고 엄마와 의논하여 엄마는 비행기 표, 나는 여행비를 대기로 했다.
너무 급작스럽게 결정된 터라, 너무나 걱정이 된 나머지 네덜란드에 있는 남자친구까지 동원해 여행 루트를 짰는데 남자친구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다 큰 성인 남자인데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거야 니 생각이고....) 하지만 내겐 아직도 어리기만한 동생이라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동생과 최대한 함께 있을 수 있도록 개인 휴가도 내서 함께 다닐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했지만 그녀석 혼자 여행하는 기간이 2주가 넘는지라 내내 마음 한쪽으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막내 동생과 마찬가지로 동생이라고 하기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일까.... 가끔은 야속하기도 하고 속도 많이 태웠지만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단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
늘 어른같은 표정을 짓고는 눈물이 많았던 녀석이 어느새 커서 대학교를 들어가고 혼자 여행을 하겠다고 배낭을 매고 눈앞에 나타나자 금내 눈이 뜨거워졌지만 언제나 그랬듯 나는 감정을 감추고 차갑게 대답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혹시라도 무슨일이 생기면 어떻하나.... 이상한 사람을 만나서 흉한 일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배낭 여행으로 18일에 쓰기엔 좀 많다 싶은 금액의 돈을 유로로 바꿔서 줬는데..... 이 녀석이 얼마나 아끼고 아꼈는지 반이 넘게 남겨왔다.
누나 집에와 안심했는지 바로 잠이 든 동생 옆에서 그 녀석이 여행 기간 동안 쓴 일기를 들춰 보는데 돈을 아끼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수 있었다.
철자는 다 틀려서 얘가 대학생이 맞나 싶은 생각에 웃음이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기특 하기도 하고.... 이젠 정말 다 컸나 보네.. 하는 생각에 섭섭하기도 하고....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이 밀려왔다.
공항에서 손을 흔들고 사라지는 그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걸 보며 엄마는 기분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어 하루 종일 기분이 묘했는데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삐뚤빼뚤한 글씨의 편지가 놓여 있었다.
동생은 나와는 무척 다르다.
서툴지만 정이 많고 사랑이 많다. 아직도 엄마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때면 엄마 다리를 끌어 안고는 응석을 부린다. 차갑게 옳고 그름을 따져가며 비판하는 나와는 전혀 다른 성향을 지녔다. 힘든 시간도 있었고 나도 어려서 사랑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해 순수하게 사랑해주기 보다는 내 욕심이 앞서 동생들에게 늘 냉정하게 대했다.
첫째라는 자리 때문인지 늘 동생들에게 실수 하면 안된다,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따뜻한 말을 건네기 보다는 이성적인 충고를 하려 노력했다. 나보다도 훨씬 어렸던 그 녀석들의 눈에 나는 어떻게 비춰졌을지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가슴 한쪽에 서늘한 바람 같은게 분다.
다행히 나같은 냉정한 누나 밑에서도 그 녀석은 따뜻한 본성을 잃지 않고 컸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날때부터 지니고 있는게 다른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누나랑 엄마랑 꼭 옆에 데려다 놓고 함께 살고 싶다는 말에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나도 엄마한테 이런 멘트 한번 날려 줘야 하나? 하는 생각도 좀 들고....
오랜만에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수 있는 기회 였던 것 같다.
.... 누군가가 그립다..는 감정도 참 오랜만인것 같다.
전공 특성상 졸업 후 바로 군인이 되는 동생의 상황을 고려해 봤을때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방학으로 제한 되기 때문에 1학년인데도 불구하고 엄마와 의논하여 엄마는 비행기 표, 나는 여행비를 대기로 했다.
너무 급작스럽게 결정된 터라, 너무나 걱정이 된 나머지 네덜란드에 있는 남자친구까지 동원해 여행 루트를 짰는데 남자친구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다 큰 성인 남자인데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거야 니 생각이고....) 하지만 내겐 아직도 어리기만한 동생이라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동생과 최대한 함께 있을 수 있도록 개인 휴가도 내서 함께 다닐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했지만 그녀석 혼자 여행하는 기간이 2주가 넘는지라 내내 마음 한쪽으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막내 동생과 마찬가지로 동생이라고 하기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일까.... 가끔은 야속하기도 하고 속도 많이 태웠지만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단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
늘 어른같은 표정을 짓고는 눈물이 많았던 녀석이 어느새 커서 대학교를 들어가고 혼자 여행을 하겠다고 배낭을 매고 눈앞에 나타나자 금내 눈이 뜨거워졌지만 언제나 그랬듯 나는 감정을 감추고 차갑게 대답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혹시라도 무슨일이 생기면 어떻하나.... 이상한 사람을 만나서 흉한 일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배낭 여행으로 18일에 쓰기엔 좀 많다 싶은 금액의 돈을 유로로 바꿔서 줬는데..... 이 녀석이 얼마나 아끼고 아꼈는지 반이 넘게 남겨왔다.
누나 집에와 안심했는지 바로 잠이 든 동생 옆에서 그 녀석이 여행 기간 동안 쓴 일기를 들춰 보는데 돈을 아끼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수 있었다.
철자는 다 틀려서 얘가 대학생이 맞나 싶은 생각에 웃음이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기특 하기도 하고.... 이젠 정말 다 컸나 보네.. 하는 생각에 섭섭하기도 하고....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이 밀려왔다.
공항에서 손을 흔들고 사라지는 그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걸 보며 엄마는 기분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어 하루 종일 기분이 묘했는데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삐뚤빼뚤한 글씨의 편지가 놓여 있었다.
동생은 나와는 무척 다르다.
서툴지만 정이 많고 사랑이 많다. 아직도 엄마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때면 엄마 다리를 끌어 안고는 응석을 부린다. 차갑게 옳고 그름을 따져가며 비판하는 나와는 전혀 다른 성향을 지녔다. 힘든 시간도 있었고 나도 어려서 사랑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해 순수하게 사랑해주기 보다는 내 욕심이 앞서 동생들에게 늘 냉정하게 대했다.
첫째라는 자리 때문인지 늘 동생들에게 실수 하면 안된다,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따뜻한 말을 건네기 보다는 이성적인 충고를 하려 노력했다. 나보다도 훨씬 어렸던 그 녀석들의 눈에 나는 어떻게 비춰졌을지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가슴 한쪽에 서늘한 바람 같은게 분다.
다행히 나같은 냉정한 누나 밑에서도 그 녀석은 따뜻한 본성을 잃지 않고 컸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날때부터 지니고 있는게 다른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누나랑 엄마랑 꼭 옆에 데려다 놓고 함께 살고 싶다는 말에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나도 엄마한테 이런 멘트 한번 날려 줘야 하나? 하는 생각도 좀 들고....
오랜만에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수 있는 기회 였던 것 같다.
.... 누군가가 그립다..는 감정도 참 오랜만인것 같다.
5/23/2011
머리를 자르고
어깨 너머로 넘실넘실 길게 늘어 뜨렸던 머리를 싹둑 잘랐다.
이유를 애써 만들어 보자면 요새 일도 힘들도 마음도 심란하고 해서..... 여름도 왔고.....
또 나는 매우 즉흥적이니까.......
그냥 집에 들어 오는 길에 예약 없이 받아 주면 자르고 아님 말고~ 하는 생각으로 들어 갔는데 영어도 잘하고 서비스도 좋고....... 해서 정말 왕창 자르고 말았다.
덧붙여...... (아잉) 고냉님 블로그 보고 남친분 처음 만나셨을때 러시아어 엑센트 나오는 영어 못 알아듣는 부분에 갑자기 콧평수 넓어 지면서 막 댓글 남기고 싶었으나 -_- 불행하게도 나는 이글루 아이디도 없고 만들 수도 없다.... (거긴 왜 이렇게 복잡한겨......)
섹스앤더시티 6편에 보면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정도의 본명을 가진 (러시아인은 아님 에스토니아던가? 발트 삼국 출신임, 이 남자 엄청 아름다운 발레리노였음) 배우가 알렉산드르 페트롭스키라는 이름으로 출연하는데
그 남정네의 발음..... 아아아아!!!!!!! 너무 아름답다!!!!!!!!!
(내 러시아어 발음 덕후 기질은 사실 그때 이후로 생긴 거임...... 이 남자 아니었으면 아마 시즌 6은 최악의 시리즈로 기억속에 남았을꺼임, 그 남자 언제 또 나오나!!! 만 기다리며 두근두근 하던 그때..... 나 참 어렸더랬다...)
물론 그 이후에도 각기 다른 매력을 발산해 주시는 독특한 엑센트의 여러 사람들을 거치며.... 세상에서 영어 말하는 사람들 중에 스코틀랜드 남자랑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가진 남자의 발음이 젤 섹쉬해!!!!! +_+ 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갖게 되어 버렸다.
하지만.... 폴란드 사람들 영어 발음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능.....
독일어 하는 사람들의 발음 만큼 생소 하시다능.....
사람들이 이탈리아 사람들이나 스페인, 프랑스어 하는 사람들 발음 가지고 뭐라 하지만..... 사실 나는 독일어 하는 사람들이 영어 할때 나오는 약간.... 뭐랄까.....공기가 새는 득한 소리가 젤 생소하고 어색하다.
(물론 내가 감히 어디가서 남의 발음 뭐라 할 처지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느끼는 점이 그렇다는 얘기지라오......)
갑자기 또 한번 -_- 남자친구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고 말았다....
어쩌다가 나는 -_- 폴란드 남자를 만났나..... 하는 고런 못~~된 생각.....
휴....... 얼렁 러시아어 공부해야지.....
이유를 애써 만들어 보자면 요새 일도 힘들도 마음도 심란하고 해서..... 여름도 왔고.....
또 나는 매우 즉흥적이니까.......
그냥 집에 들어 오는 길에 예약 없이 받아 주면 자르고 아님 말고~ 하는 생각으로 들어 갔는데 영어도 잘하고 서비스도 좋고....... 해서 정말 왕창 자르고 말았다.
덧붙여...... (아잉) 고냉님 블로그 보고 남친분 처음 만나셨을때 러시아어 엑센트 나오는 영어 못 알아듣는 부분에 갑자기 콧평수 넓어 지면서 막 댓글 남기고 싶었으나 -_- 불행하게도 나는 이글루 아이디도 없고 만들 수도 없다.... (거긴 왜 이렇게 복잡한겨......)
섹스앤더시티 6편에 보면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정도의 본명을 가진 (러시아인은 아님 에스토니아던가? 발트 삼국 출신임, 이 남자 엄청 아름다운 발레리노였음) 배우가 알렉산드르 페트롭스키라는 이름으로 출연하는데
그 남정네의 발음..... 아아아아!!!!!!! 너무 아름답다!!!!!!!!!
(내 러시아어 발음 덕후 기질은 사실 그때 이후로 생긴 거임...... 이 남자 아니었으면 아마 시즌 6은 최악의 시리즈로 기억속에 남았을꺼임, 그 남자 언제 또 나오나!!! 만 기다리며 두근두근 하던 그때..... 나 참 어렸더랬다...)
물론 그 이후에도 각기 다른 매력을 발산해 주시는 독특한 엑센트의 여러 사람들을 거치며.... 세상에서 영어 말하는 사람들 중에 스코틀랜드 남자랑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가진 남자의 발음이 젤 섹쉬해!!!!! +_+ 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갖게 되어 버렸다.
하지만.... 폴란드 사람들 영어 발음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능.....
독일어 하는 사람들의 발음 만큼 생소 하시다능.....
사람들이 이탈리아 사람들이나 스페인, 프랑스어 하는 사람들 발음 가지고 뭐라 하지만..... 사실 나는 독일어 하는 사람들이 영어 할때 나오는 약간.... 뭐랄까.....공기가 새는 득한 소리가 젤 생소하고 어색하다.
(물론 내가 감히 어디가서 남의 발음 뭐라 할 처지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느끼는 점이 그렇다는 얘기지라오......)
갑자기 또 한번 -_- 남자친구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고 말았다....
어쩌다가 나는 -_- 폴란드 남자를 만났나..... 하는 고런 못~~된 생각.....
휴....... 얼렁 러시아어 공부해야지.....
5/02/2011
바르샤바 여행 - 음식 이야기
1년 반의 경험을 토대로 먹고 마실만한 거리를 적어보자면, 먼저.... 음식
겨울에 꼭 드셔보셔야 할 수프가 몇 종류 있는데, 개인마다 추천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몇가지만 꼽아 보자면,
1. Barszsz
비트루트로 만든 동유럽 전역에 걸쳐 즐겨 먹는 맑은 국물의 자주색 수프.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
2. Zurek
호불호가 매우 갈리는 음식으로 하얗고 불투명한 색의 수프다. 발효된 호밀로 만들어져 매우 시큼한 맛을 낸다. 여기에 소세지를 띄워 먹는데, 부활절에 절인 청어와 함께 먹는 걸로 유명
3. Zupa Ogorkowa
내 태어나 이렇게 묘한 맛은 처음 봤다. 절인 오이를 잘게 잘라 끓여 만든 수프로 희안한 맛이 나지만 술마신 다음날 먹기엔 그만임
4. Zupa Grzybowa
숲에서 딴 버섯을 말려 보관해 두었다가 물에 불려 끓여 먹는 수프, 물론 생 버섯으로 끓인 것도 있다. 여기에 수제비 처럼 밀가루 반죽을 띄워 먹는 경우도 있는데 매우 맛있다.
5. Zupa Pomidorowa Ryzu
토마토 수프에 찐 밥을 띄워 먹기도 하고, 네모 넓적한 파스타를 삶아 넣어 먹기도 함.
6. 기타.
맑은 곰탕 국물에 마늘 띄운것 같은 수프도 있다. 산간 지방에서 주로 먹어봄.
역시나 치킨수프가 유명함 Rosoł 들어 보셨을 듯~.
여름에는 차가운 수프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차갑게 만든 보르시치에 크림을 띄워 그 색깔도 아름다운 자주빛 수프를 맛보실수도 있음.
이외에도 참 종류가 많은데 개인적으로 맛있다! 하고 느낀 것들, 나름 유명한 것들만 골라 적어봤다. 꼭 드셔 보시길 권하는 바이다.
다음으로 메인 디쉬를 소개 하자면
1. Kotlet Schabowy
사람 얼굴보다 큰 크기의 커틀렛이 나올 것임. 밑에 구운 감자, 삶은 감자, 튀긴 감자 선택 가능 폴란드의 대표 음식이 커틀렛과 감자라고들 함.
2. Golonka
골롱카라고 한국의 족발 비슷한 음식, 돼지 다리 한쪽을 구운후 살짝 튀겨 나오는 경우가 많음, 엄청난 칼로리와 양을 자랑함.
3. Placki
한국의 감자전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요리로 버섯 소스를 올려 주거나 토마토에 쇠고기 볶은 걸 올려주기도 함. 폴라드 감자 정말 짱 맛있음!!!
4. Kaszanka
순대 비슷한 느낌이 나는 소세지, 폴란드 소세지가 매우 맛있음. 왜냐... 돼지가 맛있기 때문. 소세지가 맛있을 수 밖에 없음.
5. Karkowka
목살이라는 뜻, 목살을 양념해서 구워 나옴. 매우 맛있음 갈비 비스무리한 느낌도 나는데 깔끔한 고기 맛이 남. 폴란드 돼지가 맛있구나~ 하고 느끼실수 밖에 없음. 별다른 양념한 것도 아닌것 같은데 왜 이리 맛나나 하는 생각이 드실 것임
기타 피에로기나 비고스라는 음식도 드셔볼만 함
참고로... 폴란드 음식이 매우 짬. 맥주 곁들여 드셔야 할 것임~ 폴란드 맥주도 맛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오~
낮설기만 한 폴란드에 오셔서 추운 날씨에 고생이 참 많으셨을텐데 메뉴판을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긴장도 되고 하신다면 위에 적힌 것중 마음에 드는 음식 골라서 드시면 별 다른 후회는 없으실 듯 하다. 아무리 동유럽이라지만 폴란드는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그닥 소매치기도 없다. 너무 마음 놓으셔도 안되겠지만 스페인이나 이태리 처럼 옷 속에다 지갑을 동여매는 일따위는 하지 않으셔도 좋다. 나는 맨날 트램탈 때 가방 열고 타는데 지금까지 지갑 잃어 버린적 한번 없고.... 심지어는 집 문 잠그고 키 그대로 꼽아 놓고 회사 나와서 -_-;; 하루 종일 까맣게 모르다가 집에 돌아가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문에 꽂혀 있는 열쇄를 보고 화들짝 놀라 집에 들어간 기억이 있다. 없어진 것 아무것도 없고 너무나 얌전히 고스란히 누가 들어왔다 나간 흔적 없이 다들 안전하게 계시더라능....
(물론 아파트 입구에 비밀 번호 누르고 들어가야 하지만... 그래도 )
자 식사를 맛있게 하셨다면 숙소에 돌아 오시기 전 꼭 들려야 할 곳이 있다.
Alkohole이라고 씌여진 술 파는 상점, 또는 까르푸, Bomi라고 씌여진 상점도 상관 없다. 기타 술 진열해 놓고 파는 곳은 어디든지 괜찮다.
폴란드의 겨울 밤은 길다. 물론 여름 낮도 길지.... 우리는 술을 한잔 해야 한다. 그래야 내일 또 힘을 내서 하루를 이어 나갈 수 있다. ㅎ
술집에 가면 아마 점원이 영어를 잘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는 가서 별 다른 의사 소통을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 이름만 말해주면 친절히 술을 종이 싸서 내어 줄 것이다. 폴란드는 야외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금지 되어 있다. 그래서 술을 갱지에 싸서 술이 보이지 않게 준다. (야외에서 술을 내놓고 들고 다니는 걸 경찰이 보게 되는 경우 낭패 보는 생길일이 생기실수도 있음) 귀찮더라도 그대로 들고가시길 권한다.
우리가 맛 볼 술이 몇 가지 있는데, 아래의 목록 중 취향에 따라 골라 드시면 된다.
참고로 본인의 술 실력에 대해서 말씀 드리자면....
작년 크리스마스 때 블렌디를 1/3 컵 마셨다가 돌아오는 차안에서 기절을 하였으며, 와인 2~3잔만 마셔도 헤롱 거리는 매우 저렴한 술실력을 자랑한다.
소주는 한잔만 마셔도 진저리를 치고, 맥주도 맛없으면 못 마신다. 보드카는 쳐다 보고 싶어하지도 않고 가끔 비싸다고 하면 한잔 마셔보기는 하는데 오만상을 찌푸려 권한 이의 마음을 상하게 하기도 한다. 즉..... 술은 맛 없으면 안 마신다.
그러므로 본인이 권하는 술은 달고 맛있는 술이라는 뜻이다.
아직 인생의 쓴맛을 덜 봤는지.... 소주나 보드카 같은 맑은 술은 다음 생에서나 마셔볼 수 있을 것 같다.
1. Kurpnik
꿀로 만든 달콤한 보드카다. 투명한 것도 있으나 오늘 우리가 마실 크룹프닉은 꿀로 만들어진 노란색 술이다. 남자친구와 처음 이 술을 마신날 남자친구에게 이 술과 사랑에 빠질것 같아! 라고 말하게 만든 술이다. 마시면 식도를 따라 시큰한 느낌이 느껴진다. 후.....집에서 떨어질 날이 없는 술로 잠자기 전에 두 모금정도 마시면 잠이 너무 잘온다.
2. Cytrynowka
레몬 맛이 나는 보드카다. 역시 후끈한 맛이다. 한국에서 파는 레몬소주를 생각하시면 오산이다. 새콤하고 시원한 맛이난다.
3. 가볍게 마시고 싶다 하시면 역시 Ginger Beer가 짱이다.
몇번 언급 하였지만 너무나 사랑하는 맥주다. 세상에 이런 맛이@_@ 나에게 맥주의 신세계를 열어준 고마운 존재다.
어제 밤에도 한병 마시고 잠들었다. 이러다 곧 알콜 중독자가 되지는 않을까 염려가 된다....
여기서 부터는 내가 그닥 사랑하지 않으나 선물 하였을 때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던 품목 들이다. 뭐랄까... 이미 술의 세계에 입문하신지 오래 되시어 나처럼 맛에 의존하지 않고 알콜 그 자체를 탐닉하시는 분들을 위한 목록이라고 할수 있다.
앗참.... 한자기 언급하고 넘어가자면 폴란드에서 보드카 표기는 다음과 같다
Wódka
여기서 ó는 u발음이 나는데, 따라서 부드카 하고들 발음한다. 여기서는 편의상 보드카라고 계속 쓰겠음.
1. Pan Tadeusz
나름 고급의 보드카다. Chopin 과 1.2위를 달리는 상품이다. 높은 도수에도 불구하고 부드럽단다... 굴과 그렇게 잘 어울리신다는....
2. Chopin
감자로 만든 것과 호밀로 만든것이 있는데 감자로 만든 것이 더 품질이 높다고 함. 가격도 물론 높다. 뭐라더라? 단 한방울이라도 제맛이 안나면 통째 버린다고 할 정도로 품질에 신경을 많이 쓰신다며 광고 하시더라... 이름을 어디서 따왔는지는 금방 아실듯~
3. Luksusowa
위의 두 보드카를 가게에서 찾지 못하셨다면 이 제품으로 대리 만족을 하셔도 나쁘지 않으실듯~ 발틱해 연안에서 생산되는 제품으로 대중적으로 널리 판매 되는 제품이다. 결혼식때 내 놓아도 나쁘지 않은 제품이라는 얘기를 들었으니...
여기서부터는 특유의 향과 풍미를 갖고 있는 독특한 맛의 보드카 되시겠다.
4. Żubrówka
이거 처음 먹어보는 사람은 헉! 이거 뭐야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묘한 향이 난다. 들소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Bison grass라는 풀과 허브를 이용해서 만든 술이라고 한다. 바닐라와 코코넛, 아몬드 향이 난다고도 하는데 사과 주스랑 섞어서 마시기도 하니 도전해 보시길~
5. Dębowa Polska
내 생각에 이것보다 선물용으로 잘 어울리는 것도 없다.
오크통에 장식해서 파는데 무척 예쁘다. 그 향도 독특한 꽃내음이 난다고 하니 폴란드에 다녀가시는 분들은 선물용으로 구입해 가시면 매우 좋을 듯.
총알 모양 같이 생긴 것도 있다.
6. Wódka Żołądkowa Gorzka
호박색의 단맛이 느껴지는 보드카다. 역시 과일과 허브 베이스다.
흔치 않은 맛이다.
7. Śliwowica
엄청난 도수를 자랑하는 술로서 Plum Brandy 다. 최상급의 슬리보비짜는 어떠한 효모나 당분등의 첨가물 없이 최상급의 플럼으로만 만든다고 한다. 으깨어 추수기의 강렬한 햇빛 아래 오크통에 담아 두달여에 걸쳐 발효시킨다고 하는데 (정말?) 두번의 증류 과정을 거쳐 호박색의 맑은 색을 띄는 것이 최상급이란다. 얘를 Śliwowica łącka라고 하는데 시중에 판매 금지 되어 있다. 이유는 알수 없다. 그럼 왜 쓰냐고? 사실 금지라고 해도 폴란드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이 술을 구할수 있다. 그리고 이 술은 폴란드 뿐만 아니라 불가리아,체코, 헝가리 등 동유럽 전반에 걸쳐 제조하고 즐겨 마시는 술이다. 하지만 EU법에 의해 금지 되어있다.
따라서 여행객의 입장에서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마실 필요는 없다. 그래서 우리가 술집에서 구할수 있는 술에 대해서 쓰고자 하는데 바로 Śliwowica Paschalna (Passover Śliwowica) 다. 알고 마시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 쓰는데 이 술은 Koshur rule이라고... 유대교 율법에 따라 제조 된 술이다. 설탕을 물론이고 물도 안 들어갔다고 한다. 순수하게 플럼으로만 만들어졌다는 말이다. 얘는 왜 허가가 났을까? 글쎄 그건 알수 없지만 여기서 유대교 율법에 따라 제조 되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이 이 술의 생산과 깊이 관여 되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유대교 율법에 따라 만든 게 최고의 품질을 자랑해서라는데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70~80도에 육박하는 엄청난 도수를 가진 술이니 조심해서 드시길~
여기서 부터는 역사에 관심 있는 분들만 읽고 넘어 가셔도 되겠다.
폴란드의 유대인들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자면, 폴란드 역사에 대해 들어 보신 분이 있으실지 모르겠지만, 폴란드는 한때 가장 대규모의 유대인 집단이 있던 곳으로서 유럽 내 유대인 사회의 중심이였던 곳이다. 오시비엥침이 왜 폴란드에 세워졌는가에 대한 대답도 여기서 유추 할수 있겠지.... 이미 폴란드 내에 자리 잡고 있었던 유대인의 규모로 봤을때, 남부 폴란드가 유럽 곳곳에 퍼져 있는 유대인들을 집결 시키기에 지리적으로 가장 효과 적인 곳이었다고 독일군들도 판단한 것이다.
12세기부터 16세기 중반까지 폴란드는 유럽 국가들중 가장 관용적이고 열린 국가였다. 유대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그 당시 폴란드가 유대인의 천국(paradisus Iudaeorum) 이라고 불렸다고 하는 과거의 기록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16세기 기록에 따르면 유럽내 85%의 유대인들이 폴란드에 거주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재미 있는 점은 그 시기가 폴란드가 유럽 내에서 최고로 강성했던 시기와 일치 한다는 점이다-16세기 중반 폴란드는 최대의 전성기를 맞은후 쇠퇴의 길로 접어 서게 된다. -그 이후의 역사는 복잡하긴 한데 간략히 아는 바 내에서 설명해 보자면 이후 폴란드는 종교 개혁 과정 안에서 구교의 내부 개혁 운동과 함께 왕권 강화를 등을 추구 하며 변화를 도모하는 사이 그 특유의 관용성을 잃게 된다. 귀족들의 실권 장악으로 외국인 왕의 등극은 왕국의 힘을 분열 시키고 이로 인해 내-외부적인 혼란기를 맞게 된다. 1795년 폴란드는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 3국에 의해 분할 되고 마는데 이때 폴란드에 거주하고 있던 유대인들 또한 분할된 각자의 세력하에 놓인다. 이후 1918년 1차 세계 대전 이후 국가의 재건하여 독립 함과 동시에 다시 한번 유럽 최대의 유대교 사회로서 3백만이 넘는 유대인의 중심지로 떠오른다. 그러나 2차대전의 발발로 인해 90% 이상의 유대인이 처형 되거나 수용소로 끌려 가 생을 마감했다. 종전과 함께 수용소에서 살아 남아 폴란드 공화국의 명부에 등록된 수는 겨우 20만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살아 남은 이들은 초기 이스라엘 또는 미국으로 황급히 망명할수 밖에 없었는데, 사회주의자들의 부당한 대우와 종전후의 아직까지 폭력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이었고, 또 다른 이유는 폴란드가 동구권에서는 유일하게 유대인 이스라엘 망명의 무조건 수용국이었다고 한다. 영국이 이를 저지하고자 폴란드 정부에 압력을 가하긴 했지만, 별 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후 폴란드에서 일어난 반- 유대인 운동(이스라엘로 유대인을 몰아내려고 했던 정치적-사회적 움직임)에 따라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폴란드를 떠났고 사회주의 정부가 무너지고 폴란드에 그때까지 남아 있었던 2만명 가량의 유대인은 폴란드 국민으로서 시민권을 획득하고, 종교적 권리와 자유를 재구성 할수 있게 되었다. 현재 유대인 집단은 그 이후로 명백을 이어 내려온 사람들에 의한 것으로 유대인 사회는 당시보다 훨씬 그 규모가 커졌을 것으로 보이나 종교적인 조건으로 한 집단을 구별하여 외적으로 조사하는 것은 권리 침해에 해당하여 유럽 연합 법에 의해 금지 되어 있다. 따라서 정확한 수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디저트
폴란드의 디저트는 너무나 화려하다.
여느곳 못지 않은 달콤함과 높은 칼로리 -_-를 자랑한다.
1. Paczki
던킨이 폴란드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퐁첵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퐁츠키, 퐁첵 등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이 동그란 빵 안에는 장미쨈, 오렌지 쨈등이 들어 있다. 값도 싸고 커피와 함께 곁들이기 좋다.
2. Sernik
치즈 케익인데 매우 촉촉하고 무거운 맛이 난다. 입안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랄까...
초콜렛 등 여러가지 크림으로 데코레이션이 되어 다양한 종류를 구비해 놓는다.
3. Makowiec
롤케익 처럼 생긴 거친 빵인데 크림은 안에 없고 대신 질감이 다른 빵이 말린 듯 동그란 모양을 하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은 되게 좋아하는 듯....
4. Kremowka
부드러운 크림이 가득한 크림 케익. 교황님이 즐겨 드셨다는데 만드는 곳마다 특색이 있는 듯. 너무너무 맛있다.
5. Naleśniki
얇게 민 전병 같은 밀가루 반죽에 크림을 올려 말거나 덮어 먹는 간식이다. 조금 기름진데 달짝 지근하고 맛나다.
6. Szarlotka
너무너무 사랑한다. 반쯤 익은 사과가 사각거리면서 입에서 사르르 녹는 느낌. 최고다!!
느끼하지도 않고....
7. Ptasie mleczko
유당이 안에 든 초콜렛, 우크라이나 친구가 엄청 좋아하면서 몇 박스를 사들고 돌아갔다. 2주후에 체코에 가는데 역시나 이 초콜렛을 사들고 갈 예정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디저트가 풍부하니 꼭! 드셔보세요
겨울에 꼭 드셔보셔야 할 수프가 몇 종류 있는데, 개인마다 추천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몇가지만 꼽아 보자면,
1. Barszsz
비트루트로 만든 동유럽 전역에 걸쳐 즐겨 먹는 맑은 국물의 자주색 수프.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
2. Zurek
호불호가 매우 갈리는 음식으로 하얗고 불투명한 색의 수프다. 발효된 호밀로 만들어져 매우 시큼한 맛을 낸다. 여기에 소세지를 띄워 먹는데, 부활절에 절인 청어와 함께 먹는 걸로 유명
3. Zupa Ogorkowa
내 태어나 이렇게 묘한 맛은 처음 봤다. 절인 오이를 잘게 잘라 끓여 만든 수프로 희안한 맛이 나지만 술마신 다음날 먹기엔 그만임
4. Zupa Grzybowa
숲에서 딴 버섯을 말려 보관해 두었다가 물에 불려 끓여 먹는 수프, 물론 생 버섯으로 끓인 것도 있다. 여기에 수제비 처럼 밀가루 반죽을 띄워 먹는 경우도 있는데 매우 맛있다.
5. Zupa Pomidorowa Ryzu
토마토 수프에 찐 밥을 띄워 먹기도 하고, 네모 넓적한 파스타를 삶아 넣어 먹기도 함.
6. 기타.
맑은 곰탕 국물에 마늘 띄운것 같은 수프도 있다. 산간 지방에서 주로 먹어봄.
역시나 치킨수프가 유명함 Rosoł 들어 보셨을 듯~.
여름에는 차가운 수프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차갑게 만든 보르시치에 크림을 띄워 그 색깔도 아름다운 자주빛 수프를 맛보실수도 있음.
이외에도 참 종류가 많은데 개인적으로 맛있다! 하고 느낀 것들, 나름 유명한 것들만 골라 적어봤다. 꼭 드셔 보시길 권하는 바이다.
다음으로 메인 디쉬를 소개 하자면
1. Kotlet Schabowy
사람 얼굴보다 큰 크기의 커틀렛이 나올 것임. 밑에 구운 감자, 삶은 감자, 튀긴 감자 선택 가능 폴란드의 대표 음식이 커틀렛과 감자라고들 함.
2. Golonka
골롱카라고 한국의 족발 비슷한 음식, 돼지 다리 한쪽을 구운후 살짝 튀겨 나오는 경우가 많음, 엄청난 칼로리와 양을 자랑함.
3. Placki
한국의 감자전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요리로 버섯 소스를 올려 주거나 토마토에 쇠고기 볶은 걸 올려주기도 함. 폴라드 감자 정말 짱 맛있음!!!
4. Kaszanka
순대 비슷한 느낌이 나는 소세지, 폴란드 소세지가 매우 맛있음. 왜냐... 돼지가 맛있기 때문. 소세지가 맛있을 수 밖에 없음.
5. Karkowka
목살이라는 뜻, 목살을 양념해서 구워 나옴. 매우 맛있음 갈비 비스무리한 느낌도 나는데 깔끔한 고기 맛이 남. 폴란드 돼지가 맛있구나~ 하고 느끼실수 밖에 없음. 별다른 양념한 것도 아닌것 같은데 왜 이리 맛나나 하는 생각이 드실 것임
기타 피에로기나 비고스라는 음식도 드셔볼만 함
참고로... 폴란드 음식이 매우 짬. 맥주 곁들여 드셔야 할 것임~ 폴란드 맥주도 맛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오~
낮설기만 한 폴란드에 오셔서 추운 날씨에 고생이 참 많으셨을텐데 메뉴판을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긴장도 되고 하신다면 위에 적힌 것중 마음에 드는 음식 골라서 드시면 별 다른 후회는 없으실 듯 하다. 아무리 동유럽이라지만 폴란드는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그닥 소매치기도 없다. 너무 마음 놓으셔도 안되겠지만 스페인이나 이태리 처럼 옷 속에다 지갑을 동여매는 일따위는 하지 않으셔도 좋다. 나는 맨날 트램탈 때 가방 열고 타는데 지금까지 지갑 잃어 버린적 한번 없고.... 심지어는 집 문 잠그고 키 그대로 꼽아 놓고 회사 나와서 -_-;; 하루 종일 까맣게 모르다가 집에 돌아가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문에 꽂혀 있는 열쇄를 보고 화들짝 놀라 집에 들어간 기억이 있다. 없어진 것 아무것도 없고 너무나 얌전히 고스란히 누가 들어왔다 나간 흔적 없이 다들 안전하게 계시더라능....
(물론 아파트 입구에 비밀 번호 누르고 들어가야 하지만... 그래도 )
자 식사를 맛있게 하셨다면 숙소에 돌아 오시기 전 꼭 들려야 할 곳이 있다.
Alkohole이라고 씌여진 술 파는 상점, 또는 까르푸, Bomi라고 씌여진 상점도 상관 없다. 기타 술 진열해 놓고 파는 곳은 어디든지 괜찮다.
폴란드의 겨울 밤은 길다. 물론 여름 낮도 길지.... 우리는 술을 한잔 해야 한다. 그래야 내일 또 힘을 내서 하루를 이어 나갈 수 있다. ㅎ
술집에 가면 아마 점원이 영어를 잘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는 가서 별 다른 의사 소통을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 이름만 말해주면 친절히 술을 종이 싸서 내어 줄 것이다. 폴란드는 야외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금지 되어 있다. 그래서 술을 갱지에 싸서 술이 보이지 않게 준다. (야외에서 술을 내놓고 들고 다니는 걸 경찰이 보게 되는 경우 낭패 보는 생길일이 생기실수도 있음) 귀찮더라도 그대로 들고가시길 권한다.
우리가 맛 볼 술이 몇 가지 있는데, 아래의 목록 중 취향에 따라 골라 드시면 된다.
참고로 본인의 술 실력에 대해서 말씀 드리자면....
작년 크리스마스 때 블렌디를 1/3 컵 마셨다가 돌아오는 차안에서 기절을 하였으며, 와인 2~3잔만 마셔도 헤롱 거리는 매우 저렴한 술실력을 자랑한다.
소주는 한잔만 마셔도 진저리를 치고, 맥주도 맛없으면 못 마신다. 보드카는 쳐다 보고 싶어하지도 않고 가끔 비싸다고 하면 한잔 마셔보기는 하는데 오만상을 찌푸려 권한 이의 마음을 상하게 하기도 한다. 즉..... 술은 맛 없으면 안 마신다.
그러므로 본인이 권하는 술은 달고 맛있는 술이라는 뜻이다.
아직 인생의 쓴맛을 덜 봤는지.... 소주나 보드카 같은 맑은 술은 다음 생에서나 마셔볼 수 있을 것 같다.
1. Kurpnik
꿀로 만든 달콤한 보드카다. 투명한 것도 있으나 오늘 우리가 마실 크룹프닉은 꿀로 만들어진 노란색 술이다. 남자친구와 처음 이 술을 마신날 남자친구에게 이 술과 사랑에 빠질것 같아! 라고 말하게 만든 술이다. 마시면 식도를 따라 시큰한 느낌이 느껴진다. 후.....집에서 떨어질 날이 없는 술로 잠자기 전에 두 모금정도 마시면 잠이 너무 잘온다.
2. Cytrynowka
레몬 맛이 나는 보드카다. 역시 후끈한 맛이다. 한국에서 파는 레몬소주를 생각하시면 오산이다. 새콤하고 시원한 맛이난다.
3. 가볍게 마시고 싶다 하시면 역시 Ginger Beer가 짱이다.
몇번 언급 하였지만 너무나 사랑하는 맥주다. 세상에 이런 맛이@_@ 나에게 맥주의 신세계를 열어준 고마운 존재다.
어제 밤에도 한병 마시고 잠들었다. 이러다 곧 알콜 중독자가 되지는 않을까 염려가 된다....
여기서 부터는 내가 그닥 사랑하지 않으나 선물 하였을 때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던 품목 들이다. 뭐랄까... 이미 술의 세계에 입문하신지 오래 되시어 나처럼 맛에 의존하지 않고 알콜 그 자체를 탐닉하시는 분들을 위한 목록이라고 할수 있다.
앗참.... 한자기 언급하고 넘어가자면 폴란드에서 보드카 표기는 다음과 같다
Wódka
여기서 ó는 u발음이 나는데, 따라서 부드카 하고들 발음한다. 여기서는 편의상 보드카라고 계속 쓰겠음.
1. Pan Tadeusz
나름 고급의 보드카다. Chopin 과 1.2위를 달리는 상품이다. 높은 도수에도 불구하고 부드럽단다... 굴과 그렇게 잘 어울리신다는....
2. Chopin
감자로 만든 것과 호밀로 만든것이 있는데 감자로 만든 것이 더 품질이 높다고 함. 가격도 물론 높다. 뭐라더라? 단 한방울이라도 제맛이 안나면 통째 버린다고 할 정도로 품질에 신경을 많이 쓰신다며 광고 하시더라... 이름을 어디서 따왔는지는 금방 아실듯~
3. Luksusowa
위의 두 보드카를 가게에서 찾지 못하셨다면 이 제품으로 대리 만족을 하셔도 나쁘지 않으실듯~ 발틱해 연안에서 생산되는 제품으로 대중적으로 널리 판매 되는 제품이다. 결혼식때 내 놓아도 나쁘지 않은 제품이라는 얘기를 들었으니...
여기서부터는 특유의 향과 풍미를 갖고 있는 독특한 맛의 보드카 되시겠다.
4. Żubrówka
이거 처음 먹어보는 사람은 헉! 이거 뭐야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묘한 향이 난다. 들소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Bison grass라는 풀과 허브를 이용해서 만든 술이라고 한다. 바닐라와 코코넛, 아몬드 향이 난다고도 하는데 사과 주스랑 섞어서 마시기도 하니 도전해 보시길~
5. Dębowa Polska
내 생각에 이것보다 선물용으로 잘 어울리는 것도 없다.
오크통에 장식해서 파는데 무척 예쁘다. 그 향도 독특한 꽃내음이 난다고 하니 폴란드에 다녀가시는 분들은 선물용으로 구입해 가시면 매우 좋을 듯.
총알 모양 같이 생긴 것도 있다.
6. Wódka Żołądkowa Gorzka
호박색의 단맛이 느껴지는 보드카다. 역시 과일과 허브 베이스다.
흔치 않은 맛이다.
7. Śliwowica
엄청난 도수를 자랑하는 술로서 Plum Brandy 다. 최상급의 슬리보비짜는 어떠한 효모나 당분등의 첨가물 없이 최상급의 플럼으로만 만든다고 한다. 으깨어 추수기의 강렬한 햇빛 아래 오크통에 담아 두달여에 걸쳐 발효시킨다고 하는데 (정말?) 두번의 증류 과정을 거쳐 호박색의 맑은 색을 띄는 것이 최상급이란다. 얘를 Śliwowica łącka라고 하는데 시중에 판매 금지 되어 있다. 이유는 알수 없다. 그럼 왜 쓰냐고? 사실 금지라고 해도 폴란드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이 술을 구할수 있다. 그리고 이 술은 폴란드 뿐만 아니라 불가리아,체코, 헝가리 등 동유럽 전반에 걸쳐 제조하고 즐겨 마시는 술이다. 하지만 EU법에 의해 금지 되어있다.
따라서 여행객의 입장에서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마실 필요는 없다. 그래서 우리가 술집에서 구할수 있는 술에 대해서 쓰고자 하는데 바로 Śliwowica Paschalna (Passover Śliwowica) 다. 알고 마시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 쓰는데 이 술은 Koshur rule이라고... 유대교 율법에 따라 제조 된 술이다. 설탕을 물론이고 물도 안 들어갔다고 한다. 순수하게 플럼으로만 만들어졌다는 말이다. 얘는 왜 허가가 났을까? 글쎄 그건 알수 없지만 여기서 유대교 율법에 따라 제조 되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이 이 술의 생산과 깊이 관여 되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유대교 율법에 따라 만든 게 최고의 품질을 자랑해서라는데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70~80도에 육박하는 엄청난 도수를 가진 술이니 조심해서 드시길~
여기서 부터는 역사에 관심 있는 분들만 읽고 넘어 가셔도 되겠다.
폴란드의 유대인들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자면, 폴란드 역사에 대해 들어 보신 분이 있으실지 모르겠지만, 폴란드는 한때 가장 대규모의 유대인 집단이 있던 곳으로서 유럽 내 유대인 사회의 중심이였던 곳이다. 오시비엥침이 왜 폴란드에 세워졌는가에 대한 대답도 여기서 유추 할수 있겠지.... 이미 폴란드 내에 자리 잡고 있었던 유대인의 규모로 봤을때, 남부 폴란드가 유럽 곳곳에 퍼져 있는 유대인들을 집결 시키기에 지리적으로 가장 효과 적인 곳이었다고 독일군들도 판단한 것이다.
12세기부터 16세기 중반까지 폴란드는 유럽 국가들중 가장 관용적이고 열린 국가였다. 유대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그 당시 폴란드가 유대인의 천국(paradisus Iudaeorum) 이라고 불렸다고 하는 과거의 기록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16세기 기록에 따르면 유럽내 85%의 유대인들이 폴란드에 거주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재미 있는 점은 그 시기가 폴란드가 유럽 내에서 최고로 강성했던 시기와 일치 한다는 점이다-16세기 중반 폴란드는 최대의 전성기를 맞은후 쇠퇴의 길로 접어 서게 된다. -그 이후의 역사는 복잡하긴 한데 간략히 아는 바 내에서 설명해 보자면 이후 폴란드는 종교 개혁 과정 안에서 구교의 내부 개혁 운동과 함께 왕권 강화를 등을 추구 하며 변화를 도모하는 사이 그 특유의 관용성을 잃게 된다. 귀족들의 실권 장악으로 외국인 왕의 등극은 왕국의 힘을 분열 시키고 이로 인해 내-외부적인 혼란기를 맞게 된다. 1795년 폴란드는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 3국에 의해 분할 되고 마는데 이때 폴란드에 거주하고 있던 유대인들 또한 분할된 각자의 세력하에 놓인다. 이후 1918년 1차 세계 대전 이후 국가의 재건하여 독립 함과 동시에 다시 한번 유럽 최대의 유대교 사회로서 3백만이 넘는 유대인의 중심지로 떠오른다. 그러나 2차대전의 발발로 인해 90% 이상의 유대인이 처형 되거나 수용소로 끌려 가 생을 마감했다. 종전과 함께 수용소에서 살아 남아 폴란드 공화국의 명부에 등록된 수는 겨우 20만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살아 남은 이들은 초기 이스라엘 또는 미국으로 황급히 망명할수 밖에 없었는데, 사회주의자들의 부당한 대우와 종전후의 아직까지 폭력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이었고, 또 다른 이유는 폴란드가 동구권에서는 유일하게 유대인 이스라엘 망명의 무조건 수용국이었다고 한다. 영국이 이를 저지하고자 폴란드 정부에 압력을 가하긴 했지만, 별 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후 폴란드에서 일어난 반- 유대인 운동(이스라엘로 유대인을 몰아내려고 했던 정치적-사회적 움직임)에 따라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폴란드를 떠났고 사회주의 정부가 무너지고 폴란드에 그때까지 남아 있었던 2만명 가량의 유대인은 폴란드 국민으로서 시민권을 획득하고, 종교적 권리와 자유를 재구성 할수 있게 되었다. 현재 유대인 집단은 그 이후로 명백을 이어 내려온 사람들에 의한 것으로 유대인 사회는 당시보다 훨씬 그 규모가 커졌을 것으로 보이나 종교적인 조건으로 한 집단을 구별하여 외적으로 조사하는 것은 권리 침해에 해당하여 유럽 연합 법에 의해 금지 되어 있다. 따라서 정확한 수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디저트
폴란드의 디저트는 너무나 화려하다.
여느곳 못지 않은 달콤함과 높은 칼로리 -_-를 자랑한다.
1. Paczki
던킨이 폴란드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퐁첵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퐁츠키, 퐁첵 등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이 동그란 빵 안에는 장미쨈, 오렌지 쨈등이 들어 있다. 값도 싸고 커피와 함께 곁들이기 좋다.
2. Sernik
치즈 케익인데 매우 촉촉하고 무거운 맛이 난다. 입안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랄까...
초콜렛 등 여러가지 크림으로 데코레이션이 되어 다양한 종류를 구비해 놓는다.
3. Makowiec
롤케익 처럼 생긴 거친 빵인데 크림은 안에 없고 대신 질감이 다른 빵이 말린 듯 동그란 모양을 하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은 되게 좋아하는 듯....
4. Kremowka
부드러운 크림이 가득한 크림 케익. 교황님이 즐겨 드셨다는데 만드는 곳마다 특색이 있는 듯. 너무너무 맛있다.
5. Naleśniki
얇게 민 전병 같은 밀가루 반죽에 크림을 올려 말거나 덮어 먹는 간식이다. 조금 기름진데 달짝 지근하고 맛나다.
6. Szarlotka
너무너무 사랑한다. 반쯤 익은 사과가 사각거리면서 입에서 사르르 녹는 느낌. 최고다!!
느끼하지도 않고....
7. Ptasie mleczko
유당이 안에 든 초콜렛, 우크라이나 친구가 엄청 좋아하면서 몇 박스를 사들고 돌아갔다. 2주후에 체코에 가는데 역시나 이 초콜렛을 사들고 갈 예정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디저트가 풍부하니 꼭! 드셔보세요
바르샤바 여행 팁 - 겨울 이야기1
지난 번 암스테르담 여행에 대해 적었는데, 생각해 보니 바르샤바 및 폴란드에 대한 여행 정보도 적어야 할 것 같아서 글을 쓴다.
어제는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식이 있었다. 수 많은 폴란드인이 로마를 찾았고 그 중 어떤 사람은 폴란드 부터 로마까지 걸어서 갔다고 하는데 3월에 출발해서 겨우 시간을 맞출수 있었다는 인터뷰를 봤다.
전 교황에 대한 폴란드 사람들의 애정은 각별하다. 어제부터 개인 발코니, 거리 곳곳 마다 국기가 게양 되었고 트램 및 버스에도 국기가 걸려 있다. 오늘 아침 성당 앞에 걸린 미사 안내문을 보니 새벽부터 미사가 시작되어, 오후 9시에 있는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강연까지 하루 종일 프로그램이 준비 되어 있었다. 바르샤바 안에 성당이 얼마나 있느냐....하면 어느 방향으로든 5분만 걸으면 성당을 찾아 볼수 있다. 구시가에서는 1~2분만 걸어도 성당이 나타나는 데, 아마 폴란드 내에 있는 거의 모든 성당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준비 했을 테니 범 국가적인 행사라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
폴란드의 성당은 프랑스나 독일과는 그 느낌이 무척 다른데 성당 건축에 대한 그 지역 사람들의 시각이 녹아 있다고 한다. 약 95%의 인구가 가톨릭 신자라는 폴란드, 유럽 어디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폴란드 사람들 또한 교회와 인생의 여정을 함께 한다. 크고 작은 의례를 거쳐 결혼의 순간, 자손의 탄생 및 온갖 경조사가 교회 안에서 이뤄지며 폴란드 내의 거의 모든 매장지를 교회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사후에는 장례를 통해 교회에 귀속된다. 그런고로 폴란드에 오시면 꼭 성당을 방문해 보시길 빈다.
그리고 한가지 더, 폴란드에서 묘지는 무섭고 괴기한 공간이 아닌, 아름답고 꽃과 초로 소중하게 치장된 예쁜 공원과 같다. 밤에 가면 특히 더 예쁜데, 누가 그렇게 잘 관리를 하는지, 늘 생생한 꽃이 무덤에 놓여져 있고, 색색의 초가 켜져 환상적인 느낌까지 난다. 죽은 사람이 길을 잃지 않고 잘 찾아 갈수 있도록 불을 밝힌 다고 한다.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바르샤바 여행에 대해 말씀 드리기에 전에 먼저 여행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 보실것을 추천드린다.
내 경우 여행을 하는 목적과 방식은 단순하다. - 여유를 가지고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는 것이다. 따라서 박물관, 무슨 건물등 유명한 곳을 빡센 일정을 가지고 돌아 보지는 않는다. 좀 쉬엄 쉬엄 다니는 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럼 뭘 하느냐.... 하루에 한 가지의 계획만 세우고 나머지 시간은 거의 앉아서 놀거나 걸어 다니면서 사람들을 구경한다.
트램을 타고 끝에서 끝까지 가면서 사람들 사는 집도 구경하고, 공원도 구경하고.....
각자 나름의 여행 방법이 있으실텐데, 미리 말씀 드리지만, 이 글은 지극히 내 취향에 의해 주관적인 입장에서 씌여진 글이므로 빡센 여행 일정을 소화하고자 하시는 분께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겨울의 폴란드를 무척 사랑한다.
왜냐.... 폴란드에는 세계 어디에 내어놔도 뒤지지 않는 음주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술의 종류도 다양하고 안주도 겨울에 술마시기 알맞는 칼로리를 갖고 있다.
이왕 오실꺼 눈이 펑펑 내려서 발목까지 쌓인 12월에 오시면 더욱 좋다.
하얗게 눈이 내린 겨울의 와젠키 공원은 너무나 아름답다.
추운 겨울에 공원을 산책하다 까페에 들어가 보르시치 수프에 삶은 계란 띄운걸 드시면 진짜 죽인다. 차차 설명 드리기로 하고....
겨울에 쇼팽 공항에 내리신 경우..... 숙소를 어디로 잡을까 고민이 되실 텐데....
듣기론 한인 민박에 많이 가시는 것 같다. 한식은 당분간 멀리해도 갠츈하다~ 또는 영어가 조금 된다 하시면 현지 호텔이나 B&B를 추천하고 싶다. (지나가면서 나중에 폴란드를 뜨게 되더라도 바르샤바 오면 꼭 여기서 묵어야지! 하고 마음에 점찍어둔 작은 호텔이 있는데 와젠키 공원 가는 길에 있고 버스도 많이 다니고 주변 산책하기에도 매우 괜찮은 지점에 있으니 관심이 있으신 분은 연락을 주시면 메일로 알려 드리겠음) 호텔이 부담스러우신 분들은 구시가 내에 있는 Guest house를 추천, 여행객으로서 오래된 건물 내부를 볼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다. 구시가에 있는 건물들은 바르샤바 내에서도 엄청난 렌트비를 자랑하는 곳으로 건물 외부도 예쁘고 내부는... 좀 오래 되었지만 엄청 호화스럽게 장식해 놓은 곳들도 많다. 구글에서 구시가 내부에 B&B 조금만 찾아봐도 금방 찾으실수 있으므로 별다른 추천사 없이 그냥 강추.....
아! 그 전에 공항에 내리시면 꼭 일정에 따라 정액 교통권을 사실것을 당부 드린다.
버스 정류장에 기계가 있는데.... 카드로도 구매 가능하니 3일권 또는 일주일권을 사시면 그 기간 내에는 무한대로 대중 교통을 이용하실 수 있는 여행객 필수품이다.
눈 내리는 바르샤바, 하늘도 우중충 하고 마음도 싱숭생숭 하게 만드는 날씨.... 즐겨 주시면 된다. 웰컴투 동유럽~ 우중충 하면 할수록 동유럽의 애수를 듬뿍 느낄 수 있다.
자 이제 어디로 갈까.... 동유럽의 거리를 걸어 보셔야겠지...
폴란드의 겨울을 보시려거든 내복, 스웨터 양말 두겹 오리털 파카에 목도리 장갑 모자는 필수다. 신발도 따뜻한 걸로 골라 오셔야 함!
바르샤바를 여행 하시기 전에 살펴보시면 좋은 홈페이지가 있다.
http://warszawa.jakdojade.pl/
대중 교통 안내 사이트다. 가고 싶은 곳 입력해도 되고 마우스로 클릭하셔도 된다. 영어로도 서비스 제공이 되니 입력하면 소요 시간 까지 계산 해서 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본인의 생활에도 지대한 도움을 주는 사이트니 요긴하게 사용 하시길~
잘 무장을 하셨다면 Mokotowska로 가셔서 ( 지하철의 경우 폴리테크니카 역에서 내리시고, 트램의 경우, 4,10,14,18번을 타고 zbawiciela로 가시면 됨) 거리를 걸어 가시면 됨. 좁은 골목 양쪽으로 사회주의 시절(대량의 성냥갑 같은 아파트 지어 때려 넣던 시대 걸어 가다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남) 에도 다행히 살아 남은 (나름) 아름다운 고전적인 건물들로 가득차 있다. 중간 중간에 작은 까페 보이면 들어가셔서 차 한잔으로 몸을 녹이시라.... 아직 술을 마시기엔 이르다. 왜냐면 우리는 좀 더 걸어야 하기 때문~
배가 고프시더라도 조금만 참으시면 진수성찬이 기다리고 있다. 힘들 내시길~
쭉 걸어 가다보면 큰 광장이 나온다. 돔이 있는 교회도 나오고.... 주말이면 결혼식으로 북적거리는 교회다. 살짝 사진도 찍고 구경하시다 오른편으로 길을 건너 쭉 걸어 가시면 된다.
2009년부터 들어 온다 만다 말만 많은 루이비통 매장 없는 폴란드 내에서도 나름 럭셔리한 거리다. 조금만 더 걸어 가시면 유럽 내에서도 상위권의 지대를 자랑한다는 신세계 거리가 나온다. (Nowy Swiat) 겨울에는 전구로 예쁘게 장식해 놓는데 잘 단장된 거리를 걸으시며 유럽에 온 느낌을 느끼시면 된다. 역시 주변에 까페 및 식당 많음, 어디든 들어가 앉으셔서 몸을 녹이시거나 쉬시면 됨. 그리고 신세계 거리에는 수제품을 파는 가게들이 있는데, 가방이나 신발등 널리 알려진 브랜드가 아닌, 수공예 장인이 만들어 파는 작은 가게들이 있다. 가격은.... 일반 제품에 비하면 비싸고 명품에 비교하면 싼 정도.... 예쁜 가방 파는 곳이 군데군데 있다. 발견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정도의 기분으로 둘러보시면 된다. 꼭 봐야 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니까~ 내 눈에 들어오는 것들만 보셔도 충분한 곳이다. 신세계 거리를 지나 길을 걸으면 볼거리가 더 많이 나온다.
모르고 지나치면 분간하기 힘든 바르샤바 대학교가 오른쪽에 나오고 왼쪽에 굉장히 유명한 성당도 있다. 또 무슨 유명한 장군이라는 동상도 있다. 바르샤바 대학교는 안쪽 건물이 아기자기하니 예쁘다. 좀 작긴 하지만.... 대학별로 여기저기 떨어져 있어 거기에 있는 건 문과던가 사회과학 대던가... 그렇던데.... 아까 우리가 시작한 지점에 공대가 있다. (폴리테크니카) 바르샤바 대학을 지나 조금만 더 걸어가면 대통령 궁이 나온다. 여기는 알기가 매우 쉽다. 왜냐면 아직도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중이기 때문, 무슨 시위대냐면.... 전 대통령 사고 관련 사실 규명회 그리고 전 대통령 유해 바벨성 안장 문제다.. 크라코프에 있는 바벨성은 역사적으로 왕들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안장전 늘 시간을 두고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결정되곤 하였는데, 이번 경우 카친스키의 쌍둥이 형의 제안으로 크라코프 시장의 찬성, 추기경의 동조 등으로 장지로 급격하게 확정 되었다.
이 후 국민들의 반대가 줄을 잇기 시작했다. 현재까지도 카친스키의 자격여부를 두고 온-오프 라인에서 말이 많다. 폴란드 사람과 대화를 하고 싶다면, '바벨성에 너네 대통령 안치 되기로 확정 된거야?' 하고 물어보면 된다. 그럼 그 사람이 알고 있는 역사 지식도 들을 수 있고 전 대통령의 과거 정치적 행보 등등도 쭉 나열하면서 자기 생각을 설명해 줄 것이다. 몇명과 얘기를 나누고 나면 어느정도 전 대통령이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그후에 인터넷을 검색하면 더 흥미로실 듯 하다. 이 논란에 중심에 카친스키의 부인이 있다. 전 영부인의 유해가 바벨성에 같이 모셔졌다는 사실이 폴란드 사람들은 이해 하기 힘들것 같다. 왜냐면 지난 왕들조차 왕비와 함께 안치된 경우가 극히 적다는 게 그 이유다. 카친스키 형제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굉장히 대외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이 형제가 그런거에 별로 신경쓰는 사람들은 아닌 듯.... 여기서 좀 더 들어가면 약간 복잡하긴 한데 시위대의 목적만 알고 봐도 왕궁 앞 시위대를 보는 느낌이 다르실 것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쇼팽 음악 학교(대학) 을 지나게 되는데 가끔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곤 한다. 아! 그리고 방금 지나온 곳곳 마다 음악 의자가 설치 되어 있는데 앉아서 음악 감상하기엔.... 날씨가 너무 추우실 듯~ 요건 여름에 하시면 좋겠다. 왜냐면 우리는 곧 폴카를 감상 하실 것이기 때문~ 자 드디어 우리는 구시가지에 도착했다.
크라코프에서 바르샤바로 수도를 이전한 지그문트 3세의 석상과 눈 앞의 왕궁, 그림 같은 풍경을 감상 하시라. 내가 생각해도 구 시가지의 입구는 정말 예쁘다. 동화에 나오는 풍경 같이 예쁘다. (그렇다고 너무 기대 하시지는 마시길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기 땜시...)
자 왜 동화에 나오는 것처럼 예쁠까?
왜냐면 폴란드의 구시가지는 그림을 토대로 재 건설된 곳이기 때문이다.
비스와 강을 사이에 두고 독일군과 러시아 군이 대치하고 있을때 폴란드 시민들은 곧 독일이 물러 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지막 기세를 몰아 우리가 물리치자~ 며 봉기한다. 물론 협력군이 도와 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강건너 러시아 군은 팔짱끼고 구경만한다. 후퇴하는 입장에서 이미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독일군은 보복성 조치로 시민군, 민간인 구분 없이 강 서쪽을 초토화 시킨다. 모든 건물을 무너 뜨리고 그 위를 탱크가 밝고 지나갔다고 한다.
바르샤바 북쪽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가 있다. 수레 위에 수 많은 십자가가 조각 되어 있는 모습이다. 이 근방에 게토가 있었다고 하는데 벽면을 따라 길에 표시를 해놨고, 처형장이 있던 자리에도 기념비가 있다.
각설하고 이후 폴란드 사람들은 기금을 모아 시민들의 힘으로 전쟁 전과 똑같은 모양의 구시가지를 만들고자 하였는데, 사진도 제대로 없던 시절에 전쟁전의 모습이 완벽히 재현되기란 힘든일이다. 결국 그 전에 구시가지를 그렸던 화가들의 작품을 모아 그 모습을 토대로 재건하였는데 그 때문일까 예전보다 더 아기자기하고 그림 같은 모습의 구시가지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폴란드 사람들의 구시가지에 대한 애정에 힘입어 복원 유산으로서는 유일하게 폴란드의 구시가지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너무나 수고 하셨는데, 추운 몸을 녹여줄 최고의 마실거리가 광장에 준비 되어 있다. 아무 골목으로나 들어가 조금만 걷다보면 광장이 나오는데,작은 장터가 마련 되어 있을 것이다. 털모자도 팔고 장갑도 팔고 하는데, 모퉁이 와인 파는 곳이 있다. 한잔 사서 손에 들고 마시면 천상의 맛을 느끼실 수 있을듯, 추운 겨울날 긴 시간 걸은 후 마시는 뜨거운 와인은 생명수와도 같다. 특히 그쟈네 와인이라고 하는 이 와인은 각종 허브와 함께 데워 그 향이 더 독특하다. 말이 필요 없다. 그 근방에 치즈 얇고 동그랗게 썰어 팔텐데 함께 먹으면 그 맛이 죽인다. 폴란드를 떠나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 실듯....
기억이란 이렇게 오감으로 기억하시는게 최고다. 추운 날씨에 걸어와 피곤한 몸이 따뜻한 와인과 짭쪼름한 치즈로 노곤노곤해 지는 그 느낌!!! 바르샤바의 겨울을 사랑하시게 될것이다.
(아 너무 광고성.... 무슨 홈쇼핑 채널 보는 느낌이....)
이제 식사를 하시러 갈꺼다. 광장을 지나 모퉁이를 돌아 나서면 성벽이 둥그렇게 나올텐데 성벽을 따라 걷다보면 작은 요새 같이 생긴 지점에 나가는 문이 있다.
여기를 나가 바로 왼쪽을 보면 코가 긴 못생긴 아저씨가 공산당 모자를 쓰고 있는 그림이 있는 레스토랑이 있다.
우리는 여기를 가기위해 지금까지 긴 거리를 걸어 온것이다.
들어 가셔서 인원을 말씀 하시고 자리에 앉으면 시끌 벅적한 분위기에 놀라게 되실 것이다.
같이 즐기시면 된다. 폴카를 연주하는 악사들이 자리를 돌아가며 연주할 때 함께 크게 웃고 떠들면 된다. 뭘 멀을까 고민이 되시겠지? 폴란드에 오셨으니 꼭 먹어 보셔야 할 음식이 몇가지 있다. 여기선 그 중 골롱카를 드실 것이다.
양이 엄청나니 감안을 하시고, 사이드로 빵과 샐러드가 나온다. 골롱카를 중심으로 폴란드의 대표 음식인 돼지고기와 감자를 취향대로 골라서 드셔보시면 된다.
자 그럼 뭘 마실까~
우선 맥주를 맛보시면 된다. 우리는 곧 다른 술을 마실것이기 때문~ 보드카도 마실것이니 걱정 마시라~ 나는 술이 꽤 세다! 하시는 분들은 샷으로 보드카를 시켜서 드셔도 좋겠다.
단 나처럼 보드카 두잔에 쓰러지는 분들은 참아 주셨으면 좋겠다. 겨울의 폴란드 혹독하다. (길거리에서 주무시면 얼어 죽어요~)
우리가 어디를 얼만큼 걸었나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서 준비 했다.
아래의 지도를 참고해 주시라! 우리는 A 에서 시작해서 B까지 걸어왔다. 631 이라고 씌여진 지점부터가 신세계 거리이고 사실 구시가지는 얼마 안된다.
(트램 4번을 타시면 629도로를 지나 구시가 바로 앞에서 내릴 수도 있다. 돌아 가실 때는 구시가 입구에서 양쪽 계단을 따라 내려가 트램을 타고 이동하시면 되겠다.)
여기서부터는 읽어도 되고 말아도 되는 이야기~
바르샤바는 인어의 도시라는 말이 있다. 바르샤바의 인어는 굉장히 호전적인 모습으로 한손엔 방배 다른 한손엔 칼을 들고 있는데, 폴란드 여성들은 인어의 후손이라 특히 더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호전적인 성향도 그 때문인가?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다들 기가 세신듯...)
이 도시에 대해 내가 들은 이야기는 세 가지가 있는데, 이를 적어 보고자 한다.
발틱해에 예쁜 자매 인어가 살았다.
언니는 덴마크로 가서 코펜하겐에 앉아 전설이 되었고 둘째 인어는 그단스크로 가서 비스와 강을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가는 도중 현재 바르샤바의 구시가 근처에 앉아서 쉬게 되었고 그 지역의 아름다움에 반해 계속 기거하기로 결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지역 어부들은 누군가가 자기 그물에서 물고기를 놔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 내려고 노력했다. 당연 인어라고는 생각 하지 못했던 어부들은 그 인어의 아름다운 노래를 듣게 되었고, 결코 그녀를 해치지 않으리라 맹세하게 되었고 그 지역은 밤마다 인어의 아름다운 노래로 가득차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돈 많은 탐욕스러운 상인이 인어를 발견했는데 이 인어를 잡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많은 돈을 벌수 있을꺼라는 생각에 숲으로 유인하여 잡게 된다. 인어의 울부짖음을 듣게 된 어부의 아들이 그녀를 구해주었고 물로 돌아가며 인어는 이 지역의 수호를 약속 하였고, 이 땅이 후에 번영하여 사랑받는 곳이 되리라 축복했다.... 는 것이 첫번째 전설이고,
두 번째 전설은 지명에 대한 것인데 아마 이미 아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어느날 Wars 라는 어부가 비스와 강에서 Sawa라는 인어를 낚았다. 이 둘은 결혼해서 자식을 낳았는데 훗날 인어는 물속으로 돌아갔고 남겨진 어부와 그 아이들의 눈물로 도시를 일궜다고 한다.
세 번째 전설은 조금 더 구체적이다.
Kazimierz Odnowiciel이라는 왕이 당시의 수도였던 Krakow(크라코프)부터 북쪽의 Gniezno(그니에즈노) 까지 비스와 강을 따라 여행을 하고 있었다. 말린 음식으로 이뤄진 식단에 지쳤던 왕은 신선한 우유와 생선이 너무나 그리웠는데 마침 강가에 있는 허름식 집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집안에 있던 여주인은 따뜻하게 왕을 환대 하며 남편의 이름은 Piotr Rybak (어부라는 뜻) 인데, 곧 남편이 신선한 생선과 돌아올 것이니 기다려 달라고 말했고 곧 어부가 돌아오자 그의 아내는 생선을 요리해 세 사람은 맛있는 저녁을 함께 했다.
피오트르는 왕에게 얼마전에 태어난 쌍둥이 남매가 있는데 이 근처에는 교회가 없고 신부님이 방문하는 일도 드문데 쌍둥이가 태어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방문하여 언제 또 찾아 올지 몰라 쌍둥이에게 세례를 주는 일이 너무나 어렵다고 얘기 했고, 그들의 따뜻하고 정성어린 대접과 신앙심에 깊이 감동한 왕은 떠나기전에 금화를 테이블위에 내려 놓았다.
어부 부부가 폴란드 전통에 따라 외부 사람을 대접하는데 있어 어떠한 대가도 받을 수 없다고 고집하자 왕은 간절히 부탁하며 이 쌍둥이의 대부가 될수 있도록 요청하고는 이들이 세계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 하겠다고 했다.
두달 후 왕은 크라코프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그 어부 부부에게 들렀고 이번에는 여러척의 선박과 함께 성직자를 대동하여 쌍둥이 남매에게 세례를 주며 남자 아이에게는 Wars ,여자아이에게는 Sawa라는 이름을 주었다. 또한 어부에게 성을 하사하며 앞으로는 바르스와 사바의 아버지이자 영예 스러운 어부로서 Piotr Warsz라 불리게 될 것임과 주변의 숲과 지역은 그의 이름하에 놓이게 될 것임을 선언하였다. 시간이 지나며 피오트르의 일족은 점차 늘어나 일대 지역을 다스리게 되었고 이 지역은 Warsz에게 속한 땅이라는 Warszawa로 불리우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어제는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식이 있었다. 수 많은 폴란드인이 로마를 찾았고 그 중 어떤 사람은 폴란드 부터 로마까지 걸어서 갔다고 하는데 3월에 출발해서 겨우 시간을 맞출수 있었다는 인터뷰를 봤다.
전 교황에 대한 폴란드 사람들의 애정은 각별하다. 어제부터 개인 발코니, 거리 곳곳 마다 국기가 게양 되었고 트램 및 버스에도 국기가 걸려 있다. 오늘 아침 성당 앞에 걸린 미사 안내문을 보니 새벽부터 미사가 시작되어, 오후 9시에 있는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강연까지 하루 종일 프로그램이 준비 되어 있었다. 바르샤바 안에 성당이 얼마나 있느냐....하면 어느 방향으로든 5분만 걸으면 성당을 찾아 볼수 있다. 구시가에서는 1~2분만 걸어도 성당이 나타나는 데, 아마 폴란드 내에 있는 거의 모든 성당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준비 했을 테니 범 국가적인 행사라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
폴란드의 성당은 프랑스나 독일과는 그 느낌이 무척 다른데 성당 건축에 대한 그 지역 사람들의 시각이 녹아 있다고 한다. 약 95%의 인구가 가톨릭 신자라는 폴란드, 유럽 어디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폴란드 사람들 또한 교회와 인생의 여정을 함께 한다. 크고 작은 의례를 거쳐 결혼의 순간, 자손의 탄생 및 온갖 경조사가 교회 안에서 이뤄지며 폴란드 내의 거의 모든 매장지를 교회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사후에는 장례를 통해 교회에 귀속된다. 그런고로 폴란드에 오시면 꼭 성당을 방문해 보시길 빈다.
그리고 한가지 더, 폴란드에서 묘지는 무섭고 괴기한 공간이 아닌, 아름답고 꽃과 초로 소중하게 치장된 예쁜 공원과 같다. 밤에 가면 특히 더 예쁜데, 누가 그렇게 잘 관리를 하는지, 늘 생생한 꽃이 무덤에 놓여져 있고, 색색의 초가 켜져 환상적인 느낌까지 난다. 죽은 사람이 길을 잃지 않고 잘 찾아 갈수 있도록 불을 밝힌 다고 한다.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바르샤바 여행에 대해 말씀 드리기에 전에 먼저 여행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 보실것을 추천드린다.
내 경우 여행을 하는 목적과 방식은 단순하다. - 여유를 가지고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는 것이다. 따라서 박물관, 무슨 건물등 유명한 곳을 빡센 일정을 가지고 돌아 보지는 않는다. 좀 쉬엄 쉬엄 다니는 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럼 뭘 하느냐.... 하루에 한 가지의 계획만 세우고 나머지 시간은 거의 앉아서 놀거나 걸어 다니면서 사람들을 구경한다.
트램을 타고 끝에서 끝까지 가면서 사람들 사는 집도 구경하고, 공원도 구경하고.....
각자 나름의 여행 방법이 있으실텐데, 미리 말씀 드리지만, 이 글은 지극히 내 취향에 의해 주관적인 입장에서 씌여진 글이므로 빡센 여행 일정을 소화하고자 하시는 분께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겨울의 폴란드를 무척 사랑한다.
왜냐.... 폴란드에는 세계 어디에 내어놔도 뒤지지 않는 음주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술의 종류도 다양하고 안주도 겨울에 술마시기 알맞는 칼로리를 갖고 있다.
이왕 오실꺼 눈이 펑펑 내려서 발목까지 쌓인 12월에 오시면 더욱 좋다.
하얗게 눈이 내린 겨울의 와젠키 공원은 너무나 아름답다.
추운 겨울에 공원을 산책하다 까페에 들어가 보르시치 수프에 삶은 계란 띄운걸 드시면 진짜 죽인다. 차차 설명 드리기로 하고....
겨울에 쇼팽 공항에 내리신 경우..... 숙소를 어디로 잡을까 고민이 되실 텐데....
듣기론 한인 민박에 많이 가시는 것 같다. 한식은 당분간 멀리해도 갠츈하다~ 또는 영어가 조금 된다 하시면 현지 호텔이나 B&B를 추천하고 싶다. (지나가면서 나중에 폴란드를 뜨게 되더라도 바르샤바 오면 꼭 여기서 묵어야지! 하고 마음에 점찍어둔 작은 호텔이 있는데 와젠키 공원 가는 길에 있고 버스도 많이 다니고 주변 산책하기에도 매우 괜찮은 지점에 있으니 관심이 있으신 분은 연락을 주시면 메일로 알려 드리겠음) 호텔이 부담스러우신 분들은 구시가 내에 있는 Guest house를 추천, 여행객으로서 오래된 건물 내부를 볼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다. 구시가에 있는 건물들은 바르샤바 내에서도 엄청난 렌트비를 자랑하는 곳으로 건물 외부도 예쁘고 내부는... 좀 오래 되었지만 엄청 호화스럽게 장식해 놓은 곳들도 많다. 구글에서 구시가 내부에 B&B 조금만 찾아봐도 금방 찾으실수 있으므로 별다른 추천사 없이 그냥 강추.....
아! 그 전에 공항에 내리시면 꼭 일정에 따라 정액 교통권을 사실것을 당부 드린다.
버스 정류장에 기계가 있는데.... 카드로도 구매 가능하니 3일권 또는 일주일권을 사시면 그 기간 내에는 무한대로 대중 교통을 이용하실 수 있는 여행객 필수품이다.
눈 내리는 바르샤바, 하늘도 우중충 하고 마음도 싱숭생숭 하게 만드는 날씨.... 즐겨 주시면 된다. 웰컴투 동유럽~ 우중충 하면 할수록 동유럽의 애수를 듬뿍 느낄 수 있다.
자 이제 어디로 갈까.... 동유럽의 거리를 걸어 보셔야겠지...
폴란드의 겨울을 보시려거든 내복, 스웨터 양말 두겹 오리털 파카에 목도리 장갑 모자는 필수다. 신발도 따뜻한 걸로 골라 오셔야 함!
바르샤바를 여행 하시기 전에 살펴보시면 좋은 홈페이지가 있다.
http://warszawa.jakdojade.pl/
대중 교통 안내 사이트다. 가고 싶은 곳 입력해도 되고 마우스로 클릭하셔도 된다. 영어로도 서비스 제공이 되니 입력하면 소요 시간 까지 계산 해서 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본인의 생활에도 지대한 도움을 주는 사이트니 요긴하게 사용 하시길~
잘 무장을 하셨다면 Mokotowska로 가셔서 ( 지하철의 경우 폴리테크니카 역에서 내리시고, 트램의 경우, 4,10,14,18번을 타고 zbawiciela로 가시면 됨) 거리를 걸어 가시면 됨. 좁은 골목 양쪽으로 사회주의 시절(대량의 성냥갑 같은 아파트 지어 때려 넣던 시대 걸어 가다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남) 에도 다행히 살아 남은 (나름) 아름다운 고전적인 건물들로 가득차 있다. 중간 중간에 작은 까페 보이면 들어가셔서 차 한잔으로 몸을 녹이시라.... 아직 술을 마시기엔 이르다. 왜냐면 우리는 좀 더 걸어야 하기 때문~
배가 고프시더라도 조금만 참으시면 진수성찬이 기다리고 있다. 힘들 내시길~
쭉 걸어 가다보면 큰 광장이 나온다. 돔이 있는 교회도 나오고.... 주말이면 결혼식으로 북적거리는 교회다. 살짝 사진도 찍고 구경하시다 오른편으로 길을 건너 쭉 걸어 가시면 된다.
2009년부터 들어 온다 만다 말만 많은 루이비통 매장 없는 폴란드 내에서도 나름 럭셔리한 거리다. 조금만 더 걸어 가시면 유럽 내에서도 상위권의 지대를 자랑한다는 신세계 거리가 나온다. (Nowy Swiat) 겨울에는 전구로 예쁘게 장식해 놓는데 잘 단장된 거리를 걸으시며 유럽에 온 느낌을 느끼시면 된다. 역시 주변에 까페 및 식당 많음, 어디든 들어가 앉으셔서 몸을 녹이시거나 쉬시면 됨. 그리고 신세계 거리에는 수제품을 파는 가게들이 있는데, 가방이나 신발등 널리 알려진 브랜드가 아닌, 수공예 장인이 만들어 파는 작은 가게들이 있다. 가격은.... 일반 제품에 비하면 비싸고 명품에 비교하면 싼 정도.... 예쁜 가방 파는 곳이 군데군데 있다. 발견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정도의 기분으로 둘러보시면 된다. 꼭 봐야 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니까~ 내 눈에 들어오는 것들만 보셔도 충분한 곳이다. 신세계 거리를 지나 길을 걸으면 볼거리가 더 많이 나온다.
모르고 지나치면 분간하기 힘든 바르샤바 대학교가 오른쪽에 나오고 왼쪽에 굉장히 유명한 성당도 있다. 또 무슨 유명한 장군이라는 동상도 있다. 바르샤바 대학교는 안쪽 건물이 아기자기하니 예쁘다. 좀 작긴 하지만.... 대학별로 여기저기 떨어져 있어 거기에 있는 건 문과던가 사회과학 대던가... 그렇던데.... 아까 우리가 시작한 지점에 공대가 있다. (폴리테크니카) 바르샤바 대학을 지나 조금만 더 걸어가면 대통령 궁이 나온다. 여기는 알기가 매우 쉽다. 왜냐면 아직도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중이기 때문, 무슨 시위대냐면.... 전 대통령 사고 관련 사실 규명회 그리고 전 대통령 유해 바벨성 안장 문제다.. 크라코프에 있는 바벨성은 역사적으로 왕들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안장전 늘 시간을 두고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결정되곤 하였는데, 이번 경우 카친스키의 쌍둥이 형의 제안으로 크라코프 시장의 찬성, 추기경의 동조 등으로 장지로 급격하게 확정 되었다.
이 후 국민들의 반대가 줄을 잇기 시작했다. 현재까지도 카친스키의 자격여부를 두고 온-오프 라인에서 말이 많다. 폴란드 사람과 대화를 하고 싶다면, '바벨성에 너네 대통령 안치 되기로 확정 된거야?' 하고 물어보면 된다. 그럼 그 사람이 알고 있는 역사 지식도 들을 수 있고 전 대통령의 과거 정치적 행보 등등도 쭉 나열하면서 자기 생각을 설명해 줄 것이다. 몇명과 얘기를 나누고 나면 어느정도 전 대통령이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그후에 인터넷을 검색하면 더 흥미로실 듯 하다. 이 논란에 중심에 카친스키의 부인이 있다. 전 영부인의 유해가 바벨성에 같이 모셔졌다는 사실이 폴란드 사람들은 이해 하기 힘들것 같다. 왜냐면 지난 왕들조차 왕비와 함께 안치된 경우가 극히 적다는 게 그 이유다. 카친스키 형제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굉장히 대외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이 형제가 그런거에 별로 신경쓰는 사람들은 아닌 듯.... 여기서 좀 더 들어가면 약간 복잡하긴 한데 시위대의 목적만 알고 봐도 왕궁 앞 시위대를 보는 느낌이 다르실 것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쇼팽 음악 학교(대학) 을 지나게 되는데 가끔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곤 한다. 아! 그리고 방금 지나온 곳곳 마다 음악 의자가 설치 되어 있는데 앉아서 음악 감상하기엔.... 날씨가 너무 추우실 듯~ 요건 여름에 하시면 좋겠다. 왜냐면 우리는 곧 폴카를 감상 하실 것이기 때문~ 자 드디어 우리는 구시가지에 도착했다.
크라코프에서 바르샤바로 수도를 이전한 지그문트 3세의 석상과 눈 앞의 왕궁, 그림 같은 풍경을 감상 하시라. 내가 생각해도 구 시가지의 입구는 정말 예쁘다. 동화에 나오는 풍경 같이 예쁘다. (그렇다고 너무 기대 하시지는 마시길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기 땜시...)
자 왜 동화에 나오는 것처럼 예쁠까?
왜냐면 폴란드의 구시가지는 그림을 토대로 재 건설된 곳이기 때문이다.
비스와 강을 사이에 두고 독일군과 러시아 군이 대치하고 있을때 폴란드 시민들은 곧 독일이 물러 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지막 기세를 몰아 우리가 물리치자~ 며 봉기한다. 물론 협력군이 도와 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강건너 러시아 군은 팔짱끼고 구경만한다. 후퇴하는 입장에서 이미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독일군은 보복성 조치로 시민군, 민간인 구분 없이 강 서쪽을 초토화 시킨다. 모든 건물을 무너 뜨리고 그 위를 탱크가 밝고 지나갔다고 한다.
바르샤바 북쪽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가 있다. 수레 위에 수 많은 십자가가 조각 되어 있는 모습이다. 이 근방에 게토가 있었다고 하는데 벽면을 따라 길에 표시를 해놨고, 처형장이 있던 자리에도 기념비가 있다.
각설하고 이후 폴란드 사람들은 기금을 모아 시민들의 힘으로 전쟁 전과 똑같은 모양의 구시가지를 만들고자 하였는데, 사진도 제대로 없던 시절에 전쟁전의 모습이 완벽히 재현되기란 힘든일이다. 결국 그 전에 구시가지를 그렸던 화가들의 작품을 모아 그 모습을 토대로 재건하였는데 그 때문일까 예전보다 더 아기자기하고 그림 같은 모습의 구시가지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폴란드 사람들의 구시가지에 대한 애정에 힘입어 복원 유산으로서는 유일하게 폴란드의 구시가지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너무나 수고 하셨는데, 추운 몸을 녹여줄 최고의 마실거리가 광장에 준비 되어 있다. 아무 골목으로나 들어가 조금만 걷다보면 광장이 나오는데,작은 장터가 마련 되어 있을 것이다. 털모자도 팔고 장갑도 팔고 하는데, 모퉁이 와인 파는 곳이 있다. 한잔 사서 손에 들고 마시면 천상의 맛을 느끼실 수 있을듯, 추운 겨울날 긴 시간 걸은 후 마시는 뜨거운 와인은 생명수와도 같다. 특히 그쟈네 와인이라고 하는 이 와인은 각종 허브와 함께 데워 그 향이 더 독특하다. 말이 필요 없다. 그 근방에 치즈 얇고 동그랗게 썰어 팔텐데 함께 먹으면 그 맛이 죽인다. 폴란드를 떠나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 실듯....
기억이란 이렇게 오감으로 기억하시는게 최고다. 추운 날씨에 걸어와 피곤한 몸이 따뜻한 와인과 짭쪼름한 치즈로 노곤노곤해 지는 그 느낌!!! 바르샤바의 겨울을 사랑하시게 될것이다.
(아 너무 광고성.... 무슨 홈쇼핑 채널 보는 느낌이....)
이제 식사를 하시러 갈꺼다. 광장을 지나 모퉁이를 돌아 나서면 성벽이 둥그렇게 나올텐데 성벽을 따라 걷다보면 작은 요새 같이 생긴 지점에 나가는 문이 있다.
여기를 나가 바로 왼쪽을 보면 코가 긴 못생긴 아저씨가 공산당 모자를 쓰고 있는 그림이 있는 레스토랑이 있다.
우리는 여기를 가기위해 지금까지 긴 거리를 걸어 온것이다.
들어 가셔서 인원을 말씀 하시고 자리에 앉으면 시끌 벅적한 분위기에 놀라게 되실 것이다.
같이 즐기시면 된다. 폴카를 연주하는 악사들이 자리를 돌아가며 연주할 때 함께 크게 웃고 떠들면 된다. 뭘 멀을까 고민이 되시겠지? 폴란드에 오셨으니 꼭 먹어 보셔야 할 음식이 몇가지 있다. 여기선 그 중 골롱카를 드실 것이다.
양이 엄청나니 감안을 하시고, 사이드로 빵과 샐러드가 나온다. 골롱카를 중심으로 폴란드의 대표 음식인 돼지고기와 감자를 취향대로 골라서 드셔보시면 된다.
자 그럼 뭘 마실까~
우선 맥주를 맛보시면 된다. 우리는 곧 다른 술을 마실것이기 때문~ 보드카도 마실것이니 걱정 마시라~ 나는 술이 꽤 세다! 하시는 분들은 샷으로 보드카를 시켜서 드셔도 좋겠다.
단 나처럼 보드카 두잔에 쓰러지는 분들은 참아 주셨으면 좋겠다. 겨울의 폴란드 혹독하다. (길거리에서 주무시면 얼어 죽어요~)
우리가 어디를 얼만큼 걸었나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서 준비 했다.
아래의 지도를 참고해 주시라! 우리는 A 에서 시작해서 B까지 걸어왔다. 631 이라고 씌여진 지점부터가 신세계 거리이고 사실 구시가지는 얼마 안된다.
(트램 4번을 타시면 629도로를 지나 구시가 바로 앞에서 내릴 수도 있다. 돌아 가실 때는 구시가 입구에서 양쪽 계단을 따라 내려가 트램을 타고 이동하시면 되겠다.)
여기서부터는 읽어도 되고 말아도 되는 이야기~
바르샤바는 인어의 도시라는 말이 있다. 바르샤바의 인어는 굉장히 호전적인 모습으로 한손엔 방배 다른 한손엔 칼을 들고 있는데, 폴란드 여성들은 인어의 후손이라 특히 더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호전적인 성향도 그 때문인가?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다들 기가 세신듯...)
이 도시에 대해 내가 들은 이야기는 세 가지가 있는데, 이를 적어 보고자 한다.
발틱해에 예쁜 자매 인어가 살았다.
언니는 덴마크로 가서 코펜하겐에 앉아 전설이 되었고 둘째 인어는 그단스크로 가서 비스와 강을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가는 도중 현재 바르샤바의 구시가 근처에 앉아서 쉬게 되었고 그 지역의 아름다움에 반해 계속 기거하기로 결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지역 어부들은 누군가가 자기 그물에서 물고기를 놔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 내려고 노력했다. 당연 인어라고는 생각 하지 못했던 어부들은 그 인어의 아름다운 노래를 듣게 되었고, 결코 그녀를 해치지 않으리라 맹세하게 되었고 그 지역은 밤마다 인어의 아름다운 노래로 가득차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돈 많은 탐욕스러운 상인이 인어를 발견했는데 이 인어를 잡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많은 돈을 벌수 있을꺼라는 생각에 숲으로 유인하여 잡게 된다. 인어의 울부짖음을 듣게 된 어부의 아들이 그녀를 구해주었고 물로 돌아가며 인어는 이 지역의 수호를 약속 하였고, 이 땅이 후에 번영하여 사랑받는 곳이 되리라 축복했다.... 는 것이 첫번째 전설이고,
두 번째 전설은 지명에 대한 것인데 아마 이미 아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어느날 Wars 라는 어부가 비스와 강에서 Sawa라는 인어를 낚았다. 이 둘은 결혼해서 자식을 낳았는데 훗날 인어는 물속으로 돌아갔고 남겨진 어부와 그 아이들의 눈물로 도시를 일궜다고 한다.
세 번째 전설은 조금 더 구체적이다.
Kazimierz Odnowiciel이라는 왕이 당시의 수도였던 Krakow(크라코프)부터 북쪽의 Gniezno(그니에즈노) 까지 비스와 강을 따라 여행을 하고 있었다. 말린 음식으로 이뤄진 식단에 지쳤던 왕은 신선한 우유와 생선이 너무나 그리웠는데 마침 강가에 있는 허름식 집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집안에 있던 여주인은 따뜻하게 왕을 환대 하며 남편의 이름은 Piotr Rybak (어부라는 뜻) 인데, 곧 남편이 신선한 생선과 돌아올 것이니 기다려 달라고 말했고 곧 어부가 돌아오자 그의 아내는 생선을 요리해 세 사람은 맛있는 저녁을 함께 했다.
피오트르는 왕에게 얼마전에 태어난 쌍둥이 남매가 있는데 이 근처에는 교회가 없고 신부님이 방문하는 일도 드문데 쌍둥이가 태어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방문하여 언제 또 찾아 올지 몰라 쌍둥이에게 세례를 주는 일이 너무나 어렵다고 얘기 했고, 그들의 따뜻하고 정성어린 대접과 신앙심에 깊이 감동한 왕은 떠나기전에 금화를 테이블위에 내려 놓았다.
어부 부부가 폴란드 전통에 따라 외부 사람을 대접하는데 있어 어떠한 대가도 받을 수 없다고 고집하자 왕은 간절히 부탁하며 이 쌍둥이의 대부가 될수 있도록 요청하고는 이들이 세계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 하겠다고 했다.
두달 후 왕은 크라코프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그 어부 부부에게 들렀고 이번에는 여러척의 선박과 함께 성직자를 대동하여 쌍둥이 남매에게 세례를 주며 남자 아이에게는 Wars ,여자아이에게는 Sawa라는 이름을 주었다. 또한 어부에게 성을 하사하며 앞으로는 바르스와 사바의 아버지이자 영예 스러운 어부로서 Piotr Warsz라 불리게 될 것임과 주변의 숲과 지역은 그의 이름하에 놓이게 될 것임을 선언하였다. 시간이 지나며 피오트르의 일족은 점차 늘어나 일대 지역을 다스리게 되었고 이 지역은 Warsz에게 속한 땅이라는 Warszawa로 불리우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4/29/2011
인연 풀기
나는 먼저 손을 잘 내미는 편이다.
염치 없이 보일 때도 있지만, 나쁜 기분 같은 건 금방 풀어 버릴수 있다.
누구에게나 운수가 사나운 날이 있기 마련이고, 이유 없이 우울하고 짜증 나는 날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에서 나와 어느 정도 시간을 같이 해본 사람들은 아마 나를 변덕이 심하다고 생각 할 수도 있다. 화가 나서 씩씩 거릴땐 언제고 금새 풀어져서 살랑살랑 거린다고 말하는 것도 들어 본적이 있다. 심지어는 남자친구도 나에게 이해하기 참 힘든 성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요지는 간단하다.
나쁜 기분을 오래 끌고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상황이라면 관계를 단절할 필요도 있고 거리를 두는 방안도 나쁘지 않지만 항상 좋을 수 만은 없는게 사람 관계니까...
이 사람은 이래서 싫고 저 사람은 저래서 싫다 하고 배척하다보면 주변에 남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무인도에 들어가서 살게 아닌 이상 나는 이 곳에서 잘 적응하고 싶고 보다 많이 보고 배우고 느끼고 싶다. 그래서 마음을 잘 고쳐 먹게 되는 거다.
내가 너무 감정적으로 대했는지도 몰라........
그 사람 입장에서는 어쩌면 그게 최선 이었을지도.......
내가 먼저 다가가면 잘 지낼수 있을꺼야, 누구나 처음이 어려운 법이니까.... 하는 그런 생각에 서운하고 화가 나더라도 금새 다시 웃고 얘기 할 수 있는 것이다.
인연은 맺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던 내게 언젠가 외할머니께서 인연은 잘 푸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씀 하신적이 있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몰라 한 십 오년을 계속 곰 씹기만 했는데 얼마전에 머릿속에 전구가 켜지듯 이게 바로 그때 할머니께서 나에게 하고 싶으셨던 말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오늘 쓰는 이야기는 내가 어렸을때 우리 외할머니께 들었던, 인연을 푸는 것에 대해 깨닫게 된 계기에 대한 거다.
내가 어렸을때 외할머니께서는 참 정갈한 분이셨다.
며느리들에게는 달랐겠지만 나에게는 늘 정갈하고 단정한 모습의 외할머니로 기억에 남아있다. 할머니들은 곧잘 내가 이해할수 없는 나름의 인생철학에 대해 지나가듯 말씀해 주시곤 했는데, 친할머니는 관상에 관련해서 많은 얘기를 해 주셨고 외할머니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늘 혼잣말 하시듯 내게 조곤조곤 말씀해 주셨다.
시장에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시던 할머니께 빨리 집에 가자고 졸라대면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얘기하고 대해야 한다고 말씀 하셨었다.
경제학에서 늘 중요시여기는 효율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이처럼 비효율적인 삶이 없겠지만, (그런면에서 우리 친할머니는 참 효율적인 삶의 방식을 갖고 계셨던....) 그래서 외할머니를 떠올리면 늘 따뜻하고 다정하고 그리운 느낌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시장에서 오이지를 직접 담궈서 팔던 욕쟁이 할머니를 싫어 했던 내게 외할머니는 네가 이해할수 없는 세월을 보낸 사람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말씀 하셨었다..... 그리곤 늘 그 할머니에게 오이지를 사면서 말을 주고 받곤 하셨다. 내가 보기엔 대화라기보단 욕쟁이 할머니는 욕을 하고 외할머니는 웃으면서 들어주시는게 다였는데도 말이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365일 같은 자리에서 늘 변함없는 맛의 오이지를 파셨던 그 할머니의 삶속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인한 삶에 대한 자세가 들어 있어던것 같다. 그리고 외할머니께서는 그런 오이지 할머니를 잘 이해하고, 또 험난한 삶을 헤쳐온 같은 시대를 산 사람으로서 깊은 공감대를 느끼고 계셨을지도....
누군가가 할머니에게 욕을 해도, 소리를 질러도 '자네 왜 그리 화가 났는가~ ' 또는 '그런가? ' 하고 대답할 뿐 맞서지 않으셨다. 묵묵히 듣고 넘기시는 그 모습이 나는 참 답답했고 싫었다 그리고 화도 났다. 당신의 삶에 대한 자세가 바로 할머니께서 결코 평탄치만은 않은 삶을 살았던 이유였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절대 할머니처럼 살지 않을 꺼야!! 하는 말을 속으로 얼마나 되뇌였는지 모른다. 내가 화를 내고 할머니 역정을 들라치면 나를 말리며 하시던 말이 '그만 해라 저 사람 속은 얼마나 문드러지겄냐' 셨다.
그랬던 외할머니는 어느날..... 여느때와 같이 집에 돌아가셔서 술을 한잔 하시고는 방에 들어가 잠이 드셨고 그대로 영영 깨어나지 않으셨다. 별 다른 징후 없이 그대로 편안하게 가신 것이다. 염하는 사람이 한이 많으신 분들이 돌아가시면 염하기도 힘든데 보기 드문 호상이라고 이렇게 돌아가시는 것도 할머니 복이네요 라고 얘기 했다.
막상 내 이야기를 쓰려고 하니 자꾸만 외할머니의 기억이 떠오른다. 어쩌면 내 이야기 같은 건 외할머니의 인생에 비하면 너무나 사소하고 별것 아닌 일이겠지만 꽃이 지나간 자리에 그 향기가 남듯이 어쩌면 할머니께서 말씀 하셨던 의미에 대해서 그 실체가 없어도 향기로 짐작 할수 있듯 조금이나마 내 삶속에서 자꾸만 흐려져 가는 그 향기를 쫓아 가다보면 언젠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본 이야기로 들어 가자면......
지난주 주말에 있었던 일이다.
자전거를 타고 남자친구와 함께 haarlem에 갔다.
암스테르담 시내에서 자전거를 타기란 그렇게 쉬운일이 아니다. 좁은 골목, 수많은 사람들, 트램, 자동차, 버스 등 자전거의 속도에 비해 변수도 많고 위험도 많다.
1인용 자전거로도 지나가기 쉽지 않은 그 곳을 2인승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려니 엄청 부담이 되고 힘도 들었다. 자전거 자체도 무겁고, 페달도 둘이 맞춰서 밟아야 하고, 길이도 길어서 방향 전환도 쉽지 않고, 또 신호등은 어찌나 그리 많은지.....
그래도 다행인건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복잡한 도심에서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그리 많겠지....
우리는 일부러 먼길을 택했다. 숲도 거치고, 강변도 거쳐서 스키폴 공항 언저리를 지나 겨우겨우 도착했다. 따가운 햇살에 지친 우리는 시원한 맥주를 찾아 돌다가 눈에 들어오는 노천 까페에 자전거를 세우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10분이 지나고 주문을 받으러 오지 않는 젊은 웨이터들.... 인상도 험하고 등이 땀으로 젖은 상의....
그렇게 15분이 지났고.... 그냥 일어나서 다른데로 가자는 남자친구 말을 거부하고 벌떡 일어나 걸어가 화장실이 어디예요? 하고 묻고는 우리 조금 오래 기다렸는데 저기 테이블로 맥주 중간 사이즈로 두잔만 가져다 주세요 하고 말했다.
오케이~ 하길래 화장실에 갔다 테이블로 돌아갔더니 남자친구의 반응, 궁시렁궁시렁..... 주문하는데 15분 걸렸으니 가져다 주는 건 30분 걸리는거 아냐? 툴툴툴
하지만 맥주는 금방 가져다줬다. 둘다 워낙에 목이 말랐던지라 단숨에 컵을 비우고 계산 하려는데 또 10분이 지나도 오질 않았다.
다시 남자친구 툴툴툴.... 다른데 가자고 했잖아.....
여기 정말 서비스 별로다 네덜란드, 진짜 별로야....Haarlem 다시 안 올것 같아 툴툴툴
속으론 내가 동양인이라서 그런가? 왜 그럴까? 여행객이라 별로 돈 안될것 같아서 그런가? 하고 별 생각을 다했지만 아무말 않고 남자친구의 불평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옆 테이블에서 웃던 말던 손을 번쩍 들고 기다렸다. 웨이터는 이쪽을 확인하는 듯 고개를 돌렸다가....2~3분 후에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나는 무심결에 계산을 하는 웨이터에게 말을 걸었다.
' 이런 날씨에서 일하려면 힘들지? 특히 이 시간엔 눈도 부시고~ 일하는 사람도 별로 안보이는데 혼자서 여길 다 서빙하는 거임?' 했더니 금새 그 웨이터의 험악한 표정이 풀어지면서 너무 힘들다고 얘기 하면서 다른 애들이 일을 열심히 안해~ 나도 쉬고 싶어~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다시 ' 이런 날에 서비스 업이란 너무 잔혹해~ 그것도 마음 안맞는 동료랑...' 하고 어깨를 으쓱~ 했더니 활짝 웃어주더라 미안했는지 아까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라고 말하는데..... 그때까지의 부정적인 느낌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래 너무 무척 힘들꺼야....힘내 화이팅~ 하는 동감 같은게 느껴졌다.
까페를 떠나면서 남자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너의 마지막 그 태도가 의미하는바가 뭐야? 뭘 얻고자 한거지?
그때는 별 생각 없이 ' 나쁜 감정을 남기고 싶지가 않았어, 서로 말을 섞지 않았다면 아마 그 상태에서 끝났겠지~ 걔는 가뜩이나 힘들고 기분 나쁜데 웬 여자애가 와서 나한테 주문 안받는다고 뭐라고 했다. 하고 뇌에 입력 할꺼고 나는 네덜란드애들 진짜 짜증나 나 동양인이라 주문 늦게 받았나? 하는 생각 가지고 그 장소를 기억 했겠지~ 그러기 싫었어.
거기에 잠깐 앉아 있는 나도 짜증나는데 땡볕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일하는걔는 오죽 힘들었겠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그냥 말 걸어본거야. 어차피 나는 노는 중이고 걔는 일하는 중이니까.... 내가 배려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말거는 순간부터 이곳은 서비스 나쁘고 짜증났던 까페가 아니게 된거지 그래서 지금처럼 우리 둘다 좋은 기분으로 여길 떠날수 있는 거고~
나중에 이곳을 떠올려도 나는 기분이 좋을 것 같아. 누군가와 소통을 했던 장소로서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어. 동양인 손님으로서 차별 당했다고 오해하고는 기분 나빠하기 보다는 말이야~' 하고 대답했다. 별 생각 없이 말을 시작했는데 말하는 도중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그때 할머니가 그래서..... 그렇게 내게 말씀 하셨었구나! 하고..... 나는 방금 잘못 얽힐뻔한 인연의 고리를 잘 풀어서 놔주었구나! 하고 말이다.
남자친구는 흥미로운 시각이긴 한데 그렇게 작은 것까지 신경쓰고 살다보면 너무 피곤하지 않을까? 하고 말했다. 글쎄..... 그럴지도 하지만 난 방금 우리 외할머니가 말씀 하셨던게 뭔지 깨달았어. 내가 계속 이런 삶의 방식을 추구할지 아닐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방금 돌아가신 할머니랑 교감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좋기도 하고 알수 없는 느낌이 들기도 해
하고 대답한 다음 ????? 의 얼굴을 한 남자친구에게 웃어주고는 우리의 대화를 마쳤다.
내 남자친구의 참 좋은 부분중 하나..... 내가 말을 멈추면 기다려준다는 것이다.
그 순간에는 더 이상 말을 하면 그 느낌이 날아갈까봐 그대로 있었는데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와 자전거를 반납하고 들어간 타이 음식점에서 남자친구가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제 외할머니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설명해 줘 하고.... 그 후로 장장 2시간에 걸쳐 긴 식사를 하고 외할머니와의 추억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삶을 살면서 한해 한해가 갈수록 과거에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부분들을 발견하곤 한다.
마치 물랑루즈 영화를 3번째 보던때 눈에 들어오던 니콜 키드먼과 이완 맥그리거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춤을 출때 나오던 노래가 사실은 밤하늘에 떠있던 달이 불러주던 노래였던 걸 발견 했을 때 처럼..... (이유는 설명하기 힘들지만 나는 좋아하는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성향이 있다. 물랑루즈는..... 10번 정도? 어쩌면 15정도 본 것 같다.)
그럴 때면 삶의 깊이가 조금씩 깊어져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이다. 내 인생의 깊이라고 해봤자 아직은 고작해야 30cm 발목 언저리에 닿는 시냇물 같겠지만 계속 가다보면 어느 순간 강이 되고 바다가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지! 하는 마음으로 산다.
오늘은 오랜만에 엄마한테 전화를 해야겠다. 그리고 외할머니 얘기를 나눠야지......
우리는 어쩌면 서로의 기억 안에서 새로운 모습의 외할머니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 또한 무척 기쁠것 같다.
염치 없이 보일 때도 있지만, 나쁜 기분 같은 건 금방 풀어 버릴수 있다.
누구에게나 운수가 사나운 날이 있기 마련이고, 이유 없이 우울하고 짜증 나는 날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에서 나와 어느 정도 시간을 같이 해본 사람들은 아마 나를 변덕이 심하다고 생각 할 수도 있다. 화가 나서 씩씩 거릴땐 언제고 금새 풀어져서 살랑살랑 거린다고 말하는 것도 들어 본적이 있다. 심지어는 남자친구도 나에게 이해하기 참 힘든 성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요지는 간단하다.
나쁜 기분을 오래 끌고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상황이라면 관계를 단절할 필요도 있고 거리를 두는 방안도 나쁘지 않지만 항상 좋을 수 만은 없는게 사람 관계니까...
이 사람은 이래서 싫고 저 사람은 저래서 싫다 하고 배척하다보면 주변에 남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무인도에 들어가서 살게 아닌 이상 나는 이 곳에서 잘 적응하고 싶고 보다 많이 보고 배우고 느끼고 싶다. 그래서 마음을 잘 고쳐 먹게 되는 거다.
내가 너무 감정적으로 대했는지도 몰라........
그 사람 입장에서는 어쩌면 그게 최선 이었을지도.......
내가 먼저 다가가면 잘 지낼수 있을꺼야, 누구나 처음이 어려운 법이니까.... 하는 그런 생각에 서운하고 화가 나더라도 금새 다시 웃고 얘기 할 수 있는 것이다.
인연은 맺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던 내게 언젠가 외할머니께서 인연은 잘 푸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씀 하신적이 있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몰라 한 십 오년을 계속 곰 씹기만 했는데 얼마전에 머릿속에 전구가 켜지듯 이게 바로 그때 할머니께서 나에게 하고 싶으셨던 말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오늘 쓰는 이야기는 내가 어렸을때 우리 외할머니께 들었던, 인연을 푸는 것에 대해 깨닫게 된 계기에 대한 거다.
내가 어렸을때 외할머니께서는 참 정갈한 분이셨다.
며느리들에게는 달랐겠지만 나에게는 늘 정갈하고 단정한 모습의 외할머니로 기억에 남아있다. 할머니들은 곧잘 내가 이해할수 없는 나름의 인생철학에 대해 지나가듯 말씀해 주시곤 했는데, 친할머니는 관상에 관련해서 많은 얘기를 해 주셨고 외할머니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늘 혼잣말 하시듯 내게 조곤조곤 말씀해 주셨다.
시장에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시던 할머니께 빨리 집에 가자고 졸라대면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얘기하고 대해야 한다고 말씀 하셨었다.
경제학에서 늘 중요시여기는 효율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이처럼 비효율적인 삶이 없겠지만, (그런면에서 우리 친할머니는 참 효율적인 삶의 방식을 갖고 계셨던....) 그래서 외할머니를 떠올리면 늘 따뜻하고 다정하고 그리운 느낌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시장에서 오이지를 직접 담궈서 팔던 욕쟁이 할머니를 싫어 했던 내게 외할머니는 네가 이해할수 없는 세월을 보낸 사람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말씀 하셨었다..... 그리곤 늘 그 할머니에게 오이지를 사면서 말을 주고 받곤 하셨다. 내가 보기엔 대화라기보단 욕쟁이 할머니는 욕을 하고 외할머니는 웃으면서 들어주시는게 다였는데도 말이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365일 같은 자리에서 늘 변함없는 맛의 오이지를 파셨던 그 할머니의 삶속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인한 삶에 대한 자세가 들어 있어던것 같다. 그리고 외할머니께서는 그런 오이지 할머니를 잘 이해하고, 또 험난한 삶을 헤쳐온 같은 시대를 산 사람으로서 깊은 공감대를 느끼고 계셨을지도....
누군가가 할머니에게 욕을 해도, 소리를 질러도 '자네 왜 그리 화가 났는가~ ' 또는 '그런가? ' 하고 대답할 뿐 맞서지 않으셨다. 묵묵히 듣고 넘기시는 그 모습이 나는 참 답답했고 싫었다 그리고 화도 났다. 당신의 삶에 대한 자세가 바로 할머니께서 결코 평탄치만은 않은 삶을 살았던 이유였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절대 할머니처럼 살지 않을 꺼야!! 하는 말을 속으로 얼마나 되뇌였는지 모른다. 내가 화를 내고 할머니 역정을 들라치면 나를 말리며 하시던 말이 '그만 해라 저 사람 속은 얼마나 문드러지겄냐' 셨다.
그랬던 외할머니는 어느날..... 여느때와 같이 집에 돌아가셔서 술을 한잔 하시고는 방에 들어가 잠이 드셨고 그대로 영영 깨어나지 않으셨다. 별 다른 징후 없이 그대로 편안하게 가신 것이다. 염하는 사람이 한이 많으신 분들이 돌아가시면 염하기도 힘든데 보기 드문 호상이라고 이렇게 돌아가시는 것도 할머니 복이네요 라고 얘기 했다.
막상 내 이야기를 쓰려고 하니 자꾸만 외할머니의 기억이 떠오른다. 어쩌면 내 이야기 같은 건 외할머니의 인생에 비하면 너무나 사소하고 별것 아닌 일이겠지만 꽃이 지나간 자리에 그 향기가 남듯이 어쩌면 할머니께서 말씀 하셨던 의미에 대해서 그 실체가 없어도 향기로 짐작 할수 있듯 조금이나마 내 삶속에서 자꾸만 흐려져 가는 그 향기를 쫓아 가다보면 언젠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본 이야기로 들어 가자면......
지난주 주말에 있었던 일이다.
자전거를 타고 남자친구와 함께 haarlem에 갔다.
암스테르담 시내에서 자전거를 타기란 그렇게 쉬운일이 아니다. 좁은 골목, 수많은 사람들, 트램, 자동차, 버스 등 자전거의 속도에 비해 변수도 많고 위험도 많다.
1인용 자전거로도 지나가기 쉽지 않은 그 곳을 2인승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려니 엄청 부담이 되고 힘도 들었다. 자전거 자체도 무겁고, 페달도 둘이 맞춰서 밟아야 하고, 길이도 길어서 방향 전환도 쉽지 않고, 또 신호등은 어찌나 그리 많은지.....
그래도 다행인건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복잡한 도심에서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그리 많겠지....
우리는 일부러 먼길을 택했다. 숲도 거치고, 강변도 거쳐서 스키폴 공항 언저리를 지나 겨우겨우 도착했다. 따가운 햇살에 지친 우리는 시원한 맥주를 찾아 돌다가 눈에 들어오는 노천 까페에 자전거를 세우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10분이 지나고 주문을 받으러 오지 않는 젊은 웨이터들.... 인상도 험하고 등이 땀으로 젖은 상의....
그렇게 15분이 지났고.... 그냥 일어나서 다른데로 가자는 남자친구 말을 거부하고 벌떡 일어나 걸어가 화장실이 어디예요? 하고 묻고는 우리 조금 오래 기다렸는데 저기 테이블로 맥주 중간 사이즈로 두잔만 가져다 주세요 하고 말했다.
오케이~ 하길래 화장실에 갔다 테이블로 돌아갔더니 남자친구의 반응, 궁시렁궁시렁..... 주문하는데 15분 걸렸으니 가져다 주는 건 30분 걸리는거 아냐? 툴툴툴
하지만 맥주는 금방 가져다줬다. 둘다 워낙에 목이 말랐던지라 단숨에 컵을 비우고 계산 하려는데 또 10분이 지나도 오질 않았다.
다시 남자친구 툴툴툴.... 다른데 가자고 했잖아.....
여기 정말 서비스 별로다 네덜란드, 진짜 별로야....Haarlem 다시 안 올것 같아 툴툴툴
속으론 내가 동양인이라서 그런가? 왜 그럴까? 여행객이라 별로 돈 안될것 같아서 그런가? 하고 별 생각을 다했지만 아무말 않고 남자친구의 불평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옆 테이블에서 웃던 말던 손을 번쩍 들고 기다렸다. 웨이터는 이쪽을 확인하는 듯 고개를 돌렸다가....2~3분 후에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나는 무심결에 계산을 하는 웨이터에게 말을 걸었다.
' 이런 날씨에서 일하려면 힘들지? 특히 이 시간엔 눈도 부시고~ 일하는 사람도 별로 안보이는데 혼자서 여길 다 서빙하는 거임?' 했더니 금새 그 웨이터의 험악한 표정이 풀어지면서 너무 힘들다고 얘기 하면서 다른 애들이 일을 열심히 안해~ 나도 쉬고 싶어~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다시 ' 이런 날에 서비스 업이란 너무 잔혹해~ 그것도 마음 안맞는 동료랑...' 하고 어깨를 으쓱~ 했더니 활짝 웃어주더라 미안했는지 아까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라고 말하는데..... 그때까지의 부정적인 느낌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래 너무 무척 힘들꺼야....힘내 화이팅~ 하는 동감 같은게 느껴졌다.
까페를 떠나면서 남자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너의 마지막 그 태도가 의미하는바가 뭐야? 뭘 얻고자 한거지?
그때는 별 생각 없이 ' 나쁜 감정을 남기고 싶지가 않았어, 서로 말을 섞지 않았다면 아마 그 상태에서 끝났겠지~ 걔는 가뜩이나 힘들고 기분 나쁜데 웬 여자애가 와서 나한테 주문 안받는다고 뭐라고 했다. 하고 뇌에 입력 할꺼고 나는 네덜란드애들 진짜 짜증나 나 동양인이라 주문 늦게 받았나? 하는 생각 가지고 그 장소를 기억 했겠지~ 그러기 싫었어.
거기에 잠깐 앉아 있는 나도 짜증나는데 땡볕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일하는걔는 오죽 힘들었겠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그냥 말 걸어본거야. 어차피 나는 노는 중이고 걔는 일하는 중이니까.... 내가 배려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말거는 순간부터 이곳은 서비스 나쁘고 짜증났던 까페가 아니게 된거지 그래서 지금처럼 우리 둘다 좋은 기분으로 여길 떠날수 있는 거고~
나중에 이곳을 떠올려도 나는 기분이 좋을 것 같아. 누군가와 소통을 했던 장소로서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어. 동양인 손님으로서 차별 당했다고 오해하고는 기분 나빠하기 보다는 말이야~' 하고 대답했다. 별 생각 없이 말을 시작했는데 말하는 도중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그때 할머니가 그래서..... 그렇게 내게 말씀 하셨었구나! 하고..... 나는 방금 잘못 얽힐뻔한 인연의 고리를 잘 풀어서 놔주었구나! 하고 말이다.
남자친구는 흥미로운 시각이긴 한데 그렇게 작은 것까지 신경쓰고 살다보면 너무 피곤하지 않을까? 하고 말했다. 글쎄..... 그럴지도 하지만 난 방금 우리 외할머니가 말씀 하셨던게 뭔지 깨달았어. 내가 계속 이런 삶의 방식을 추구할지 아닐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방금 돌아가신 할머니랑 교감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좋기도 하고 알수 없는 느낌이 들기도 해
하고 대답한 다음 ????? 의 얼굴을 한 남자친구에게 웃어주고는 우리의 대화를 마쳤다.
내 남자친구의 참 좋은 부분중 하나..... 내가 말을 멈추면 기다려준다는 것이다.
그 순간에는 더 이상 말을 하면 그 느낌이 날아갈까봐 그대로 있었는데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와 자전거를 반납하고 들어간 타이 음식점에서 남자친구가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제 외할머니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설명해 줘 하고.... 그 후로 장장 2시간에 걸쳐 긴 식사를 하고 외할머니와의 추억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삶을 살면서 한해 한해가 갈수록 과거에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부분들을 발견하곤 한다.
마치 물랑루즈 영화를 3번째 보던때 눈에 들어오던 니콜 키드먼과 이완 맥그리거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춤을 출때 나오던 노래가 사실은 밤하늘에 떠있던 달이 불러주던 노래였던 걸 발견 했을 때 처럼..... (이유는 설명하기 힘들지만 나는 좋아하는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성향이 있다. 물랑루즈는..... 10번 정도? 어쩌면 15정도 본 것 같다.)
그럴 때면 삶의 깊이가 조금씩 깊어져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이다. 내 인생의 깊이라고 해봤자 아직은 고작해야 30cm 발목 언저리에 닿는 시냇물 같겠지만 계속 가다보면 어느 순간 강이 되고 바다가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지! 하는 마음으로 산다.
오늘은 오랜만에 엄마한테 전화를 해야겠다. 그리고 외할머니 얘기를 나눠야지......
우리는 어쩌면 서로의 기억 안에서 새로운 모습의 외할머니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 또한 무척 기쁠것 같다.
4/27/2011
5월의 암스테르담.
작년 6월부터 암스테르담에 매달 다녀왔으니 거의 1년 동안의 암스테르담을 다 본셈이다.
매달 많으면 두번, 평균 한번꼴로 3~5일 일정으로 다녀 온것 뿐이니.....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암스테르담이 어떤 곳인지..... 조금 알것 같다.
이 시기의 유럽은 일교차가 매우 크다.
여행하는 사람들은 이 점을 유의 해서 옷을 입는게 좋다.
낮에는 무더위가, 밤에는 가을과 같은 소슬한 바람이 분다. 한국의 봄 바람이 살랑살랑 부드러운 느낌이라면 유럽의 봄 바람은 낮에는 뜨거운 선풍기 바람같고, 그늘에 앉아 있다보면 여름에 냉장고문 열였을 때 흘러 나오는 찬기운 같이 느껴질때도 있다. 밤에는.... 가을 바람에 몸을 떨던 옛 기억이 떠오른다. 금방이라도 겨울이 성큼 다가올 것만 같은 그런 느낌....
한국에서 봄바람에 마을 설레여하며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가 산책 하던 그런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여기는 봄에 꽃내음이 풍기질 않는다. 한국에선 목련이며 벛꽃에 마음 참 싱숭생숭 했었는데....
로열 웨딩이라서 바다 건너편에서 난리라면, 암스테르담은 여왕의 날 준비에 여념이 없다.
좁은 광장에 각종 놀이기구 설치해 놓고 완전 축제 분위기다. 항상 사람이 많은 암스테르담이지만 지난 주말엔 정말로 사람이 많았다.
일례로 암스테르담 자전거 대여소엔 정말로 자전거가 많다. 일련번호만 봐도 그 수를 짐작할 수 있는데, 그 많은 자전거가 지난 주말엔 동이 났다. 그것도 한군데가 아니라 여러 군데에서.....
물론 부활절 휴가인 탓도 있지만 좋은 날씨가 한 몫을 했던것 같다.
암스테르담을 한마디로 정의 하자면 자전거 정글이다. 어떤 좁은 골목에는 트램이 지나가고, 그 옆에 사람들이 한줄로 서서 종종 걸음으로 지나가고 그 사이를 자전거가 헤치고 지나간다. 위태위태하기 그지 없지만 여기 사람들은 그렇게들 사나보다. 어찌나 속도는 내는지....
이 곳 자전거를 유심히 살펴보면 손잡이에 브레이크가 없는 자전거들이 많다. 다시 말해서 약 80%는 핸드 브레이크가 아닌 페달 브레이크다. 나는 유럽에 오기 전까지 페달 브레이크는 들어본적도 없다. 처음에 어찌나 당황 했던지..... 게다가 나는 내리막길에선 페달을 거꾸로 돌리는 버릇도 있는데 이 것 때문에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이쯤에서 각설하고 이 글을 쓰는 진짜 이유에 대해서 말하자면....
암스테르담을 즐기는 방법에 대해서 조금 언급하고자 한다.
여기는 파리도 아니고 런던도 아니다. 즉..... 대단한 볼거리를 찾아 올만한 곳은 아니라는 것이다. 램브란트 박물관, 고흐 박물관 등등 있지만 역시나 젤 가볼만한 박물관은 하이네켄 박물관이다. 왜냐..... 재미도 있지만 나올때 공짜 맥주를 주기 때문....
사실 대부분의 미술관들은 작품 보존을 위해 진품은 잘 전시하지 않는다. 일년에 진품을 전시하는 기간이 있긴 한데 외부에 공개 하지 않는다. 솔직히 그림에 대단한 식견이 있는 분이 아니고서는 가봤자 지루하다. 본인은 (한국의 많은 80년대 생들이 그랬듯이) 6살때부터 미술학원에 다녔다. 초등학교 시절 매일매일 미술학원으로 방과후 출근했다. 퇴근후 집에서 기다리는 건 마누라가 아닌 (본인은 여자임) 피아노 개인 교습 선생님, 일주일에 세번 수영장도 갔다. 지금 생각하면 그 빡센 스케줄을 어떻게 소화 했을까 의문이다....
이 후 중학교 때..... 미술부 활동을 했고 여전히 미술 학원 일주일에 두번씩 다녔다.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미술 활동 접고...... 공부에 주력... (하지 않았다.) 하라는 어머님 지침에 따라 미술학원에 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쪽으로는 미련이 남아서 혼자 곰브리치 책 사서 보고 헌책방 가면 늘 먼저 보는 쪽이 서화집이었다. 중학교 때는 동양화에 관심이 많아 난치는 거 배우려고 한 2년 기웃 거리다가 나같이 마음 못 잡고 팔랑 거리는 사람은 아직 난 치려면 정신 수양부터 해야 된다.... 뭐 이런 헛소리 하면서 모자라는 실력에 말도 안되는 변명 붙여서 빠져 나왔는데..... 왜 이런 얘기를 지금 하냐면......
나름 본인도 미술에 참 관심 많은 사람인데.... 램브란트 박물관 반 고흐 박물관.... 진짜 지루하다. 그리고 거기 걸려 있는 작품 중 다른 사람들 작품이 훨씬 많다. (설마 100% 램브란트가 그린 그림과 반 고흐 그림으로 그 박물관들이 먹고 살다고 생각하시는 건.... )
또 한가지.... 암스테르담 하면 정말 유명한 박물관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세수 박물관.... 여기 진짜 볼것 없고 다들 너무 오래된 자료들이다.
요즘 세상에 인터넷으로 클릭 한번만 하면 볼 수 있는 자료들 보다 못한 자료들로 채워놓고 돈 받아 먹는데.... 클래식한 사진이나 인형에 관심있는게 아니라면.... 거기 전시되어 있는 인형들은 홍등가만 걸어도 군데 군데에서 마주 칠수 있고.....뭐랄까... toy샵에 가면 더 흥미로운 사진과 물품들을 볼 수 있다. 장담 하는데.....세수 박물관 가느니 홍등가를 몇 번 더 걸어 보는게 더 흥미롭고 돈도 안든다. 특히 언니들이 속옷 매무새를 다듬을 때는 나도 참 가슴이 콩닥콩닥 하더라....
유럽에서 암스테르담 간다고 하면.... 다들 어깨를 툭툭 치면서 한마디 한다.
잘 놀고와~
심지어는 공항에서도 사람들이 여권 검사 하면서 '우~' 이러면서 잘 놀고 오라는 추임새 넣어준적도 있다.
그 어느 누구도 암스테르담에 보러 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들 맥주 마시고, weed를 피우고, 뱃놀음 하러 온다. 유독 동양인들만 지도 들고 다니면서 뭘 볼까 고민 하는 듯 하다. 가끔 (영국 애들로 추정되는-워낙 영국애들이 많이 놀러옴- 하지만 역시나 다른 나라애들도 마찬가지 )젊은 애들이 떼로 몰려와선 마구 떠들다가 친구하나 가게로 밀어 넣고 환호하면서 옆에 펍에서 맥주 마시면서 기다린다. 그러면 10분 후에 남자애 하나가 얼굴 벌개져서 나오는데 다 같이 맥주 마시면서 지나가는 사람도 그 동료들도 소리 지르고 지x 한다. 요게 딱 암스테르담 분위기다.
여기서 한가지, 이런 모습 보고 사진 찍으려고 달려들면 큰일난다. 홍등가에서 사진은 금지다. (갑자기 덩치 큰 아저씨가 나와서 웩웩웩 하는 네덜란드 말로 겁주면서 카메라 뺐을지도 모름)
자 그래서.... 암스테르담에 오시고자 하는 분들은 부디.....
파리와 런던에서 빡세게 이것저것 다 보신 분들..... 잠시 독일 가기전에 쉬어 가는 장소로 생각하셨으면 좋겠다. 여기는 교통 카드 시스템이 한국과 비슷하다. GVB 카드 사서 충전해서 탈때, 내릴때 단말기에 대면 되는데 암스테르담 크기도 작은데 교통비 내가면서 볼 필요 전혀 없으니 주변에 다른 도시 (덴하그나 로테르담 같은데 가고 싶은 경우) 갈 경우 기차를 타시고 암스테르담 내부에서는 시내에서 교통비 지출하지 마시길 빈다.
여기서는 마음을 좀 편안히 하시고 그냥 산책 나온 기분으로 설렁 설렁 채널 따라 걸으면서 예쁜 까페 나오면 들어가 앉아서 차 마시고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고 또 걷다가 맥주 마시고 운하에 앉아서 바람도 쐬고..... 여기 사람들 창문에 참 커튼 안치고 개방적이다. 청교도의 영향으로 숨김 없이 죄 없이 살라는 가르침 때문에 그렇다는데.... 여행객들에게는 유럽의 개인집 내부를 들여다 볼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다. 어떻게 집을 꾸미고 사는 지도 좀 보고 (물론 절대로 창문 앞에 서서 들여다 보면 안되고 살짝 살짝 쳐다보는 정도?!) 암스테르담 전체 집들이 참 오래 되고 삐뚤빼뚤하니 그 분위기 안에서 마음 좀 풀고 같이 살짝 풀어지는 것도 좋겠다. 예전에 워낙 토지세가 비싸서 건물을 지을때 조금이라도 더 공간을 확보하고자 벽을 비스듬히 만들어 3층 4층이 더 넓게 쓰려고 했는데 그러다보니 옆의 건물도 비스듬히 또 그 옆의 건물도 비스듬히 짓다보니 암스테르담에는 재미있는 외형의 집들이 참 많다. 만화에 나오는 그런 느낌....가끔씩은 술을 마셔서 건물이 비스듬히 보이는 건지 아니면 저 건물이 비스듬한건지..... 착각이 들정도다.
자 그리고 여기에 놀러오면 뭘 먹느냐.....
예전에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닌 조상 덕?!에 암스테르담에는 온갖 종류의 음식점들이 즐비해있다. 홍등가 근처에는 엄청난 내공을 자랑하는 중국집들도 많다. 천천히 돌아 다니면서 둘러 보다가 마음에 드는 음식점에 들어가면 된다. 중국인들이 줄 서있는 곳은 꼭 피할 것! 왜냐면 보통 중국인들이 단체로 관광 다니는 탓에 맛있는 집보다는 그들이 커미션 받는 식당으로 우르르 데려가기 때문.... 사람 많아서 맛있는 줄 알고 들어 갔다간 시간 버리고 마음까지 상해서 나올 확률이 높다.
개인적으로 암스테르담 인도 음식점들이 수준급이다. 3군데 정도 가봤는데 다들 특색있더라... 그리고 네덜란드 사람들 서비스마인드 진짜 없는데 인도 음식점은 정 반대다.... 돈 쓰는 느낌 받고 싶으면 인도 음식점 가시면 좋을 듯....
그리고 singel 운하 근처를 따라 걸으면 예쁜 까페들 참 많다. 작은 숨겨진 것 같은 까페에 들어가서 스페셜 메뉴나 BLT 시켜 드시면 절대 후회는 안하실듯...
지금까지 맛 없어서 다시는 여기 안온다!! 하고 생각한 곳은 정말 한 군데도 없었다.
(암스테르담 안에서는.....) Greenwoods 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는 정말 멋있는 게이 오빠가 서빙을 봐주는 데 솔까 네덜란드 사람들 말 트면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없는데 (손님한테도 가끔 ) 자기랑 상관 없는 사람들, 길거리 행인한테는 진짜 막 대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네덜란드 최상의 서비스를 보여주는 곳이다. (비교적) 값도 싸다 맛도 좋고....
혹시라도 지나가다 보시게 되면 꼭! Ginger Beer를 맛보시길~ 화끈하고 톡 쏘는 생강 맛을 보실수 있다. 잠이 확 깨고 정신이 드는 그런 맛이다.
걸어다니다 너무 피곤하다..... 하는 생각이 들면 이때야 말로 운하를 지나다니는 보트 트립을 하실 최상의 시점이다. 티켓을 산다. 배에 오른다. 맥주를 산다. 그리고 편하게 앉아 구경하면서 망중한을 즐긴다..... 위가 유리로 되어 있어서 머리위로 햇살이 늘어진다. 운하 주변의 예쁜 풍경을 여유롭게 바라보며, 피곤한 몸을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서 마시는 하이네켄....대박이다. 낮에 타는 것과 밤에 타는 건 느낌이 또 다르다.
조금 여유가 되시면 밤에 식사를 제공하는 옵션을 선택하셔도 좋을 듯.... 굉장히 낭만적이다.
너무 럭셔리 하게 들렸다면 지금부터는 학생들을 위한 정보다.
Walk to wok라는 가게가 있다. 체인이라 여러곳에 있는데 들어가서 면 고르고 기타 야채나 고기 종류와 소스를 고르면 그 자리에서 볶아 주는데.... 학생들 입장에서 걸어 다니고 체력 소모 많이 요구 되는 스케줄을 소화 해야 할때 먹어주면 하루를 끄덕 없이 버틸수 있다.
여기서 한가지.... 9유로 정도 드는데 사이드 메뉴 고르지 않고 그냥 면과 소스만 골라도 된다. 그러면 6유로까지 떨어짐.... 이미 기본 야채 종류 푸짐하고 계란도 들어가니 따로 사이드 메뉴 넣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좀 짜다 이점을 기억 해 주시길.... 하지만 먹고 나면 하루 종일 걸어도 될만큼 고 칼로리인데다 양도 많다.
그리고 걸어 다니다 보면 커다란 자판기 같이 생겨서 버거나 샌드위치 뽑아 먹는 곳이 있는데.... 나 솔직히 여기 비추.... 여기를 갈 바엔 차라리 Albert Heijn 이라는 슈퍼마켓 있는데 여기 가면 빵종류 요거트 종류 엄청 많고 값도 싸고 맛도 있다. 크로아상 참 맛나는데 한봉지 사면 두개 들어 있고 2유로가 안된다. (안에 초콜릿 들어간 것도 있고 다른 종류의 빵도 많음) 차라리 이걸 사먹는게 경제적이고 좋다고 생각함. (나는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르더라... 그 정도의 크기임) 여기에 요거트 하나 사서 주변에 공원에 가서 벌러덩 누워서 쉬면서 먹어도 좋고 운하에 앉아서 사람들한테 손도 흔들어 주고 구경도 하면서 먹어도 뭐랄까....... 유럽의 여유를 느낄 수 있을 듯 싶다. 그리고 암스테르담에서 내가 젤 좋아하는 것중 하나는..... 바로 주스다. 여기는 신선하게 갓 짜낸.... 주스를 매일 매일 공급해서 판다. 유리병에 크기 별로 파는데 키위+딸기, 오렌지+바나나 이렇게 섞인 맛도 있고 오렌지 주스도 있다. 본인은 오렌지 주스를 매우 좋아하는 고로 ( 믹스된 주스는 잘 안좋아한다. 남자친구는 망고 요구르트 매니아임) 다른건 몰라도 오렌지 주스는 진짜.... 후.... 죽인다. 꼭 드셔 보셈~
또는 감자튀김도 파는데 다 먹어 봐도 맛은 거기서 거기니 사람 적은데로 가서 감자튀김 하나 사서 (크기에 따라 2~4 유로 + 소스 60센트) 먹어도 배 엄청 부르니.... 학생들 입장에서도 나름 여유 있게 걸어 다니면서 마음을 좀 편하게 갖고 (많이 보겠다는 생각을 버리시면....) 유럽에 온 느낌을 느껴 봤으면 좋겠다.
아! 그리고 암스테르담 중앙역 지하에서 파는 샌드위치도 맛있다. 여러군데 많은데.... 흠.... 사실 잘 가는 곳이 있긴 하지만 찾아갈 정도는 아니니 아무데나 가서 드셔도 나쁘지 않을 듯....
이렇게 쓰다간 날이 새겠네.... 후....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내가 길에 대한 방향 감각이 좀 있다.... 지도만 있어도 잘 찾아간다.... 또는 아이폰으로 언제든 위치 파악 가능 하니 길 읽어 버릴 염려 없다... 하시는 분들.... 또는 나는 자전거의 제왕이다. 자전거 정글에서 살아 남을 정도의 실력이다... 하는 분들은 꼭! 자전거를 빌려서 다녀 보시길~ (페달 브레이크가 좀 더 쌈, 여권 보관하거나 신용카드 사본으로 대여하고 반환 시점에 정산하는 시스템) 가격은.... 난 자전거랑 절대 안 떨어 질꺼임 하는 경우 보험 필요 없으니 3시간에..... 6유로 정도.... (페달 브레이크의 경우 하루 종일 빌리면 시간 당 금액은 더 저렴해 질것임) tamdem의 경우 5시간에 18유로 였던것 같다.
나도 레스토랑 리뷰나 좀 해볼까 하는 생각이 급 들었음....
하지만 사진기 들고 다니면서 음식 나올때 마다 사진찍고 포스팅 할 정도의 열정이 없음...
시작해도 용두사미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기 땜시....아마 간간히 언급 하는 걸로 끝나지 않을까...
진짜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23일 저녁 왕궁앞 광장에서 Warmoesstraat 로 들어오는데 뒤에 한국인 아저씨 3명이 길을 걸으면서 하시는 말....
별로 볼것 없죠~ 암스테르담 별 것 없어요~ 이왕 오신 김에 여자들이나 보고 가시죠....
순간 이건 뭐임..... 하는 느낌이 들었다. +_+
딱 아는 만큼 본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중 암스테르담 오실 때 이멜 하나 넣어 주시면 요런 말 안나오게 잘 안내해 드릴 용의가 있으니.... 의향이 있으시면 언제든 콜입니다.
매달 많으면 두번, 평균 한번꼴로 3~5일 일정으로 다녀 온것 뿐이니.....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암스테르담이 어떤 곳인지..... 조금 알것 같다.
이 시기의 유럽은 일교차가 매우 크다.
여행하는 사람들은 이 점을 유의 해서 옷을 입는게 좋다.
낮에는 무더위가, 밤에는 가을과 같은 소슬한 바람이 분다. 한국의 봄 바람이 살랑살랑 부드러운 느낌이라면 유럽의 봄 바람은 낮에는 뜨거운 선풍기 바람같고, 그늘에 앉아 있다보면 여름에 냉장고문 열였을 때 흘러 나오는 찬기운 같이 느껴질때도 있다. 밤에는.... 가을 바람에 몸을 떨던 옛 기억이 떠오른다. 금방이라도 겨울이 성큼 다가올 것만 같은 그런 느낌....
한국에서 봄바람에 마을 설레여하며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가 산책 하던 그런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여기는 봄에 꽃내음이 풍기질 않는다. 한국에선 목련이며 벛꽃에 마음 참 싱숭생숭 했었는데....
로열 웨딩이라서 바다 건너편에서 난리라면, 암스테르담은 여왕의 날 준비에 여념이 없다.
좁은 광장에 각종 놀이기구 설치해 놓고 완전 축제 분위기다. 항상 사람이 많은 암스테르담이지만 지난 주말엔 정말로 사람이 많았다.
일례로 암스테르담 자전거 대여소엔 정말로 자전거가 많다. 일련번호만 봐도 그 수를 짐작할 수 있는데, 그 많은 자전거가 지난 주말엔 동이 났다. 그것도 한군데가 아니라 여러 군데에서.....
물론 부활절 휴가인 탓도 있지만 좋은 날씨가 한 몫을 했던것 같다.
암스테르담을 한마디로 정의 하자면 자전거 정글이다. 어떤 좁은 골목에는 트램이 지나가고, 그 옆에 사람들이 한줄로 서서 종종 걸음으로 지나가고 그 사이를 자전거가 헤치고 지나간다. 위태위태하기 그지 없지만 여기 사람들은 그렇게들 사나보다. 어찌나 속도는 내는지....
이 곳 자전거를 유심히 살펴보면 손잡이에 브레이크가 없는 자전거들이 많다. 다시 말해서 약 80%는 핸드 브레이크가 아닌 페달 브레이크다. 나는 유럽에 오기 전까지 페달 브레이크는 들어본적도 없다. 처음에 어찌나 당황 했던지..... 게다가 나는 내리막길에선 페달을 거꾸로 돌리는 버릇도 있는데 이 것 때문에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이쯤에서 각설하고 이 글을 쓰는 진짜 이유에 대해서 말하자면....
암스테르담을 즐기는 방법에 대해서 조금 언급하고자 한다.
여기는 파리도 아니고 런던도 아니다. 즉..... 대단한 볼거리를 찾아 올만한 곳은 아니라는 것이다. 램브란트 박물관, 고흐 박물관 등등 있지만 역시나 젤 가볼만한 박물관은 하이네켄 박물관이다. 왜냐..... 재미도 있지만 나올때 공짜 맥주를 주기 때문....
사실 대부분의 미술관들은 작품 보존을 위해 진품은 잘 전시하지 않는다. 일년에 진품을 전시하는 기간이 있긴 한데 외부에 공개 하지 않는다. 솔직히 그림에 대단한 식견이 있는 분이 아니고서는 가봤자 지루하다. 본인은 (한국의 많은 80년대 생들이 그랬듯이) 6살때부터 미술학원에 다녔다. 초등학교 시절 매일매일 미술학원으로 방과후 출근했다. 퇴근후 집에서 기다리는 건 마누라가 아닌 (본인은 여자임) 피아노 개인 교습 선생님, 일주일에 세번 수영장도 갔다. 지금 생각하면 그 빡센 스케줄을 어떻게 소화 했을까 의문이다....
이 후 중학교 때..... 미술부 활동을 했고 여전히 미술 학원 일주일에 두번씩 다녔다.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미술 활동 접고...... 공부에 주력... (하지 않았다.) 하라는 어머님 지침에 따라 미술학원에 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쪽으로는 미련이 남아서 혼자 곰브리치 책 사서 보고 헌책방 가면 늘 먼저 보는 쪽이 서화집이었다. 중학교 때는 동양화에 관심이 많아 난치는 거 배우려고 한 2년 기웃 거리다가 나같이 마음 못 잡고 팔랑 거리는 사람은 아직 난 치려면 정신 수양부터 해야 된다.... 뭐 이런 헛소리 하면서 모자라는 실력에 말도 안되는 변명 붙여서 빠져 나왔는데..... 왜 이런 얘기를 지금 하냐면......
나름 본인도 미술에 참 관심 많은 사람인데.... 램브란트 박물관 반 고흐 박물관.... 진짜 지루하다. 그리고 거기 걸려 있는 작품 중 다른 사람들 작품이 훨씬 많다. (설마 100% 램브란트가 그린 그림과 반 고흐 그림으로 그 박물관들이 먹고 살다고 생각하시는 건.... )
또 한가지.... 암스테르담 하면 정말 유명한 박물관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세수 박물관.... 여기 진짜 볼것 없고 다들 너무 오래된 자료들이다.
요즘 세상에 인터넷으로 클릭 한번만 하면 볼 수 있는 자료들 보다 못한 자료들로 채워놓고 돈 받아 먹는데.... 클래식한 사진이나 인형에 관심있는게 아니라면.... 거기 전시되어 있는 인형들은 홍등가만 걸어도 군데 군데에서 마주 칠수 있고.....뭐랄까... toy샵에 가면 더 흥미로운 사진과 물품들을 볼 수 있다. 장담 하는데.....세수 박물관 가느니 홍등가를 몇 번 더 걸어 보는게 더 흥미롭고 돈도 안든다. 특히 언니들이 속옷 매무새를 다듬을 때는 나도 참 가슴이 콩닥콩닥 하더라....
유럽에서 암스테르담 간다고 하면.... 다들 어깨를 툭툭 치면서 한마디 한다.
잘 놀고와~
심지어는 공항에서도 사람들이 여권 검사 하면서 '우~' 이러면서 잘 놀고 오라는 추임새 넣어준적도 있다.
그 어느 누구도 암스테르담에 보러 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들 맥주 마시고, weed를 피우고, 뱃놀음 하러 온다. 유독 동양인들만 지도 들고 다니면서 뭘 볼까 고민 하는 듯 하다. 가끔 (영국 애들로 추정되는-워낙 영국애들이 많이 놀러옴- 하지만 역시나 다른 나라애들도 마찬가지 )젊은 애들이 떼로 몰려와선 마구 떠들다가 친구하나 가게로 밀어 넣고 환호하면서 옆에 펍에서 맥주 마시면서 기다린다. 그러면 10분 후에 남자애 하나가 얼굴 벌개져서 나오는데 다 같이 맥주 마시면서 지나가는 사람도 그 동료들도 소리 지르고 지x 한다. 요게 딱 암스테르담 분위기다.
여기서 한가지, 이런 모습 보고 사진 찍으려고 달려들면 큰일난다. 홍등가에서 사진은 금지다. (갑자기 덩치 큰 아저씨가 나와서 웩웩웩 하는 네덜란드 말로 겁주면서 카메라 뺐을지도 모름)
자 그래서.... 암스테르담에 오시고자 하는 분들은 부디.....
파리와 런던에서 빡세게 이것저것 다 보신 분들..... 잠시 독일 가기전에 쉬어 가는 장소로 생각하셨으면 좋겠다. 여기는 교통 카드 시스템이 한국과 비슷하다. GVB 카드 사서 충전해서 탈때, 내릴때 단말기에 대면 되는데 암스테르담 크기도 작은데 교통비 내가면서 볼 필요 전혀 없으니 주변에 다른 도시 (덴하그나 로테르담 같은데 가고 싶은 경우) 갈 경우 기차를 타시고 암스테르담 내부에서는 시내에서 교통비 지출하지 마시길 빈다.
여기서는 마음을 좀 편안히 하시고 그냥 산책 나온 기분으로 설렁 설렁 채널 따라 걸으면서 예쁜 까페 나오면 들어가 앉아서 차 마시고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고 또 걷다가 맥주 마시고 운하에 앉아서 바람도 쐬고..... 여기 사람들 창문에 참 커튼 안치고 개방적이다. 청교도의 영향으로 숨김 없이 죄 없이 살라는 가르침 때문에 그렇다는데.... 여행객들에게는 유럽의 개인집 내부를 들여다 볼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다. 어떻게 집을 꾸미고 사는 지도 좀 보고 (물론 절대로 창문 앞에 서서 들여다 보면 안되고 살짝 살짝 쳐다보는 정도?!) 암스테르담 전체 집들이 참 오래 되고 삐뚤빼뚤하니 그 분위기 안에서 마음 좀 풀고 같이 살짝 풀어지는 것도 좋겠다. 예전에 워낙 토지세가 비싸서 건물을 지을때 조금이라도 더 공간을 확보하고자 벽을 비스듬히 만들어 3층 4층이 더 넓게 쓰려고 했는데 그러다보니 옆의 건물도 비스듬히 또 그 옆의 건물도 비스듬히 짓다보니 암스테르담에는 재미있는 외형의 집들이 참 많다. 만화에 나오는 그런 느낌....가끔씩은 술을 마셔서 건물이 비스듬히 보이는 건지 아니면 저 건물이 비스듬한건지..... 착각이 들정도다.
자 그리고 여기에 놀러오면 뭘 먹느냐.....
예전에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닌 조상 덕?!에 암스테르담에는 온갖 종류의 음식점들이 즐비해있다. 홍등가 근처에는 엄청난 내공을 자랑하는 중국집들도 많다. 천천히 돌아 다니면서 둘러 보다가 마음에 드는 음식점에 들어가면 된다. 중국인들이 줄 서있는 곳은 꼭 피할 것! 왜냐면 보통 중국인들이 단체로 관광 다니는 탓에 맛있는 집보다는 그들이 커미션 받는 식당으로 우르르 데려가기 때문.... 사람 많아서 맛있는 줄 알고 들어 갔다간 시간 버리고 마음까지 상해서 나올 확률이 높다.
개인적으로 암스테르담 인도 음식점들이 수준급이다. 3군데 정도 가봤는데 다들 특색있더라... 그리고 네덜란드 사람들 서비스마인드 진짜 없는데 인도 음식점은 정 반대다.... 돈 쓰는 느낌 받고 싶으면 인도 음식점 가시면 좋을 듯....
그리고 singel 운하 근처를 따라 걸으면 예쁜 까페들 참 많다. 작은 숨겨진 것 같은 까페에 들어가서 스페셜 메뉴나 BLT 시켜 드시면 절대 후회는 안하실듯...
지금까지 맛 없어서 다시는 여기 안온다!! 하고 생각한 곳은 정말 한 군데도 없었다.
(암스테르담 안에서는.....) Greenwoods 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는 정말 멋있는 게이 오빠가 서빙을 봐주는 데 솔까 네덜란드 사람들 말 트면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없는데 (손님한테도 가끔 ) 자기랑 상관 없는 사람들, 길거리 행인한테는 진짜 막 대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네덜란드 최상의 서비스를 보여주는 곳이다. (비교적) 값도 싸다 맛도 좋고....
혹시라도 지나가다 보시게 되면 꼭! Ginger Beer를 맛보시길~ 화끈하고 톡 쏘는 생강 맛을 보실수 있다. 잠이 확 깨고 정신이 드는 그런 맛이다.
걸어다니다 너무 피곤하다..... 하는 생각이 들면 이때야 말로 운하를 지나다니는 보트 트립을 하실 최상의 시점이다. 티켓을 산다. 배에 오른다. 맥주를 산다. 그리고 편하게 앉아 구경하면서 망중한을 즐긴다..... 위가 유리로 되어 있어서 머리위로 햇살이 늘어진다. 운하 주변의 예쁜 풍경을 여유롭게 바라보며, 피곤한 몸을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서 마시는 하이네켄....대박이다. 낮에 타는 것과 밤에 타는 건 느낌이 또 다르다.
조금 여유가 되시면 밤에 식사를 제공하는 옵션을 선택하셔도 좋을 듯.... 굉장히 낭만적이다.
너무 럭셔리 하게 들렸다면 지금부터는 학생들을 위한 정보다.
Walk to wok라는 가게가 있다. 체인이라 여러곳에 있는데 들어가서 면 고르고 기타 야채나 고기 종류와 소스를 고르면 그 자리에서 볶아 주는데.... 학생들 입장에서 걸어 다니고 체력 소모 많이 요구 되는 스케줄을 소화 해야 할때 먹어주면 하루를 끄덕 없이 버틸수 있다.
여기서 한가지.... 9유로 정도 드는데 사이드 메뉴 고르지 않고 그냥 면과 소스만 골라도 된다. 그러면 6유로까지 떨어짐.... 이미 기본 야채 종류 푸짐하고 계란도 들어가니 따로 사이드 메뉴 넣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좀 짜다 이점을 기억 해 주시길.... 하지만 먹고 나면 하루 종일 걸어도 될만큼 고 칼로리인데다 양도 많다.
그리고 걸어 다니다 보면 커다란 자판기 같이 생겨서 버거나 샌드위치 뽑아 먹는 곳이 있는데.... 나 솔직히 여기 비추.... 여기를 갈 바엔 차라리 Albert Heijn 이라는 슈퍼마켓 있는데 여기 가면 빵종류 요거트 종류 엄청 많고 값도 싸고 맛도 있다. 크로아상 참 맛나는데 한봉지 사면 두개 들어 있고 2유로가 안된다. (안에 초콜릿 들어간 것도 있고 다른 종류의 빵도 많음) 차라리 이걸 사먹는게 경제적이고 좋다고 생각함. (나는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르더라... 그 정도의 크기임) 여기에 요거트 하나 사서 주변에 공원에 가서 벌러덩 누워서 쉬면서 먹어도 좋고 운하에 앉아서 사람들한테 손도 흔들어 주고 구경도 하면서 먹어도 뭐랄까....... 유럽의 여유를 느낄 수 있을 듯 싶다. 그리고 암스테르담에서 내가 젤 좋아하는 것중 하나는..... 바로 주스다. 여기는 신선하게 갓 짜낸.... 주스를 매일 매일 공급해서 판다. 유리병에 크기 별로 파는데 키위+딸기, 오렌지+바나나 이렇게 섞인 맛도 있고 오렌지 주스도 있다. 본인은 오렌지 주스를 매우 좋아하는 고로 ( 믹스된 주스는 잘 안좋아한다. 남자친구는 망고 요구르트 매니아임) 다른건 몰라도 오렌지 주스는 진짜.... 후.... 죽인다. 꼭 드셔 보셈~
또는 감자튀김도 파는데 다 먹어 봐도 맛은 거기서 거기니 사람 적은데로 가서 감자튀김 하나 사서 (크기에 따라 2~4 유로 + 소스 60센트) 먹어도 배 엄청 부르니.... 학생들 입장에서도 나름 여유 있게 걸어 다니면서 마음을 좀 편하게 갖고 (많이 보겠다는 생각을 버리시면....) 유럽에 온 느낌을 느껴 봤으면 좋겠다.
아! 그리고 암스테르담 중앙역 지하에서 파는 샌드위치도 맛있다. 여러군데 많은데.... 흠.... 사실 잘 가는 곳이 있긴 하지만 찾아갈 정도는 아니니 아무데나 가서 드셔도 나쁘지 않을 듯....
이렇게 쓰다간 날이 새겠네.... 후....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내가 길에 대한 방향 감각이 좀 있다.... 지도만 있어도 잘 찾아간다.... 또는 아이폰으로 언제든 위치 파악 가능 하니 길 읽어 버릴 염려 없다... 하시는 분들.... 또는 나는 자전거의 제왕이다. 자전거 정글에서 살아 남을 정도의 실력이다... 하는 분들은 꼭! 자전거를 빌려서 다녀 보시길~ (페달 브레이크가 좀 더 쌈, 여권 보관하거나 신용카드 사본으로 대여하고 반환 시점에 정산하는 시스템) 가격은.... 난 자전거랑 절대 안 떨어 질꺼임 하는 경우 보험 필요 없으니 3시간에..... 6유로 정도.... (페달 브레이크의 경우 하루 종일 빌리면 시간 당 금액은 더 저렴해 질것임) tamdem의 경우 5시간에 18유로 였던것 같다.
나도 레스토랑 리뷰나 좀 해볼까 하는 생각이 급 들었음....
하지만 사진기 들고 다니면서 음식 나올때 마다 사진찍고 포스팅 할 정도의 열정이 없음...
시작해도 용두사미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기 땜시....아마 간간히 언급 하는 걸로 끝나지 않을까...
진짜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23일 저녁 왕궁앞 광장에서 Warmoesstraat 로 들어오는데 뒤에 한국인 아저씨 3명이 길을 걸으면서 하시는 말....
별로 볼것 없죠~ 암스테르담 별 것 없어요~ 이왕 오신 김에 여자들이나 보고 가시죠....
순간 이건 뭐임..... 하는 느낌이 들었다. +_+
딱 아는 만큼 본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중 암스테르담 오실 때 이멜 하나 넣어 주시면 요런 말 안나오게 잘 안내해 드릴 용의가 있으니.... 의향이 있으시면 언제든 콜입니다.
4/21/2011
나의 20대를 마감하는 길목에서....
나는 단어 고르기 게임을 참 좋아한다.
남자친구와 사귀게 된 계기도 어쩌면 3가지 단어 대기 였던것 같다.
사귀기 전 크라코프에서 토멕과 함께 세명이 작은 방안에 앉아 수다를 한참 떨다가 '사랑'에 대한 자신이 생각하는 단어 세 가지를 말하기 놀이를 하던 중.... 남자친구가 그래 이 여자야! 하고 결심을 하셨다고 하니.... 흠흠
그 단어 세 가지는 쫌 민망하니 생략하고.....
문득 내 20대는 어땠나 하고 생각을 하는데 반사적으로 한 단어가 떠올랐다.
'instinctive'
그리고는 바로 아직 나는 젊다. 미치기에 충분하다.....고 번뜩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미치면 괜찮을까... 하고 다시 약 5초간 생각한 후, 내 체력을 소진하여 장렬히 전사하는 방안을 떠올렸다.
현재 나의 스케줄은 월요일, 수요일 퇴근 후 폴란드어 수업이 전부다.
물론 가끔 야근도 하고 혼자 걷기도 하고 집에 와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고 빈둥 거리기도 하는 등.... 혼자 매우 잘 놀지만..... 사실 삶이 매우 단조롭고, 단순하다.
폴란드어는 입문이 참 어렵다. 처음에 엄청나게 쏟아지는 문법을 소화하기가 참 힘들지만 시간이 갈 수록 조금씩 나아진다. 물론 아직도 문법은 마구 쏟아지고 있지만, 적응이 된 것 같다.
초반처럼 집에 돌아와 창문 앞에 앉아 40도짜리 술을 마시거나, 울지 않아도 견딜수 있다.
(물론 아직도 포스트잇으로 답답한 날에는 뭔가를 써서 벽에 붙인다만...)
회사에서 제공하는 수업도 있다. 화요일 목요일 오전에 한시간씩.....
훨씬 회화 위주의 수업이고, (선생님의 엄청난 노력하에) 문법은 거의 피해간다.
나름 나에게는 상호 보완적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직까지 뭔가에 미치기엔 충분한 나이다. 한국에서 친구들은 벌써 서른이다.
학교 일찍간 덕에 겨우겨우 스물 아홉이라고 우겨 볼수도 있고 유럽에선 다행히 28으로 먹힌다. 그래서 내게 남은 1년 반의 시간은 정말 후회 없이 보내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도 요런 비슷한 느낌이 든적이 있었는데, 때는 바야흐로 내가 25이 되던 해, 20대의 중반을 넘기는 문턱에서 이대로 후반을 맞이하면 안되겠다는 알수 없는 불안감에 몸을 떨던 때였다. 그때는 사회적으로 압박도 심하고 (취업등 불안정한 미래) 회사 들어가면 절대 장기간의 휴가는 불가능하다는 심리적 요인이 작용하여 바로 작정하고 반년간 놀러 갔지만, 지금의 나는 그래도 철이 조금 들었는지... 내게 도움이 되는 방향을 택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결정한 건.......... (두둥)
내 생애 처음으로 미친듯이 공부해 보기로 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미친것 같지만..... 마음 한구석에 고이 모셔둔 대기만성이란 사자성어를 떠올리며 큰 그릇은 못 되더라도 가마에 들어는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디어 든 것이다.
그래서..... 단순했던 내 시간표를 깔끔히 정리하여 공부할수 있는 시간을 최대로 확보하고, 계획을 세워 그대로 실천하기로 굳게 마음 먹었다.
폴란드어는 지금까지 하던대로 하되, 조금 시간을 줄이고 집중력을 높이자!! 하는 쪽으로....(흠 과연?)
그 동안 반은 놀고, 반은 취미 생활로 보내던 화요일, 목요일 퇴근 후에는 러시아어를 공부하기로 했다. 묵혀뒀던 나의 러시아어, 시작이 어땠건 지금까지 애정을 잃어본적이 없는 나의 비루한 러시아어를 되살리기로 마음 먹었다.
자 그럼 금요일과 주말이 남지?
금요일엔 영어 XXX시험을 위한 준비를 하기로 했다.
남자친구와 책도 사서 나눴다. 토요일 일요일 폴란드어와 러시아어 선행학습 및 복습을 한 후 금요일에 공부하는 영어 XXX시험도 같이 준비하려고 시간표까지 짜 놨다.
그 동안 분산 시켰던 나의 관심을 끌어 모아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바라던 자유와 평화가 주어졌는데 내가 못할일이 어딨어? 하는 오기도 생겼다. 그래서 말인데..... 샐러던트의 삶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못할것도 없지... 하는 생각으로 오늘부터 내 여가 시간은 주말에 무한도전 보는 거 한시간? 으로 줄이기로 했다. 뭐 가끔 괜찮은 영화가 있으면 볼수도 있고.....
쇼핑도 금지, 외식은 당연히 주말에만....
옛날에 둘리 만화 중.... 램프에서 나온 할아버지가 부르던 노래 가사가 '가는 세월 어느 누가 잡을 수가 있나요~' 뭐 요랬는데....흘러가는 시간은 잡을수 없다는 말..... 천천히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일 년 그렇게 또 일 년이 지나면 내 인생 어떻게 흘러갈지 누가 알아?
무슨일이 있어도 하겠다 생각 했던 것....... 더 시간 지나가기 전에 마음 독하게 먹고 모두 해 봐야겠다.
꿈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거창하고.. 마음안에 있던 작은 소망들, 내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작은 바램들 모두 현실화시켜서 내 인생 곳곳에 펼쳐 놓을 꺼다.
그런 의미에서 그 동안 마음 내킬때 보다 말다 했던 러시아어 동영상이 있는데.... 요것부터 마음 먹고 앉아서 보고는 정리했다.
http://hotforwords.rt.com/lessons/
러시아어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부담 없이 보기에 좋다.
그리고 집중율 최고..... 선생님 너무 섹시해... +_+
나는 쭉 봤는데 기억이 안나는 부분이 좀 있어서 약간 충격을 먹었으나, 그래도 즐겁게 리뷰했으니..... 별 불만 없다. 야근하는 남자친구한테 보내주면서 피곤할때 보라고 웃음까지 날려줬다.....내일부터 앉아서 그동안 멀리했던 문법책 예전에 배운 부분을 정리할 생각이다.
공부일기 같은거 쓰는 체질이 아니라 글쎄....
내 회사 다이어리에 뭐 공부했는지 정도는 쓰겠지....
폴란드어 학원 다녀와서 러시아어 공부하려니 왜 이렇게 머리에 잘 들어오나.... 싶은게 몸과 뇌가 열렬히 내 결심을 환영하는 느낌이 든다.
깔끔하게 20대의 마지막을 열정적으로 보낸 다음, 좀 여유로운 마음으로 30대를 맞아야겠다.
남자친구한테 전화해서 나 미친듯이 공부하기로 결심했어! 하고 말했더니 너같은 여자는 처음본다며 1년 뒤에 보자며 황당한 목소리로 매우 시니컬하게 말씀해주시는데..... (너..... 일년 반전의 그 간절함은 어디가고...... -_-+ )
두고봐
난 1년뒤에 너보다 러시아어 훨씬 유창하게 말하고 말테니....
내 전화로도 얘기 했지만 내 이상형의 조건 중 하나는 나보다 러시아어 잘하는 남자다.
훗.......
(벌써 4월인데~ 아직도 휴가가 18개나 남았어~~ 아아아아 행복해~~~
여름에 불가리아+이스탄불 2주 휴가 줄이고 휴가 박박 긁어 모아서 가을에 혼자 러시아로 2주 어학 프로그램 갔다 와야지..... 본토 까지는 아니고.... 분할령 칼린그라드로 갈꺼다.. ㅎㅎ)
남자친구와 사귀게 된 계기도 어쩌면 3가지 단어 대기 였던것 같다.
사귀기 전 크라코프에서 토멕과 함께 세명이 작은 방안에 앉아 수다를 한참 떨다가 '사랑'에 대한 자신이 생각하는 단어 세 가지를 말하기 놀이를 하던 중.... 남자친구가 그래 이 여자야! 하고 결심을 하셨다고 하니.... 흠흠
그 단어 세 가지는 쫌 민망하니 생략하고.....
문득 내 20대는 어땠나 하고 생각을 하는데 반사적으로 한 단어가 떠올랐다.
'instinctive'
그리고는 바로 아직 나는 젊다. 미치기에 충분하다.....고 번뜩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미치면 괜찮을까... 하고 다시 약 5초간 생각한 후, 내 체력을 소진하여 장렬히 전사하는 방안을 떠올렸다.
현재 나의 스케줄은 월요일, 수요일 퇴근 후 폴란드어 수업이 전부다.
물론 가끔 야근도 하고 혼자 걷기도 하고 집에 와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고 빈둥 거리기도 하는 등.... 혼자 매우 잘 놀지만..... 사실 삶이 매우 단조롭고, 단순하다.
폴란드어는 입문이 참 어렵다. 처음에 엄청나게 쏟아지는 문법을 소화하기가 참 힘들지만 시간이 갈 수록 조금씩 나아진다. 물론 아직도 문법은 마구 쏟아지고 있지만, 적응이 된 것 같다.
초반처럼 집에 돌아와 창문 앞에 앉아 40도짜리 술을 마시거나, 울지 않아도 견딜수 있다.
(물론 아직도 포스트잇으로 답답한 날에는 뭔가를 써서 벽에 붙인다만...)
회사에서 제공하는 수업도 있다. 화요일 목요일 오전에 한시간씩.....
훨씬 회화 위주의 수업이고, (선생님의 엄청난 노력하에) 문법은 거의 피해간다.
나름 나에게는 상호 보완적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직까지 뭔가에 미치기엔 충분한 나이다. 한국에서 친구들은 벌써 서른이다.
학교 일찍간 덕에 겨우겨우 스물 아홉이라고 우겨 볼수도 있고 유럽에선 다행히 28으로 먹힌다. 그래서 내게 남은 1년 반의 시간은 정말 후회 없이 보내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도 요런 비슷한 느낌이 든적이 있었는데, 때는 바야흐로 내가 25이 되던 해, 20대의 중반을 넘기는 문턱에서 이대로 후반을 맞이하면 안되겠다는 알수 없는 불안감에 몸을 떨던 때였다. 그때는 사회적으로 압박도 심하고 (취업등 불안정한 미래) 회사 들어가면 절대 장기간의 휴가는 불가능하다는 심리적 요인이 작용하여 바로 작정하고 반년간 놀러 갔지만, 지금의 나는 그래도 철이 조금 들었는지... 내게 도움이 되는 방향을 택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결정한 건.......... (두둥)
내 생애 처음으로 미친듯이 공부해 보기로 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미친것 같지만..... 마음 한구석에 고이 모셔둔 대기만성이란 사자성어를 떠올리며 큰 그릇은 못 되더라도 가마에 들어는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디어 든 것이다.
그래서..... 단순했던 내 시간표를 깔끔히 정리하여 공부할수 있는 시간을 최대로 확보하고, 계획을 세워 그대로 실천하기로 굳게 마음 먹었다.
폴란드어는 지금까지 하던대로 하되, 조금 시간을 줄이고 집중력을 높이자!! 하는 쪽으로....(흠 과연?)
그 동안 반은 놀고, 반은 취미 생활로 보내던 화요일, 목요일 퇴근 후에는 러시아어를 공부하기로 했다. 묵혀뒀던 나의 러시아어, 시작이 어땠건 지금까지 애정을 잃어본적이 없는 나의 비루한 러시아어를 되살리기로 마음 먹었다.
자 그럼 금요일과 주말이 남지?
금요일엔 영어 XXX시험을 위한 준비를 하기로 했다.
남자친구와 책도 사서 나눴다. 토요일 일요일 폴란드어와 러시아어 선행학습 및 복습을 한 후 금요일에 공부하는 영어 XXX시험도 같이 준비하려고 시간표까지 짜 놨다.
그 동안 분산 시켰던 나의 관심을 끌어 모아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바라던 자유와 평화가 주어졌는데 내가 못할일이 어딨어? 하는 오기도 생겼다. 그래서 말인데..... 샐러던트의 삶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못할것도 없지... 하는 생각으로 오늘부터 내 여가 시간은 주말에 무한도전 보는 거 한시간? 으로 줄이기로 했다. 뭐 가끔 괜찮은 영화가 있으면 볼수도 있고.....
쇼핑도 금지, 외식은 당연히 주말에만....
옛날에 둘리 만화 중.... 램프에서 나온 할아버지가 부르던 노래 가사가 '가는 세월 어느 누가 잡을 수가 있나요~' 뭐 요랬는데....흘러가는 시간은 잡을수 없다는 말..... 천천히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일 년 그렇게 또 일 년이 지나면 내 인생 어떻게 흘러갈지 누가 알아?
무슨일이 있어도 하겠다 생각 했던 것....... 더 시간 지나가기 전에 마음 독하게 먹고 모두 해 봐야겠다.
꿈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거창하고.. 마음안에 있던 작은 소망들, 내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작은 바램들 모두 현실화시켜서 내 인생 곳곳에 펼쳐 놓을 꺼다.
그런 의미에서 그 동안 마음 내킬때 보다 말다 했던 러시아어 동영상이 있는데.... 요것부터 마음 먹고 앉아서 보고는 정리했다.
http://hotforwords.rt.com/lessons/
러시아어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부담 없이 보기에 좋다.
그리고 집중율 최고..... 선생님 너무 섹시해... +_+
나는 쭉 봤는데 기억이 안나는 부분이 좀 있어서 약간 충격을 먹었으나, 그래도 즐겁게 리뷰했으니..... 별 불만 없다. 야근하는 남자친구한테 보내주면서 피곤할때 보라고 웃음까지 날려줬다.....내일부터 앉아서 그동안 멀리했던 문법책 예전에 배운 부분을 정리할 생각이다.
공부일기 같은거 쓰는 체질이 아니라 글쎄....
내 회사 다이어리에 뭐 공부했는지 정도는 쓰겠지....
폴란드어 학원 다녀와서 러시아어 공부하려니 왜 이렇게 머리에 잘 들어오나.... 싶은게 몸과 뇌가 열렬히 내 결심을 환영하는 느낌이 든다.
깔끔하게 20대의 마지막을 열정적으로 보낸 다음, 좀 여유로운 마음으로 30대를 맞아야겠다.
남자친구한테 전화해서 나 미친듯이 공부하기로 결심했어! 하고 말했더니 너같은 여자는 처음본다며 1년 뒤에 보자며 황당한 목소리로 매우 시니컬하게 말씀해주시는데..... (너..... 일년 반전의 그 간절함은 어디가고...... -_-+ )
두고봐
난 1년뒤에 너보다 러시아어 훨씬 유창하게 말하고 말테니....
내 전화로도 얘기 했지만 내 이상형의 조건 중 하나는 나보다 러시아어 잘하는 남자다.
훗.......
(벌써 4월인데~ 아직도 휴가가 18개나 남았어~~ 아아아아 행복해~~~
여름에 불가리아+이스탄불 2주 휴가 줄이고 휴가 박박 긁어 모아서 가을에 혼자 러시아로 2주 어학 프로그램 갔다 와야지..... 본토 까지는 아니고.... 분할령 칼린그라드로 갈꺼다.. ㅎㅎ)
4/16/2011
우와 진짜 미치겠다!!!!
원래부터 펜에 눈독 들이고 있었는데 이거 보고 나니 더 마음이 콩닥콩닥해 진다.
올해 초 보너스로 라이카 D-Lux땡기며 Pen은 쳐다도 보지 않기로 마음 굳게 먹었는데.....
아 진짜 미치겠다!!!
사진에 미련 버리기로 하지 않았나?
사실 카메라하면 할 얘기 참 많은데 마음 한 구석에 고이 접어 내 평생 한명의 동반자와 함께 하리~~ 하고 생각 했던게 아직 반년도 안 지났는데!!!!!!
일부일처제 그딴거 다 거짓말이야!!!!!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
아 진짜 올림푸스 대박!!!! @_@
그런데 이거 만든 사람들도 진짜 대박.....
보면 볼수록 저거 만든 사람도 대단하다.... 단순해 보이지만 단순히 20초당 나오는 사진만 훑듯이 세봤는데.... 단순히 계산해서 전체 동영상에 소요된 사진이 최소 4만 8000은 넘고 5~6만?! 될 것 같다.
아 진짜 올림푸스......
DSLR의 늪에서 벗어났나 싶었더니.... 이젠 하이브리드가 내 발목을 잡는군하.....
무심코 검색해 본 PEN이 내 심장을 뛰게 만들다니....
그대가 내 남자친구보다 강렬하구로~ 내 인정 OTL ...
아래는 흥분이 가라 앉지 않아 찾아본 BGM 가사
Down Below
Be just who you want to be, my friend
You just got to trust in fate.
Do the things you want to do ‘cause life don’t wait
Take it easy, keep your head up high
No need for sorrow and despair
Just keep on moving, it’s such a wonderous world out there
The years are flashing by and everything will change
But way down deep inside – we all just stay the same
And down below
Old memories come alive and then we know
Down below
It’s a long road we all got to walk
But there’s an awful lot to see
And the sun keeps rising up wherever you may be
Fly the ocean, dive into the blue
No need for sorrow and despair
Just keep moving, it’s such a wondrous world out there
The years are flashing by and everything will change
But way down deep inside – we all just stay the same
And down below
Old memories come alive and then we know
Down below
The years are flashing by and everything will change
But way down deep inside – we all just stay the same
And down below
Old memories come alive and then we know
Down below
BGM도 대박..... 얄밉지만 인정...
이렇게 뭔가 마음 안쪽을 건드리는 Commercial..... 좋아 죽겠는데도 묘하게 마음 한쪽으로는 얄밉다.
올해 초 보너스로 라이카 D-Lux땡기며 Pen은 쳐다도 보지 않기로 마음 굳게 먹었는데.....
아 진짜 미치겠다!!!
사진에 미련 버리기로 하지 않았나?
사실 카메라하면 할 얘기 참 많은데 마음 한 구석에 고이 접어 내 평생 한명의 동반자와 함께 하리~~ 하고 생각 했던게 아직 반년도 안 지났는데!!!!!!
일부일처제 그딴거 다 거짓말이야!!!!!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
아 진짜 올림푸스 대박!!!! @_@
그런데 이거 만든 사람들도 진짜 대박.....
보면 볼수록 저거 만든 사람도 대단하다.... 단순해 보이지만 단순히 20초당 나오는 사진만 훑듯이 세봤는데.... 단순히 계산해서 전체 동영상에 소요된 사진이 최소 4만 8000은 넘고 5~6만?! 될 것 같다.
아 진짜 올림푸스......
DSLR의 늪에서 벗어났나 싶었더니.... 이젠 하이브리드가 내 발목을 잡는군하.....
무심코 검색해 본 PEN이 내 심장을 뛰게 만들다니....
그대가 내 남자친구보다 강렬하구로~ 내 인정 OTL ...
아래는 흥분이 가라 앉지 않아 찾아본 BGM 가사
Down Below
Be just who you want to be, my friend
You just got to trust in fate.
Do the things you want to do ‘cause life don’t wait
Take it easy, keep your head up high
No need for sorrow and despair
Just keep on moving, it’s such a wonderous world out there
The years are flashing by and everything will change
But way down deep inside – we all just stay the same
And down below
Old memories come alive and then we know
Down below
It’s a long road we all got to walk
But there’s an awful lot to see
And the sun keeps rising up wherever you may be
Fly the ocean, dive into the blue
No need for sorrow and despair
Just keep moving, it’s such a wondrous world out there
The years are flashing by and everything will change
But way down deep inside – we all just stay the same
And down below
Old memories come alive and then we know
Down below
The years are flashing by and everything will change
But way down deep inside – we all just stay the same
And down below
Old memories come alive and then we know
Down below
BGM도 대박..... 얄밉지만 인정...
이렇게 뭔가 마음 안쪽을 건드리는 Commercial..... 좋아 죽겠는데도 묘하게 마음 한쪽으로는 얄밉다.
4/07/2011
새로운 언어 배우기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로 막 결심한 상태에서는 무척 흥분이 된다.
발음이 멋있어서, 영화를 보고 나니 공부 하고 싶어서... 남자 때문에, 역사적인 이유로,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등등의 각종 이유로 새로운 언어를 시작하게 되면 그냐말로 상상의 날개를 펴기 시작한다. 내가 이 언어를 말하게 된다면 .....
이 시기....나를 기다리고 있는 엄청난(?) 공부는 사실 생각이 잘 나지 않고, 그 나라말로 사람들과 소통할 기대감과 상상에 몸을 떤다. 물론 나 공부 진짜!!!!! 열심히 할꺼야!!! 라는 결심은 자동으로 따라온다.
자기 소개를 배울 때까지는 재미가 있다. 한 문장 한 문장 배우면서 조금씩 문장 구조를 파악하고 간단한 문법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상황을 급변한다. 간단한 법칙일지라도 활용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불규칙한 경우를 외워 나가고, 단어를 익히고, 같은 말이라도 전혀 다르게 표현하는 그 언어의 특징을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 처음 생각했던 것 보다는 그다지 환상적이지 않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자기와의 싸움이 시작된다.
내 경우 좌절과 회복, 좌절과 회복을 반복한다.
분명히 요렇게 배웠는데 왜!!! 이 동사는 전혀 다른 변화를!!!!
아니!! a로 끝나는 단어는 분명히 여성인디!! 왜 요건 남성이야!!! 그러면서 앞에 붙는 형용사는 남성변화로 변하고 뒤에 있는 불규칙 명사는 왜 여성변화야!!! 이런 짬뽕같은!!!! 하면서 거품 물고 집에서 침대에 업드려 마구 몸부림을 친 뒤... (물론 남자친구한테도 막 화낸다 니네 나라 말 진짜 이상해애애애애애~~~~~~ 나 당장 그만 둘꺼야!!!!!! 등등-물론 정신들면 미안하다고 막 사과...)
감정을 가다 듬고 벽에다 포스트잇으로 '하면 된다'를 써서 붙인다.
그렇게 써서 붙인 포스트 잇이 색깔별로 40장이 넘는다.
(남자친구가 바르샤바에 올 때마다 또 늘었네... 하면서 불쌍하게 쳐다본다. )
나는 화 났을때 누가 옆에서 달래주면 더 화가 난다.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면 알아서 풀려서 어느 순간 실실 웃으며 나타나는데 그걸 잘 모르는 남자친구는 처음에 엄청 달래주려고 하다가 고생 좀 했다. 요새는 내가 멍~ 하게 앉아 있거나 갑자기 침대로 붕 뛰어 올라서 몸부림치면 그냥 알아서 조용히 있거나 조깅을 나간다.
나는 지금 길고 긴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지지부진한 속도로 늘지 않는 것 같은 나의 폴란드어 실력에 좌절을 반복하며, 이 어려운 발음을 어린아이처럼 읽어 나가며, 폴란드 사람들이 들으면 늘 빵 터지는 우스꽝스러운 문장을 반복하며 그렇게 기어가고 있다.
걸어가는 게 아니라 기어간다. 정말 천천히....
단어를 외우고, 불규칙 변화를 외우고, 새로운 격을 배우고, 또 한국어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표현법을 배우며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정말 가끔은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당장 그만 두고 싶지만 그럴때면 또 한번 포스트잇에 '하면 된다'를 써서 붙인다.
이렇게 일 년 그리고 또 일 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지금 이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웃는 날이 올꺼야 하고 생각한다.
이 쯤에서 누군가는 도움도 안되는 말을 뭐하러 그렇게 고생하면서 배워? 할지도 모르지만.... 폴란드 인 남자친구를 떠나서, 그 나라에서 일년 넘게 체류하고 있으면서 말을 할 줄 모른다는 건 (내 생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현재 내 주위에는 말을 배울 기회가 널려있다. 도처에 연습할 곳 투성인데 내 노력의 부재로 말 한마디 못하고 영어로 말할 줄 알아? 를 반복하며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딱히 폴란드로 돌아올 생각이 없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한다면..... 내 쪽에서 이동을 하게 될 텐데 내가 폴란드 밖에서 이 어려운 언어를 사용할 기회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상관없다. 내가 여기에 있는 한, 그리고 폴란드 사람들과 소통하는 한 열심히 배우는 것이 여기서 만난 내가 좋아하고, 또 존경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회사-집-회사-집 만 반복하는 단조로운 일상에서 뭔가에 몰두 할 수 있다는 건 내 삶에 커다란 활력을 준다.
흥미로운 현상 한가지....
폴란드 어 듣기 연습 진짜 죽어도 안는다.
단어가 기니까 엄청 빨리 뭉개서 말하는데 정말 안들린다.
그런데 폴란드어 수업 시간에 고도로 집중해서 리스닝 연습을 한지 어언 두달째, 전에는 완전 집중해야 잘 들리던 BBC뉴스가 전과 같은 집중력이 없어도 깨끗하게 들린다. 왜 그럴까....
발음이 멋있어서, 영화를 보고 나니 공부 하고 싶어서... 남자 때문에, 역사적인 이유로,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등등의 각종 이유로 새로운 언어를 시작하게 되면 그냐말로 상상의 날개를 펴기 시작한다. 내가 이 언어를 말하게 된다면 .....
이 시기....나를 기다리고 있는 엄청난(?) 공부는 사실 생각이 잘 나지 않고, 그 나라말로 사람들과 소통할 기대감과 상상에 몸을 떤다. 물론 나 공부 진짜!!!!! 열심히 할꺼야!!! 라는 결심은 자동으로 따라온다.
자기 소개를 배울 때까지는 재미가 있다. 한 문장 한 문장 배우면서 조금씩 문장 구조를 파악하고 간단한 문법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상황을 급변한다. 간단한 법칙일지라도 활용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불규칙한 경우를 외워 나가고, 단어를 익히고, 같은 말이라도 전혀 다르게 표현하는 그 언어의 특징을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 처음 생각했던 것 보다는 그다지 환상적이지 않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자기와의 싸움이 시작된다.
내 경우 좌절과 회복, 좌절과 회복을 반복한다.
분명히 요렇게 배웠는데 왜!!! 이 동사는 전혀 다른 변화를!!!!
아니!! a로 끝나는 단어는 분명히 여성인디!! 왜 요건 남성이야!!! 그러면서 앞에 붙는 형용사는 남성변화로 변하고 뒤에 있는 불규칙 명사는 왜 여성변화야!!! 이런 짬뽕같은!!!! 하면서 거품 물고 집에서 침대에 업드려 마구 몸부림을 친 뒤... (물론 남자친구한테도 막 화낸다 니네 나라 말 진짜 이상해애애애애애~~~~~~ 나 당장 그만 둘꺼야!!!!!! 등등-물론 정신들면 미안하다고 막 사과...)
감정을 가다 듬고 벽에다 포스트잇으로 '하면 된다'를 써서 붙인다.
그렇게 써서 붙인 포스트 잇이 색깔별로 40장이 넘는다.
(남자친구가 바르샤바에 올 때마다 또 늘었네... 하면서 불쌍하게 쳐다본다. )
나는 화 났을때 누가 옆에서 달래주면 더 화가 난다.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면 알아서 풀려서 어느 순간 실실 웃으며 나타나는데 그걸 잘 모르는 남자친구는 처음에 엄청 달래주려고 하다가 고생 좀 했다. 요새는 내가 멍~ 하게 앉아 있거나 갑자기 침대로 붕 뛰어 올라서 몸부림치면 그냥 알아서 조용히 있거나 조깅을 나간다.
나는 지금 길고 긴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지지부진한 속도로 늘지 않는 것 같은 나의 폴란드어 실력에 좌절을 반복하며, 이 어려운 발음을 어린아이처럼 읽어 나가며, 폴란드 사람들이 들으면 늘 빵 터지는 우스꽝스러운 문장을 반복하며 그렇게 기어가고 있다.
걸어가는 게 아니라 기어간다. 정말 천천히....
단어를 외우고, 불규칙 변화를 외우고, 새로운 격을 배우고, 또 한국어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표현법을 배우며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정말 가끔은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당장 그만 두고 싶지만 그럴때면 또 한번 포스트잇에 '하면 된다'를 써서 붙인다.
이렇게 일 년 그리고 또 일 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지금 이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웃는 날이 올꺼야 하고 생각한다.
이 쯤에서 누군가는 도움도 안되는 말을 뭐하러 그렇게 고생하면서 배워? 할지도 모르지만.... 폴란드 인 남자친구를 떠나서, 그 나라에서 일년 넘게 체류하고 있으면서 말을 할 줄 모른다는 건 (내 생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현재 내 주위에는 말을 배울 기회가 널려있다. 도처에 연습할 곳 투성인데 내 노력의 부재로 말 한마디 못하고 영어로 말할 줄 알아? 를 반복하며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딱히 폴란드로 돌아올 생각이 없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한다면..... 내 쪽에서 이동을 하게 될 텐데 내가 폴란드 밖에서 이 어려운 언어를 사용할 기회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상관없다. 내가 여기에 있는 한, 그리고 폴란드 사람들과 소통하는 한 열심히 배우는 것이 여기서 만난 내가 좋아하고, 또 존경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회사-집-회사-집 만 반복하는 단조로운 일상에서 뭔가에 몰두 할 수 있다는 건 내 삶에 커다란 활력을 준다.
흥미로운 현상 한가지....
폴란드 어 듣기 연습 진짜 죽어도 안는다.
단어가 기니까 엄청 빨리 뭉개서 말하는데 정말 안들린다.
그런데 폴란드어 수업 시간에 고도로 집중해서 리스닝 연습을 한지 어언 두달째, 전에는 완전 집중해야 잘 들리던 BBC뉴스가 전과 같은 집중력이 없어도 깨끗하게 들린다. 왜 그럴까....
3/27/2011
폴란드어 이야기
이 글은 그동안 쉬었던 폴란드어 설명이 아니고, 폴란드어를 배우며 느끼는 개인적인 감상이다. 폴란드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폴란드어는 3차의 분할을 통해 나라가 지도 상에 존재 하지 않았던 120여년의 세월을 거치면서도 살아 남은 언어다. 그 말은 120여년 동안 공식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던 정체된 언어 였으며(아예 사용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님) 그로 인해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다시 나라를 재건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언어의 통일화, 간소화등의 과정 없이 오래 된 언어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민족주의가 외부의 적이라는 존재에 대응해야 하는 위기의 상황에 매우 강력하게 발현 되어 작용하는 점을 고려하면, 왜 폴란드에서 언어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지가 쉽게 이해 된다.
러시아가 언어를 주변국에 보다 빠르고 효과적으로 전파하고자 복잡하고 불규칙적인 특성 자체를 필요적인 측면에서 간소화 시켰던 반면에 폴란드는 언어에서 편의를 도모하기 보다 민족적 정체성 유지에 더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봤다.
때문에 폴란드어는 슬라빅 언어의 복잡한 문법 체계를 현대에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앞으로도 언어 개혁을 할 가능성은? 확신 할 수는 없지만 거의 없다고 본다.
오히려 폴란드어의 복잡한 문법 체계가 국가성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듯 생각이 들때가 있다. 원칙을 중요시 여기고 반칙은 싫어 하며, 간단히 넘어 갈 수 있는 요령이 보이는 데도 정도를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사족이지만, 폴란드 사람들의 원리원칙 주의가 참 좋은 점은 이런 성향 덕분에 사람들이 음식에 장난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화학 비료 등도 한국에 비하면 아예 안치는 거나 마찬가지란다. 덕분에 사람들은 길에서 산 사과도 쓱쓱 문질러 껍질채로 먹는다. 얼마전에는 회사에서 임신 3개월의 여직원이 사과를 씻지도 않고 그냥 베어 먹는 것을 본적이 있다.
각설하고, 폴란드어는 아주 간단한 문장 하나를 만드는 데도 복잡한 문법적 논리를 필요로 한다. 동사의 인칭 변화는 기본이고, 동사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른 격 변화, 남성 여성 중성의 단어에 따른 형용사의 올바른 선택과 함께 격에 맞는 격 변화가 필요하다. 이 외에 수사가 들어가는 경우, 단-복수가 아닌 1의 경우 2,3,4의 경우 그리고 5 이상의 숫자에 따라 단어의 형태가 변한다. 겹치는 경우를 제외하고 단순히 계산 하자면 1개의 단어가 3개의 성에 따라 다르고, 3개의 성이 7개의 격에 따라 변화하고 여기서 수사의 의미가 들어갈 경우 3가지의 형태로 변한다. 여기서 내가 거품무는 부분은 형용사 또한 단어에 맞춰 성,수,격에 따라 변한다. 단어 변하는 방식 다르고, 형용사 변하는 방식 다르다. 그래도 귀여운 부분도 있다. 같은 단어도 크기에 따라 어미가 변화 한다는 것, 나름 규칙 변화다.
물론 겹치는 부분도 많고 복수에서는 남성과 중성이 같은 형태를 보이는 경우도 있고, 무생물의 경우 격변화 안하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더 헷깔린다.
러시아어 처음에 배울 때도 참 막막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눈앞이 깜깜하지는 않았다. 확실히 러시아어가 훨씬 간소화가 많이 된 것이 보인다. 물론 advanced로 넘어가면 점점 어려워지겠지만 그래도 처음에 느는 속도는 러시아 어가 훨씬 빠르다.
자 그럼 폴란드어를 구사하는 폴란드 사람들은 어떨까? 물론 어느 누구에게나 모국어가 그렇듯이 그들은 어렸을때부터 익혔기 때문에 자연스럽겠지만 한국어에도 어린이가 쓰는 말과 어른이 쓰는 말이 확연히 다르게 들리는 것처럼 (한국어에서 한자어를 구사한다거나 하는 것처럼) 빡센 국어 공부를 필요로 한다고 들었다.
내 남자친구는 고등학교 졸업 시험에 3가지 과목을 응시 했는데, (영어, 수학, 폴란드 어) 재미있게도 폴란드 어 점수가 제일 낮게 나왔다고 한다.
그런 언어를 배우고 있는 내 기분이 요새 어떤지 짐작이 가시는 지....?
내 영어 구사력에도 참 불만 많은데....... 러시아 어 공부 진짜 재미있게 하고 있었는 데 폴란드에 살고 있는 이유로.... 그리고 폴란드 인 남자친구랑 남자친구 부모님한테 참 예쁨 받아서 같이 얘기 하고 싶다는 이유로.... 러시아 어 잠시 쉬고 폴란드어 하고 있는데, 진짜 하루 하루 진도가 나갈 수록 눈물이 난다.
내가 과연 폴란드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날이 올까?
앞으로 결혼해서 애가 생기면 어쩌지? 혹시라도 폴란드에서 평생 살게 되면 어떻하지? 하는 등의 생각으로 마음이 진짜 암담하다.... 이게 미국에 나이 들어서 이민 가신 분들이 하시던 고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름 언어에 소질있다고 생각하며 산 세월이 28년이다.
일본어 물론 한국어랑 비슷하지만, 조금 공부 했는데 여행가서 별 문제 없이 소통 되는 거 보고 자신감 붙었었고, 사촌언니 독일어 하는 거 보고 나도!! 하면서 달려 들어서 일년 공부 했더니 베를린 가 있는 동안 기본 회화 되길래 그렇구나!! 하고 생각 했고 러시아어 하는 남자친구랑 반년 조금 안되게 연애 했더니 감 잡혀서 학원 반년 다니고 독학 하고 시험 봤더니 금방 중급 나와서 그래 하면 되는 거야!!! 하고 생각했는데.... 폴란드에서 생활 한지 일년... 이 언어는 무작위로 많이 듣는 다고 듣고 말할 수 있는 언어는 아니고, 상황에 따라, 그리고 세부적인 사항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는 고로 결코 머리가 굳은 성인으로서는 누군가의 가르침이 없이 배우는 건 불가능 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겨우 한고비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찾아온다....
이 모든 상황을 뒤로한 채 드는 생각은.....'영어가 제일 쉬웠어요!' 다.
현재는 자신감 제로, 완전 바닥에, 폴란드어! 후덜덜 하고는 있는데 오기가 생겨서 그만 두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스트레스 많이 받는다.
특히나 회사 다니며 공부 하려니... 진짜 시간도 없고 체력도 딸린다.
하지만 내 돈 들여가면서 배우는 건데 진짜 잘하고 싶다.
적어도 돈 버렸다는 생각은 절대 하고 싶지 않다.
이미 복식 문장으로 말하겠다는 생각은 버렸다. 간단한 문장이라도 문법에 맞게 맞는 격을 써서 단어 변화 제대로 시켜서 말하고 싶다.
2011년의 최대 목표는 이거다. 남자친구 엄마랑 둘이만 있어도 바디 랭귀지 말고 (다큰) 사람 답게 점잖게 대화 하는 것.....
오늘 밤에는 잠 못 이룰 것 같다.
왜냐면.... 내일이 학원 가는 날이기 때문
일반적으로 민족주의가 외부의 적이라는 존재에 대응해야 하는 위기의 상황에 매우 강력하게 발현 되어 작용하는 점을 고려하면, 왜 폴란드에서 언어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지가 쉽게 이해 된다.
러시아가 언어를 주변국에 보다 빠르고 효과적으로 전파하고자 복잡하고 불규칙적인 특성 자체를 필요적인 측면에서 간소화 시켰던 반면에 폴란드는 언어에서 편의를 도모하기 보다 민족적 정체성 유지에 더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봤다.
때문에 폴란드어는 슬라빅 언어의 복잡한 문법 체계를 현대에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앞으로도 언어 개혁을 할 가능성은? 확신 할 수는 없지만 거의 없다고 본다.
오히려 폴란드어의 복잡한 문법 체계가 국가성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듯 생각이 들때가 있다. 원칙을 중요시 여기고 반칙은 싫어 하며, 간단히 넘어 갈 수 있는 요령이 보이는 데도 정도를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사족이지만, 폴란드 사람들의 원리원칙 주의가 참 좋은 점은 이런 성향 덕분에 사람들이 음식에 장난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화학 비료 등도 한국에 비하면 아예 안치는 거나 마찬가지란다. 덕분에 사람들은 길에서 산 사과도 쓱쓱 문질러 껍질채로 먹는다. 얼마전에는 회사에서 임신 3개월의 여직원이 사과를 씻지도 않고 그냥 베어 먹는 것을 본적이 있다.
각설하고, 폴란드어는 아주 간단한 문장 하나를 만드는 데도 복잡한 문법적 논리를 필요로 한다. 동사의 인칭 변화는 기본이고, 동사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른 격 변화, 남성 여성 중성의 단어에 따른 형용사의 올바른 선택과 함께 격에 맞는 격 변화가 필요하다. 이 외에 수사가 들어가는 경우, 단-복수가 아닌 1의 경우 2,3,4의 경우 그리고 5 이상의 숫자에 따라 단어의 형태가 변한다. 겹치는 경우를 제외하고 단순히 계산 하자면 1개의 단어가 3개의 성에 따라 다르고, 3개의 성이 7개의 격에 따라 변화하고 여기서 수사의 의미가 들어갈 경우 3가지의 형태로 변한다. 여기서 내가 거품무는 부분은 형용사 또한 단어에 맞춰 성,수,격에 따라 변한다. 단어 변하는 방식 다르고, 형용사 변하는 방식 다르다. 그래도 귀여운 부분도 있다. 같은 단어도 크기에 따라 어미가 변화 한다는 것, 나름 규칙 변화다.
물론 겹치는 부분도 많고 복수에서는 남성과 중성이 같은 형태를 보이는 경우도 있고, 무생물의 경우 격변화 안하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더 헷깔린다.
러시아어 처음에 배울 때도 참 막막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눈앞이 깜깜하지는 않았다. 확실히 러시아어가 훨씬 간소화가 많이 된 것이 보인다. 물론 advanced로 넘어가면 점점 어려워지겠지만 그래도 처음에 느는 속도는 러시아 어가 훨씬 빠르다.
자 그럼 폴란드어를 구사하는 폴란드 사람들은 어떨까? 물론 어느 누구에게나 모국어가 그렇듯이 그들은 어렸을때부터 익혔기 때문에 자연스럽겠지만 한국어에도 어린이가 쓰는 말과 어른이 쓰는 말이 확연히 다르게 들리는 것처럼 (한국어에서 한자어를 구사한다거나 하는 것처럼) 빡센 국어 공부를 필요로 한다고 들었다.
내 남자친구는 고등학교 졸업 시험에 3가지 과목을 응시 했는데, (영어, 수학, 폴란드 어) 재미있게도 폴란드 어 점수가 제일 낮게 나왔다고 한다.
그런 언어를 배우고 있는 내 기분이 요새 어떤지 짐작이 가시는 지....?
내 영어 구사력에도 참 불만 많은데....... 러시아 어 공부 진짜 재미있게 하고 있었는 데 폴란드에 살고 있는 이유로.... 그리고 폴란드 인 남자친구랑 남자친구 부모님한테 참 예쁨 받아서 같이 얘기 하고 싶다는 이유로.... 러시아 어 잠시 쉬고 폴란드어 하고 있는데, 진짜 하루 하루 진도가 나갈 수록 눈물이 난다.
내가 과연 폴란드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날이 올까?
앞으로 결혼해서 애가 생기면 어쩌지? 혹시라도 폴란드에서 평생 살게 되면 어떻하지? 하는 등의 생각으로 마음이 진짜 암담하다.... 이게 미국에 나이 들어서 이민 가신 분들이 하시던 고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름 언어에 소질있다고 생각하며 산 세월이 28년이다.
일본어 물론 한국어랑 비슷하지만, 조금 공부 했는데 여행가서 별 문제 없이 소통 되는 거 보고 자신감 붙었었고, 사촌언니 독일어 하는 거 보고 나도!! 하면서 달려 들어서 일년 공부 했더니 베를린 가 있는 동안 기본 회화 되길래 그렇구나!! 하고 생각 했고 러시아어 하는 남자친구랑 반년 조금 안되게 연애 했더니 감 잡혀서 학원 반년 다니고 독학 하고 시험 봤더니 금방 중급 나와서 그래 하면 되는 거야!!! 하고 생각했는데.... 폴란드에서 생활 한지 일년... 이 언어는 무작위로 많이 듣는 다고 듣고 말할 수 있는 언어는 아니고, 상황에 따라, 그리고 세부적인 사항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는 고로 결코 머리가 굳은 성인으로서는 누군가의 가르침이 없이 배우는 건 불가능 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겨우 한고비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찾아온다....
이 모든 상황을 뒤로한 채 드는 생각은.....'영어가 제일 쉬웠어요!' 다.
현재는 자신감 제로, 완전 바닥에, 폴란드어! 후덜덜 하고는 있는데 오기가 생겨서 그만 두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스트레스 많이 받는다.
특히나 회사 다니며 공부 하려니... 진짜 시간도 없고 체력도 딸린다.
하지만 내 돈 들여가면서 배우는 건데 진짜 잘하고 싶다.
적어도 돈 버렸다는 생각은 절대 하고 싶지 않다.
이미 복식 문장으로 말하겠다는 생각은 버렸다. 간단한 문장이라도 문법에 맞게 맞는 격을 써서 단어 변화 제대로 시켜서 말하고 싶다.
2011년의 최대 목표는 이거다. 남자친구 엄마랑 둘이만 있어도 바디 랭귀지 말고 (다큰) 사람 답게 점잖게 대화 하는 것.....
오늘 밤에는 잠 못 이룰 것 같다.
왜냐면.... 내일이 학원 가는 날이기 때문
3/26/2011
생활의 기쁨.
나는 요리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내가 요리를 처음 했던 건 초등학교 5학년이던 11살때, 학원을 하시는 엄마는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늘 집에 계시지 않았다. 그래도 그 해는 엄마가 동생을 출산 하셔서 1학기 때는 집에서 쉬셨었는데 외 할머니께서 집에 머물며 우리와 엄마를 돌봐 주셨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엄마는 다시 학원으로 출근 하셨고 외 할머니께서 갓난 동생을 돌봐 주셨다.
가끔 외 할머니께서 볼일을 보러 외출 하실 때가 있었는데, 물론 밥을 준비해 놓고 나가셨지만, 보통 아침에 먹었던 음식과 같은 반찬과 국으로 차려진 상이었다. 그 때의 나는 지금과 같이 같은 음식을 두끼 이상 먹는걸 무척 싫어해서 외할머니께서 많이 힘들어 하셨던 기억이 나는데, 그 때 차려진 상이 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종종 할머니께서 만드는 걸 옆에서 보았던 기억이 나는 수제비를 만들기로 결심을 하고 찬장에서 밀가루를 꺼내고, 멸치 가루, 새우 가루 외 할머니께서 곱게 갈아 놓은 가루를 물에 풀어 감자 껍질 깎아 수제비를 만들어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나는 음식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 둘째 이모가 정말 음식 솜씨가 환상이었는데 우리 이모는 뭘 만들더라도 정말 뚝딱뚝딱 간단한 재료로도 환상적인 맛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었다. 반면에 우리 엄마는 정말 음식을 귀찮아하고 싫어 하셔서 지금도 된장찌게는 내가 훨씬 잘 끓인다. 이모네 집에 놀러가면 난 항상 이모 옆에 졸졸 따라 다니며 이모가 뭘 만드시는지 옆에서 지켜 보곤 했다. 지금도 이모가 만들어 주셨던 육개장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나이가 먹어 아무리 이것 저것 넣고 만들어 봐도 그 맛이 나질 않는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걸 좋아한다.
음식을 워낙에 천천히 먹는데다 쉬었다 다시 먹는 버릇이 있어서 내 남자친구가 요새 밥 먹는 속도를 줄이려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생각이 난다. 오늘은 뭘 해 먹어야지~ 하고...
그러면 냉장고 안의 재료를 확인 하고 장을 보러 나간다.
장을 보고 와선 천천히 요리를 시작한다.
전문적으로 배워 본적도 없고, 평소에 요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지만, 주말이면 집에서 요리 하며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
그렇게 예민한 식감을 가진 것도 아니고 작은 부분 까지 알아 차릴 정도로 민감한 입맛도 아니니 평균 이상의 맛만 나오면 된다.
해가 지나면 지날 수록 눈치가 늘어 고등학교 무렵 부터는 어떤 음식을 해도 곧잘 맛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물론 아마추어 수준에서....
음식점을 내거나 하면 망할 수준이지만, 내 남동생들은 늘 누나의 음식이 최고라며 그릇을 싹싹 비우곤 했다. 남자애가 셋이나 되서 우리집은 김치찌게를 끓여도 곰솥에다 끓이고, 삼겹살을 구워도 10인분은 구워야 배 부르다는 소리를 하며 상을 떠난다.
보통은 붉기를 재어 놓으면 몇 일은 간다던데.... 김치통에 가득 고기를 재어 둬도 삼일을 못갔다. 나와는 다르게 반찬 투정 한번 없이 내 동생들은 내가 해주는 음식을 참 잘 먹었다. 그래서 엄마는 우리들 식사 걱정은 거의 하질 않으셨다. 나에게 재료비를 늘 놔두셨는데 덕분에 동생들은 용돈을 받으려 내 말에 거의 거역한 적이 없다.
그렇게 내 밑에서 늘 심부름에 시달리던 둘째 동생, 중학교, 사춘기 임에도 불구하고 한밤 중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는 내 부탁에 편의점에 달려갔던 동생이 이번에 대학을 들어갔다.
집을 떠나서 가장 걱정이 드는 건 우리 막내, 우리 엄마가 보신 두번째 늦둥이....
내가 없는데 밥은 잘 챙겨 먹을까 하고..... 맛있는 걸 먹을 때면 늘 생각이 난다.
위의 두 명은 완전히 한식 파라 밥을 늘 선호 했는데 우리 막내는 내가 어디서 요상한 걸 만들어 줘도 참 잘 먹었다. 식성이 별나다고 생각 했는데, 얼마전에 전화로 얘기 할 때 누나가 만들어준 파스타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특별한 파스타도 아니 었는데.... 막내는 늘 전화 할때면 파스타 얘기를 한다.
어디선가 읽은 말이지만 마음 깊이 공감했던 말이....
누군가와 식사를 함께 하는 일은 영혼을 나누는 일이라고 했다.
식사는 늘 좋은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그래서 불편한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느니 나는 혼자 먹는 것이 편하다. 맛도 더 잘 느낄수 있고, 마음의 여유도 있고....
오늘 만든 음식은 뿌팟퐁커리, 갑자기 떠올라 냉장고에 있던 꽃게를 녹여 가볍게 튀겨서는 마늘과 양파 잘게 썰어 볶아 커리 가루 올려 코코넛 밀크 넣고 계란 풀어 마지막에 쪽파를 넣었더니 생각 했던 것보다 부드러운 느낌의 커리가 나왔다.
밥위에 올려 먹었더니 참 맛있었다.
장볼 때 함께 사왔던 생강 맥주를 곁들어 마셨더니 혼자 있어도 마음이 훈훈해 진다.
좋은 사람이 생각나는 밤이다.
내가 요리를 처음 했던 건 초등학교 5학년이던 11살때, 학원을 하시는 엄마는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늘 집에 계시지 않았다. 그래도 그 해는 엄마가 동생을 출산 하셔서 1학기 때는 집에서 쉬셨었는데 외 할머니께서 집에 머물며 우리와 엄마를 돌봐 주셨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엄마는 다시 학원으로 출근 하셨고 외 할머니께서 갓난 동생을 돌봐 주셨다.
가끔 외 할머니께서 볼일을 보러 외출 하실 때가 있었는데, 물론 밥을 준비해 놓고 나가셨지만, 보통 아침에 먹었던 음식과 같은 반찬과 국으로 차려진 상이었다. 그 때의 나는 지금과 같이 같은 음식을 두끼 이상 먹는걸 무척 싫어해서 외할머니께서 많이 힘들어 하셨던 기억이 나는데, 그 때 차려진 상이 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종종 할머니께서 만드는 걸 옆에서 보았던 기억이 나는 수제비를 만들기로 결심을 하고 찬장에서 밀가루를 꺼내고, 멸치 가루, 새우 가루 외 할머니께서 곱게 갈아 놓은 가루를 물에 풀어 감자 껍질 깎아 수제비를 만들어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나는 음식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 둘째 이모가 정말 음식 솜씨가 환상이었는데 우리 이모는 뭘 만들더라도 정말 뚝딱뚝딱 간단한 재료로도 환상적인 맛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었다. 반면에 우리 엄마는 정말 음식을 귀찮아하고 싫어 하셔서 지금도 된장찌게는 내가 훨씬 잘 끓인다. 이모네 집에 놀러가면 난 항상 이모 옆에 졸졸 따라 다니며 이모가 뭘 만드시는지 옆에서 지켜 보곤 했다. 지금도 이모가 만들어 주셨던 육개장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나이가 먹어 아무리 이것 저것 넣고 만들어 봐도 그 맛이 나질 않는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걸 좋아한다.
음식을 워낙에 천천히 먹는데다 쉬었다 다시 먹는 버릇이 있어서 내 남자친구가 요새 밥 먹는 속도를 줄이려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생각이 난다. 오늘은 뭘 해 먹어야지~ 하고...
그러면 냉장고 안의 재료를 확인 하고 장을 보러 나간다.
장을 보고 와선 천천히 요리를 시작한다.
전문적으로 배워 본적도 없고, 평소에 요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지만, 주말이면 집에서 요리 하며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
그렇게 예민한 식감을 가진 것도 아니고 작은 부분 까지 알아 차릴 정도로 민감한 입맛도 아니니 평균 이상의 맛만 나오면 된다.
해가 지나면 지날 수록 눈치가 늘어 고등학교 무렵 부터는 어떤 음식을 해도 곧잘 맛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물론 아마추어 수준에서....
음식점을 내거나 하면 망할 수준이지만, 내 남동생들은 늘 누나의 음식이 최고라며 그릇을 싹싹 비우곤 했다. 남자애가 셋이나 되서 우리집은 김치찌게를 끓여도 곰솥에다 끓이고, 삼겹살을 구워도 10인분은 구워야 배 부르다는 소리를 하며 상을 떠난다.
보통은 붉기를 재어 놓으면 몇 일은 간다던데.... 김치통에 가득 고기를 재어 둬도 삼일을 못갔다. 나와는 다르게 반찬 투정 한번 없이 내 동생들은 내가 해주는 음식을 참 잘 먹었다. 그래서 엄마는 우리들 식사 걱정은 거의 하질 않으셨다. 나에게 재료비를 늘 놔두셨는데 덕분에 동생들은 용돈을 받으려 내 말에 거의 거역한 적이 없다.
그렇게 내 밑에서 늘 심부름에 시달리던 둘째 동생, 중학교, 사춘기 임에도 불구하고 한밤 중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는 내 부탁에 편의점에 달려갔던 동생이 이번에 대학을 들어갔다.
집을 떠나서 가장 걱정이 드는 건 우리 막내, 우리 엄마가 보신 두번째 늦둥이....
내가 없는데 밥은 잘 챙겨 먹을까 하고..... 맛있는 걸 먹을 때면 늘 생각이 난다.
위의 두 명은 완전히 한식 파라 밥을 늘 선호 했는데 우리 막내는 내가 어디서 요상한 걸 만들어 줘도 참 잘 먹었다. 식성이 별나다고 생각 했는데, 얼마전에 전화로 얘기 할 때 누나가 만들어준 파스타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특별한 파스타도 아니 었는데.... 막내는 늘 전화 할때면 파스타 얘기를 한다.
어디선가 읽은 말이지만 마음 깊이 공감했던 말이....
누군가와 식사를 함께 하는 일은 영혼을 나누는 일이라고 했다.
식사는 늘 좋은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그래서 불편한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느니 나는 혼자 먹는 것이 편하다. 맛도 더 잘 느낄수 있고, 마음의 여유도 있고....
오늘 만든 음식은 뿌팟퐁커리, 갑자기 떠올라 냉장고에 있던 꽃게를 녹여 가볍게 튀겨서는 마늘과 양파 잘게 썰어 볶아 커리 가루 올려 코코넛 밀크 넣고 계란 풀어 마지막에 쪽파를 넣었더니 생각 했던 것보다 부드러운 느낌의 커리가 나왔다.
밥위에 올려 먹었더니 참 맛있었다.
장볼 때 함께 사왔던 생강 맥주를 곁들어 마셨더니 혼자 있어도 마음이 훈훈해 진다.
좋은 사람이 생각나는 밤이다.
3/17/2011
연인의 대화
무상 급식과 무료 공교육의 문제에 대해서 토론하는 커플이라니....
어떻게 보면 우습기 짝이 없지만 내가 읽는 모든 종류의 글에 관심을 가지는 남자친구 덕분에.... (한글로 된 글도 읽고 있으면 옆에 앉아서 번역해 달라고 조른다. 강아지 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면서... 가끔 먹이 달라고 눈빛 발사 하는 강아지를 키우는 느낌이 들 정도...)
솔직히 전 남자친구들이 무척 쿨 한 스탈들이시라... 그리고 나도 물론 상대방 취미나 관심사 최대한 존중해주고 별로 간섭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남자 조금 생소하고 가끔은 부담 스럽다. 막상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내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보는 남자가 멋있어 보일지 몰라도 일상은 그런 것들과는 매우 다르다.
직업이 회계,재무 관련 업종인지라 자기전에 침대에 앉아 가끔 ADBI에서 보고서들을 살펴 보곤 하는데 사실 나도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는데 설명해 달라고 조른다. 가뜩이나 설명 같은거 잘 못하는 타입인데 머리로만 그것도 두리 뭉실하게 알고 있는 걸 설명해 보라고 한다. (영어로 되어 있으니까 니가 찾아서 읽어봐!! 하고 싶은 걸 꾹 참으며) 한참을 버벅 거리고 겨우겨우 이상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다가 패닉이 되서 짜증이 폭발 할라치면 슬그머니 지 노트북 꺼내서 살펴 보고는 아는 척을 막 하면서 나한테 도리어 설명을 하려고 한다.
그럴 땐 짜증이 많이 난다. 그냥 15분 20분이면 다 읽고 내려 놓을 것을 1시간 2시간을 넘게 잠도 못자고 체력과 감정을 소모하게 만든다. 게다가 나는 늘 약이 올라 씩씩 거리며 끝나는 게 다반사, 잠이 오질 않는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게 아니다 내가 겨우 진정하고 잠 들면 그걸 밤새 읽고는(자는 시간이 아깝다고 하시는 1인) 다음 날 다시 말 꺼내서 지는 어떻게 생각하고 뭐가 어떻고 저떻고 를 늘어 놓는다.
사실 나는 그렇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보고서를 찾아 보는 건 아니다. 잘 모르니까 알아 보려고 읽는 건데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를 가지고 자꾸 얘기를 하려고 드니까 짜증도 나는데다 무엇보다도 그는 사회주의의 병폐를 보고 자란 열렬한 자유 시장주의자고 나는 자본주의의 side effect를 격고 자란 신 자유주의에도 약간 동의하고 수정 자본주의에도 관심 있고 행동 경제학 좋아 보이는 뭔가 체계가 정립 되지 않은 약간 사이비 돌팔이 경제학도 정도?라고 할까...... 아무튼 남자친구처럼 시장을 맹신 하지는 않는 다는 점이 우리의 대화를 참 힘들게 만든다.
그래..... 솔직히 다행인건 언어로 인한 갈등은 참 적다.
연애의 기본은 소통이라고 생각 하기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연애는 진작에 쫑 났을꺼다. 다행히 남자친구는 언어에 매우 소질이 있기 때문에 공학도 이고 폴란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에서 걱정하는 것처럼 영어를 못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남자친구 쪽 폴란드 애들은 한국애랑 사귀는데 언어는 어떻게 하냐며 걱정하는 거나 마찬가지....(내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걱정 하는 것과는 달리 전반적인 영어 구사 수준은 한국인 보다 유럽인이라는 advantage를 갖고 있는 폴란드인이 훨씬 높다. 걱정하지 마시라....)
사족이지만 옛날에 내 이상형이 뭐냐 하는 질문에 영어 나보다 잘하고 러시아어 나보다 잘하고 독일어 나보다 잘하는 남자 라고 대답한 적이 있는데 (본인의 러시아어 실력은 intermediate, 독일어는 survival 수준 ) 기도도 안했는데 하느님이 (본인은 가톨릭임) 내 이상형의 남자를 만나게 해주셨다. 그런데 참 오묘하게도 그때 내가 한국어는 말 안했다고 맞춤 서비스로 한국어를 못하는 남자를 보내 주셨을까..... 하고 우스개소리로 친구랑 얘기 한적이 있다. 덕분에 상상도 못했던 폴란드어까지 배우고 있다. 인생은 참으로 오묘하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친구들 중에 나는 왜 남자가 안생기지.... 하고 말하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기도해 보3 하고 얘기 한다. ㅎ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우리의 대화에 대해서 얘기를 하자면, 최근 한국을 뜨겁게 달궜던 무상 급식, 무료 공교육에 대한 글을 읽고 있었다. (물론 한글로 씌여진....)
IMF를 고등학교 때 겪어 본 나로서는 연민의 감정에 근거하여 얘기 했다. 어른들은 몰라도 나는 애들한테는 선택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함. 애들이 잘 커야 미래가 있는 거야.
애들은 걱정 없이 먹고 공부 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누려야 한다고 생각함(전제 자체가 부모가 함량 미달인 아이들에 대한 걱정에서 시작하고 있음)이라고 특색 없는 의견을 갖고 있는 반면 남자친구는....
애초에 선택의 기회 같은 건 없음.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환경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음. 부모가 책임질 수 없다면 어느 누구도 책임질 수 없음. 부모가 문제 있다면 학교에서 아무리 공부할 기회가 주어지고 밥 먹여도 잘 자라기 힘듬. 그리고 국가에서 일률적으로 키워서 사회에 내보내도 문제임 왜냐하면 각자 갖고 있는게 다른데 이런 차이를 어렸을 때 부터 겪으며 자라지 않으면 대처하는데 적극적이지 못함, 준비도 안되어 있음. 차라리 어렸을 때부터 차이를 인식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좋음. 마지막으로 국가가 교육을 책임진다는 건 말이 안됨. 부모가 애를 갖기 전부터 막강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자식을 교육 시켜야 함. 복지 정책도 마찬가지임 국가가 복지를 책임지고 애 교육도 책임 지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자신의 삶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을 안함. 자식이 잘 커서 돈을 잘 벌어서 본인을 부양해야 된다는 필요성이 있더라면 유럽 사람들이 지금 보다 훨 적극적으로 자식 낳고 더 열심히 키울 것임. 출산율 낮아 진다고 막 떠드는 거 보면 무척 웃김. 나는 공교육 무조건 반대임 사회 자체가 공평하게 기회를 준다는 발상 자체가 사회주의 적인 발상임. 당장 세금 부터 줄이고 복지 예산 삭감 해서 스스로 책임 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함. 세금률 한국의 두 배, 세 배, 심지어는 네 배 인데 그거 어디다 쓰는지 유럽의 거의 모든 공공 시스템이 한국의 1/3도 못 따라감. 한국이 유럽 안 따라오면 좋겠음
라고 속사포처럼 쏟아 놓는다.
감정적인 나는 얘랑 얘기 하다보면 말문이 막히고 복장이 터져서 죽을 것 같고 남자친구는 폴란드인 기질 (말 많고 자기 의견 매우 확실하고 본인이 매우 논리적이라고 생각함,거의 모든 폴란드 사람들이 그렇슴 )을 유감 없이 발휘하여 나를 궁지로 몰아 넣는다. 물론 나는 논리라고는 진작에 내팽개치고 너는 사람이 왜 그러니....불쌍한 애들은 어떻하니... 하고 감정에 호소하다가 안되면 급기야는 소리 지르고 난 너 같은 남자가 정말 싫다!!! 면서 -_-;;; 화낸다. (아...나는 토론에 매우 약함.... ) 그러면 남자친구는 미안하다, 내가 너무 내 의견만 몰아 부쳤다, 네 마음 이해 한다, 내가 좀 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도록 노력 하겠다 면서 다독이지만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라는 걸 경험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유인 즉 같이 있으면 비슷한 상황이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일어난다. (휴가 간다고 해서 결코 쉬지 않음.... ) 그나마 요즘엔 남자친구가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우리의 토론(이라고 쓰고 말싸움이라고 읽는다) 은 일주일에 한번으로 줄었....다. -_-;;; (황금 같은 주말을 꼬박 스카이프와 함께...) 안 그러려고 해도 이 얘기 저 얘기 하다보면 자꾸 상황이 그렇게 돌아 간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지금은 서로 역사 얘기 안한다는 것, 전에 한번 역사 얘기 했다가 정말 내가 대판 소리지르고 난리 난리 쳐서..... 그 다음부터 절대 서로 역사 얘기는 안하기로 합의 했다. (이 얘기는 다음에.....)
[물론 나도 참 못할 말 많이 했지만 (예를 들어.... 아래에....) 폴란드 사람들도 한번 시작하면 비판 작렬이기 땜시.....
상황 : 폴란드 어 공부하는데 변화가 너무 극심해서 좌절.... 배울 수록 어려운 말임, 정말 절망적이라고 생각했음, 단순한 문장 말하는 데도 진짜 단어가 너무 화려하게 변해주고 발음도 짜증남
홧김에 본인이 밷은 말 : 근데 너네 나라 말은 나라가 없어지고 그렇게 오래 지났는데 어떻게 안 없어지고 계속 남았어? 이렇게 어려운데? 차라리 러시아 말 편하게 하지... 그럼 나도 지금 전에 하던 러시아어 계속 공부 했을 텐데.... 흑 폴란드어 너무 어려워!!!!-물론 러시아 말도 매우 어렵지만 러시아어 퍼뜨리려고 국가적으로 문법에 손질 많이 했음, 폴란드어 보다는 많이 간소화 됨
남자 친구 반응 : 화 안냄 이해 한다는 듯이 토닥 토닥, 시간이 필요하지 너 잘하고 있다.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도와 줄께
본인이 느낀 점 - 만약 남자친구가 너네 말은 왜 안 없어졌어? 일본말 그냥 배워서 하지... 하고 말했으면 진짜 죽이려고 달려 들었을 것임, 시간이 지난 지금은 남자친구의 너그러움에 감사하고 있음]
그런데 내 말문을 막는 한 가지가 또 있다. 얘는 참 진심이고 진지하고 정치에 관심 많은데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재외국민 신고도 제대로 안되어 있어서 투표도 못하고 한국에 있을때도 그렇게 열심히 투표하고 관심있게 찾아 보는 타입이 아니었다. 솔직히 휴일이구나~ 아싸~ 하는 정도? 엄마가 투표 하러 가는 길에 슬금슬금 쫓아가서 같이 투표하고 다슬기 해장국 먹고 온적은 있지만... 아예 정치 쪽은 관심이 없다는게 맞다. 그런데 얘는 일요일을 투표일로 지정하는 뷁 스러운 폴란드 정치인들의 농간(?)에도 굴하지 않고 저 멀리 암스테르담에서부터 자비로 비행기표 사서 투표 하러 오신다. 물론 유세 기간에 유투브며 지네 뉴스며 각종 자료 찾아 보면서 분석해 주시는 센스까지.... 맨날 폴란드 욕하면서 마음 속 깊이 자국에 대한 애정이 있는 거다. (외 할머니 독일에서 넘어 오셨고 외 할아버지 엄마 집안이 우크라이나에서 넘어온 혈통임에도 불구하고 얘는 폴란드인인거다. 외할머니 일본분이시라 어렸을때 학교에서 일본놈 드립 당한 이후 한국인이라는 의식이 희박해진 나와는 달리...)
그래서 역사 얘기 할때만 어정쩡하게 발동되는 묘한 애국심을 가진 나와는 달리 남자친구가 더 당당하게 정치적 경제적 사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거다.
얘 때문에 지난 일년간 많은 수모와 모욕....은 좀 과장이고 괜히 말 꺼냈다가 물 먹은 경험이 많다.
요즘에 얘기 하면 서로 싸울 주제 참 많은데 다행히 떨어져 있어서 그 빈도가 많이 줄었다.
우리는 어떤 대화를 하던지 연인 치고는 참 치열하게 대립한다. 남자친구도 내가 폭발하기 전까진 결코 주장을 굽히지 않는 터라.... 어쩔때 보면 내가 내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치고 올라와 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바르샤바로 왕림하시는(오늘 도착) 남자친구를 위해 이번엔 내가 좀 준비를 했다. 채찍과 당근이라고 할까....
저번에 장하준 교수가 쓴 책(23things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을 같이 읽어 보자고 영어 원문으로 주문해서 선심 쓰듯 먼저 읽어~ 하고 줬더니 지가 동의 할수 없는 부분에 막 반대 의견 써놨다. 하도 개발새발 써 놨길래 해독하기 힘들었지만 야근에 시달리고 폴란드어 수업에 시달리는 중간 중간에도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그 녀석이 써 놓은 의견을 살펴보고 내가 하고 싶은 말 차근 차근 요점 정리 해놨다. 내가 제일 싫어 하는게 개론서에 낙서 하는 건데 포스트잇에다 붙여 놓은 것도 아니고.... (그래도 다행히 샤프로....) 책에다 써 넣다니 결코 용서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지만 먼저 약점 노출해 주셨으니 그 정도는 눈 감고 넘어가 주겠다... 하고 생각했다. 채찍을 단단히 준비 했으니 당근도 달달한 걸로 골라 놨다. 사다리 걷어차기 영문판이다. 물론 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에이 잘 모르겠다!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정말 부담 없이 재미 있게 읽었기 때문에 영문판으로 한번 더 보려고 샀다. 그렇지 않아도 23책 읽고는 장하준 교수한테 이메일 보내 보고 싶다... 답장이 올까? 그 교수가 읽어 보기나 할까? 하면서 좀 두근두근해 하던데 이번엔 뭐라고 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남자친구에게 반격하기 위해 미시 경제 원론서 뒤지다가 든 생각....
다른 연인들은 어떤 대화를 할까....
근데 얘는 공학 하는 애가 왜 저렇게 역사랑 경제에 관심이 많지? ( 급 짜증이 울컥.... )
어떻게 보면 우습기 짝이 없지만 내가 읽는 모든 종류의 글에 관심을 가지는 남자친구 덕분에.... (한글로 된 글도 읽고 있으면 옆에 앉아서 번역해 달라고 조른다. 강아지 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면서... 가끔 먹이 달라고 눈빛 발사 하는 강아지를 키우는 느낌이 들 정도...)
솔직히 전 남자친구들이 무척 쿨 한 스탈들이시라... 그리고 나도 물론 상대방 취미나 관심사 최대한 존중해주고 별로 간섭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남자 조금 생소하고 가끔은 부담 스럽다. 막상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내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보는 남자가 멋있어 보일지 몰라도 일상은 그런 것들과는 매우 다르다.
직업이 회계,재무 관련 업종인지라 자기전에 침대에 앉아 가끔 ADBI에서 보고서들을 살펴 보곤 하는데 사실 나도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는데 설명해 달라고 조른다. 가뜩이나 설명 같은거 잘 못하는 타입인데 머리로만 그것도 두리 뭉실하게 알고 있는 걸 설명해 보라고 한다. (영어로 되어 있으니까 니가 찾아서 읽어봐!! 하고 싶은 걸 꾹 참으며) 한참을 버벅 거리고 겨우겨우 이상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다가 패닉이 되서 짜증이 폭발 할라치면 슬그머니 지 노트북 꺼내서 살펴 보고는 아는 척을 막 하면서 나한테 도리어 설명을 하려고 한다.
그럴 땐 짜증이 많이 난다. 그냥 15분 20분이면 다 읽고 내려 놓을 것을 1시간 2시간을 넘게 잠도 못자고 체력과 감정을 소모하게 만든다. 게다가 나는 늘 약이 올라 씩씩 거리며 끝나는 게 다반사, 잠이 오질 않는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게 아니다 내가 겨우 진정하고 잠 들면 그걸 밤새 읽고는(자는 시간이 아깝다고 하시는 1인) 다음 날 다시 말 꺼내서 지는 어떻게 생각하고 뭐가 어떻고 저떻고 를 늘어 놓는다.
사실 나는 그렇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보고서를 찾아 보는 건 아니다. 잘 모르니까 알아 보려고 읽는 건데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를 가지고 자꾸 얘기를 하려고 드니까 짜증도 나는데다 무엇보다도 그는 사회주의의 병폐를 보고 자란 열렬한 자유 시장주의자고 나는 자본주의의 side effect를 격고 자란 신 자유주의에도 약간 동의하고 수정 자본주의에도 관심 있고 행동 경제학 좋아 보이는 뭔가 체계가 정립 되지 않은 약간 사이비 돌팔이 경제학도 정도?라고 할까...... 아무튼 남자친구처럼 시장을 맹신 하지는 않는 다는 점이 우리의 대화를 참 힘들게 만든다.
그래..... 솔직히 다행인건 언어로 인한 갈등은 참 적다.
연애의 기본은 소통이라고 생각 하기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연애는 진작에 쫑 났을꺼다. 다행히 남자친구는 언어에 매우 소질이 있기 때문에 공학도 이고 폴란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에서 걱정하는 것처럼 영어를 못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남자친구 쪽 폴란드 애들은 한국애랑 사귀는데 언어는 어떻게 하냐며 걱정하는 거나 마찬가지....(내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걱정 하는 것과는 달리 전반적인 영어 구사 수준은 한국인 보다 유럽인이라는 advantage를 갖고 있는 폴란드인이 훨씬 높다. 걱정하지 마시라....)
사족이지만 옛날에 내 이상형이 뭐냐 하는 질문에 영어 나보다 잘하고 러시아어 나보다 잘하고 독일어 나보다 잘하는 남자 라고 대답한 적이 있는데 (본인의 러시아어 실력은 intermediate, 독일어는 survival 수준 ) 기도도 안했는데 하느님이 (본인은 가톨릭임) 내 이상형의 남자를 만나게 해주셨다. 그런데 참 오묘하게도 그때 내가 한국어는 말 안했다고 맞춤 서비스로 한국어를 못하는 남자를 보내 주셨을까..... 하고 우스개소리로 친구랑 얘기 한적이 있다. 덕분에 상상도 못했던 폴란드어까지 배우고 있다. 인생은 참으로 오묘하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친구들 중에 나는 왜 남자가 안생기지.... 하고 말하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기도해 보3 하고 얘기 한다. ㅎ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우리의 대화에 대해서 얘기를 하자면, 최근 한국을 뜨겁게 달궜던 무상 급식, 무료 공교육에 대한 글을 읽고 있었다. (물론 한글로 씌여진....)
IMF를 고등학교 때 겪어 본 나로서는 연민의 감정에 근거하여 얘기 했다. 어른들은 몰라도 나는 애들한테는 선택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함. 애들이 잘 커야 미래가 있는 거야.
애들은 걱정 없이 먹고 공부 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누려야 한다고 생각함(전제 자체가 부모가 함량 미달인 아이들에 대한 걱정에서 시작하고 있음)이라고 특색 없는 의견을 갖고 있는 반면 남자친구는....
애초에 선택의 기회 같은 건 없음.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환경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음. 부모가 책임질 수 없다면 어느 누구도 책임질 수 없음. 부모가 문제 있다면 학교에서 아무리 공부할 기회가 주어지고 밥 먹여도 잘 자라기 힘듬. 그리고 국가에서 일률적으로 키워서 사회에 내보내도 문제임 왜냐하면 각자 갖고 있는게 다른데 이런 차이를 어렸을 때 부터 겪으며 자라지 않으면 대처하는데 적극적이지 못함, 준비도 안되어 있음. 차라리 어렸을 때부터 차이를 인식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좋음. 마지막으로 국가가 교육을 책임진다는 건 말이 안됨. 부모가 애를 갖기 전부터 막강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자식을 교육 시켜야 함. 복지 정책도 마찬가지임 국가가 복지를 책임지고 애 교육도 책임 지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자신의 삶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을 안함. 자식이 잘 커서 돈을 잘 벌어서 본인을 부양해야 된다는 필요성이 있더라면 유럽 사람들이 지금 보다 훨 적극적으로 자식 낳고 더 열심히 키울 것임. 출산율 낮아 진다고 막 떠드는 거 보면 무척 웃김. 나는 공교육 무조건 반대임 사회 자체가 공평하게 기회를 준다는 발상 자체가 사회주의 적인 발상임. 당장 세금 부터 줄이고 복지 예산 삭감 해서 스스로 책임 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함. 세금률 한국의 두 배, 세 배, 심지어는 네 배 인데 그거 어디다 쓰는지 유럽의 거의 모든 공공 시스템이 한국의 1/3도 못 따라감. 한국이 유럽 안 따라오면 좋겠음
라고 속사포처럼 쏟아 놓는다.
감정적인 나는 얘랑 얘기 하다보면 말문이 막히고 복장이 터져서 죽을 것 같고 남자친구는 폴란드인 기질 (말 많고 자기 의견 매우 확실하고 본인이 매우 논리적이라고 생각함,거의 모든 폴란드 사람들이 그렇슴 )을 유감 없이 발휘하여 나를 궁지로 몰아 넣는다. 물론 나는 논리라고는 진작에 내팽개치고 너는 사람이 왜 그러니....불쌍한 애들은 어떻하니... 하고 감정에 호소하다가 안되면 급기야는 소리 지르고 난 너 같은 남자가 정말 싫다!!! 면서 -_-;;; 화낸다. (아...나는 토론에 매우 약함.... ) 그러면 남자친구는 미안하다, 내가 너무 내 의견만 몰아 부쳤다, 네 마음 이해 한다, 내가 좀 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도록 노력 하겠다 면서 다독이지만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라는 걸 경험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유인 즉 같이 있으면 비슷한 상황이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일어난다. (휴가 간다고 해서 결코 쉬지 않음.... ) 그나마 요즘엔 남자친구가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우리의 토론(이라고 쓰고 말싸움이라고 읽는다) 은 일주일에 한번으로 줄었....다. -_-;;; (황금 같은 주말을 꼬박 스카이프와 함께...) 안 그러려고 해도 이 얘기 저 얘기 하다보면 자꾸 상황이 그렇게 돌아 간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지금은 서로 역사 얘기 안한다는 것, 전에 한번 역사 얘기 했다가 정말 내가 대판 소리지르고 난리 난리 쳐서..... 그 다음부터 절대 서로 역사 얘기는 안하기로 합의 했다. (이 얘기는 다음에.....)
[물론 나도 참 못할 말 많이 했지만 (예를 들어.... 아래에....) 폴란드 사람들도 한번 시작하면 비판 작렬이기 땜시.....
상황 : 폴란드 어 공부하는데 변화가 너무 극심해서 좌절.... 배울 수록 어려운 말임, 정말 절망적이라고 생각했음, 단순한 문장 말하는 데도 진짜 단어가 너무 화려하게 변해주고 발음도 짜증남
홧김에 본인이 밷은 말 : 근데 너네 나라 말은 나라가 없어지고 그렇게 오래 지났는데 어떻게 안 없어지고 계속 남았어? 이렇게 어려운데? 차라리 러시아 말 편하게 하지... 그럼 나도 지금 전에 하던 러시아어 계속 공부 했을 텐데.... 흑 폴란드어 너무 어려워!!!!-물론 러시아 말도 매우 어렵지만 러시아어 퍼뜨리려고 국가적으로 문법에 손질 많이 했음, 폴란드어 보다는 많이 간소화 됨
남자 친구 반응 : 화 안냄 이해 한다는 듯이 토닥 토닥, 시간이 필요하지 너 잘하고 있다.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도와 줄께
본인이 느낀 점 - 만약 남자친구가 너네 말은 왜 안 없어졌어? 일본말 그냥 배워서 하지... 하고 말했으면 진짜 죽이려고 달려 들었을 것임, 시간이 지난 지금은 남자친구의 너그러움에 감사하고 있음]
그런데 내 말문을 막는 한 가지가 또 있다. 얘는 참 진심이고 진지하고 정치에 관심 많은데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재외국민 신고도 제대로 안되어 있어서 투표도 못하고 한국에 있을때도 그렇게 열심히 투표하고 관심있게 찾아 보는 타입이 아니었다. 솔직히 휴일이구나~ 아싸~ 하는 정도? 엄마가 투표 하러 가는 길에 슬금슬금 쫓아가서 같이 투표하고 다슬기 해장국 먹고 온적은 있지만... 아예 정치 쪽은 관심이 없다는게 맞다. 그런데 얘는 일요일을 투표일로 지정하는 뷁 스러운 폴란드 정치인들의 농간(?)에도 굴하지 않고 저 멀리 암스테르담에서부터 자비로 비행기표 사서 투표 하러 오신다. 물론 유세 기간에 유투브며 지네 뉴스며 각종 자료 찾아 보면서 분석해 주시는 센스까지.... 맨날 폴란드 욕하면서 마음 속 깊이 자국에 대한 애정이 있는 거다. (외 할머니 독일에서 넘어 오셨고 외 할아버지 엄마 집안이 우크라이나에서 넘어온 혈통임에도 불구하고 얘는 폴란드인인거다. 외할머니 일본분이시라 어렸을때 학교에서 일본놈 드립 당한 이후 한국인이라는 의식이 희박해진 나와는 달리...)
그래서 역사 얘기 할때만 어정쩡하게 발동되는 묘한 애국심을 가진 나와는 달리 남자친구가 더 당당하게 정치적 경제적 사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거다.
얘 때문에 지난 일년간 많은 수모와 모욕....은 좀 과장이고 괜히 말 꺼냈다가 물 먹은 경험이 많다.
요즘에 얘기 하면 서로 싸울 주제 참 많은데 다행히 떨어져 있어서 그 빈도가 많이 줄었다.
우리는 어떤 대화를 하던지 연인 치고는 참 치열하게 대립한다. 남자친구도 내가 폭발하기 전까진 결코 주장을 굽히지 않는 터라.... 어쩔때 보면 내가 내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치고 올라와 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바르샤바로 왕림하시는(오늘 도착) 남자친구를 위해 이번엔 내가 좀 준비를 했다. 채찍과 당근이라고 할까....
저번에 장하준 교수가 쓴 책(23things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을 같이 읽어 보자고 영어 원문으로 주문해서 선심 쓰듯 먼저 읽어~ 하고 줬더니 지가 동의 할수 없는 부분에 막 반대 의견 써놨다. 하도 개발새발 써 놨길래 해독하기 힘들었지만 야근에 시달리고 폴란드어 수업에 시달리는 중간 중간에도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그 녀석이 써 놓은 의견을 살펴보고 내가 하고 싶은 말 차근 차근 요점 정리 해놨다. 내가 제일 싫어 하는게 개론서에 낙서 하는 건데 포스트잇에다 붙여 놓은 것도 아니고.... (그래도 다행히 샤프로....) 책에다 써 넣다니 결코 용서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지만 먼저 약점 노출해 주셨으니 그 정도는 눈 감고 넘어가 주겠다... 하고 생각했다. 채찍을 단단히 준비 했으니 당근도 달달한 걸로 골라 놨다. 사다리 걷어차기 영문판이다. 물론 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에이 잘 모르겠다!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정말 부담 없이 재미 있게 읽었기 때문에 영문판으로 한번 더 보려고 샀다. 그렇지 않아도 23책 읽고는 장하준 교수한테 이메일 보내 보고 싶다... 답장이 올까? 그 교수가 읽어 보기나 할까? 하면서 좀 두근두근해 하던데 이번엔 뭐라고 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남자친구에게 반격하기 위해 미시 경제 원론서 뒤지다가 든 생각....
다른 연인들은 어떤 대화를 할까....
근데 얘는 공학 하는 애가 왜 저렇게 역사랑 경제에 관심이 많지? ( 급 짜증이 울컥.... )
3/16/2011
러셀 아저씨 말씀이....
남자친구인 R군은 매우 냉철하다.
알고 있는 것도 많다. 이번 원전 사태에 대해서도 재료 공학 하시는 아부지하고 참 심도 있게 대화 하시더라.... 그런데 그게 다다.
똑같이 휴가를 계획 하고, 조깅을 나가고, 쇼핑을 간다. (현재 그는 휴가 중~ 유급 휴가가 너무 많아 일주일 휴가를 내고 친구도 만나고 딩굴 거리면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_-)
반면에 나는..... 신문이나 뒤적이면서 정확하지 않을지 모르는 정보들을 무작위로 흡수하며 이런 저런 망상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밥도 못 남기고 (평소와는 다르게...) 꾸역 꾸역 먹고
당장 한국 계좌에 있는 돈부터 구호 성금으로 보냈다.
R군이 태어난 곳은 체르노빌로부터 서쪽으로 약 900여 키로 떨어진 곳으로 체르노빌 사건 발생 시점과 출생 시점이 비슷 하다. 하지만 평생을 이 지역에서 사신 부모님을 비롯하여 본인도 무척 건강하고 친구, 형 주변 인물들이 대체적으로 매우 건강하다. 우려했던 바처럼 돌연변이로 고생하는 사람도 없고 신문에서 떠드는 것처럼 백혈병이 만연하지도 않으며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며 잘 살고 있다. 언론에서 떠드는 것과는 무척 많이 달랐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쪽 지방 사람들은 정말로 담담하게 뉴스를 보고 굉장히 침착하다. 물론 TV에 전문가들이 나와 지난 체르노빌 사건과 비교해가며 토론도 하는 걸 보면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처럼 감정적으로 반응하지는 않는다는 거다.
R군만 봐도 이 나쁜X.... 아무리 니 일이 아니라고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자기가 알고 있는 핵연료 시설에 대한 공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채 차갑게 대꾸한다. 내가 남자를 잘 못 골랐어!!!! 라는 생각 까지들 정도 였다.
얘기 하다 서로 너무나 다른 시점으로 다른 소리만 하는 모습이 너무 답답해 러셀 아저씨가 한 말씀을 그대로 말해줬다.
이 글을 읽었을 때 나는 아직 많이 어리고 순수 했고, 뭔가 뭔지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는 상태였을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많이 뛰었었던 기억이 난다. R군에게도 꼭 자서전을 읽어보라고 얘기해 줘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우리 둘의 문제가 아닌 일로 티격 태격 하며 말하게 된 점이 많이 아쉬웠지만, 말을 띄웠다.
Three passions, simple but overwhelmingly strong, have governed my life: the longing for love, the search for knowledge and unbearable pity for the suffering of mankind.
난 돌연변이가 걱정 되는 것도.... 재앙이 닥쳐서 지구가 멸망하면 어떻하지 하는 걱정을 해서 그러는게 아니야. 단지 소중한 사람을 한 순간에 잃고 절망하는 사람들,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탄식에 대한 연민으로 힘든 것 뿐이야. 그 아픔이 전해져서 내 마음도 아프다고 말했는데.....
얘를 현실적인 애라고 긍정적인 관점에서 봐야 하는 건지, 감정도 없는 차가운 애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R군의 답은 이거다. 결자해지, 인과응보.
(러셀 아저씨 자서전 보다는 사자성어 책을 구해다 읽혀 볼까 하는 생각이 급 들었지만 각설하고..... )역시나 감정 없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아직 갈길이 멀구나....
서로에 대해 모르는게 참 많고.... 또 이해 하기가 참 힘들다.
너 참 다정한 남자인데.... 오히려 평소에 보면 내가 너무 차갑고 냉정해서 네가 마음 고생 많이 하는데도 가끔 이렇게 내가 모르는 사람처럼 낯설게 느껴져서 이상해.... 언제나 같은 곳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데도 말이야.
알고 있는 것도 많다. 이번 원전 사태에 대해서도 재료 공학 하시는 아부지하고 참 심도 있게 대화 하시더라.... 그런데 그게 다다.
똑같이 휴가를 계획 하고, 조깅을 나가고, 쇼핑을 간다. (현재 그는 휴가 중~ 유급 휴가가 너무 많아 일주일 휴가를 내고 친구도 만나고 딩굴 거리면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_-)
반면에 나는..... 신문이나 뒤적이면서 정확하지 않을지 모르는 정보들을 무작위로 흡수하며 이런 저런 망상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밥도 못 남기고 (평소와는 다르게...) 꾸역 꾸역 먹고
당장 한국 계좌에 있는 돈부터 구호 성금으로 보냈다.
R군이 태어난 곳은 체르노빌로부터 서쪽으로 약 900여 키로 떨어진 곳으로 체르노빌 사건 발생 시점과 출생 시점이 비슷 하다. 하지만 평생을 이 지역에서 사신 부모님을 비롯하여 본인도 무척 건강하고 친구, 형 주변 인물들이 대체적으로 매우 건강하다. 우려했던 바처럼 돌연변이로 고생하는 사람도 없고 신문에서 떠드는 것처럼 백혈병이 만연하지도 않으며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며 잘 살고 있다. 언론에서 떠드는 것과는 무척 많이 달랐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쪽 지방 사람들은 정말로 담담하게 뉴스를 보고 굉장히 침착하다. 물론 TV에 전문가들이 나와 지난 체르노빌 사건과 비교해가며 토론도 하는 걸 보면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처럼 감정적으로 반응하지는 않는다는 거다.
R군만 봐도 이 나쁜X.... 아무리 니 일이 아니라고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자기가 알고 있는 핵연료 시설에 대한 공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채 차갑게 대꾸한다. 내가 남자를 잘 못 골랐어!!!! 라는 생각 까지들 정도 였다.
얘기 하다 서로 너무나 다른 시점으로 다른 소리만 하는 모습이 너무 답답해 러셀 아저씨가 한 말씀을 그대로 말해줬다.
이 글을 읽었을 때 나는 아직 많이 어리고 순수 했고, 뭔가 뭔지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는 상태였을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많이 뛰었었던 기억이 난다. R군에게도 꼭 자서전을 읽어보라고 얘기해 줘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우리 둘의 문제가 아닌 일로 티격 태격 하며 말하게 된 점이 많이 아쉬웠지만, 말을 띄웠다.
Three passions, simple but overwhelmingly strong, have governed my life: the longing for love, the search for knowledge and unbearable pity for the suffering of mankind.
난 돌연변이가 걱정 되는 것도.... 재앙이 닥쳐서 지구가 멸망하면 어떻하지 하는 걱정을 해서 그러는게 아니야. 단지 소중한 사람을 한 순간에 잃고 절망하는 사람들,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탄식에 대한 연민으로 힘든 것 뿐이야. 그 아픔이 전해져서 내 마음도 아프다고 말했는데.....
얘를 현실적인 애라고 긍정적인 관점에서 봐야 하는 건지, 감정도 없는 차가운 애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R군의 답은 이거다. 결자해지, 인과응보.
(러셀 아저씨 자서전 보다는 사자성어 책을 구해다 읽혀 볼까 하는 생각이 급 들었지만 각설하고..... )역시나 감정 없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아직 갈길이 멀구나....
서로에 대해 모르는게 참 많고.... 또 이해 하기가 참 힘들다.
너 참 다정한 남자인데.... 오히려 평소에 보면 내가 너무 차갑고 냉정해서 네가 마음 고생 많이 하는데도 가끔 이렇게 내가 모르는 사람처럼 낯설게 느껴져서 이상해.... 언제나 같은 곳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데도 말이야.
3/14/2011
힘내라 미키!
밤새 잠이 오질 않았다.
지구 저 반대편에서 지구 반 바퀴를 지나 유럽 동쪽까지 그 신음 소리가 들리는 듯 해서 밤을 거의 뜬 눈으로 지새우고 회사에 나갔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뉴스만 계속 해서 모니터링 했다.
이런 엄청난 비극이 또 일어나다니...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연 앞에 속수무책인 한없이 작고 작은 존재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감응이 너무 잘 되는 성격 탓에 자꾸만 눈 앞에 지옥 같은 그 곳 모습이 아른 거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절규가 들리는 것만 같다.
아이폰으로 친구가 올리는 글을 보니 눈물이 더 난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현장으로 뛰어가서 작은 도움이라도 보태고 싶은 마음이 한 가득이다.
공장에 파견 나가 있는 친구는 한 사람에게라도 물자를 더 공급하고 싶어 공장을 계속 돌리려 해도 재료가 없다. 하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꺼라고 글을 남겼다.
그 친구의 조카는 지진이 일어나던 날 오전 태어났다......
5년을 넘게 보지 못했지만 신년이 되면 늘 카드와 선물을 보내 오는 내 친구 미키, 우리 해마다 올해는 꼭 보자고 약속 했는데... 이렇게 페이스북으로 올라오는 글이나 읽으며 네가 무사함에 감사 해야 한다니....
힘내라 미키 힘내라 일본
지구 저 반대편에서 지구 반 바퀴를 지나 유럽 동쪽까지 그 신음 소리가 들리는 듯 해서 밤을 거의 뜬 눈으로 지새우고 회사에 나갔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뉴스만 계속 해서 모니터링 했다.
이런 엄청난 비극이 또 일어나다니...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연 앞에 속수무책인 한없이 작고 작은 존재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감응이 너무 잘 되는 성격 탓에 자꾸만 눈 앞에 지옥 같은 그 곳 모습이 아른 거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절규가 들리는 것만 같다.
아이폰으로 친구가 올리는 글을 보니 눈물이 더 난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현장으로 뛰어가서 작은 도움이라도 보태고 싶은 마음이 한 가득이다.
공장에 파견 나가 있는 친구는 한 사람에게라도 물자를 더 공급하고 싶어 공장을 계속 돌리려 해도 재료가 없다. 하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꺼라고 글을 남겼다.
그 친구의 조카는 지진이 일어나던 날 오전 태어났다......
5년을 넘게 보지 못했지만 신년이 되면 늘 카드와 선물을 보내 오는 내 친구 미키, 우리 해마다 올해는 꼭 보자고 약속 했는데... 이렇게 페이스북으로 올라오는 글이나 읽으며 네가 무사함에 감사 해야 한다니....
힘내라 미키 힘내라 일본
3/06/2011
감기
요새 감기가 유행이라더니.... 얼마전부터 목이 간질간질 하더니 금요일 오전부터 코와 목에서 이상신호가 포착 됐다. 그래도 일이 마음에 걸려 점심이 다 된 시간에 회사에 나가서 처리하고 왔더니 토요일 아침에 일어 났더니 목이 완전 잠겨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코가 막혀 숨이 잘 쉬어 지지 않았다.
병원을 가기도 힘들고.... 해서 집에 있는 아스피린+박하사탕맛 나는 목 감기약(?) 만 먹고 버텼는데 이렇게 코를 많이 풀어 보긴 난생 처음이다.....
휴지 2통을 다 쓰고 그렇게 토요일, 일요일을 끙끙 앓고 나니 다행히 열도 내리고 코도 좀 뚫린 것 같다.
한국 같았으면 당장 병원가서 약부터 처방 받았을텐데.... 폴란드에 왔더니 의도 했던 바는 아니지만 감기 정도는 약 없이 버틴다. 그래도 생각보다 회복이 빠른 걸 보면 한국에서 내가 너무 약을 많이 먹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기는 감기에 걸리면 약 보다는 sick leave부터 받아서 집에서 쉬고 보는 데, 의사가 약 처방해주고 주사 놔주기 보다는 sick leave를 위한 서류 주는 사람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목 아파서 갔을때도 항생제 같은 거 처방해주기 보다는 니콜라 같은 사탕? 사 먹으라고 해서 그 후로 쭉 목이 조금이라도 이상한 느낌이 들면 바로 고 사탕 같은 걸 사서 먹었는데 별 문제 없이 잘 버티고 있다. 그 외에도 솔잎 농축액 같은 걸 한 스푼 정도 먹기도 하는데 면역력을 높이는 데 좋다고 한다. 목이나 코에 벌꿀에서 추출한 propolis 라는 걸 뿌려주기도 하는데 역시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걸로 봐서는 건강 보조액 정도의 수준인것 같다.
지금까지 목감기는 지겹게 앓았는데 정말로 코 감기는 올해 처음으로 제대로 앓는 것 같다.
코가 막히니 잠도 푹 못자고 계속 숨이 불편해 잠이 깨는데, 코를 하도 풀었더니 코 밑이 헐어서 역시 아프다. 숨을 쉴때마다 코 안쪽이 욱씬욱씬 거려서 참 많이 괴로웠다.
(목 감기 못지 않게 코감기도 힘들구나... ) 숨이 불편하니 두통도 오는 것 같다.
목 감기는 열을 필수 동반하는데 코 감기는 열은 없는데 두통이 참 견디기 힘들었다.
누워서 끙끙 앓고 있는데...... 나도 늙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예전과는 몸이 많이 달라진 느낌이 든다.
이십대 후반이 되면 여자의 몸은 급격한 변화를 맞는 것 같다.
일주일 하던 생리도 4일로 줄고..... 얼굴에 주름이 생기는 것도 느낄수 있다.
피지 분비가 확 줄어 오후 되면 번들 거리던 얼굴도 그닥....
팔 다리는 건조해서 문제다. 샤워하고 나오면 일반 로션으로는 택도 없고.... 바디 오일로 5분간 문질러줘야 회사에서 별 문제 없이 스타킹 신고도 버틸수 있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샤워만 하고 나와서 로션 같은거 마음 내킬때나 발라주곤 했는데....
하고 생각해봤자... 나만 슬퍼진다.
돼지 갈비를 너무 좋아해서 갈비 먹으러 가면 두 공기를 뚝딱 비우고도 워낙 요리조리 돌아 다니는 걸 좋아해서인지 살도 잘 안쪘는데... 요새는 두 공기를 비우긴 커녕 한 공기도 벅찬데다, 하루에 두끼 먹는데도 살이 모락 모락 찐다....
식단의 변화를 감안 하더라도.... 확실히 예전과는 다르다.
여전히 걷는 건 좋아하지만 예전처럼 하루 종일 걸어 다니지는 못하겠다.... 힘들어서....
언제부터인지 두시간 걸으면 삼십분은 앉아서 쉬어줘야.... 다시 걸을 수 있는 몸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쓰다보니 정말 나이 많이 든 것 같네......
아파서 계속 누워만 있었더니 정말 별 생각이 다 든다.
그래도 이렇게 글 쓸 기운이 있는 걸 보면 내일 회사는 나갈 수 있겠지?
병원을 가기도 힘들고.... 해서 집에 있는 아스피린+박하사탕맛 나는 목 감기약(?) 만 먹고 버텼는데 이렇게 코를 많이 풀어 보긴 난생 처음이다.....
휴지 2통을 다 쓰고 그렇게 토요일, 일요일을 끙끙 앓고 나니 다행히 열도 내리고 코도 좀 뚫린 것 같다.
한국 같았으면 당장 병원가서 약부터 처방 받았을텐데.... 폴란드에 왔더니 의도 했던 바는 아니지만 감기 정도는 약 없이 버틴다. 그래도 생각보다 회복이 빠른 걸 보면 한국에서 내가 너무 약을 많이 먹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기는 감기에 걸리면 약 보다는 sick leave부터 받아서 집에서 쉬고 보는 데, 의사가 약 처방해주고 주사 놔주기 보다는 sick leave를 위한 서류 주는 사람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목 아파서 갔을때도 항생제 같은 거 처방해주기 보다는 니콜라 같은 사탕? 사 먹으라고 해서 그 후로 쭉 목이 조금이라도 이상한 느낌이 들면 바로 고 사탕 같은 걸 사서 먹었는데 별 문제 없이 잘 버티고 있다. 그 외에도 솔잎 농축액 같은 걸 한 스푼 정도 먹기도 하는데 면역력을 높이는 데 좋다고 한다. 목이나 코에 벌꿀에서 추출한 propolis 라는 걸 뿌려주기도 하는데 역시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걸로 봐서는 건강 보조액 정도의 수준인것 같다.
지금까지 목감기는 지겹게 앓았는데 정말로 코 감기는 올해 처음으로 제대로 앓는 것 같다.
코가 막히니 잠도 푹 못자고 계속 숨이 불편해 잠이 깨는데, 코를 하도 풀었더니 코 밑이 헐어서 역시 아프다. 숨을 쉴때마다 코 안쪽이 욱씬욱씬 거려서 참 많이 괴로웠다.
(목 감기 못지 않게 코감기도 힘들구나... ) 숨이 불편하니 두통도 오는 것 같다.
목 감기는 열을 필수 동반하는데 코 감기는 열은 없는데 두통이 참 견디기 힘들었다.
누워서 끙끙 앓고 있는데...... 나도 늙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예전과는 몸이 많이 달라진 느낌이 든다.
이십대 후반이 되면 여자의 몸은 급격한 변화를 맞는 것 같다.
일주일 하던 생리도 4일로 줄고..... 얼굴에 주름이 생기는 것도 느낄수 있다.
피지 분비가 확 줄어 오후 되면 번들 거리던 얼굴도 그닥....
팔 다리는 건조해서 문제다. 샤워하고 나오면 일반 로션으로는 택도 없고.... 바디 오일로 5분간 문질러줘야 회사에서 별 문제 없이 스타킹 신고도 버틸수 있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샤워만 하고 나와서 로션 같은거 마음 내킬때나 발라주곤 했는데....
하고 생각해봤자... 나만 슬퍼진다.
돼지 갈비를 너무 좋아해서 갈비 먹으러 가면 두 공기를 뚝딱 비우고도 워낙 요리조리 돌아 다니는 걸 좋아해서인지 살도 잘 안쪘는데... 요새는 두 공기를 비우긴 커녕 한 공기도 벅찬데다, 하루에 두끼 먹는데도 살이 모락 모락 찐다....
식단의 변화를 감안 하더라도.... 확실히 예전과는 다르다.
여전히 걷는 건 좋아하지만 예전처럼 하루 종일 걸어 다니지는 못하겠다.... 힘들어서....
언제부터인지 두시간 걸으면 삼십분은 앉아서 쉬어줘야.... 다시 걸을 수 있는 몸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쓰다보니 정말 나이 많이 든 것 같네......
아파서 계속 누워만 있었더니 정말 별 생각이 다 든다.
그래도 이렇게 글 쓸 기운이 있는 걸 보면 내일 회사는 나갈 수 있겠지?
3/03/2011
2008년의 기억
문득문득 그가 한 말이 생각이 날때가 있다.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자마자 서로에게 끌렸던 사람이 있었다.
2주가 지난 후 비행기 표를 한 손에 든 그는 문앞에 기대 앉아 말했다.
이렇게 돌아가버리면 생각이 날까봐 걱정이 된다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 때면, 돌아가는 건 자긴데 혼자 방안에 앉아 내 생각을 하고 또 외로워 질까봐 걱정이 된다고 말하던 그의 얼굴이 아직도 생각난다.
그렇게 문 앞에서 내게 말하곤.... 영국으로 가버렸던 그는 2주 후에 돌아와 다시 내 앞에 서서 웃으며 말했다. 남은 시간이 한달이 안되더라도.....같이 있고 싶다고.....그래서 돌아왔다고....
부지바의 좁은 길에 서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마음으로 그저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말없이 웃던 그는 그냥 보고 싶었다고 그래서 돌아온거라고 말하곤 조심스럽게 내 손을 잡았고 나는 이번에 떠나야 하는 건 난데.... 난 돌아올 수 없어라고 말했다.
그런 내게.... 그럼 널 그리워하면서 일년을 보낼꺼야 그리고 또 일년 그렇게 시간이 가다보면 다시 만날 수도 있겠지... 어쩌면 둘다 서로의 기억에서 잊혀질 수도 있고.... 하고 말했다.
그 후 나는 계획보다 2주를 더 보냈고 그렇게 한달이 지난 후.... 내가 비행기를 타던 그 날..... 우리는 서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공항에서 내내 꼭 안고만 있었다.
그리고 나는 눈물 한방울 떨구지 않고 웃으며 문을 통과했다.
그 후로 문득 문득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이 떠오를 때면 나는 그가 한 말을 되뇌였다....
일년 그리고 또 일년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다고....
그가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 아침이면 꺼내 마시던 블렌디, 나지막히 속삭이던 목소리와 말투....가만히 앉아 자는 것처럼 눈을 감고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던 모습, 입을 다문채로 나를 향해 미소 짓던 모습과 도톰하던 아랫입술, 작은 버릇 하나하나까지도 기억이 난다, 레몬향이 나는 향수와 얇은 머리카락, 동그란 어깨와 긴 손가락까지..... 그에 대한 기억들이 떠오를 때면 나는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가 없다.
가만히 앉아서 빨리 시간이 지나가 버렸으면..... 그의 말대로 일년 그리고 또 일년....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버리길 기다린다.
버릇이라도 된 것처럼 이젠 다른 사람이 옆에 있는데도 햇살 좋은 일요일 낮이면 창가에 앉아 그가 했던 것 처럼 도수 높은 술을 따라 마시곤 눈을 감고 가만히 시간이 가는 소리를 듣는다.
시간이 지나 감정이 바래고 희미해진다 해도.... 잊어 버리지 못할까봐..... 그게 겁이 난다.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자마자 서로에게 끌렸던 사람이 있었다.
2주가 지난 후 비행기 표를 한 손에 든 그는 문앞에 기대 앉아 말했다.
이렇게 돌아가버리면 생각이 날까봐 걱정이 된다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 때면, 돌아가는 건 자긴데 혼자 방안에 앉아 내 생각을 하고 또 외로워 질까봐 걱정이 된다고 말하던 그의 얼굴이 아직도 생각난다.
그렇게 문 앞에서 내게 말하곤.... 영국으로 가버렸던 그는 2주 후에 돌아와 다시 내 앞에 서서 웃으며 말했다. 남은 시간이 한달이 안되더라도.....같이 있고 싶다고.....그래서 돌아왔다고....
부지바의 좁은 길에 서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마음으로 그저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말없이 웃던 그는 그냥 보고 싶었다고 그래서 돌아온거라고 말하곤 조심스럽게 내 손을 잡았고 나는 이번에 떠나야 하는 건 난데.... 난 돌아올 수 없어라고 말했다.
그런 내게.... 그럼 널 그리워하면서 일년을 보낼꺼야 그리고 또 일년 그렇게 시간이 가다보면 다시 만날 수도 있겠지... 어쩌면 둘다 서로의 기억에서 잊혀질 수도 있고.... 하고 말했다.
그 후 나는 계획보다 2주를 더 보냈고 그렇게 한달이 지난 후.... 내가 비행기를 타던 그 날..... 우리는 서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공항에서 내내 꼭 안고만 있었다.
그리고 나는 눈물 한방울 떨구지 않고 웃으며 문을 통과했다.
그 후로 문득 문득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이 떠오를 때면 나는 그가 한 말을 되뇌였다....
일년 그리고 또 일년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다고....
그가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 아침이면 꺼내 마시던 블렌디, 나지막히 속삭이던 목소리와 말투....가만히 앉아 자는 것처럼 눈을 감고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던 모습, 입을 다문채로 나를 향해 미소 짓던 모습과 도톰하던 아랫입술, 작은 버릇 하나하나까지도 기억이 난다, 레몬향이 나는 향수와 얇은 머리카락, 동그란 어깨와 긴 손가락까지..... 그에 대한 기억들이 떠오를 때면 나는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가 없다.
가만히 앉아서 빨리 시간이 지나가 버렸으면..... 그의 말대로 일년 그리고 또 일년....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버리길 기다린다.
버릇이라도 된 것처럼 이젠 다른 사람이 옆에 있는데도 햇살 좋은 일요일 낮이면 창가에 앉아 그가 했던 것 처럼 도수 높은 술을 따라 마시곤 눈을 감고 가만히 시간이 가는 소리를 듣는다.
시간이 지나 감정이 바래고 희미해진다 해도.... 잊어 버리지 못할까봐..... 그게 겁이 난다.
2/08/2011
남자친구 이야기 (3)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난 후 갑자기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새해를 맞으러......
체코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Wisla (비스와라고 읽으면 될 듯) 지역에 갔는데 동서 남북으로 완전 평면인 바르샤바와는 달리 한국과 지형이 비슷 해서 기분이 싱숭생숭 했다.
스키장이랑 스파 시설 딸린 호텔? 리조트? 같은데를 갔는데 우리 말고도 크리스마스, 또는 새해를 맞이 하려는 가족들이 참 많았던 듯, 차들도 계속 들어오고 또 근처에 큰 리조트 시설이 많았다. 스키장도 많고.... (덕분에 무척 한산했다) 아침 저녁으로 나오는 밥도 맛있었고 동네도 작고 예쁘고....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지난 연말에도 갔었는데 여전히 좋더라....
아무튼 그 외에 볼링장도 있고, 가라오케도 있고, 춤추는 데도 있고, 펍도 있고.... 하여간 안에서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그런 시설 이었는데....
이 때는 아직까지 남자친구 식구들과 좀 서먹 서먹 하던 때였다.
이 집 어머님이 무척 열정적인 스타일이신데, (물론 엄청 침착하시면서 또 굉장히 비판적이시기도 함) 플라멩고 공연이 있다고 해서 다 같이 보러 갔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자 후끈 달아오르셨는지 엉덩이를 들썩 들썩 하시는 게 아닌가.... 물론 댄스홀도 있고 노래도 흘러 나오는데 우리 소심한 폴란드, 체코 사람들은 남의 눈치 보면서 맥주나 마시고 계시더라.... 그래서 남자친구보고 어머니랑 같이 나가서 춤 좀 쳐봐! 네 어머니 춤추고 싶어 하시는 것 같은데... 그랬더니 영~ 수줍음을 타는게 아님? 속으로 좀 답답해서 내가 말도 안통하는 어머니 손을 붙잡고 춤추러 나가자고 몸짓과 얼굴로(....-_-a ) 얘기 했다.
주변에 쳐다보는 사람은 참 많았으나 아무도 없는 댄스홀에서 (그 리조트 통틀어 딱 한명이었던, 덕분에 시선 좀 끌었던 듯... 어디서 왔냐고 많이들 물어 보더라.. ) 동양 여자애가 웬 아줌마랑 나와서 미친 듯이 춤추는 걸 본 그 사람들은 그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런데 남자 친구 어머니는 남의 시선은 신경도 안쓰고 진짜 열정적으로 춤을 추셨다....
나야 몰타에서 놀 때 한게 수영하고 술마시고 춤춘게 다라서 그렇다쳐도 평생을 기계 설계만 하시던 남자친구 어머니 안에 숨겨져 있던 열정에 놀라서 나도 참 열심히 춤췄다...
하나 둘씩 사람들이 나와서 춤을 추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춤추다 들어와서는 맥주를 마셨고 남자친구 엄마는 나를 꼭 껴안아 주셨다.
그 때 이후로 내가 말을 못해도 남자친구 어머니는 애기 다루듯이 하나하나 천천히 알려 주시면서 나를 친딸 이상으로 예뻐해주신다.
남자친구도 입이 떡 벌어져서는 너무 좋아하고....
남자들이 자기 엄마한테 잘하는 여자 좋아하는 건 세계 공통 인듯 싶다.
재미있는 건 이 얘기를 친구한테 했더니 친구가 배꼽을 잡고 웃는게 아님?
한국에서 시어머니 되실 분이랑 클럽가서 춤췄다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 그러겠냐고.. 그 집 참 X판이라고 하지 않겠냐고.... 그리고 그 시어머니가 그 자리에서는 재미 있어 하실지는 몰라도 애 참 발랑 까져서 못 쓰겄다~ 또는 정신 나갔다는 소리 듣지 않겠냐고... 그런데 너는 그걸로 시어머니 되실 분한테 점수 땄으니 세상은 참 요지경이라고 하면서.....
남자친구 어머니도, 그리고 아버지도 나는 소피의 그런 열정이 너무 예쁘다 라고 말씀해 주실때마다 조금은 마음 한쪽이 뭉클 거린다.
나는 천성이 빼는 걸 싫어한다. 자리를 깔아주면 최선을 다해서 놀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놀때는 정말 열심히 논다.
그래서 친척들 모여서 노래 시키면 노래 잘 부르고 다같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항상 웃는 얼굴로 있으려고 노력하는데, 한국에서는 여자가 그러는게 과히 좋게 보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도 내가 너무 활달하다며(좋게 말해서) 어렸을 때부터 조신하게 좀 있으란 말씀을 참 많이 하셨었다. 친척들도 농담으로 주고 받는 말중에 나는 늘 잘 노는 애, 공부에는 관심 없는 애, 남자 뒤꽁무니나 쫓아 다닐 것 같은 애라는 식으로 얘기를 했고, 수줍음 많이 타고 교회 열심히 다니는 사촌동생은 늘 너무 착하고 바른 아이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셨었다..... (덕분에) 20대에 들어서면서 말 없이 그냥 배시시 웃는 정도로 가족들 앞에서는 늘 이미지 관리를 했다.
그랬는데 남자친구 가족들이 있는 그대로를 예쁘게 봐주니까 참 감사하기도 하고...감정이 복잡 미묘 하다. 고마운 마음 속에서 더 잘해야지 하는 마음도 생기고... 그러다보니 정도 쌓이는 것 같다.
(사실 마음에 안들어도 말이 잘 안통하니 아들한테 말하기도 뭐하고 해서 속으로 삭히시는 부분도 있을꺼라고 생각함....)
체코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Wisla (비스와라고 읽으면 될 듯) 지역에 갔는데 동서 남북으로 완전 평면인 바르샤바와는 달리 한국과 지형이 비슷 해서 기분이 싱숭생숭 했다.
스키장이랑 스파 시설 딸린 호텔? 리조트? 같은데를 갔는데 우리 말고도 크리스마스, 또는 새해를 맞이 하려는 가족들이 참 많았던 듯, 차들도 계속 들어오고 또 근처에 큰 리조트 시설이 많았다. 스키장도 많고.... (덕분에 무척 한산했다) 아침 저녁으로 나오는 밥도 맛있었고 동네도 작고 예쁘고....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지난 연말에도 갔었는데 여전히 좋더라....
아무튼 그 외에 볼링장도 있고, 가라오케도 있고, 춤추는 데도 있고, 펍도 있고.... 하여간 안에서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그런 시설 이었는데....
이 때는 아직까지 남자친구 식구들과 좀 서먹 서먹 하던 때였다.
이 집 어머님이 무척 열정적인 스타일이신데, (물론 엄청 침착하시면서 또 굉장히 비판적이시기도 함) 플라멩고 공연이 있다고 해서 다 같이 보러 갔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자 후끈 달아오르셨는지 엉덩이를 들썩 들썩 하시는 게 아닌가.... 물론 댄스홀도 있고 노래도 흘러 나오는데 우리 소심한 폴란드, 체코 사람들은 남의 눈치 보면서 맥주나 마시고 계시더라.... 그래서 남자친구보고 어머니랑 같이 나가서 춤 좀 쳐봐! 네 어머니 춤추고 싶어 하시는 것 같은데... 그랬더니 영~ 수줍음을 타는게 아님? 속으로 좀 답답해서 내가 말도 안통하는 어머니 손을 붙잡고 춤추러 나가자고 몸짓과 얼굴로(....-_-a ) 얘기 했다.
주변에 쳐다보는 사람은 참 많았으나 아무도 없는 댄스홀에서 (그 리조트 통틀어 딱 한명이었던, 덕분에 시선 좀 끌었던 듯... 어디서 왔냐고 많이들 물어 보더라.. ) 동양 여자애가 웬 아줌마랑 나와서 미친 듯이 춤추는 걸 본 그 사람들은 그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런데 남자 친구 어머니는 남의 시선은 신경도 안쓰고 진짜 열정적으로 춤을 추셨다....
나야 몰타에서 놀 때 한게 수영하고 술마시고 춤춘게 다라서 그렇다쳐도 평생을 기계 설계만 하시던 남자친구 어머니 안에 숨겨져 있던 열정에 놀라서 나도 참 열심히 춤췄다...
하나 둘씩 사람들이 나와서 춤을 추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춤추다 들어와서는 맥주를 마셨고 남자친구 엄마는 나를 꼭 껴안아 주셨다.
그 때 이후로 내가 말을 못해도 남자친구 어머니는 애기 다루듯이 하나하나 천천히 알려 주시면서 나를 친딸 이상으로 예뻐해주신다.
남자친구도 입이 떡 벌어져서는 너무 좋아하고....
남자들이 자기 엄마한테 잘하는 여자 좋아하는 건 세계 공통 인듯 싶다.
재미있는 건 이 얘기를 친구한테 했더니 친구가 배꼽을 잡고 웃는게 아님?
한국에서 시어머니 되실 분이랑 클럽가서 춤췄다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 그러겠냐고.. 그 집 참 X판이라고 하지 않겠냐고.... 그리고 그 시어머니가 그 자리에서는 재미 있어 하실지는 몰라도 애 참 발랑 까져서 못 쓰겄다~ 또는 정신 나갔다는 소리 듣지 않겠냐고... 그런데 너는 그걸로 시어머니 되실 분한테 점수 땄으니 세상은 참 요지경이라고 하면서.....
남자친구 어머니도, 그리고 아버지도 나는 소피의 그런 열정이 너무 예쁘다 라고 말씀해 주실때마다 조금은 마음 한쪽이 뭉클 거린다.
나는 천성이 빼는 걸 싫어한다. 자리를 깔아주면 최선을 다해서 놀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놀때는 정말 열심히 논다.
그래서 친척들 모여서 노래 시키면 노래 잘 부르고 다같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항상 웃는 얼굴로 있으려고 노력하는데, 한국에서는 여자가 그러는게 과히 좋게 보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도 내가 너무 활달하다며(좋게 말해서) 어렸을 때부터 조신하게 좀 있으란 말씀을 참 많이 하셨었다. 친척들도 농담으로 주고 받는 말중에 나는 늘 잘 노는 애, 공부에는 관심 없는 애, 남자 뒤꽁무니나 쫓아 다닐 것 같은 애라는 식으로 얘기를 했고, 수줍음 많이 타고 교회 열심히 다니는 사촌동생은 늘 너무 착하고 바른 아이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셨었다..... (덕분에) 20대에 들어서면서 말 없이 그냥 배시시 웃는 정도로 가족들 앞에서는 늘 이미지 관리를 했다.
그랬는데 남자친구 가족들이 있는 그대로를 예쁘게 봐주니까 참 감사하기도 하고...감정이 복잡 미묘 하다. 고마운 마음 속에서 더 잘해야지 하는 마음도 생기고... 그러다보니 정도 쌓이는 것 같다.
(사실 마음에 안들어도 말이 잘 안통하니 아들한테 말하기도 뭐하고 해서 속으로 삭히시는 부분도 있을꺼라고 생각함....)
현지 채용 vs 해외 취업 (3) 부제 : 현지 채용은 무슨 일을 할까...?
이번 글에는 폴란드에서 뭘 하고 있는지 간단한 얘기를 해보고자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현지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망설이고 있거나, 현지채용에 대해 생각은 있는데 잘 알지 못해서 정보가 필요한 구직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
요지는 간단하다. 어디가나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것.
예전에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현지 채용으로 들어가봤자 본사 직원도 아니고, 번역이나 쫌 하는 것 외에는 별 볼일이 없다'는 듯한 뉘앙스의 글을 본 적이 있다. 맞는 말이라고 볼 수도 있고, 틀린 말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역시나 각자 하기 나름이다.
아무래도 영어권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폴란드 연구소의 업무시 쓰이는 공식 언어가 영어라 할지라도 폴란드어로 다들 얘기 하고, 소규모의 회의는 폴란드어로 하고 내부 교육도 폴란드어로 한다. (뭐..... 그 외 기타 등등 폴란드어로 사적인 농담이나 얘기 하는 건 당근.... )
하지만 기본적으로 영어를 하는 인력들을 뽑는지라 90% 이상의 직원이 영어를 꽤 한다.
(물론 한국 사람들 평균 보다는 월등히 잘 한다고 볼 수 있다. 의사 소통의 측면에서 문제 될 것은 거의 없다. ) 즉 본인만 꺼려 하지 않는 다면 사실 일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한국 회사의 연구소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한국과 연락 할 기회가 많은데.... 아직 까지는 아무리 글로벌 회사라고 해도 한국어로 연락이 많이 온다.
보고서 준비도 한국어로 해야 하고, (임원 급들에게 돌려지는 보고서는 당근 한국어로!!) 감사팀도 오고, 출장자들도 많이 오고, 자료 준비 및 시스템 관리 등등 한국인 특유의 섬세하고 빠릿빠릿한 일처리가 필요한 곳이 많다.
기술 개발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폴란드 사람들의 일하는 성향이 어떤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동유럽 쪽이 공대가 강하다는 얘기만 들어서 알고 있을 뿐 정말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한국 사람보다 속도가 느리다. 즉각 대처가 많이 미흡하다는 얘기다. 덧붙여 사생활을 매우 중요시 여기므로 사생활과 업무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사생활이 우선시 되는 성향 때문에 업무에 차질이 생기는 경향이 있다. 마지막으로 좀 허술하다. 크고 작은 실수가 많은데 이 부분은.... 절박함이 덜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실수 하면 안된다!! 라는 인식이 좀 적다고 할까? 한국 처럼 상하관계가 뚜렷하지 않아서 실수해도 미안하다는 얘기 거의 안하고, 알겠어~ 고칠께 한마디 하고 돌아서는데다, 상사도 거기에 대고 화를 낸다거나 (인신 공격을 한다거나), 말로 혼내거나 하질 않아서 실수를 하면 안된다! 라는 인식이 부족 한 것 같다.
현재 우리 연구소에는 한국인 직원이 개발자3명, 비 개발 인력 3명이 있는데, 개발자들의 경우도 한국인 공대 출신의 고질적인 한계인.... 언어(!)로 인해, 좀 더 윤활한 업무 처리를 기하고자 3명의 개발자(경력자들)를 투입 했고, 회계팀의 1명 (나), 프로젝트 시스템 관리(1), 시장 조사 및 기술 관련 정보 조사 및 주간, 월간 보고서 준비 1명이 투입 되어 있다.
여기서 비 개발 인력 3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써 보자면 나는 회계팀에서 프로젝트 별, 계정별 정보를 잘 관리하고 필요에 따라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총괄적인 회계 정보를 관리 한다. 또한 소비 패턴을 분석하고, 계획 수립, 구매 및 지출 관련 결제를 검토, 승인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더불어 작년에 갑자기 2명이나 출산 휴가를 가는 바람에 구매 관리도 하게 되서 쫌 많이 바쁘다.
폴란드어를 못하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일은 시스템에 비용 기표 (세금률을 잘 알지 못함)를 비롯한 세금 관련한 (나 자신한테 무척 서운함), 업무 말고는 없다. 팀장도 참 잘 만나서 차근 차근 배워 나가는 중이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두명은 폴란드어 전공자인데 폴란드어 전공자라서 더 혜택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렇지 않은 듯 하다.
이유는 폴란드어 외에 특성화 된 부분이 없기 때문..... 제일 먼저 입사한 한명은 처음에는 조금 갈팡 질팡 하다가 프로젝트 시스템 관리로 옮기고 나서 제 자리를 찾은 듯 잘 적응하고 있다. 60~70여개의 프로젝트에 대해 기간, 인력, 진행 상황들을 매일매일 관리하고 보고 해야 하는 고로 무척 꼼꼼한 관리가 필요 한 작업이다. 보니까 프로젝트 매니저들하고 매일 매일 씨름 하는 듯....
마지막 한명은..... 정보통이라고 볼 수 있는데 매주, 매월 거의 모든 핵심 정보를 모아 보고서를 작성한다. (한국어를 하는 덕분에 한국 직원들은 정보 수집에 매우 빠르다.) 이외에 폴란드어를 하는 관계로 신규 기술 정보 및 시장 정보를 수집해서 주별로 보고서를 제출한다. (이 친구의 경우... 번역 좀 많이 하고, 보고서 영어로 쓰니까 폴란드어, 영어 둘다 좀 많이 쓰는 듯)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국인 직원이 번역만 한다는 건 좀 과장된 이야기 같고, 번역을 안하는 건 아니지만 업무의 10% 미만의 수준인데다 번역을 위한 현지인 직원이 이미 배치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본인은 번역을 안한지 1년 째.....) 또한 한국에서 일할 때는 느끼지 못하는 한국인으로서의 희소성이 부각 되기 때문에 핵심 정보? 에 보다 빨리 접근이 가능 하다. 현지어 전공자가 아닌 경우, 즉 현재 연구소에 있는 개발자 (다들 공대 출신) 및 내 경우는 오히려 전공이 부각 됨으로 인해 오히려 현지어 구사자보다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즉 경력에 도움이 안될 만한 (잡)일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것.
오히려 현지어 전공이 현지 채용에서는 강점이 되는 동시에 약점이 될 수도 있다. (한국에서 채용이 되는 경우 오히려 요긴하게 쓰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오늘은 여기에서 이만...
추신 : 아무래도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 폴란드라는 한개의 나라에 국한 되어 있는 예를 들어 글을 썼기 때문에 일반화 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보이나, 나 또한 궁금한 점이 있을 때 인터넷으로 주로 검색하는 고로, 가볍게 읽고 넘어가 주시면 감사 할 듯 (요...)
연구소의 경우 생산 법인이나 판매 법인과 비교해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 이 점도 감안해 주시길(요!)
미화 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혹시라도 폴란드에 놀러와서 개인적으로 차 한잔 할 기회가 된다면 좀 더 소소하고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눠 보아요!
요지는 간단하다. 어디가나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것.
예전에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현지 채용으로 들어가봤자 본사 직원도 아니고, 번역이나 쫌 하는 것 외에는 별 볼일이 없다'는 듯한 뉘앙스의 글을 본 적이 있다. 맞는 말이라고 볼 수도 있고, 틀린 말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역시나 각자 하기 나름이다.
아무래도 영어권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폴란드 연구소의 업무시 쓰이는 공식 언어가 영어라 할지라도 폴란드어로 다들 얘기 하고, 소규모의 회의는 폴란드어로 하고 내부 교육도 폴란드어로 한다. (뭐..... 그 외 기타 등등 폴란드어로 사적인 농담이나 얘기 하는 건 당근.... )
하지만 기본적으로 영어를 하는 인력들을 뽑는지라 90% 이상의 직원이 영어를 꽤 한다.
(물론 한국 사람들 평균 보다는 월등히 잘 한다고 볼 수 있다. 의사 소통의 측면에서 문제 될 것은 거의 없다. ) 즉 본인만 꺼려 하지 않는 다면 사실 일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한국 회사의 연구소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한국과 연락 할 기회가 많은데.... 아직 까지는 아무리 글로벌 회사라고 해도 한국어로 연락이 많이 온다.
보고서 준비도 한국어로 해야 하고, (임원 급들에게 돌려지는 보고서는 당근 한국어로!!) 감사팀도 오고, 출장자들도 많이 오고, 자료 준비 및 시스템 관리 등등 한국인 특유의 섬세하고 빠릿빠릿한 일처리가 필요한 곳이 많다.
기술 개발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폴란드 사람들의 일하는 성향이 어떤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동유럽 쪽이 공대가 강하다는 얘기만 들어서 알고 있을 뿐 정말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한국 사람보다 속도가 느리다. 즉각 대처가 많이 미흡하다는 얘기다. 덧붙여 사생활을 매우 중요시 여기므로 사생활과 업무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사생활이 우선시 되는 성향 때문에 업무에 차질이 생기는 경향이 있다. 마지막으로 좀 허술하다. 크고 작은 실수가 많은데 이 부분은.... 절박함이 덜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실수 하면 안된다!! 라는 인식이 좀 적다고 할까? 한국 처럼 상하관계가 뚜렷하지 않아서 실수해도 미안하다는 얘기 거의 안하고, 알겠어~ 고칠께 한마디 하고 돌아서는데다, 상사도 거기에 대고 화를 낸다거나 (인신 공격을 한다거나), 말로 혼내거나 하질 않아서 실수를 하면 안된다! 라는 인식이 부족 한 것 같다.
현재 우리 연구소에는 한국인 직원이 개발자3명, 비 개발 인력 3명이 있는데, 개발자들의 경우도 한국인 공대 출신의 고질적인 한계인.... 언어(!)로 인해, 좀 더 윤활한 업무 처리를 기하고자 3명의 개발자(경력자들)를 투입 했고, 회계팀의 1명 (나), 프로젝트 시스템 관리(1), 시장 조사 및 기술 관련 정보 조사 및 주간, 월간 보고서 준비 1명이 투입 되어 있다.
여기서 비 개발 인력 3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써 보자면 나는 회계팀에서 프로젝트 별, 계정별 정보를 잘 관리하고 필요에 따라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총괄적인 회계 정보를 관리 한다. 또한 소비 패턴을 분석하고, 계획 수립, 구매 및 지출 관련 결제를 검토, 승인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더불어 작년에 갑자기 2명이나 출산 휴가를 가는 바람에 구매 관리도 하게 되서 쫌 많이 바쁘다.
폴란드어를 못하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일은 시스템에 비용 기표 (세금률을 잘 알지 못함)를 비롯한 세금 관련한 (나 자신한테 무척 서운함), 업무 말고는 없다. 팀장도 참 잘 만나서 차근 차근 배워 나가는 중이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두명은 폴란드어 전공자인데 폴란드어 전공자라서 더 혜택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렇지 않은 듯 하다.
이유는 폴란드어 외에 특성화 된 부분이 없기 때문..... 제일 먼저 입사한 한명은 처음에는 조금 갈팡 질팡 하다가 프로젝트 시스템 관리로 옮기고 나서 제 자리를 찾은 듯 잘 적응하고 있다. 60~70여개의 프로젝트에 대해 기간, 인력, 진행 상황들을 매일매일 관리하고 보고 해야 하는 고로 무척 꼼꼼한 관리가 필요 한 작업이다. 보니까 프로젝트 매니저들하고 매일 매일 씨름 하는 듯....
마지막 한명은..... 정보통이라고 볼 수 있는데 매주, 매월 거의 모든 핵심 정보를 모아 보고서를 작성한다. (한국어를 하는 덕분에 한국 직원들은 정보 수집에 매우 빠르다.) 이외에 폴란드어를 하는 관계로 신규 기술 정보 및 시장 정보를 수집해서 주별로 보고서를 제출한다. (이 친구의 경우... 번역 좀 많이 하고, 보고서 영어로 쓰니까 폴란드어, 영어 둘다 좀 많이 쓰는 듯)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국인 직원이 번역만 한다는 건 좀 과장된 이야기 같고, 번역을 안하는 건 아니지만 업무의 10% 미만의 수준인데다 번역을 위한 현지인 직원이 이미 배치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본인은 번역을 안한지 1년 째.....) 또한 한국에서 일할 때는 느끼지 못하는 한국인으로서의 희소성이 부각 되기 때문에 핵심 정보? 에 보다 빨리 접근이 가능 하다. 현지어 전공자가 아닌 경우, 즉 현재 연구소에 있는 개발자 (다들 공대 출신) 및 내 경우는 오히려 전공이 부각 됨으로 인해 오히려 현지어 구사자보다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즉 경력에 도움이 안될 만한 (잡)일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것.
오히려 현지어 전공이 현지 채용에서는 강점이 되는 동시에 약점이 될 수도 있다. (한국에서 채용이 되는 경우 오히려 요긴하게 쓰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오늘은 여기에서 이만...
추신 : 아무래도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 폴란드라는 한개의 나라에 국한 되어 있는 예를 들어 글을 썼기 때문에 일반화 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보이나, 나 또한 궁금한 점이 있을 때 인터넷으로 주로 검색하는 고로, 가볍게 읽고 넘어가 주시면 감사 할 듯 (요...)
연구소의 경우 생산 법인이나 판매 법인과 비교해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 이 점도 감안해 주시길(요!)
미화 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혹시라도 폴란드에 놀러와서 개인적으로 차 한잔 할 기회가 된다면 좀 더 소소하고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눠 보아요!
2/07/2011
현지 채용 vs 해외 취업 (2) 부제 :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쳐져 있다는 것을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퇴사도 했고, 입사 원서도 도착 했으니 비자 신청하고 (이 때 서류 준비가 조금 까다롭습니다.) 떠나기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겪은 약 한 달간의 이야기다.
참고로 재미 있는 얘기를 하나 하자면.... 아직 전화 면접 까지 끝내고 결과가 나오기 전 회사를 잘 다니고 있을 때였다. 급 엄마가 전화를 하셔서는 '니 시집 언제 가냐고 물어보려고 사주 좀 봤는데 조만간 물 건너 간다고 하더라? 너 어디 여행 가니? ' 하시는 것... 뭐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의 나는 '헉' 했다. 왜냐면 엄마한테는 아직 한마디도 하지 않은 상황 이었기 때문
(그런데 면접 봤다고 말하기도 뭐 했던 것이... 전혀 계획도 안하고 편하게 가서 본지라 엄마 나 해외에 있는 회사에 면접 봤어~ 하고 말하면 너 해외 나가고 싶니? 언제부터 그런 생각했니? 등등의 질문 세례를 받을 것 같아 딱히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
무슨~ 별 생각 없어요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그 날 오후에 출국 준비하라고, 폴란드에서 만나자는 전화를 받았다. 아 놀라워라~ 엄마한테는 이로부터 한참 후에나 얘기를 드렸다.
혹시라도 마음 바뀔까봐... 또는 변수가 생길지 몰라 서류 받기 전에는 말씀을 안드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아직 친구들에게도 거의 말을 하지 않은 상황 이었고 정말 아무도~ 모르고 있었던 상황에서 (제일 친한 친구 한 둘에게만 얘기 함)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드렸는데 엄마는 심드렁~하게 그러니? 하시더니 전화를 바로 끊으셨다. (아마 이모 및 기타 친지들에게 전화 하려고 하셨던 것 같음) 그리고 몇 몇 친구들을 만나 해외에 가게 되었다고 운을 띄웠더니 거의 모든 친구들에게서 질문 세례를 받았다.
어떻게 하다가 알게 되었냐, 면접은 어떻게 봤냐, 언제부터 해외 생활 생각했냐, 왜 폴란드냐, 결혼은 어떻게 할꺼냐, 너 외국 남자랑 진짜 결혼 할꺼냐, 전에 외국 남자랑 연애는 해봤냐 등등 정말 다양한 질문을 받았는데, 정말로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해외 생활에 대한 동경도 없었고, 폴란드는 쇼팽 콩쿨 있다는 것 말고는 아는 것도 없고, 외국 남자랑 연애는 해봤는데 별 것 없더라..... 하고 얘기 했더니 언제 누구랑 연애 했냐 왜 그 얘기 진작에 안했냐~ 하길래 깨졌는데 뭐 더 할 얘기가 있겠니... 하고 대답했다가 호박씨 깐다는 얘기만 들었다.
축하해 주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일부의 친구들은 부정적인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대기업 관심 없는 척 하더니 이직 하려고 눈에 불을 키고 있었다더라 하는 소문 부터... 한국 남자 싫어한다는 소문도 났었던 것도 같고.... (싫어하긴 무슨... 당시에도 열심히 만나던 남자 있었는데 단지 동네 방네 소문 내기 싫어서 말 안하고 있었던 것 뿐임, 아는 사람은 다 알았음) 겉으로는 여유 있는 척 하더니 뒤로는 엄청 노력하는 타입이었다는 칭찬?!도 듣고... 한쪽에서 열심히 소문을 내면 다른 한쪽에서는 열심히 그 소문을 물어다 줬다. 태어나서 이렇게까지 화제의 중심이 된 건 처음 이었던 것 같다. 날 잘 알지도 못하는 과 사람들에게까지 내 소문이 퍼지고 퍼져 학교에 졸업 증명서 떼러 갔다가 학기 마지막에 학점 떼우려 들었던 영어과 수업의 외국인 교수가 날 보더니 너 외국에 간다며? 하고 말걸 더라..... 그 수업 인원도 적어서 영어과 사람들 몇 알게 되었었는데 언제 거기까지 소문이...
좋은 얘기라도 구설수에 오르 내린다는 건 그다지 좋은 기분이 아니다.
내가 뭐 잘못 했나? 하는 생각까지 들고 진짜 연예인은 삶이 피곤 하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밥 먹자~ 하는 전화도 많이 오고, 참 감사하게도 가기 전에 얼굴 봐야지! 하는 분들도 많았다.
그런데 개 중에는 연락 정말 감사한데 웃으면서 너 외국 가서 출세하니까?! 쏘고 가라 하는 분들도 참 많았다. (출세는 개뿔......) 덕분에 출국 직전까지 카드 한도까지 완전 만땅으로 쓰고 비행기 표는 당시 살던 집 보증금 받아서 겨우겨우 출국 3일전에 샀다.
뭐 여기까지는 애교로 봐줄 수 있다....
정말 가슴이 먹먹 했던 순간은......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연출 되었다.
막내 이모부.... 어렸을 때부터 참 묘하게 우리 집을 싫어 했던.... 분이셨는데, 이유는... 본인의 아버님께서 하도 문제를 일으 키셔서 자동으로 우리집까지 미운 털이 박힌듯 하다.
우리 집안 이모부들의 특징은.... 딸 사랑이 대단하시다. 울 엄마가 지나 가는 말로 우리 딸이 뭐 했어~ 하고 한마디 하면 본인 딸은 새벽 기도 나간다며 별 연관성도 없는 말까지 끌어다 늘 내 사촌 동생 칭찬으로 울 엄마 기를 눌러놔야 만족 하시는 분들인데 (하지만 사촌 동생과 내 사이는 다행히 각별~또 워낙에 착해서... 문제는 어른들..) 이번에 엄마가 다 모이는 자리에서 우리 딸 이직 한다며 폴란드에 나가게 되었다고 말씀 하셨는디... (글쎄 자랑끼가 섞였나? 울 엄마가 좀 뻥튀기 해서 말씀 하셨나?) 이유가 뭔지 모르겠지만 심하게 심기 불편해 하시더니 나도 앉아서 밥 먹고 있는데 요새 세상에 누가 밖에 나가냐며 한국에서 취업 못하고 빌빌 거리는 것들이나 나가지... 하고 말씀 하셨다. 당시 본인 딸이 3학년 마치고 호주로 어학연수 나가는 입장 이었는데 본인 딸은 절대 외국에서 회사 생활 못 시킨다며 큰소리를 치셨다. 뭔가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허허 웃으면서 그렇죠.... 하고 말았다.
울 엄마한테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친척들 앞에서 왜 자꾸 그런 소리 하냐고 엄마 속 만 더 상한다고 한 소리 하고는 죄송해서 나 때문에 밥 먹다 숟가락 놓으신 엄마를 위해.....고기 사드렸다.
거기서 끝난 줄 알았더니 출국 몇 일전 큰 이모부가 밥 사겠다며 모두 집합 시켜서는 하신다는 소리가..... 폴란드 못 사는 나란데 거기서 뭐 볼일이 있어서 한국 사람 데려다 일 시키겠냐며 혹시 이상한 데 일하러 가면서 회사 이름만 대는 거 아니냐는 말씀을 하셨다.....
처녀들 데려다 팔아 넘긴다나 어쩐다나....
이상한 데라니... -_-;;; 나 참..... (전 그러기엔 나이가 좀 있거든요.... 물론 동양 사람이 좀 동안으로 보이긴 합니다만.... ) 두 명의 가족 구성원에게 요런 얘기를 듣고 나자 다행스럽게도 야속하게 느껴졌던 (일부)친구들에 대한 감정을 훌훌 털어 버리고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퇴사도 했고, 입사 원서도 도착 했으니 비자 신청하고 (이 때 서류 준비가 조금 까다롭습니다.) 떠나기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겪은 약 한 달간의 이야기다.
참고로 재미 있는 얘기를 하나 하자면.... 아직 전화 면접 까지 끝내고 결과가 나오기 전 회사를 잘 다니고 있을 때였다. 급 엄마가 전화를 하셔서는 '니 시집 언제 가냐고 물어보려고 사주 좀 봤는데 조만간 물 건너 간다고 하더라? 너 어디 여행 가니? ' 하시는 것... 뭐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의 나는 '헉' 했다. 왜냐면 엄마한테는 아직 한마디도 하지 않은 상황 이었기 때문
(그런데 면접 봤다고 말하기도 뭐 했던 것이... 전혀 계획도 안하고 편하게 가서 본지라 엄마 나 해외에 있는 회사에 면접 봤어~ 하고 말하면 너 해외 나가고 싶니? 언제부터 그런 생각했니? 등등의 질문 세례를 받을 것 같아 딱히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
무슨~ 별 생각 없어요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그 날 오후에 출국 준비하라고, 폴란드에서 만나자는 전화를 받았다. 아 놀라워라~ 엄마한테는 이로부터 한참 후에나 얘기를 드렸다.
혹시라도 마음 바뀔까봐... 또는 변수가 생길지 몰라 서류 받기 전에는 말씀을 안드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아직 친구들에게도 거의 말을 하지 않은 상황 이었고 정말 아무도~ 모르고 있었던 상황에서 (제일 친한 친구 한 둘에게만 얘기 함)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드렸는데 엄마는 심드렁~하게 그러니? 하시더니 전화를 바로 끊으셨다. (아마 이모 및 기타 친지들에게 전화 하려고 하셨던 것 같음) 그리고 몇 몇 친구들을 만나 해외에 가게 되었다고 운을 띄웠더니 거의 모든 친구들에게서 질문 세례를 받았다.
어떻게 하다가 알게 되었냐, 면접은 어떻게 봤냐, 언제부터 해외 생활 생각했냐, 왜 폴란드냐, 결혼은 어떻게 할꺼냐, 너 외국 남자랑 진짜 결혼 할꺼냐, 전에 외국 남자랑 연애는 해봤냐 등등 정말 다양한 질문을 받았는데, 정말로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해외 생활에 대한 동경도 없었고, 폴란드는 쇼팽 콩쿨 있다는 것 말고는 아는 것도 없고, 외국 남자랑 연애는 해봤는데 별 것 없더라..... 하고 얘기 했더니 언제 누구랑 연애 했냐 왜 그 얘기 진작에 안했냐~ 하길래 깨졌는데 뭐 더 할 얘기가 있겠니... 하고 대답했다가 호박씨 깐다는 얘기만 들었다.
축하해 주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일부의 친구들은 부정적인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대기업 관심 없는 척 하더니 이직 하려고 눈에 불을 키고 있었다더라 하는 소문 부터... 한국 남자 싫어한다는 소문도 났었던 것도 같고.... (싫어하긴 무슨... 당시에도 열심히 만나던 남자 있었는데 단지 동네 방네 소문 내기 싫어서 말 안하고 있었던 것 뿐임, 아는 사람은 다 알았음) 겉으로는 여유 있는 척 하더니 뒤로는 엄청 노력하는 타입이었다는 칭찬?!도 듣고... 한쪽에서 열심히 소문을 내면 다른 한쪽에서는 열심히 그 소문을 물어다 줬다. 태어나서 이렇게까지 화제의 중심이 된 건 처음 이었던 것 같다. 날 잘 알지도 못하는 과 사람들에게까지 내 소문이 퍼지고 퍼져 학교에 졸업 증명서 떼러 갔다가 학기 마지막에 학점 떼우려 들었던 영어과 수업의 외국인 교수가 날 보더니 너 외국에 간다며? 하고 말걸 더라..... 그 수업 인원도 적어서 영어과 사람들 몇 알게 되었었는데 언제 거기까지 소문이...
좋은 얘기라도 구설수에 오르 내린다는 건 그다지 좋은 기분이 아니다.
내가 뭐 잘못 했나? 하는 생각까지 들고 진짜 연예인은 삶이 피곤 하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밥 먹자~ 하는 전화도 많이 오고, 참 감사하게도 가기 전에 얼굴 봐야지! 하는 분들도 많았다.
그런데 개 중에는 연락 정말 감사한데 웃으면서 너 외국 가서 출세하니까?! 쏘고 가라 하는 분들도 참 많았다. (출세는 개뿔......) 덕분에 출국 직전까지 카드 한도까지 완전 만땅으로 쓰고 비행기 표는 당시 살던 집 보증금 받아서 겨우겨우 출국 3일전에 샀다.
뭐 여기까지는 애교로 봐줄 수 있다....
정말 가슴이 먹먹 했던 순간은......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연출 되었다.
막내 이모부.... 어렸을 때부터 참 묘하게 우리 집을 싫어 했던.... 분이셨는데, 이유는... 본인의 아버님께서 하도 문제를 일으 키셔서 자동으로 우리집까지 미운 털이 박힌듯 하다.
우리 집안 이모부들의 특징은.... 딸 사랑이 대단하시다. 울 엄마가 지나 가는 말로 우리 딸이 뭐 했어~ 하고 한마디 하면 본인 딸은 새벽 기도 나간다며 별 연관성도 없는 말까지 끌어다 늘 내 사촌 동생 칭찬으로 울 엄마 기를 눌러놔야 만족 하시는 분들인데 (하지만 사촌 동생과 내 사이는 다행히 각별~또 워낙에 착해서... 문제는 어른들..) 이번에 엄마가 다 모이는 자리에서 우리 딸 이직 한다며 폴란드에 나가게 되었다고 말씀 하셨는디... (글쎄 자랑끼가 섞였나? 울 엄마가 좀 뻥튀기 해서 말씀 하셨나?) 이유가 뭔지 모르겠지만 심하게 심기 불편해 하시더니 나도 앉아서 밥 먹고 있는데 요새 세상에 누가 밖에 나가냐며 한국에서 취업 못하고 빌빌 거리는 것들이나 나가지... 하고 말씀 하셨다. 당시 본인 딸이 3학년 마치고 호주로 어학연수 나가는 입장 이었는데 본인 딸은 절대 외국에서 회사 생활 못 시킨다며 큰소리를 치셨다. 뭔가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허허 웃으면서 그렇죠.... 하고 말았다.
울 엄마한테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친척들 앞에서 왜 자꾸 그런 소리 하냐고 엄마 속 만 더 상한다고 한 소리 하고는 죄송해서 나 때문에 밥 먹다 숟가락 놓으신 엄마를 위해.....고기 사드렸다.
거기서 끝난 줄 알았더니 출국 몇 일전 큰 이모부가 밥 사겠다며 모두 집합 시켜서는 하신다는 소리가..... 폴란드 못 사는 나란데 거기서 뭐 볼일이 있어서 한국 사람 데려다 일 시키겠냐며 혹시 이상한 데 일하러 가면서 회사 이름만 대는 거 아니냐는 말씀을 하셨다.....
처녀들 데려다 팔아 넘긴다나 어쩐다나....
이상한 데라니... -_-;;; 나 참..... (전 그러기엔 나이가 좀 있거든요.... 물론 동양 사람이 좀 동안으로 보이긴 합니다만.... ) 두 명의 가족 구성원에게 요런 얘기를 듣고 나자 다행스럽게도 야속하게 느껴졌던 (일부)친구들에 대한 감정을 훌훌 털어 버리고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2/04/2011
현지 채용 vs 해외 취업 (1) 부제 :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나
무슨 비법이나 뭔가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라도 알려 줄 것 처럼 제목을 썼지만 사실 이 글은 (언제나처럼) 영양가가 없는 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말하고 싶은 주제가 몇가지 있는데 그 것들을 동그랗게 말아 한번에 말하기로 작정한 데다, 내가 그닥 논리적인 글쓰기에 소질이 없기 때문에, 이 글은 신세 한탄으로 마무리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양가 없는 글을 쓰는 이유는..... 한마디로 '해소' 라는 단어로 함축 할 수 있겠다.
정신적 외상이라는 말을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실텐데.... 나는 정신적 외상이 꼭 시각과 연관시키지 않아도 작은 연결 고리 만으로도 지속적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경험, 또는 상처라고 생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사람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어 하고 이를 통해 가슴 속에 있는 응어리를 해소 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대화를 통해 나라는 존재에 대해 분석하고, 인식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정신적인 상처를 해소해 나간다. 또한 그 과정에서 때로는 위로도 받고, 공감하는 사람으로부터 큰 힘을 얻는다. 즉 사람은 사회성을 타고난 존재라는 얘기다. 이 이야기는 위의 전제를 바탕으로 한 바로 나의 경험으로부터 시작 된다고 볼 수 있다.
서론이 길었는데 각설하고 신문을 펴면 매일 같이 볼 수 있는 단어 중 하나가 청년 실업이다.
실업난이 가속화 되고 있던 2009년 2월, 한국의 작은 소기업에 취업 했다. 포워딩이라고 무역에서 사고 파는 계약이 완료 되면, 물류 관련하여 스케줄 조정 및 관세 통관을 비롯하여 운송 전반에 걸쳐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야로 Logistics 의 한 분류라고 보면 된다. 대학교 졸업 시 별 다른 욕심도 없었고 '크고 작은게 무슨 상관? 우선 경제적으로 자립 하는게 급 선무'라고 생각했다. 월급이 많지는 않았지만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어서 좋았고 작은 회사라 사람도 별로 없었고, 문제 될 만한 거리는 거의 없었다. 사장도 젊은데다 거의 밖으로 영업하러 돌아다니는 터라 안에서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것도 없었고 또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별 다른 생각 없이 잘 생활 하고 있었는데 5월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점심을 먹고 들어와서 메일을 살펴 보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받을 까 말까 고민하다 비상 계단으로 나가서 전화를 받았는데 대뜸 헤드 헌터라며 이력서를 보고 전화 하는 거라고 했다.
'이상하다.... 내가 이력서 손 안댄지가 벌써 반년이 다 되어 가는데....' 하는 생각에 관심 없습니다. 하고 대답 했으나 이메일을 이미 보내 놨으니 관심이 있으면 한번 면접이나 보다는 얘기를 하고 쿨하게 끊었다. 메일에는 유럽의 P국, 회계 관련자 모집이라고 씌여 있었는데 나는 회계 쪽은 2학년 때 회계 원론 들은게 다였기 때문에 뭔가 착오가 있었겠거니 생각했다.
(늘 그렇듯이 다들 경제와 경영이 같은 분야라고 생각함 )
그런데 다음 날 다시 전화를 걸어 이메일은 확인 했느냐 편하게 생각하고 면접이나 보자, 영어로 자기 소개만 준비해 오면 된다 길래 퇴근이 6시 반이라 나는 면접을 봐도 7시 반에나 가능하다고 했더니 아무 때나 괜찮다며 내 스케줄에 맞추겠다고 하길래 나쁠것 없지 하는 마음으로 헤드헌터와의 면접을 편하게 봤다... (참고로 그 분이 참 편하고 좋은 분이셨다. 나이도 있으시고 삼촌과 얘기 하듯 편하게 대해 주셔서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그 자리에서 그 다음주에 현지에서 일하고 계시는 매니저가 한국에 나오시는데 면접을 보는게 어떻겠냐고 하길래 뭐 밑져야 본전이라고 영어 인터뷰 연습이나 하지 뭐~ 하고 쿨하게 가서 정말 부담 없이..... 나는 회계는 정말 모르고, 엑셀도 조금만 써 봤고, 지금 하는 일은 무역 관련 일이라 회계랑은 관련이 없다고 솔직히 대답했다. 내 이력서를 훑어 보시던 지금의 차장님께서는 나보고 왜 이렇게 졸업이 늦어졌냐고 물으셨다.
그 때 나는 솔직하게 아래와 같이 얘기 했다.
1) 요가를 취미로 배우다가 요가 업계가 급 성장하면서 강사 몸값이 오르길래 좋은 경험 하는 셈 치고 강사 자격증 따서 일해 봤다. 작게는 2~3명, 많게는 4~50명 데리고도 수업 진행해 봤다. 덕분에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거 별로 부담 안 느끼고 프레젠테이션 같은거 잘할 수 있다. 1년 전임 강사로 뛰다가 비젼이 안 보이길래 새벽에 강습 하나 남기고 다 정리하고 학교로 돌아와서 내 용돈 내가 벌면서 학교 다녔다.
2) 여행을 좀 다녔다. 일본도 갔다 오고 자전거 여행 다녔다. 여자 혼자 여행 다닌 다고 부모님이 뭐라고 하시는 편도 아니라 가방 들고 어디까지 갈 수 있나 무조건 걸어봤다. 그렇게 반년 놀았다.
3) 졸업 하기 직전,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싶어서 지중해에 있는 몰타라는 섬으로 갔다.
나름 계획은 영어 공부도 하려고 갔었는데 공부는 한달만 하고 (비자 연장하려고) 반년간 정말 다양한 사람들 만나서 놀았다. 유럽 본토로 넘어가서 당시 만나던 우크라이나 남자친구랑 런던에서 베를린까지 차로 여행 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정해진 스케줄 없이 마음에 들면 한곳에서 일주일 이주일도 머물면서 서바이벌 독일어도 배우고, 서바이벌 러시아어도 배웠다.
그래서 여행하는데 문제 없었고 한국 돌아와서 러시아어 학원 다니면서 문법 좀 배우고 나니 정리가 좀 더 잘 되더라. 그리고 한국 돌아와 바로 졸업해서 취직했다. 그랬는데 전화 받고 새로운 경험이 될 지도 모른 다는 생각에 여기까지 왔다. 인생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닌가....(요)
지금 생각하면 차장님께서 참 열린 마음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든다. (같이 일하면서 정말 좋다고 생각은 하지만..... )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당시 나의 강점은.... 문법 좀 틀리고, 약간 웃기게 들리긴 하지만 버벅 거리지 않고 나 하고 싶은 말 영어로 할 줄 안다는 거? 그리고 해외 생활에 대해서 전혀 거리낌 없다는 게 다인데 어떻게 면접에서 저런 얘기 다 하는 사람을 뽑아서 바로 밑에다 놔 둘 생각을 하셨는지....
그 때 차장님은 내게 나중이 되던 오늘이 되던 원래 이력서에 이렇게 공백이 있으면 별로 좋지 않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뭐든 쉬지 않고 계속 채워 나가는 게 회사 시각으로는 더 나아 보인다는..... 그래서 나는 '아! 떨어 졌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음 날 전화가 걸려와 현지 HR manager와 전화 면접을 보자고 했다
일주일 후, 사전 통보를 받고 전화로 면접을 봤다. 그제서야 나는 그 회사가 '폴란드에 있는 한국 회사의 연구소' 라는 걸 알게 되었다.
현지 매니저와의 전화 면접.... 헤드 헌터분이 미리 말씀을 해 주셨지만 폴란드 사람들의 영어 발음... 러시아어, 독일어, 불어 하는 사람들도 영어로 말하면 어투나 발음이 참 그 나라 언어의 특색이 강한데, 폴란드어도 예외는 아니 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몰타에서 다양한 발음을 다 들어 보았기 때문에 이미 ( 영,프,독,이,스페인, 심지어는 아랍어 하는 사람의 영어 발음, 몰타어 하는 사람의 영어 발음도 이미 거쳤음) 어느정도 단련이 되어 있었고, 잘 못 알아 들었을 때 다시 말해 달라고 하는 것에 별 다른 스스럼이 없었다. 덕분에 별로 어렵지 않게 전화 인터뷰를 마쳤고 마지막에는 마음에 들면 폴란드 남자 만나서 결혼하고 살아도 OK야~ 괜찮은 사람 있으면 나 나중에 일하게 되거든 간접적으로 추천해 줘~ 라고 농담까지 나누고 끊었다.
2주 후 폴란드에서 같이 일 했으면 좋겠다며 입사 전까지 약 2달의 비자 준비 기간이 소요 되기 때문에 그 동안 개인적으로 출국 준비를 하시라 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약 두달 후에 정식으로 입사 원서가 도착했다.
(하지만 노동 허가를 받기 까지는 예상 했던 2달보다 약 한달이 더 소요가 되어 3개월의 시간이 걸렸으며, 노동 허가서를 받아 비자를 발급 받는데 약 2주의 시간이 더 소요 되었다. )
마지막 관문까지 지나고 나자 마지막으로 남은 한 가지는.... 퇴.사.
일한지 반년이 갓 넘어서 퇴사 하겠다는 소리가 도무지 입에서 나오질 않았지만....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욕 먹을 각오 단단히 하고 말씀 드렸다가 잔소리 좀 듣고 그래도 해외로 간다니 몸 조심 하라는 덕담 듣고 끝났다.
이 때까지는 아직 실감이 나질 않았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감도 안오고.... 내가 뭔가를 특별히 노력 한 것도 아닌데 눈 앞에 기회가 굴러 온 것 같아 조금 겁도 났다.
참 뜬금 없이 웬 폴란드? 하는 생각에 허허실실 웃음만 나오고....
뭐가 기다리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 때는 그 모든 것들이 고등학교 때 읽었던 소설 책에서 나오는 삶의 표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버릴 수도 있지만 따라가면 무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꺼라는 알 수 없는 예감 같은 것도 조금은 있었고....
말하고 싶은 주제가 몇가지 있는데 그 것들을 동그랗게 말아 한번에 말하기로 작정한 데다, 내가 그닥 논리적인 글쓰기에 소질이 없기 때문에, 이 글은 신세 한탄으로 마무리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양가 없는 글을 쓰는 이유는..... 한마디로 '해소' 라는 단어로 함축 할 수 있겠다.
정신적 외상이라는 말을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실텐데.... 나는 정신적 외상이 꼭 시각과 연관시키지 않아도 작은 연결 고리 만으로도 지속적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경험, 또는 상처라고 생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사람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어 하고 이를 통해 가슴 속에 있는 응어리를 해소 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대화를 통해 나라는 존재에 대해 분석하고, 인식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정신적인 상처를 해소해 나간다. 또한 그 과정에서 때로는 위로도 받고, 공감하는 사람으로부터 큰 힘을 얻는다. 즉 사람은 사회성을 타고난 존재라는 얘기다. 이 이야기는 위의 전제를 바탕으로 한 바로 나의 경험으로부터 시작 된다고 볼 수 있다.
서론이 길었는데 각설하고 신문을 펴면 매일 같이 볼 수 있는 단어 중 하나가 청년 실업이다.
실업난이 가속화 되고 있던 2009년 2월, 한국의 작은 소기업에 취업 했다. 포워딩이라고 무역에서 사고 파는 계약이 완료 되면, 물류 관련하여 스케줄 조정 및 관세 통관을 비롯하여 운송 전반에 걸쳐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야로 Logistics 의 한 분류라고 보면 된다. 대학교 졸업 시 별 다른 욕심도 없었고 '크고 작은게 무슨 상관? 우선 경제적으로 자립 하는게 급 선무'라고 생각했다. 월급이 많지는 않았지만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어서 좋았고 작은 회사라 사람도 별로 없었고, 문제 될 만한 거리는 거의 없었다. 사장도 젊은데다 거의 밖으로 영업하러 돌아다니는 터라 안에서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것도 없었고 또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별 다른 생각 없이 잘 생활 하고 있었는데 5월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점심을 먹고 들어와서 메일을 살펴 보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받을 까 말까 고민하다 비상 계단으로 나가서 전화를 받았는데 대뜸 헤드 헌터라며 이력서를 보고 전화 하는 거라고 했다.
'이상하다.... 내가 이력서 손 안댄지가 벌써 반년이 다 되어 가는데....' 하는 생각에 관심 없습니다. 하고 대답 했으나 이메일을 이미 보내 놨으니 관심이 있으면 한번 면접이나 보다는 얘기를 하고 쿨하게 끊었다. 메일에는 유럽의 P국, 회계 관련자 모집이라고 씌여 있었는데 나는 회계 쪽은 2학년 때 회계 원론 들은게 다였기 때문에 뭔가 착오가 있었겠거니 생각했다.
(늘 그렇듯이 다들 경제와 경영이 같은 분야라고 생각함 )
그런데 다음 날 다시 전화를 걸어 이메일은 확인 했느냐 편하게 생각하고 면접이나 보자, 영어로 자기 소개만 준비해 오면 된다 길래 퇴근이 6시 반이라 나는 면접을 봐도 7시 반에나 가능하다고 했더니 아무 때나 괜찮다며 내 스케줄에 맞추겠다고 하길래 나쁠것 없지 하는 마음으로 헤드헌터와의 면접을 편하게 봤다... (참고로 그 분이 참 편하고 좋은 분이셨다. 나이도 있으시고 삼촌과 얘기 하듯 편하게 대해 주셔서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그 자리에서 그 다음주에 현지에서 일하고 계시는 매니저가 한국에 나오시는데 면접을 보는게 어떻겠냐고 하길래 뭐 밑져야 본전이라고 영어 인터뷰 연습이나 하지 뭐~ 하고 쿨하게 가서 정말 부담 없이..... 나는 회계는 정말 모르고, 엑셀도 조금만 써 봤고, 지금 하는 일은 무역 관련 일이라 회계랑은 관련이 없다고 솔직히 대답했다. 내 이력서를 훑어 보시던 지금의 차장님께서는 나보고 왜 이렇게 졸업이 늦어졌냐고 물으셨다.
그 때 나는 솔직하게 아래와 같이 얘기 했다.
1) 요가를 취미로 배우다가 요가 업계가 급 성장하면서 강사 몸값이 오르길래 좋은 경험 하는 셈 치고 강사 자격증 따서 일해 봤다. 작게는 2~3명, 많게는 4~50명 데리고도 수업 진행해 봤다. 덕분에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거 별로 부담 안 느끼고 프레젠테이션 같은거 잘할 수 있다. 1년 전임 강사로 뛰다가 비젼이 안 보이길래 새벽에 강습 하나 남기고 다 정리하고 학교로 돌아와서 내 용돈 내가 벌면서 학교 다녔다.
2) 여행을 좀 다녔다. 일본도 갔다 오고 자전거 여행 다녔다. 여자 혼자 여행 다닌 다고 부모님이 뭐라고 하시는 편도 아니라 가방 들고 어디까지 갈 수 있나 무조건 걸어봤다. 그렇게 반년 놀았다.
3) 졸업 하기 직전,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싶어서 지중해에 있는 몰타라는 섬으로 갔다.
나름 계획은 영어 공부도 하려고 갔었는데 공부는 한달만 하고 (비자 연장하려고) 반년간 정말 다양한 사람들 만나서 놀았다. 유럽 본토로 넘어가서 당시 만나던 우크라이나 남자친구랑 런던에서 베를린까지 차로 여행 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정해진 스케줄 없이 마음에 들면 한곳에서 일주일 이주일도 머물면서 서바이벌 독일어도 배우고, 서바이벌 러시아어도 배웠다.
그래서 여행하는데 문제 없었고 한국 돌아와서 러시아어 학원 다니면서 문법 좀 배우고 나니 정리가 좀 더 잘 되더라. 그리고 한국 돌아와 바로 졸업해서 취직했다. 그랬는데 전화 받고 새로운 경험이 될 지도 모른 다는 생각에 여기까지 왔다. 인생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닌가....(요)
지금 생각하면 차장님께서 참 열린 마음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든다. (같이 일하면서 정말 좋다고 생각은 하지만..... )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당시 나의 강점은.... 문법 좀 틀리고, 약간 웃기게 들리긴 하지만 버벅 거리지 않고 나 하고 싶은 말 영어로 할 줄 안다는 거? 그리고 해외 생활에 대해서 전혀 거리낌 없다는 게 다인데 어떻게 면접에서 저런 얘기 다 하는 사람을 뽑아서 바로 밑에다 놔 둘 생각을 하셨는지....
그 때 차장님은 내게 나중이 되던 오늘이 되던 원래 이력서에 이렇게 공백이 있으면 별로 좋지 않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뭐든 쉬지 않고 계속 채워 나가는 게 회사 시각으로는 더 나아 보인다는..... 그래서 나는 '아! 떨어 졌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음 날 전화가 걸려와 현지 HR manager와 전화 면접을 보자고 했다
일주일 후, 사전 통보를 받고 전화로 면접을 봤다. 그제서야 나는 그 회사가 '폴란드에 있는 한국 회사의 연구소' 라는 걸 알게 되었다.
현지 매니저와의 전화 면접.... 헤드 헌터분이 미리 말씀을 해 주셨지만 폴란드 사람들의 영어 발음... 러시아어, 독일어, 불어 하는 사람들도 영어로 말하면 어투나 발음이 참 그 나라 언어의 특색이 강한데, 폴란드어도 예외는 아니 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몰타에서 다양한 발음을 다 들어 보았기 때문에 이미 ( 영,프,독,이,스페인, 심지어는 아랍어 하는 사람의 영어 발음, 몰타어 하는 사람의 영어 발음도 이미 거쳤음) 어느정도 단련이 되어 있었고, 잘 못 알아 들었을 때 다시 말해 달라고 하는 것에 별 다른 스스럼이 없었다. 덕분에 별로 어렵지 않게 전화 인터뷰를 마쳤고 마지막에는 마음에 들면 폴란드 남자 만나서 결혼하고 살아도 OK야~ 괜찮은 사람 있으면 나 나중에 일하게 되거든 간접적으로 추천해 줘~ 라고 농담까지 나누고 끊었다.
2주 후 폴란드에서 같이 일 했으면 좋겠다며 입사 전까지 약 2달의 비자 준비 기간이 소요 되기 때문에 그 동안 개인적으로 출국 준비를 하시라 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약 두달 후에 정식으로 입사 원서가 도착했다.
(하지만 노동 허가를 받기 까지는 예상 했던 2달보다 약 한달이 더 소요가 되어 3개월의 시간이 걸렸으며, 노동 허가서를 받아 비자를 발급 받는데 약 2주의 시간이 더 소요 되었다. )
마지막 관문까지 지나고 나자 마지막으로 남은 한 가지는.... 퇴.사.
일한지 반년이 갓 넘어서 퇴사 하겠다는 소리가 도무지 입에서 나오질 않았지만....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욕 먹을 각오 단단히 하고 말씀 드렸다가 잔소리 좀 듣고 그래도 해외로 간다니 몸 조심 하라는 덕담 듣고 끝났다.
이 때까지는 아직 실감이 나질 않았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감도 안오고.... 내가 뭔가를 특별히 노력 한 것도 아닌데 눈 앞에 기회가 굴러 온 것 같아 조금 겁도 났다.
참 뜬금 없이 웬 폴란드? 하는 생각에 허허실실 웃음만 나오고....
뭐가 기다리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 때는 그 모든 것들이 고등학교 때 읽었던 소설 책에서 나오는 삶의 표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버릴 수도 있지만 따라가면 무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꺼라는 알 수 없는 예감 같은 것도 조금은 있었고....
1/26/2011
나는 아무래도 학자는 되지 못 할 모냥
여기 감성에 호소하는 몰지각한 1인이 있다면,
(나와는 다르게) 지식을 기반으로 한 논리적인 글쓰기의 달인이 펼치는, 보다 명확한 접근이 있다.
이준구 교수님
학교에서 공짜 밥 주는 일부터 시작해서 포크레인으로 강 파는 일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현대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수 십년간 쌓은 강의 경험을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해주신다는 말씀....
정치적 외압에서 벗어나 행동하는 양심적 지성을 지향하시는 분이니, 정치는 싫어! 경제학은 정치의 시녀 노릇을 하고 있어~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조금은 어깨의 부담을 내려 놓고 읽어 보시기에 좋으실 듯 하다.
(내가 생각하는) 학자의 길은 끊임 없이 읽고, 사고하고, 비판하며,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또 글쓰고, 다듬고, 고치고 또 다듬고의 작업을 반복하는 고독한 길임에 틀림 없다.
학자가 되려면 정말 부지런해야 할 듯......
따라서 나는 절대 네버 결코 학자 타입은 아니다. ( 매우 게으름)
단지 어깨 너머로 들여다 보는 정도랄까.........
(나와는 다르게) 지식을 기반으로 한 논리적인 글쓰기의 달인이 펼치는, 보다 명확한 접근이 있다.
이준구 교수님
학교에서 공짜 밥 주는 일부터 시작해서 포크레인으로 강 파는 일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현대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수 십년간 쌓은 강의 경험을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해주신다는 말씀....
정치적 외압에서 벗어나 행동하는 양심적 지성을 지향하시는 분이니, 정치는 싫어! 경제학은 정치의 시녀 노릇을 하고 있어~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조금은 어깨의 부담을 내려 놓고 읽어 보시기에 좋으실 듯 하다.
(내가 생각하는) 학자의 길은 끊임 없이 읽고, 사고하고, 비판하며,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또 글쓰고, 다듬고, 고치고 또 다듬고의 작업을 반복하는 고독한 길임에 틀림 없다.
학자가 되려면 정말 부지런해야 할 듯......
따라서 나는 절대 네버 결코 학자 타입은 아니다. ( 매우 게으름)
단지 어깨 너머로 들여다 보는 정도랄까.........
경제학 전공자는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사고 하는가?
이 재미 없어 보이는 제목의 질문에 대한 개인적인 대답은 노다.
가치니 효용이니 하는 모호한 단어들이 남발하는 경제학을 수업을 받고난 후, 내 기억에 남는 몇 가지는 미시나 거시, 계량 경제학이니 하는 수업에 배운 것들은 한 개도 없고 오직 수요 공급의 법칙이라는 경제학 원론 첫 페이지 (진짜 첫 페이지는 아님)에 나오는 지극히 기본적인 개념이 되시겠다.
울 엄니는 딸내미 경제학과 보내 놨더니 애가 돈 쓰는 걸 보면 오히려 경제학과는 거리가 멀다며 늘 친척들 앞에서 한탄하신다. ( 내 말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으심)
나는 나대로 케인즈니 밀이니 하는 이상한 아자씨들 땜시 자꾸 무슨 주의만 자꾸 늘어나고 수정 자본주의가 뭔지 신 자유주의가 뭔지, 뭔 놈의 주의는 왜 이리도 많은지 짜증도 나고... 하버드랑 시카고에서 뭐라 카는 것 같은데 그래서 어쩌라고... 죽여.... 하는 이상한 심리로 시험 때 헛소리 써 냈다가 복수 전공 안 했었으면 2점대로 졸업 할 번한 학점만 남긴 채.... 졸업 논문도 수업시간에 한번 언급 없었던 유로화 통합 우끼고 있네 라는 내용의 잡소리 논문에 써 냈다가 교수님 면담 취소 당하고 에라 빨랑 사라져라~ 라는 듯 던져주는 졸업장만 받아서 대학교 졸업했다.
자.... 그래서 이 글의 요지는(경제학을 전공으로 대학교에서 4년 공부한 )나는 결코 경제학적으로 사고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먼저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이자 (이상적인 어머니 상에서 조금은 멀지만 그래도) 평범한 한국의 주부인 우리 오마니께서 늘 나에 대해 답답해 하시는 점을 잠시 소개해보자면......
1) 학원비를 냈는데 강의가 완전 엉망이다.
- 절대! 다시는! 가지 않는다. (물론 환불을 요구 했으나 절대 안된다고 하는 경우)
2) 식당에 가서 밥을 시켰는데 맛이 없다.
- 더 이상 먹지 않는다.
3) 옷을 샀는데 여타의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 주변의 친지들에게 분배 한다.
4) 겨우 대학교 졸업해서 취직 했다.
- 빡세게 돈 모아서 시집갈 생각은 안하고 홀랑 독립 하더니 허튼 곳에 돈쓴다.
가 대표적일 수 있겠다.
1) 의 이유는 오마니께 아무리 설명해도 절대 나를 이해하려 하지 않으셨지만.... 다시 얘기해 보자면.... 어차피 학원비는 회수 될 수 없으니 여기에 대해 왈가 왈부 하는 건 내 시간에 대한 2차적인 낭비가 되기 때문에 회수 될 수 없는 자원에 대해 또 다른 자원을 재 투자 하는 건 완벽한 낭비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 이 점에서 우리 오마니는 거품을 무셨더랬다.
2) 거의 비슷 하다. '나'라는 개인의 만족을 위해 소비 했으나 개인의 만족에 위배 되는 경우, 물론 이런 결정을 만들지 않는게 가장 현명하나 이런 상황에 처했을 경우... 꾸역꾸역 먹어봤자 살찌고 스트레스 받으니 안먹 는게 최선의 선택이다. (물론 쫌 갠츈한 식당에 갔을 경우, 음식 맛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근거로 정중히 환불을 요구하여 받아 나온다의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울 오마니의 관점에서 나는 요리한 사람의 정성을 무시하는 나쁜 뇬이 된다.)
3) 마찬가지다. 내게 만족을 주지 못하는 자원은 오히려 짐이 될 뿐, 공간의 낭비를 줄이기 위해 1년에 한번도 입지 않은 옷은 과감히 분배 한다. (울 엄마가 매우매우 싫어 하시는 행동, 소유에 큰 의미를 두신다.)
4)는 말미에....
덕분에 나는 경제학과 보냈더니 돈 귀한 줄 모르는 애가 되어 버렸다는 어머니의 푸념을 늘 들어야 했는데..... 주변의 평판을 살짝 엿 들어도.... 나는 돈을 막 쓰는 애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덕분에 친척들 사이에서 '경제학 전공 했다더니 돈 아낄 줄 모르는 애'로 인식이 되어 있다.
울 엄마는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시다.
밥은 집에서 먹어야 하고, 장 바구니를 들고 다니시고, 지하철 한 두정거장 정도는 걷는게 건강에 좋다 생각 하시고 잔반은 먹어서 없애야 한다고 믿는 분이시며 본인 소유의 옷이 옷장에 꽉꽉 차 있지만 늘 옷이 없다고 푸념 하시는 전형적인 한국의 소시민의 모습을 하고 계시다. 할인 카드를 모으시고 쿠폰을 좋아하시며 신용카드를 싫어하시고 늘 현금, 가끔 debit card를 사용하신다. 전화는 짧게,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늘 전화를 끊으시고 (ㅋ) 당신의 생활 방식에 대한 신념이 대단하시다.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이 정도(?)로 살 수 있는 거다' 라는 듯한 뉘앙스를 늘 풍기신다. 행복이 뭐 별거 있냐 다 그렇게 사는거지~ 라고 하시는데.... 사실 울 엄마라 웃으면서 듣지 남이 그렇게 얘기 하면 아마 뒤도 쳐다보지 않았을꺼다.
우리 엄마의 입장에서 보는 나는.....
음식 아까운 줄 모르고, 어려운 거 모르고 커서 돈 무서운 지 모르고, 신용카드를 사용하며 외식을 자주 하고 옷을 좋아 하지만 물건을 함부로 다루는데다 직장 생활 하자마자 집에서 다 녔으면 훨씬 많이 모았을 것을 바로 독립해버린 시집갈 생각은 눈꼽 만큼도 없는 개념 없는 딸내미인 것이다. (엄마와 이모의 통화 녹취록에서 발췌)
하지만 내 입장에서 보는 엄마는 쿠폰, 할인이면 필요 없는 것 까지 몽땅 사서는 냉장고에 쳐 박아두고는 음식 한번 하면 10인 분 만들어서 먹고 또 먹고 살찌는 지름길로 가고 있는데다 시간 계산 잘 못하셔서 늘 약속에 20~30분은 늦고, 신용카드 싫어 하셔서 김치 냉장고 고장 났는데 5개월간 참았다가 현금으로 사신다거나 하는 이해 되지 않는 행동을 하시는 등, 입지도 않는 옷으로 안방 옷장 꽉꽉 채워 놓고 내 옷 빌려 입고, 전화만 했다하면 상대방 참 불쾌하게 만드시는 옛날 분인거다. 그렇다고 강남에 부동산 100억쯤 모았나? 이 것도 아니고....
(참고로 울 엄마 처녀 때 회사 다니며 빡시게 돈 모아서 혼수 할 때 쪼금 사기 맞고, 남자 잘 못 골라 평생 마음 고생 하시며 사심_왜 본인이 성공하지 못한 길을 추천 할까? )
점점 얘기가 엄마한테 못한 투정 늘어 놓는 것처럼 흘러가고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경제 주체로서의 소비 행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견은 아래와 같다.
소비를 하는 이유는 개인의 만족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서다.
나에게 있어 우리 엄마와 달리 소비는 시간적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 엄마의 경우는 신념이라는 개념을 부과 시키는데 본인의 신념을 실현 시키며 자신의 만족을 최대화 시키고 있다는 거다. 비판하자는게 아니라 본질적으로 나와는 소비의 행태가 다른것이다.
나는 신용카드의 시간적 개념을 높이 산다.
예를 들어 100만원의 월급을 받는 입장에서 20만원의 월세를 내고, 교통비로 10만원을 매달 지불, 예금 기타 등등의 것들에 30만원을 지출 하는 경우 40만원의 여분이 발생하는 데, 침대가 필요하다고 가정 하고, (이 가정에서의 '나'는 이십여년간 침대 생활을 했고, 바닥에서는 숙면을 취하지 못하며, 바닥 청소를 잘 하지 않는 1인으로 침대는 본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요소임을 인식 바람) 침대는 약 30여만원이라고 쳤을 때 요걸 한번에 내기는 참 부담 스럽다. 왜냐면 '나'는 현대의 서울 이라는 고도로 발달 된 도시 문명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회 주체로, 직장을 다니는 고로 점심도 먹어야 하고, 저녁도 먹어야 하고, 가끔 친구도 만날 수 있고, 기타 등등의 자질 구레한 지출이 발생 할 수 있기 때문에 40만원의 생활비에서 30만원하는 침대를 한큐에 사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매우 어렵다.
이 경우 신용카드의 할부 개념을 도입하여 3개월로 분납 하기로 하고~ 현재의 시점에 구입 하는 경우, 나는 한달에 10만원+a (무이자가 아닌 경우 이자 발생) 지불로 3개월간 바닥에서 자지 않아도 되므로 3개월 간의 시간을 번 셈이다....라는 것이 나의 지론.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를 수 있다. 개인적 욕망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경우.....
충동구매로 50만원의 침대를 구입하는 경우가 발생 하기도 하고.... 다른 기타의 것들을 충동 구매 하는 경우도 발생 할 수 있음, 또는 막상 바닥에서 잤더니 좋더라~ 하는 깨달음을 얻고 무소유의 길로 빠져 드는.... 이건 좀 말이 안되고.... 바닥 생활도 나쁘지 않더라~ 하는 결론에 도달하여 30만원을 다른 곳에 쓴다더나 저축 할 수도 있음, 요런걸 기회 비용이라고 한다지? )
물론 미래의 불확실성이라는 risk를 안아야 하지만 반면에 울 엄마의 경우도 불확실성의 risk가 존재하는 데다 (holding하고 있는 자산을 자른 곳에 쓸 수도 있지.... 개인의 욕구를 완벽하게 통제 할 수 있다고 누가 보장 할 수 있단 말인가?) 불편함과 만족의 부재라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즉 risk는 어떤 형태로든 거의 모든 경우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감안 하고서라도 현재의 만족도를 살 수 있다면 신용카드가 삶의 질을 만족 시켜줄 수 있는 무척 효율적인 도구라고 생각한다. ( 울 엄마+기타 어르신들 왈 : 카드 회사 돈 벌어 주는 일이다 라며 무척 싫어 하심 ) 사회내 경제 주체간 활동이 기여하는 발전 이라던가 일자리 창출, 순환의 문제 같은 건 옆으로 치우더라도, 극히 이기적인 방식으로 생각 했을 때, 내 결론은 신용카드는 유용하다 는 것
결론은 매우 간단하다. 나의 모든 소비 활동은 하나의 목적과 하나의 명제를 바탕으로 한다.
'한정된 재화 (내 월급)으로 나의 (개인적인) 만족의 극대화하는 것'
나는 적극적으로 내 행복 추구권을 보장, 왜곡이 되었건 수준이 낮건 어쨌건.... 나 나름의 해석으로 위의 명제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자 이제 4)번에 대한 얘기를 슬슬 해 볼까 한다.
나는 남동생이 3명이다. (우리 막내는 지금 초딩)
집에 있을 때.... 나는 엄마가 일하시는 관계로 초등학교 때 처음 수제비를 만들어 먹은 이후 자주(거의 매일) 식사 준비를 하곤 했는데... 덕분에 음식은 꽤 자신이 있다. 일하느라 힘드신 엄마를 도와 드린다는 점에서도 꽤 개인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었고, 나 자신이 워낙 맛있는 음식을 좋아 하기 때문에 실험정신을 발휘하여 나의 시간을 투자 하였으나, 회사 생활을 시작 한 이후, 더 이상은 감당할 자신도 없었고, 그 동안 해왔던, 숙련된 일에 내 시간을 투자 하기 보다는 다른데 쓰고 싶었다. 물론 쉬고도 싶었고.
독립한 이 후, 나는 무엇을 했는가.....
단편적으로만 살펴보자면 보다 나은 직장을 잡기 위해? 지속적으로 구인 정보를 탐색 하였으며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러시아어를 공부 했고 (물론 지금은 쓸데가 없지만) 독서 및 사색에 많은 시간을 투자 하였다. 결과는 현재와 같고 ( 이직, 어쩌다보니 폴란드까지 옴, 나름 전보다 나은 연봉, 휴가도 한국 보다 훨 많음, 개인 적인 시간 많음, 새로운 곳도 많이 가고보고 신기한 것들도 많이 보고 개인적인 호기심(한국에서는 학창 시절 내~내~ 쓸데없는 호기심으로 치부 받던) 충족이 한국에서보다 매우 잘 됨, 기타 등등 물론 요게 천년 만년 가리란 보장은 없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현재에 무척 만족 하고 있다.
내가 계속 집에 있었더라면 가능 했을까? 아마 지금도 퇴근 후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3~4인분 음식을 만들어 동생들과 나눠 먹고는 TV보며 하하호호 하고 있겠지?
나쁘진 않지만 그닥 만족 했을 것 같지는 않다.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가 이제 막바지로 가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한 가지가 남았다.
결혼과 저축에 대한 얘기다.
울 엄마 늘 하시는 얘기가 '쟨 저축을 안해, 결혼할 생각이 없어.... 쓸데없이 여행이나 다니고, 이상한 거나(러시아어, 독일어, 라틴 댄스....) 배우고 말이야'
물론 저축은 했다. 울 엄마가 바라시는 것 처럼 월급의 80%는 아니지만.....
사실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측면에서 봤을 때, 내가 원하는 건 궁전 웨딩홀에서 하는 하얀 드레스 입은 와글와글 결혼식도 아니었고, 혼수 이빠이 해서 시부모님께 사랑 받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남자면 집 한채 당근 해와야지...도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서로 사정에 맞춰서 하면 되지 정도? )
우리 엄마가 꿈꾸던 혼수~ 정기 적금~ 결혼식~ 에 대해서는........별로 생각이 없었다.
그런 나의 장래를 늘 걱정하셨던 우리 엄마
(당근 취직 했으니 선자리부터 들이 미시던....
엄마... 그래 결혼해서 본인 인생 퍼펙트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선 보란 소리 왜 하셨어요
설마 내가 같은 길을 가시길 바라시건 아니죠....)
고 때 배우던 러시아어랑 독일어가 계기가 되어 나는 지금 폴. 란. 드. 에 와 있고
빚만 없으면 된다는 남자친구를 만나 사랑에도 빠지고, 결혼 계획도 세우고 있다.
나의 논지는 하나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한정된 재화로 최대의 만족을 추구 한다는 것
물론 한정된 재화라고 쓰긴 했지만 파이의 크기를 늘리는 건 개인의 몫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노력이 수반 된다면 더욱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고, 지금도 믿고 있다.
경제학을 전공 했다는 것만으로 그 동안 주변 친지들에게 경제적으로 사는 길부터 시작해서, 주식 추천에 부자 되는 법까지 기타 다양한 질문 세례를 받았지만 지금의 나는 평범한 월급 쟁이에 주식은 끊은지 오래 되었으며 부자와는 거리가 멀다.
가끔 내가 경제학을 전공 했었지~ 하고 내 대학교 때 전공에 대해 인식 할 때는 단지사다리 걷어차기의 저자 장하준 교수의 신작이 있다더라~ 하는 등의 글을 볼 때 잠깐.... 함 읽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 때다.
(문제는 이 책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수준의 눈 높이에서 씌여진 개론서라는 것임..... )
따라서...
경제학을 전공한 모든 학생들이 나와 같다는 건 아니지만
나 같은 인간도 있다는 점(배운거 자기 멋대로 왜곡+ 현실에 대입,비 현실적+비 논리적)을 좀 인지 해 주셨으면 한다
마무리.....
전에 읽은 책에 나온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책 이름은 행동 경제학이고 이 이야기는 저자가 아닌 Paul Samuelson이라는 경제학자가 한 이야기다.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 물리학자, 화학자, 경제학자 세 명은 파도를 따라 떠내려온 캔 수프를 하나 발견 하게 된다.
당연히 어떠한 도구도 없었던 그 들은 이 캔 수프를 먹을 방도를 내 놓는데, 물리학자는 '돌멩이를 이용해 캔을 따자'고 얘기 했고 화학자는 '불로 가열 하자'고 했다.
그럼 경제학자는 뭐라고 했을까?
'자 우리에게 캔 따개가 있다고 가정 했을 때..... '
그 날밤 경제학자는 캔 수프를 먹었다고 가정하고 잠이 들었다나 뭐라나....
참고로 Paul Samielson은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임.
#2
그런데 다 쓰고 나서 읽어 보니 내내 주류 경제학에서 본 얘기 하다가 마지막에 행동 경제학 책 얘기 하는 건 뭐임?
이런 데서 나의 허술함이 드러나는 군..... 하고 생각.
가치니 효용이니 하는 모호한 단어들이 남발하는 경제학을 수업을 받고난 후, 내 기억에 남는 몇 가지는 미시나 거시, 계량 경제학이니 하는 수업에 배운 것들은 한 개도 없고 오직 수요 공급의 법칙이라는 경제학 원론 첫 페이지 (진짜 첫 페이지는 아님)에 나오는 지극히 기본적인 개념이 되시겠다.
울 엄니는 딸내미 경제학과 보내 놨더니 애가 돈 쓰는 걸 보면 오히려 경제학과는 거리가 멀다며 늘 친척들 앞에서 한탄하신다. ( 내 말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으심)
나는 나대로 케인즈니 밀이니 하는 이상한 아자씨들 땜시 자꾸 무슨 주의만 자꾸 늘어나고 수정 자본주의가 뭔지 신 자유주의가 뭔지, 뭔 놈의 주의는 왜 이리도 많은지 짜증도 나고... 하버드랑 시카고에서 뭐라 카는 것 같은데 그래서 어쩌라고... 죽여.... 하는 이상한 심리로 시험 때 헛소리 써 냈다가 복수 전공 안 했었으면 2점대로 졸업 할 번한 학점만 남긴 채.... 졸업 논문도 수업시간에 한번 언급 없었던 유로화 통합 우끼고 있네 라는 내용의 잡소리 논문에 써 냈다가 교수님 면담 취소 당하고 에라 빨랑 사라져라~ 라는 듯 던져주는 졸업장만 받아서 대학교 졸업했다.
자.... 그래서 이 글의 요지는(경제학을 전공으로 대학교에서 4년 공부한 )나는 결코 경제학적으로 사고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먼저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이자 (이상적인 어머니 상에서 조금은 멀지만 그래도) 평범한 한국의 주부인 우리 오마니께서 늘 나에 대해 답답해 하시는 점을 잠시 소개해보자면......
1) 학원비를 냈는데 강의가 완전 엉망이다.
- 절대! 다시는! 가지 않는다. (물론 환불을 요구 했으나 절대 안된다고 하는 경우)
2) 식당에 가서 밥을 시켰는데 맛이 없다.
- 더 이상 먹지 않는다.
3) 옷을 샀는데 여타의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 주변의 친지들에게 분배 한다.
4) 겨우 대학교 졸업해서 취직 했다.
- 빡세게 돈 모아서 시집갈 생각은 안하고 홀랑 독립 하더니 허튼 곳에 돈쓴다.
가 대표적일 수 있겠다.
1) 의 이유는 오마니께 아무리 설명해도 절대 나를 이해하려 하지 않으셨지만.... 다시 얘기해 보자면.... 어차피 학원비는 회수 될 수 없으니 여기에 대해 왈가 왈부 하는 건 내 시간에 대한 2차적인 낭비가 되기 때문에 회수 될 수 없는 자원에 대해 또 다른 자원을 재 투자 하는 건 완벽한 낭비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 이 점에서 우리 오마니는 거품을 무셨더랬다.
2) 거의 비슷 하다. '나'라는 개인의 만족을 위해 소비 했으나 개인의 만족에 위배 되는 경우, 물론 이런 결정을 만들지 않는게 가장 현명하나 이런 상황에 처했을 경우... 꾸역꾸역 먹어봤자 살찌고 스트레스 받으니 안먹 는게 최선의 선택이다. (물론 쫌 갠츈한 식당에 갔을 경우, 음식 맛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근거로 정중히 환불을 요구하여 받아 나온다의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울 오마니의 관점에서 나는 요리한 사람의 정성을 무시하는 나쁜 뇬이 된다.)
3) 마찬가지다. 내게 만족을 주지 못하는 자원은 오히려 짐이 될 뿐, 공간의 낭비를 줄이기 위해 1년에 한번도 입지 않은 옷은 과감히 분배 한다. (울 엄마가 매우매우 싫어 하시는 행동, 소유에 큰 의미를 두신다.)
4)는 말미에....
덕분에 나는 경제학과 보냈더니 돈 귀한 줄 모르는 애가 되어 버렸다는 어머니의 푸념을 늘 들어야 했는데..... 주변의 평판을 살짝 엿 들어도.... 나는 돈을 막 쓰는 애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덕분에 친척들 사이에서 '경제학 전공 했다더니 돈 아낄 줄 모르는 애'로 인식이 되어 있다.
울 엄마는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시다.
밥은 집에서 먹어야 하고, 장 바구니를 들고 다니시고, 지하철 한 두정거장 정도는 걷는게 건강에 좋다 생각 하시고 잔반은 먹어서 없애야 한다고 믿는 분이시며 본인 소유의 옷이 옷장에 꽉꽉 차 있지만 늘 옷이 없다고 푸념 하시는 전형적인 한국의 소시민의 모습을 하고 계시다. 할인 카드를 모으시고 쿠폰을 좋아하시며 신용카드를 싫어하시고 늘 현금, 가끔 debit card를 사용하신다. 전화는 짧게,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늘 전화를 끊으시고 (ㅋ) 당신의 생활 방식에 대한 신념이 대단하시다.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이 정도(?)로 살 수 있는 거다' 라는 듯한 뉘앙스를 늘 풍기신다. 행복이 뭐 별거 있냐 다 그렇게 사는거지~ 라고 하시는데.... 사실 울 엄마라 웃으면서 듣지 남이 그렇게 얘기 하면 아마 뒤도 쳐다보지 않았을꺼다.
우리 엄마의 입장에서 보는 나는.....
음식 아까운 줄 모르고, 어려운 거 모르고 커서 돈 무서운 지 모르고, 신용카드를 사용하며 외식을 자주 하고 옷을 좋아 하지만 물건을 함부로 다루는데다 직장 생활 하자마자 집에서 다 녔으면 훨씬 많이 모았을 것을 바로 독립해버린 시집갈 생각은 눈꼽 만큼도 없는 개념 없는 딸내미인 것이다. (엄마와 이모의 통화 녹취록에서 발췌)
하지만 내 입장에서 보는 엄마는 쿠폰, 할인이면 필요 없는 것 까지 몽땅 사서는 냉장고에 쳐 박아두고는 음식 한번 하면 10인 분 만들어서 먹고 또 먹고 살찌는 지름길로 가고 있는데다 시간 계산 잘 못하셔서 늘 약속에 20~30분은 늦고, 신용카드 싫어 하셔서 김치 냉장고 고장 났는데 5개월간 참았다가 현금으로 사신다거나 하는 이해 되지 않는 행동을 하시는 등, 입지도 않는 옷으로 안방 옷장 꽉꽉 채워 놓고 내 옷 빌려 입고, 전화만 했다하면 상대방 참 불쾌하게 만드시는 옛날 분인거다. 그렇다고 강남에 부동산 100억쯤 모았나? 이 것도 아니고....
(참고로 울 엄마 처녀 때 회사 다니며 빡시게 돈 모아서 혼수 할 때 쪼금 사기 맞고, 남자 잘 못 골라 평생 마음 고생 하시며 사심_왜 본인이 성공하지 못한 길을 추천 할까? )
점점 얘기가 엄마한테 못한 투정 늘어 놓는 것처럼 흘러가고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경제 주체로서의 소비 행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견은 아래와 같다.
소비를 하는 이유는 개인의 만족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서다.
나에게 있어 우리 엄마와 달리 소비는 시간적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 엄마의 경우는 신념이라는 개념을 부과 시키는데 본인의 신념을 실현 시키며 자신의 만족을 최대화 시키고 있다는 거다. 비판하자는게 아니라 본질적으로 나와는 소비의 행태가 다른것이다.
나는 신용카드의 시간적 개념을 높이 산다.
예를 들어 100만원의 월급을 받는 입장에서 20만원의 월세를 내고, 교통비로 10만원을 매달 지불, 예금 기타 등등의 것들에 30만원을 지출 하는 경우 40만원의 여분이 발생하는 데, 침대가 필요하다고 가정 하고, (이 가정에서의 '나'는 이십여년간 침대 생활을 했고, 바닥에서는 숙면을 취하지 못하며, 바닥 청소를 잘 하지 않는 1인으로 침대는 본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요소임을 인식 바람) 침대는 약 30여만원이라고 쳤을 때 요걸 한번에 내기는 참 부담 스럽다. 왜냐면 '나'는 현대의 서울 이라는 고도로 발달 된 도시 문명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회 주체로, 직장을 다니는 고로 점심도 먹어야 하고, 저녁도 먹어야 하고, 가끔 친구도 만날 수 있고, 기타 등등의 자질 구레한 지출이 발생 할 수 있기 때문에 40만원의 생활비에서 30만원하는 침대를 한큐에 사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매우 어렵다.
이 경우 신용카드의 할부 개념을 도입하여 3개월로 분납 하기로 하고~ 현재의 시점에 구입 하는 경우, 나는 한달에 10만원+a (무이자가 아닌 경우 이자 발생) 지불로 3개월간 바닥에서 자지 않아도 되므로 3개월 간의 시간을 번 셈이다....라는 것이 나의 지론.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를 수 있다. 개인적 욕망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경우.....
충동구매로 50만원의 침대를 구입하는 경우가 발생 하기도 하고.... 다른 기타의 것들을 충동 구매 하는 경우도 발생 할 수 있음, 또는 막상 바닥에서 잤더니 좋더라~ 하는 깨달음을 얻고 무소유의 길로 빠져 드는.... 이건 좀 말이 안되고.... 바닥 생활도 나쁘지 않더라~ 하는 결론에 도달하여 30만원을 다른 곳에 쓴다더나 저축 할 수도 있음, 요런걸 기회 비용이라고 한다지? )
물론 미래의 불확실성이라는 risk를 안아야 하지만 반면에 울 엄마의 경우도 불확실성의 risk가 존재하는 데다 (holding하고 있는 자산을 자른 곳에 쓸 수도 있지.... 개인의 욕구를 완벽하게 통제 할 수 있다고 누가 보장 할 수 있단 말인가?) 불편함과 만족의 부재라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즉 risk는 어떤 형태로든 거의 모든 경우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감안 하고서라도 현재의 만족도를 살 수 있다면 신용카드가 삶의 질을 만족 시켜줄 수 있는 무척 효율적인 도구라고 생각한다. ( 울 엄마+기타 어르신들 왈 : 카드 회사 돈 벌어 주는 일이다 라며 무척 싫어 하심 ) 사회내 경제 주체간 활동이 기여하는 발전 이라던가 일자리 창출, 순환의 문제 같은 건 옆으로 치우더라도, 극히 이기적인 방식으로 생각 했을 때, 내 결론은 신용카드는 유용하다 는 것
결론은 매우 간단하다. 나의 모든 소비 활동은 하나의 목적과 하나의 명제를 바탕으로 한다.
'한정된 재화 (내 월급)으로 나의 (개인적인) 만족의 극대화하는 것'
나는 적극적으로 내 행복 추구권을 보장, 왜곡이 되었건 수준이 낮건 어쨌건.... 나 나름의 해석으로 위의 명제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자 이제 4)번에 대한 얘기를 슬슬 해 볼까 한다.
나는 남동생이 3명이다. (우리 막내는 지금 초딩)
집에 있을 때.... 나는 엄마가 일하시는 관계로 초등학교 때 처음 수제비를 만들어 먹은 이후 자주(거의 매일) 식사 준비를 하곤 했는데... 덕분에 음식은 꽤 자신이 있다. 일하느라 힘드신 엄마를 도와 드린다는 점에서도 꽤 개인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었고, 나 자신이 워낙 맛있는 음식을 좋아 하기 때문에 실험정신을 발휘하여 나의 시간을 투자 하였으나, 회사 생활을 시작 한 이후, 더 이상은 감당할 자신도 없었고, 그 동안 해왔던, 숙련된 일에 내 시간을 투자 하기 보다는 다른데 쓰고 싶었다. 물론 쉬고도 싶었고.
독립한 이 후, 나는 무엇을 했는가.....
단편적으로만 살펴보자면 보다 나은 직장을 잡기 위해? 지속적으로 구인 정보를 탐색 하였으며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러시아어를 공부 했고 (물론 지금은 쓸데가 없지만) 독서 및 사색에 많은 시간을 투자 하였다. 결과는 현재와 같고 ( 이직, 어쩌다보니 폴란드까지 옴, 나름 전보다 나은 연봉, 휴가도 한국 보다 훨 많음, 개인 적인 시간 많음, 새로운 곳도 많이 가고보고 신기한 것들도 많이 보고 개인적인 호기심(한국에서는 학창 시절 내~내~ 쓸데없는 호기심으로 치부 받던) 충족이 한국에서보다 매우 잘 됨, 기타 등등 물론 요게 천년 만년 가리란 보장은 없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현재에 무척 만족 하고 있다.
내가 계속 집에 있었더라면 가능 했을까? 아마 지금도 퇴근 후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3~4인분 음식을 만들어 동생들과 나눠 먹고는 TV보며 하하호호 하고 있겠지?
나쁘진 않지만 그닥 만족 했을 것 같지는 않다.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가 이제 막바지로 가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한 가지가 남았다.
결혼과 저축에 대한 얘기다.
울 엄마 늘 하시는 얘기가 '쟨 저축을 안해, 결혼할 생각이 없어.... 쓸데없이 여행이나 다니고, 이상한 거나(러시아어, 독일어, 라틴 댄스....) 배우고 말이야'
물론 저축은 했다. 울 엄마가 바라시는 것 처럼 월급의 80%는 아니지만.....
사실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측면에서 봤을 때, 내가 원하는 건 궁전 웨딩홀에서 하는 하얀 드레스 입은 와글와글 결혼식도 아니었고, 혼수 이빠이 해서 시부모님께 사랑 받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남자면 집 한채 당근 해와야지...도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서로 사정에 맞춰서 하면 되지 정도? )
우리 엄마가 꿈꾸던 혼수~ 정기 적금~ 결혼식~ 에 대해서는........별로 생각이 없었다.
그런 나의 장래를 늘 걱정하셨던 우리 엄마
(당근 취직 했으니 선자리부터 들이 미시던....
엄마... 그래 결혼해서 본인 인생 퍼펙트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선 보란 소리 왜 하셨어요
설마 내가 같은 길을 가시길 바라시건 아니죠....)
고 때 배우던 러시아어랑 독일어가 계기가 되어 나는 지금 폴. 란. 드. 에 와 있고
빚만 없으면 된다는 남자친구를 만나 사랑에도 빠지고, 결혼 계획도 세우고 있다.
나의 논지는 하나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한정된 재화로 최대의 만족을 추구 한다는 것
물론 한정된 재화라고 쓰긴 했지만 파이의 크기를 늘리는 건 개인의 몫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노력이 수반 된다면 더욱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고, 지금도 믿고 있다.
경제학을 전공 했다는 것만으로 그 동안 주변 친지들에게 경제적으로 사는 길부터 시작해서, 주식 추천에 부자 되는 법까지 기타 다양한 질문 세례를 받았지만 지금의 나는 평범한 월급 쟁이에 주식은 끊은지 오래 되었으며 부자와는 거리가 멀다.
가끔 내가 경제학을 전공 했었지~ 하고 내 대학교 때 전공에 대해 인식 할 때는 단지사다리 걷어차기의 저자 장하준 교수의 신작이 있다더라~ 하는 등의 글을 볼 때 잠깐.... 함 읽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 때다.
(문제는 이 책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수준의 눈 높이에서 씌여진 개론서라는 것임..... )
따라서...
경제학을 전공한 모든 학생들이 나와 같다는 건 아니지만
나 같은 인간도 있다는 점(배운거 자기 멋대로 왜곡+ 현실에 대입,비 현실적+비 논리적)을 좀 인지 해 주셨으면 한다
마무리.....
전에 읽은 책에 나온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책 이름은 행동 경제학이고 이 이야기는 저자가 아닌 Paul Samuelson이라는 경제학자가 한 이야기다.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 물리학자, 화학자, 경제학자 세 명은 파도를 따라 떠내려온 캔 수프를 하나 발견 하게 된다.
당연히 어떠한 도구도 없었던 그 들은 이 캔 수프를 먹을 방도를 내 놓는데, 물리학자는 '돌멩이를 이용해 캔을 따자'고 얘기 했고 화학자는 '불로 가열 하자'고 했다.
그럼 경제학자는 뭐라고 했을까?
'자 우리에게 캔 따개가 있다고 가정 했을 때..... '
그 날밤 경제학자는 캔 수프를 먹었다고 가정하고 잠이 들었다나 뭐라나....
참고로 Paul Samielson은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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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 쓰고 나서 읽어 보니 내내 주류 경제학에서 본 얘기 하다가 마지막에 행동 경제학 책 얘기 하는 건 뭐임?
이런 데서 나의 허술함이 드러나는 군..... 하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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